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글몽글 심리

몽글몽글 심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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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글몽글 심리 3












“안녕하세요-“

늘 보던 풍경. 늘 보던 사람들. 늘 머물던 내 자리. 한 사람이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고 한들, 나의 일상은 이상하리만치 변함이 없다. 


“여주 씨 굿모닝. 태형 씨는요?”

“오늘 외근이래요. 경찰서 간다던데?”


여주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개를 좌우로 젓는 직장 동료. 하여튼 고생이 많아 정말. 오늘은 또 누굴 만나길래. 늘상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적응 안 된다는 듯이 한숨 쉬며 회전의자에 앉아 여주에게 시선을 두었다. 목을 가다듬으며.


“근데… 여주 씨.”

“네?”

“태형 씨랑 여주 씨 사이….”

아, 저 전화 좀. 두 사람의 이름이 동시에 언급되자, 애꿎은 핸드폰을 쥐고서 이곳을 벗어나 제 진료실로 쏙 들어가버리는 여주였다.













-🤍-












누가 뒤따라오나- 확인하고서 진료실 문을 닫은 여주. 가만히 서서 꺼진 핸드폰 액정만 바라보다, 결국 누군가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길어지는 연결음이 들려올 동안, 가방은 수납함에 넣어두고 책상 앞 의자에 앉아 발을 동동 굴렀다.

그리고 마침내, 연결음이 끊겼을 때에는






“생존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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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특하네. 안 잊어버리고.”

“아직 가는 중?”

“너 내린지 5분도 안 됐어.”


아, 그런가. 애꿎은 손목 시계 속 분침만 바라보던 여주가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너 찾아, 어디 갔냐고 물어.


“일하러 갔다 그러지.”

“응. 그렇게 말했지.”


아 오늘 하루 어떻게 버티지. 설여주 못 보잖아. 말 떨어지기 무섭게 여주가 코웃음 쳤다. 니가 언제부터 날 끔찍이 보고 싶어했다고. 참나….


“혹시… 지금 이렇게 나 챙기는 거,”

“….”

“연민이나 동정인가.”

최근에 이별을 겪은 사람에 대한. 여주의 말 끝에는 어떠한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게 한기가 맴도는 것만 같달까. 다만 태형의 작디 작은 숨소리가 정적을 메울 뿐. 그냥 단순한 숨소리라기보단, 한숨에 가까운 거지.

여주는 애꿎은 손톱 끝자락만 매만졌다. 대답이 들려오지 않아, 정말 그런 마음으로 날 더 애틋하게 대하는 건가 싶어서. 정말 그런 의도로 날 챙겨주는 거라면, 친구에게 그런 시선으로 비춰지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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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진짜.”


목소리에 신경질이 섞여 언성이 높아진 태형이었다. 순간적으로 둘의 사이는 얼어붙었다. 여주는 아무 말 없이 입술만 연이어 깨물 뿐. 태형으로부터 이따가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통화를 끊었다지.

끊어진 통화 화면을 가만히 응시하던 여주. 발신자의 이름인 태형이를 가만 보다 핸드폰을 탁자 위로 내던졌다. 이러한 행동이 여러모로 그녀의 심정이 복잡하다는 걸 대변해주는 듯 했다.













-🤍-













“오랜만이네, 지우야-.”

“선샘미 안뇽….”

아기자기한 공룡 인형을 쥐고 있는 남자 아이가 얼굴을 붉힌 채로 진료실에 뛰어 들어왔다. 이 아이는 정기적으로 내게 심리 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고, 이름은 김지우. 내 눈을 마주치자마자, 조심스레 내 검지를 쥐어오는데 글쎄… 말랑말랑한 촉감이 손끝에서 느껴지는 게, 꽤 기분 좋았다.

아이의 시선을 맞추려 무릎을 굽혀 앉으면, 여전히 쑥스러운 표정으로 시선을 피하는 지우. 그런 지우 옆에 서있던 지우의 어머님은 썩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 할 말이 있다는 듯이 입술이 벌어졌다 다물어지기를 반복했다. 대충 눈치를 챘기에, 둘만 있는 자리가 있어야겠다 싶어 지우를 이끌고 바로 옆옆에 있는 놀이방으로 향했다.


“지우야, 여기서 잠깐 놀고 있을래요?”

“…선샘미는?”

“금방 올 거야~ 잠깐이면 돼요.”


알사탕을 작은 손에 몇 개 쥐어주면서 지우의 머리를 쓰다듬자, 금세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사르르 번졌다. 아유, 이뻐. 트램펄린으로 향하는 지우 뒷모습을 가만 보다, 이내 진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커피, 차 둘 중에 어느 게 나으세요?”

“아, 전 물이면 돼요.”

생글생글하게 웃는 모습이 꼭, 지우 엄마분이랑 지우가 똑 닮았다는 걸 예전부터 느끼곤 했다. 이런 걸… 붕어빵 모자라고 한다던가.


“….”

“편하게 말씀하세요. 괜찮아요.”

“…아.”


긴장을 하신 듯한 눈치였다. 수차례 괜찮다며 안심시켜드린 후에야, 겨우 입을 열어주셨는데… 글쎄 이후에 들려오는 말이….


“애 아빠가… 알아버렸어요.”

“…네?”

“…아시잖아요. 지우 여기 오는 걸 반대한 사람이라.”

“….”


아까 그 웃던 모습은 어디 가고, 지우 엄마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예전부터 지우 아빠에 관한 이야기라면 수도 없이 들어와서 심정이 대충은 짐작이 갔다. 술만 마셨다 하면 아이는 물론이고, 아내에게도 폭력을 행세하는 인간이었으니.

곧 이혼할 거예요. 그 말과 동시에 지우 어머님의 얼굴에는 일그러진 미소가 올랐다. 억지로 끌어올린 듯한 입꼬리가 바들바들 떨렸음에도 불구하고, 연이어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우에게 전혀 본보기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에요. 지우가 아프게 된 것도, 지우가 마음이 다쳐서 여기에 오게된 것도 모두 다 그 사람 탓이에요. 이 이혼을 왜 여태까지 질질 끌었나 싶네요. 


“…차라리 잘됐어요, 어머니.”

“….”

“그럼 이제, 안 오시는 거예요?”


어머님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애 아빠 찾아올까 겁나 다른 곳으로 떠날 예정이에요. 그동안 우리 지우 예뻐해주셔서 감사했다는 인사 드리려고 왔어요.











-🤍-












“이봐, 설쌤. 점심 안 먹게?”

“…그닥, 생각이 없어서요-“


마지막으로 지우 모습을 본 이후, 도통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2년 가까이 봐왔던 아이라 그간 정이 많이 들었는데. 처음에 왔을 때에는 마냥 우울하고 무뚝뚝했는데,그래도 떠날 때는 웃는 모습 볼 수 있어 나름 기뻤다. 정말 도움이 되어준 것 같아서.

지우는 오늘이 마지막이었다는 걸 모르겠지만, 그래도 언젠가 알게 된다면 한 번쯤은 마주쳤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도 머지 않아… 여러 생각들 틈으로 금방 또다시 떠오른 김태형. 아까 꽤 화난 모양이었는데. 전화를 먼저 해야 하나. 그치만… 걔도 일하고 있고… 먼저 전화를 준댔는데. Rrrrrrrr-

놀랍다. 놀라워. 이 정도면 텔레파시라도 통한 게 분명하다. 어떻게 이 타이밍에 전화가 딱.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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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아직.”

너는? 물으니까 시간이 없어서 거른댄다. 그래서 나도 그렇다고 대답했고. 이제 막 전과자 하나 상담 끝냈다는데… 벌써부터 기운 빠진다고 했다. 하긴 그럴 법도 해. 범죄자들 상대하는게 보통 감정 소모가 아니라.

“그럼 이제 또 다른 상담 해야 하잖아.”

“잠깐 쉬려고.”

아 그래? 무미건조한 맞장구를 끝으로, 통화를 매듭지으려 할때… 얘가 먼저 아까 이야기를 꺼냈다. 나중에 퇴근하고 얘기하자 할 줄 알았는데. 지금 하고 싶은 말이 있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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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야기해도 괜찮아?”


물론. 근데 잠깐만, 나 자리 좀 옮길게. 주변을 둘러보다 점심시간이라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비상계단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상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가 구석쪽 벽에 등을 기대고서 다시금 핸드폰을 귓가로 가져다 댔다. 그러기 무섭게 이제 됐냐며 다정하게 물어오는 김태형에, 대답했다. 응 이제 말해.

아니나 다를까, 심호흡 조금 하는가 싶더니 이내 말문을 여는 그였음을.


“동정, 연민 그런 거 아니야.”

“….”

“너한테 단 한 번도 그런 감정 느낀 적 없어.”

“….”


애초에 이별했다고 해서 그런 감정이 드는 게 이상한 거지.안 그래? 내게 묻길래, 나는 대답 없이 고개만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다 보니까 궁금한 게 생기더라고?


“그러면, 뭐야.”

“…뭘.”

“…왜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는데.”


당하는 사람 착각하게 신경 써주잖아, 어제부터. 이 말 하면서 나도 내가 뭔 말을 하는가 싶어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반복했다. 최대한 태연한 척 해보려 했는데… 쉽지가 않아, 이게.

근데 그 와중에… 웃음 소리 들려오는 거 있지. 그것도 헛웃음 말이야. 어이없다는 듯이 픽, 웃더니 들려오는 말이 뭐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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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척하는 거야, 아님 정말 모르는 거야.”

“…뭐라고?”

“것도 아니면, 눈치가 없는 건가.”

“…내가 좀 둔한 편이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