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안은 금세 다시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부모님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른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시험 끝날 때마다 누가 전교 1등이냐 가지고..."
그 말만 계속 맴돌았다.
나는 물컵을 괜히 만지작거렸다.
고등학교 2학년.
그날이 떠올랐다.
-
"김여주."
담임 선생님은 성적표를 한 장 내 앞으로 밀어 놓았다.
나는 굳은 얼굴로 점수만 내려다봤다.
전교 2등.
틀린 문제도 몇 개 없었다.
남들이 보면 충분히 잘 본 성적.
하지만 내 시선은 맨 위 이름으로 향했다.
김도훈.
전교 1등.
또.
김도훈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잠시 내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주야."
"네."
"요즘 많이 힘들지?"
"...괜찮아요."
거짓말이었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시험이 끝날 때마다.
모의고사가 끝날 때마다.
비교당하는 것도.
늘 김도훈 바로 아래라는 것도.
전부.
"선생님이 한 가지 제안해도 될까?"
"
"문과도 한번 생각해 보는 건 어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성적이면 문과에서도 충분히 원하는 대학 갈 수 있어."
"
"이과는 워낙 경쟁이 치열하잖니."
"
"굳이 힘든 길을 갈 필요는 없..."
더는 듣지 않았다.
내 귀에는 딱 한 문장만 들렸다.
'김도훈은 못 이기잖아.'
선생님은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렇게 들렸다.
-
교무실 문을 열고 나오자 숨이 턱 막혔다.
복도 창문을 열어도 답답했다.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여주."
...
왜 하필.
오늘.
뒤를 돌아보니 카메라를 들고 있는 도훈이 서 있었다.
"끝났어?"
"...응."
"잘됐다."
도훈은 카메라를 한번 들어 보였다.
"사진부 과제인데."
"모델이 한 명 부족해서."
"
"잠깐만 찍어줄래?"
평소였다면 별말 없이 찍혔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사진부에 들어간 뒤로는 더 자주.
도훈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축제만 열리면.
운동장에 꽃이 피면.
늘 내 사진을 찍었다.
그땐 그냥 귀찮은 줄만 알았다.
"...싫어."
"금방 끝나."
"오늘은 싫어."
"왜?"
왜?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아니면.
관심이 없는 걸까.
"여주."
도훈은 한 걸음 다가와 카메라를 들었다.
"한 장만."
그 말이.
이상하게.
너무 싫었다.
'넌 항상 쉽지.'
'공부도.'
'성적도.'
'사람들 시선도.'
'난 죽어라 해도 널 못 이기는데.'
"...싫다고 했잖아!"
나는 도훈의 팔을 밀어냈다.
순간.
카메라 스트랩이 손에서 미끄러졌다.
툭.
철컥.
복도 바닥에 카메라가 떨어졌다.
"
"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렌즈 한쪽에 금이 가 있었다.
'망했다.'
도훈은 천천히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여기저기 살펴본 뒤.
한숨도 쉬지 않았다.
화도 내지 않았다.
그저 나를 바라봤다.
"...미안."
겨우 입을 열었다.
도훈은 잠시 말이 없었다.
"...괜찮아."
"수리하면 돼."
"
"신경 쓰지 마."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게 더 미안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도망치듯 계단을 내려갔다.
-
그날 이후.
우린 처음으로.
소꿉친구가 아니게 됐다.
학교에서는 필요한 말만 했다.
집 앞에서 마주쳐도 인사만 했다.
졸업식 날에도.
서로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20년 동안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
가장 어색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
"...여주."
엄마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왜 이렇게 멍해?"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애써 웃으며 수저를 들었다.
반대편에 앉은 도훈도 말이 없었다.
평소 같으면 장난이라도 쳤을 텐데.
오늘은 나처럼.
조용히 밥만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도훈도 그날을 기억하고 있는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