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본받고 싶은 사람.
수술이 끝나고, 수술실을 나오다가 성우 선배와 마주쳤다.
"헤이 보뢈 보뢈~ 수술은 잘했어?"
"뭐... 제가 하나요... 강선생님이 다하셨죠.."
"강선생님?? 강다니엘?"
"네"
"너 강다니엘이랑 수술했어??"
"네"
"오.... 어땠어? 장난 아니지?"
"네. 아시네요?"
"당연하지, 나 강다니엘이랑 같은 학교 나왔는걸.. ㅋ"
"서울대요?"
"응"
"그럼, 강선생님이랑 친해요?"
"음... 아니.. 워낙 사회생활이 없는 애야. 대학 다닐 때 다 같이 술 먹는 자리도 안 나오고, 무슨 환영회, 파티 그런 거 한 번도 나온 적 없었어ㅋ 심지어 엠티도 안 왔다니까?ㅋ 처음엔 그래도 사람들이 계속 나오라고 말했는데, 안 들으니까 포기했지.."
"아.. 아직도 그래요?"
"어. 원래 다른 사람이랑 같이 있는 걸 싫어하는 데다가 수술까지 수준급이니까, 거의 수술실에서 산다더라고..."
"음..."
성우 선배의 그 말을 듣는 순간 강선생님이 전에 의자에 앉아 쉬고 있을 때 의도치 않게 방해한 게 생각나서 좀 미안했다.
'그때도 수술실에 있다 왔을 텐데... 힘들었겠지...?'
혼자 생각하고 있으니, 앞에 있던 선배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그런 애들은 자기 혼자만의 세계가 있는 애들이야. 우리랑 좀 다른, 천재..라고나 할까? 이해하기 힘들어.. ㅋ 그러고 보니, 걔랑 수술했으면 별로 힘들진 않았겠네? 걔도 진짜 깔끔하게 잘하니까."
"맞아요ㅎ 생각보다 괜찮았어요.ㅎ"
"근데, 보람아. 앞으로는 더 힘들어질 거야, 각오해~"
"ㅎ네"
사실 내가 제일 잘하는 게 참는 거다.
지루해도 참고, 짜증 나도 참고, 화나는 것도 참고, 불편한 것도 참고, 힘든 것도... 제일 잘 참는다.
"거의 수술실에서 산다더라고.."
강선생님은 그런 사람이었다. 능력이 뛰어난데 열심히 하는 사람. 능력이 뛰어난데도 열심히 하는 사람. 이미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있는데도 한결같은 사람.
그 사람은 이제 더 이상 내게 엘리베이터 사 가지 남이 아니었다. 본받고 싶은, 그런 대단한 선생님이었다.
1년 후.
벌써 내가 레지던트 1년 차가 되었다. 가장 바쁠 시기인 것이다.
성우 선배 말대로 진짜 수술이 많아졌고, 내 예상대로 난 잘 버티고 있다.
강선생님은 여전히 잘 보이지 않았고, 요즘은 더 마주치는 일이 없었다.
어제 아침 한 여학생이 우리 병원에 왔다.
자살을 하려고 베란다로 뛰어내렸는데, 떨어지다가 나무에 걸리면서 다행히 죽진 않았지만, 허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내가 그 아이의 주치의였다.
어려운 수술은 아니었기에 금방 끝이 났지만, 아이가 깨지를 않아, 내가 어제부터 걱정이 많았다.
오늘 아침, 회진을 돌다가 그 아이, 혜인이가 깨어난 것을 보았다.
"혜인아, 깼네? 몸은 좀 괜찮아?"
"
대답이 없었다.
"혜인이가 떨어지면서 다행히 나무에 걸려서 살았어, 근데 허리가 다치는 바람에 의사선생님들이 수술했고, 이제 깼으니까 좀 쉬면서 회복하고 재활운동해야 해~"
"
그 아인 내 말을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난 꿋꿋이 말을 이었다.
"혜인아, 거기서 왜 그런 짓을 했니? 다들 걱정하게.."
"걱정이오?"
갑자기 대답을 해서 좀 놀랐다. 그런데 목소리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걱정을 누가 해요? 뭐 가족이란 사람들 말하는 건가?.. 그 사람들, 내가 죽어도 눈 하나 깜빡 안 할걸요?"
"혜인아, 어제 부모님 오셔서 많이 걱정하고 가셨어."
"그거야, 쇼죠. 의사 선생님들 있는데 당연히 걱정하는척하죠"
"혜인아, 그래도..."
"나가요. 다 꼴보기 싫으니까!"
"알겠어, 무슨 일 있으면 저 버튼 눌러~"
쫒...겨났다. 이거.. 쫓겨난 거.. 맞지? 맞다. 쫓겨난 거다.
레지던트 1년 차 처음이었다. 만만하지 않을 것 같다.
저 아이를 어떡하면 좋을까......?
"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땅 꺼지겠다.. 무슨 일 있어?"
"어, 선배."
그러고 보니 성우 선배랑은 참 잘 마주치는 것 같다.
성우 선배도 신경외과니, 그렇게 썩 이상하진 않았다.
"무슨 일인데?"
"아, 이번에 허리 수술받은 앤데.. 도저히 대화가 안돼요..."
"왜?"
"무슨 사연이 있나 봐요, 이번에 다친 것도 자살하려고 했었데요"
"아..... 레지던트 1년 차가 별 환자 다 만나보네.. ㅎ 원래 그런 애들이 제일 감당하기 힘들어.. 마음을 안 여니까.."
"마음.. 이요?"
"응. 그런 애들이랑 대화라는 걸 하려면 마음을 열어야 해. 그리고 대화를 해야 해. 그런 애들... 몸이 다 나았다고 퇴원시켜주면 또 똑같이 들어오는 게 대부분이야. 그땐 살아서 올지, 죽어서 올지는 모르지만.."
"아... . 하.. 어쩌죠.."
"힘들면, 정신과 불러. 그게 제일 편할 거야"
"아뇨, 제가 해볼래요. 제 환자니까 책임. 지고 싶어요"
"그래 해봐. 대신 너무 힘 빼지는 말고.."
"네"
난 그 아이의 닫혀버린 마음을 열기로 결심했다.
내 결심이 선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나의 집착 아닌 집착.
그날부터 난 바쁜 와중에도 매일 두 번씩 그 병실을 다녀갔다. 그리고 계속 말을 걸었다.
"혜인아, 오늘은 좀 덜 아프지?"
"혜인아, 오늘은 기분이 어때?"
"혜인아, 선생님이 초콜릿 사줄까?"
"혜인아, 선생님이랑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래?"
"혜인아・・・・・・."
그렇게 계속했는데도 내 말의 끝은 항상 조용했다.
이제 그 짓을 시작한 지도 일주일이 되었다.
드디어 딱 한 마디의 대답 아닌 대답을 들었다.
"선생님은 일없어요? 되게 끈질기네.."
순간 열이 올랐지만 참았다. 아까 말했듯이 내가 제일 잘하는 게 참는 거니까, 재능기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10일째 되는 날 아침,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그 아이의 병실로 발걸음을 옮겼고, 평소와 다르게 그 병실에 한 남자로 보이는 의사가 나보다 먼저 와 있었다. 그 모습을 문의 창문으로 본 나는 병실 밖에서 그 의사 선생님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한 5분 정도가 지나, 발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어?!"
강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 여길 왜...
당황한 나머지 멍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니, 강선생님은 고개를 까딱 인사를 하고 또다시 사라졌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지, 병원에 비밀통로라도 있는 걸까....
나는 강선생님이 사라진 곧바로 병실로 들어갔다.
혜인이가 깨어 있었다.
"혜인아, 오늘은 기분이 어때?"
"좋아요."
대답... 했다. 혜인이가, 아무 말도 안 하던 그 아이가, 내 말에 대답을 했다.
"그렇구나, 뭐 하고 싶은 거나 먹고 싶은 거 있어?"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더 긴 대화를 시도했다.
"초콜릿이랑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요. 선생님이 전에 사주신다고 한 거요."
그 아이와 대화가 되었다. 게다가 나를 보고 말하는 혜인이의 눈이 참 예뻐 보였다.
"그래, 선생님이랑 먹으러 갈까?"
"좋아요."
혜인이와 처음으로 병실을 나섰다.
오래 누워있어서 그런지, 수술한 곳은 이제 괜찮을 텐데도 혜인이의 걸음걸이가 어색하여 천천히 걸어서 매점으로 갔다.
"이거 먹을래요"
"그래, 그거 먹자~"
혜인이와 벤치에 앉아서 매점에서 골라온 아이스크림과 초콜릿을 먹었다.
오늘따라 더 달게 느껴졌다.
혜인이를 다시 병실에 데려다주고 나는 강선생님을 찾아다녔다. 열심히 찾고 있는데 성우 선배를 만났다.
"뭘 그렇게 찾아??"
"뭐가 아니라 사람이요, 강선생님. 혹시 어디 계신지 알아요?"
"수술실 아니면 연구실이겠지? 근데 갑자기 왜?"
"그 아이요, 대화했어요!"
"진짜? 어떻게?"
"그걸 알려고요. 나중에 봐요!"
"야! 연구실 가도 안 만나줄 텐데~!"
"그건 가보면 알죠!"
나는 성우 선배를 뒤로하고 강선생님의 연구실로 뛰어갔다.
-똑똑-
"누구시죠?"
다행히 안에 계셨다. 문을 열라고 하시지는 않고, 방 안에서 목소리만 들렸다.
"저... 1년 차 레지던트.. .정, 정에 보람이라고 합니다"
"무슨 일이죠?"
"무,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저는 사적으로 아무도 안 만납니다"
"사, 사적인 거 아니에요. 병원에 관한 거예요.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 ..... ."
강선생님은 조금의 틈을 두고 말했다.
"들어오세요"
휴... 진짜로 거절당하는 줄 알았다.
이 사실을 성우 선배한테 알리면 깜짝 놀라겠지?ㅎ
나는 심호흡을 하고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정에 보람이라고 합니다"
"알아요. 물어보고 싶은 게 뭐죠?"
역시나 칼 같은 분이다. 짧고 굵게 끝내려는 저 말투로 용건만 묻고 있다.
" 501호 그 아이. 어떻게 하신 거예요? 오늘 아침에 가셨던데... 그 뒤로 애가 바뀌어서요."
"아, 그 자살하려던 아이요? 마음을 열었죠?"
"네?.. 네.."
"궁금해요? 내가, 어떻게 했는지...?"
저 미소는 무슨 의미일까...? 강선생님이 나를 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 알고 싶어요. 선생님이 어떻게 하셨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