소꿉친구의 콤플렉스

3화. 짜증나는 김도훈

식당 안은 금세 다시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부모님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른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시험 끝날 때마다 누가 전교 1등이냐 가지고..."

그 말만 계속 맴돌았다.

나는 물컵을 괜히 만지작거렸다.

고등학교 2학년.

그날이 떠올랐다.

 

 

-

 

 

"김여주."

담임 선생님은 성적표를 한 장 내 앞으로 밀어 놓았다.

나는 굳은 얼굴로 점수만 내려다봤다.

전교 2등.

틀린 문제도 몇 개 없었다.

남들이 보면 충분히 잘 본 성적.

하지만 내 시선은 맨 위 이름으로 향했다.

김도훈.

전교 1등.

또.

김도훈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잠시 내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주야."

"네."

"요즘 많이 힘들지?"

"...괜찮아요."

거짓말이었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시험이 끝날 때마다.

모의고사가 끝날 때마다.

비교당하는 것도.

늘 김도훈 바로 아래라는 것도.

전부.

"선생님이 한 가지 제안해도 될까?"

"..."

"문과도 한번 생각해 보는 건 어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성적이면 문과에서도 충분히 원하는 대학 갈 수 있어."

"..."

"이과는 워낙 경쟁이 치열하잖니."

"..."

"굳이 힘든 길을 갈 필요는 없..."

더는 듣지 않았다.

내 귀에는 딱 한 문장만 들렸다.

'김도훈은 못 이기잖아.'

선생님은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렇게 들렸다.

 

 

-

 

 

교무실 문을 열고 나오자 숨이 턱 막혔다.

복도 창문을 열어도 답답했다.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여주."

...

왜 하필.

오늘.

뒤를 돌아보니 카메라를 들고 있는 도훈이 서 있었다.

"끝났어?"

"...응."

"잘됐다."

도훈은 카메라를 한번 들어 보였다.

"사진부 과제인데."

"모델이 한 명 부족해서."

"..."

"잠깐만 찍어줄래?"

평소였다면 별말 없이 찍혔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사진부에 들어간 뒤로는 더 자주.

도훈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축제만 열리면.

운동장에 꽃이 피면.

늘 내 사진을 찍었다.

그땐 그냥 귀찮은 줄만 알았다.

"...싫어."

"금방 끝나."

"오늘은 싫어."

"왜?"

왜?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아니면.

관심이 없는 걸까.

"여주."

도훈은 한 걸음 다가와 카메라를 들었다.

"한 장만."

그 말이.

이상하게.

너무 싫었다.

'넌 항상 쉽지.'

'공부도.'

'성적도.'

'사람들 시선도.'

'난 죽어라 해도 널 못 이기는데.'

"...싫다고 했잖아!"

나는 도훈의 팔을 밀어냈다.

순간.

카메라 스트랩이 손에서 미끄러졌다.

툭.

철컥.

복도 바닥에 카메라가 떨어졌다.

"..."

"..."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렌즈 한쪽에 금이 가 있었다.

'망했다.'

도훈은 천천히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여기저기 살펴본 뒤.

한숨도 쉬지 않았다.

화도 내지 않았다.

그저 나를 바라봤다.

"...미안."

겨우 입을 열었다.

도훈은 잠시 말이 없었다.

"...괜찮아."

"수리하면 돼."

"..."

"신경 쓰지 마."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게 더 미안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도망치듯 계단을 내려갔다.

 

 

-

 

 

그날 이후.

우린 처음으로.

소꿉친구가 아니게 됐다.

학교에서는 필요한 말만 했다.

집 앞에서 마주쳐도 인사만 했다.

졸업식 날에도.

서로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20년 동안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

가장 어색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

 

 

"...여주."

엄마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왜 이렇게 멍해?"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애써 웃으며 수저를 들었다.

반대편에 앉은 도훈도 말이 없었다.

평소 같으면 장난이라도 쳤을 텐데.

오늘은 나처럼.

조용히 밥만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도훈도 그날을 기억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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