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에 띄운 꽃 한송이

외전, 신데렐라 같은 사람이었다.




그 넓었던 창 한가득


네가 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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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편. 신데렐라 같은 사람이었다.





















*

태형은 아마, 아픈 몸에 무서운 제 첫째형까지 더해 위축되어 자라던 아이었을 것이다. 어느새 10대의 끝자락을 잡고 있는 나이가 된 태형은 항상 제 방의 커다란 창문을 통해 밖을 구경하는 것을 즐기는 아이가 되었다. 창 밖엔 몸이 약해 침대에 앉아 있는 저보다 훨씬 자유로운 것들이 날아다니곤 했으니까. 그 커다랬던 창은 태형에겐 항상 아름다운 것만을 보여주곤 했다.







“저기...”




“네, 도련님.”




“저.. 애는 누구에요?”




“..아마 새로 온 양치기 소녀일거에요. 오늘 식사는 괜찮으셨어요?”




“네...”







자유로이 저 하늘을 날아, 햇빛을 함께하는 그들만을 쫓기 바쁘던 태형의 눈에 한 소녀가 비쳤다. 새하얀 양털보다도 하얗고, 어떤 옷을 입든 무엇을 하든 한 송이의 꽃처럼 보이던 그녀. 여주였을거다. 눈을 덮은 검은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그녀를 마주한 그날, 태형은 머리를 잘랐다.







“머리 잘랐네?”




“..네.”




“그게 더 잘 어울려. 자르고 다녀.”




“네... 그 형.”




“응 왜.”




“..저 다시 수업 받고 싶어요. 침대에만 가만히 누워있긴 싫어요.”




“.....”







무심히 칼질하던 손이 멈췄다. 세하가 잠시 미쳤냐는 얼굴로 태형을 바라보았다. 네 건강에 예민한 형인거 알잖아. 보통 같았다면 여기서 물러섰겠지만 태형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침대에만 앉아있으니까 더 약해지는 것 같아요. 바깥 공기도 마시고... 살고 싶어요 형.”








떨리는 목소리는 약했지만 강단있었다. 제 막내동생을 가만히 바라보던 형, 태한은 태형의 머리를 살짝 만져보았다. 분명히 그의 머리는 짧았다. 세상을 두려워해서 침대에 머무르기를 스스로 선택했던 제 동생을 이만 놔주어도 좋지 않을까. 뺨이라도 맞는 줄 알고 움찔했던 태형이 눈을 살짝 떴다.







“그러도록 해. 무리하지 말고. 또 쓰러지면 혼나.”




“네...!”




“밥 먹어.”








태형은 서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하얀 잠옷만 걸치던 몸에 세하의 옷장을 뒤져서라도 예쁜 옷을 차려입었다. 햇빛을 받지 못해 창백했던 얼굴빛이 밝아져왔다. 배우는 것이 버거워도 연필을 놓는 법이 없었고 가슴의 통증 따위가 그를 일찍 잠들게 하지 못했다. 그의 발은, 침대를 내려와 한발자국씩 디디고 있었다.







“태형아. 오늘 몸 상태는 좀 어때?”




“괜찮습니다.”




“...야외 수업을 나가보자꾸나. 집 밖에 배울 것이 널렸으니.”




“네...!!”







아직은 쌀쌀한 날씨에 세하가 태형에게 망토를 단단히 둘러주었다. 태형도 여러모로 신나보였다. 동산 위 한 송이의 꽃만 같았던 그녀를 가까이 볼 수 있었다. 환상적이지 않은가.







“프리지아란 꽃이란다. 이건 리시안셔스고.”




“예쁜 꽃이네요...”




“꽃말은 더욱 예뻐. 당신의 앞날, 변치않는 사랑.”







태형은 정원사에게 양해를 구해 프리지아와 리시안셔스를 각각 한 송이씩 꺾었다. 당신의 앞날에, 변치 않는 사랑의 축복을. 두 송이를 꼭 쥔 태형의 신경은 오직 동산 위를 향했다. 어쩌면 그 꽃도 날 보고 있는 것만 같은 행복한 상상이 들었다.







“콜록! 흐...”







거의 매일 야외수업을 나가고 있으니 그만큼 태형의 몸 상태가 서서히 악화되는건 있는건 당연한 처사였다. 결국 야외수업 일수도 줄이고 약도 빼놓지 않았지만 악화를 막을 순 없었다. 태형이 자주 몰래 나간게 원인이었다.







“여주야..!”




“태형아! 오늘도 왔구나?”








저 스스로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만만치 않은 경사의 동산을 매일 같이 오른다는건 무리라고. 오를 때마다 찌릿하며 아파오는 가슴은 태형에게 온 힘을 다해 알리고 있었다. 무리하지 마, 아플거야.







“하늘 맑다. 그치?”




“...응. 예쁘다.”







드높아진 하늘은 그만큼 세세히 살펴보아주지 않았다. 동산에서 꽃을 만나고 온 날 밤, 동산에 앉아 노래를 부르는 그녀를 보며 잠들려던 태형에게 고통이 덮쳤다. 가슴통증에 몸을 웅크려 괴로워하면서도 아프다 호소할 순 없었다. 제가 밤마다 아파한다는걸 안다면 수업은 끊길 터였다. 매일 같이 장마가 내리다 이제 겨우 무지개가 뜨려는데, 다시 침대에 박히긴 싫었다.







“못 주무셨어요? 의원을 부를까요?”




“괜찮아.”







며칠째 거의 자지 못했다. 피곤한듯 눈을 손끝으로 누르며 일어난 그는 하얗게 뚝 떨어지는 잠옷의 옷 선과 더불어 오히려 매력있어 보였다. 괴로웠던 간밤의 고통으로 수업마저 취소하고 죽을 겨우 몇 숟가락 뜨고 있을 때 쯤 태형이 무서워하는 그의 첫째형, 태한이 그의 방에 찾아왔다. 







“...형.”




“수업 취소했다며. 아파?”




“아니에요. 많이 안 아파요.”




“진짜?”




“.....”




“간밤에 많이 아파했다며.”




“…”





짜악-







어디서 자꾸 거짓말이야. 순식간에 뺨을 맞은 태형이 제 형 몰래 입술을 잠시 짓이겼다가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릴때부터, 무섭게만 구는 태한이 싫었다. 온전히 태형을 위한 것이었겠다만, 그는 태형에게 상처 밖엔 가르치지 못했다. 







“아흐..”




“약 가져왔어요 도련님. 돌아누워보세요.”




“안 바를래. 괜찮아.”







가슴통증은 강한 약에 사그라들었지만 허벅지의 쓰라림에 밤새 괴로웠던 태형이다. 하녀가 약을 가져온 것을 보니 넓은 저택에도 어느새 소문이 퍼져있는 듯 했다. 인상을 찡그리며 일어나 앉은 태형이 밝게 뜬 해를 올려다보았다. 오늘 밤은 밤새 그녀와 별구경을 하고싶은 밤이었다. 제가 어둑한 밤에 앓을 때 아무리 빌어도 도움 하나 주지 않은 별이지만 그래도, 그녀는 별을 좋아하니까.







“흐... 아,”







봉긋 솟은, 그날의 동산과 그날의 밤. 유난히 밝았던 유성은 다시 침대에 박힐 것만 같은 두려움을 벗어나고자 한 작은 소년의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동산을 오르는 것이 유난히 버거워졌음을 너무나 뒤늦게 깨달은 태형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지막으로 떨어지는 유성을 눈에 담으며, 동산 위로 스러졌다.










벅차게 밝았던 그 유성은 혜성이었을까요


그랬다면, 함께 유성을 봐주지 못했단 죄책감을


덜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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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의 스러질 소원이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