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고 일어났더니 남자친구가 생긴 건에 대하여
W. 그쁨
김석진은 의뭉스러운 구석이 많은 사람이었다. 석진이? 아, 자기 얘길 잘 안 하긴 하지. 생각해 보니까 나도 걔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네…. 자칭 타칭 김석진과 가장 친한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 한국대 경영학과 박 모 씨의 말이 그랬다. 그러니까 결국, 한국대 유명인 김석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단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굳이 잘 알아야 되나? 듣기에는 틀린 구석 하나 없는 말이었지만 채여주에게는 찝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는 채여주가 김석진에 대해 ‘미친놈’이라는 박한 평가를 내리게 된 이유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채여주는 김석진이 그를 구성하는 수많은 것들 중 하나가 완전히 망가진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한구석이 완전히 돌아있는 느낌? 물론 채여주는 김석진이 아니었으니 그 망가진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었다. 그저 김석진이 정상의 범주에서 아주 약간은 벗어나있다는 느낌만을 받았을 뿐.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랬다.
김석진에게는 어딘가 싸한구석이 있다.
“그 얼굴이면 어디 하나 모자라도 내가 평생 먹여살릴 수 있어.”
…물론 김석진은 그 의뭉스러움과 쎄함을 얼굴로 상쇄시킬 만큼 잘난 사람이었다. 쿠X 물류센터 알바를 밤낮으로 뛰어서라도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힌다…. 채여주의 동기 중 하나가 김석진에 대해 내린 평가만 봐도 그랬다. 그 싸한구석이 있다는 점마저도 매력 포인트 아니냐는 쌉소리까지 듣고 나서 채여주는 생각을 더 이어가는 것을 포기했다. 그냥, 얼굴이 답인가 보다… 했다.
사실 채여주가 보기에도 김석진은 연애 상대로써 완벽하면 완벽했지, 결코 모자라지는 않은 사람이었다. 말도 함부로 하지 않았고, 예의 있게 상대를 대할 줄 알았고, 매너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상대방을 챙기는 다정함까지 두루 갖추고 있었다. 그러니 완벽하다고 할 수밖에. 소개팅 자리에서 전 여자친구 이력을 들먹이며 내가 이렇게 잘났다는 개쌉소리를 해대는 다른 남자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여기서 채여주가 가진 의문은 하나였다. 그렇게 잘난 사람이 왜 나랑 사귀는데?
에프
"네가 그만큼 좋은가 보지,”
여기서 하나 확실하게 짚고 넘어갈 점은, 채여주가 김석진이 자신과 만나는 이유 따위를 생각하는 이유는 채여주의 자존감이 낮기 때문은 아니라는 점이다. 채여주는 자신이 모자란 사람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상대가 김석진이다 보니 조금 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들여다보게 됐을 뿐….
“말도 안 되는 소리 할 거면 그냥 집에 가라고,”
“아니, 말이 안 되긴 왜 안 돼?”
채여주와 강서영, 그리고 채여주의 고등학교 친구인 이유민이 한자리에 모여 치킨을 뜯고 맥주를 마시며 채여주와 김석진의 연애에 대해 토론을 하게 된 이유는 별거 아니었다. ‘같이 밥 먹자’는 김석진의 발언에 강서영이 친구를 버리는 것으로 그 자리를 성사시켰고, 내 덕이니 빨리 썰을 풀어라-, 하는 독촉에 못 이겨 채여주가 치킨과 맥주를 사들고 강서영의 자취방으로 향하게 된 것뿐이었다. 빠지면 섭섭해할 이유민을 부르는 것도 잊지 않았고.
“딱 봐도 석진 선배가 너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니까. 최소 호감임.”
“혹시 내가 말하는 석진이랑 너네가 말하는 석진이 다른 사람인가?”
“뭐래? 우리 학교에 석진이란 이름 가진 사람이 또 누가 있다고,”
“아 아무튼, 그 선배 나 안 좋아해. 관심 없을걸?”
“참내, 사귀는 사이에 관심이 없긴 왜 없냐?”
이유민이 헹, 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옆에서 간간이 맞장구나 치던 강서영도 뜯다 만 치킨 조각을 내려놓고는 채여주를 향해 손가락을 쫘악-, 펼쳤다. 관심이 없긴 네가 선배한테 관심이 없는 거겠지! 강서영의 손끝에 묻은 기름이 번들거렸다.
“아니, 처음엔 네가 석진 선배랑 사귄다길래 앙큼한 기집애가 우리 몰래 또 그만큼 진도를 나갔다니, 하고 말았는데,”
“그딴 징그러운 수식어는 왜 붙는데….”
“넘어가. 암튼, 네 얘기만 들으면 꼭 협박당해서 연애하는 사람 같단 말이지!”
“내 말이. 아니 남들은 못 가져서 안달인 사람 남자친구로 삼아놓고 왜 죽상인데?”
“딱 말해 너,”
뭐 있지? 강서영의 말에 채여주의 입이 딱 다물렸다. 어어, 이것 봐라? 진짜 뭐 있나 본데? 이유민이 한건 했다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 강서영의 팔을 붙잡고 탈탈 털며 말했다. 당장 말해!! 눈에 불을 켠 채 자신을 쳐다보는 강서영과 이유민에 채여주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말해도 되나, 이거? 아무래도 술 처먹고 기억 끊긴 탓에 원나잇에 사귀자고 한 것까지 싹 다 잊어먹었다는 말을 하기에는 제 이미지가 심히 걱정됐다. 그렇다고 모르쇠 하며 입을 다물자니 당장에라도 진실의 방으로!를 외치며 저를 끌고 갈 거라는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제 친구들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아오, 망할.
“알겠어, 말하면 되잖아….”
채여주가 한숨 섞인 대답을 내놓았다. 강서영과 이유민이 예쓰! 하며 내려놓았던 치킨 조각을 다시 집어 들곤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어지간히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그 꼴을 보던 채여주가 마지못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채여주가 김석진과 연애를 하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 요약하자면,
채여주가 술에 떡이 되어서는 김석진과 잤고,
알고 보니 사귀자는 말까지 했는데,
하필 주사가 필름 끊어먹는 거라 그 사실을 싸그리 다 잊어먹었다. 젠장.
그래서 자기 먹고 버리는 거냐는 말에 휘둘려 어쩔 수 없이 사귀게 되었다는…, 그런 내용을.
그리고 이야기를 끝낸 그 즉시, 채여주는 날아오는 맵디매운 손바닥들에게 제 등짝을 내주어야 했다.
“아!! 개 아파 미친!!”
“야 이 도라이년아!! 내가 너 언제 술 처먹고 사고 칠 줄 알았다!! 이게 미쳐가지고!!”
이유민이 죽어라 채여주의 등짝을 후려치는 동안, 강서영은 충격에 빠진 얼굴로 입을 가리고 연신 중얼거렸다. 쓰레기….
“너어는 진짜…. 넌 진짜 석진 선배한테 감사해라…, 너 같은 것도 여자친구로 거둬주시는 게 진짜….”
“…아니, 뭘 또 그렇게까지….”
“이러네. 참내, 얌전히 있던 사람 자빠뜨려놓고는 그딴 소리가 잘도 나온다?”
“내 친구가 천하에 다시없을 개잡놈의 새끼라니….”
“…….”
괜히 이야기했다가 본전도 못 찾고 개 털린 채여주가 의기소침해져서는 소심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이래서 말 안 하려고 했다고…. 그 말을 듣자마자 다시금 눈을 부라리는 강서영과 이유민에 채여주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아니이! 그러니까 내 말은!
“나 같은 개진상을 왜! 굳이! 만나나 이 말이지.”
“그건 그래.”
“원래부터 호감 정도는 있었다거나?”
“김석진 선배가? 나한테?”
“근데 그것도 좀 웃기긴 해. 호감 있으면 그냥 고백하면 되지 뭐 하러 이런 더러운 방법을 쓰겠냐고.”
“씁, 그런가….”
“아무튼, 이유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헤어지자고 하는 것도 에바고, 미치겠다고오….”
“왜? 헤어지고 싶으면 그냥 헤어지자 해. 해봤자 천하의 쓰레기 새끼밖에 더 됨? 어차피 지금도 천하에 다시없을 개새낀데.”
“야 그래도, 혹시 석진 선배가 진짜 쟤 좋아해서 사귀자고 한 거면 어떡해. 그럼 헤어지자고 하는 순간 대참사임.”
“와, 그렇네.”
“…….”
에라, 난 이제 모르겠다. 반쯤 남아있던 맥주를 꿀꺽꿀꺽, 한 번에 비운 채여주가 테이블에 얼굴을 처박았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얌전히 자리에 앉아 치킨 한 조각을 집어 든 이유민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일단 걍 만나. 솔직히 땡잡은 거 아니냐?”
“그래. 네가 쓰레기짓 하다 이렇게 된 것치곤 결과도 나쁘지않다구-,”
“아오, 근데 진짜 찝찝해서 짜증 난다고….”
“어차피 학교에 소문 나는 순간 답 없어. 걍 만나~.”
강서영의 말에 채여주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아 미친, 소문. 다 나겠지? 하는 말에 이유민이 뭘 묻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세상에서 제일 빠른 소식이 남의 연애 소식 아니겠냐. 하는 말에 채여주가 머리를 부여잡고는 절망했다. 망했다. 내 학교생활. 조용히 살다 가려고 했는데…. 하는 말에 강서영이 글러먹었다며 꺄르륵, 웃었다. 소문, 소문이라…. 하며 중얼거리던 이유민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아!! 하며 소리쳤다.
“야 근데 소문 다 나면 김태형은 어떡해?”
“헐, 맞네.”
“아오, 걔 내가 깐 지가 언젠데 아직도?”
“뭐래, 백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고백 100번 할 생각까지 하고 있던데.”
“근데 이제 한 30번 하지 않았나?”
“한 40번은 한 듯? 60번 남았는데 채여주 임자 생겨서 어떡해? 울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아오….”
김태형. 강서영이 아는 동생이라고 둘에게 소개시켜 준 두 살 어린 남자애는 채여주를 한눈에 본 순간 반했다며 졸졸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연애할 생각이 쥐뿔도 없던 채여주에게는 전혀 달갑지 않았지만…. 그간 수십 번 들은 김태형의 고백을 떠올리던 채여주의 얼굴이 구깃 해졌다. 아 몰라, 지금 걔까지 생각할 여유 없어….
“불쌍한 태형이.”
“걔도 진짜 독해. 어떻게 40번을 차이고도 포기를 안 하냐.”
“근데 하필 경쟁자가 석진 선배.”
“포기하는 게 좋을 듯.”
“그믄 흐르….”
내가 이것들도 친구라고…. 채여주가 오늘만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마지막 남은 치킨 한 조각을 집어 들던 이유민이 말했다.
“야 그래도, 혹시라도 그 선배 나쁜새키면 바로 헤어져라?”
“아 몸만 노리고 사귀는 거였다던가?”
“아니면 다른 음흉한 꿍꿍이가 있다던가…, 근데 말하고 보니 가능성 있어 보이는데?”
“그니까, 막 스토커 같은거 떼어내려고 사귀자고 했다거나,”
“그건 너무 갔다. 드라마냐?”
“그런가? 아무튼, 채여주 진짜 조심해야겠다.”
“진짜로. 이왕 만난 거 이참에 연애 좀 해보란 소리였지 싫은 거 억지로 만나라는 소리는 아니었으니까. 진짜 그런 새끼면 뻥-, 차고 와라?”
“그랭~ 웅니들이 같이 술 마셔줄게~”
“…병 주고 약 주니? 그래도,”
니들밖에 없다!! 냅다 몸을 던져 안겨오는 채여주에 강서영과 이유민이 비명을 질렀다. 야!! 치킨 떨어졌잖아!! 그러든가 말든가, 채여주의 팔 힘은 좀처럼 풀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 그때까지만 해도 채여주는 강서영과 이유민의 말마따나 이 연애가 그렇게 나쁘진 않은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야 채여주!! 너 석진 선배랑 사귄다며엌!!!”
다음 날 학교에 쫙 퍼진 소문을 마주하기 전까지만, 그렇게 생각했었다. 아, 망할.
에프
미친 거 아냐? 석진 선배랑? 진짜 대박이네! 하는 동기의 외침에 채여주의 입에서 중얼거림이 튀어나왔다. …미친 거 아냐? 무슨 소문이 하루 만에 나? 빨라도 너무 빠른 거 아니냐고. 채여주가 그런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강의실에 있는 모두의 눈빛은 이미 채여주에게 쏠려있었다. 빨리 저 물음에 대답으로 진실을 알려줘…! 부담스럽게 반짝거리는 눈빛을 한몸에 받던 채여주는 입술을 몇 번 달싹거리다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렇게 됐다….”
그 말에 여기저기서 비명소리와 와르르 웃는 소리가 동시에 튀어나왔다. 야! 무려 한국대 남신을 쟁취해놓고는 반응이 너무한 거 아니냐!!라고 누군가 소리쳤을 때 채여주는 정말로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필수 교양만 아니었다면 곧바로 교수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든 말든 냅다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을 테지만,
“채여주학생? 채여주학생 결석인가요?”
“채여주 출석했습니다 교수님!”
채여주도 어쩔 수 없는 대학생일 뿐이었다. 학점… 중요하다구요… 졸업은 해야지….
그나마 이유민과 함께 듣는 교양수업이었단 점이 나름의 위안이었다. 재빨리 이유민의 옆자리를 차지한 채여주는 필기할 요량으로 챙겼던 노트를 꺼내 귀퉁이에 글씨를 끄적여 이유민에게 내밀었다.
야 누가 말함?
사귄다는 거?
ㅇㅇ
아까 복도에서 진영 선배가 개 난리 침. 너랑 석진 선배랑 사귄다고
하 ㅅㅂ… 어케 아셨대?
석진 선배한테 미팅 자리 좀 채워달라 했는데 여친 있다고 했대
…그놈의 미팅은 진짜 질리지도 않고 열리는구나. 채여주가 생각했다.
그 담에 여친 누구냐고 개난리남
근데 나인 거 어케 알았대?
선배가 직접 말했대
김석진 선배가? 나랑 사귄다고?
ㅇㅇ. 그래서 진짜 진심 존나난리났음.
직접 그런 말을 했다고? 의외의 대답에 채여주의 두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 말 안 할 줄 알았다. 김석진이라는 사람이 연애하는 꼴을 본 적도 없거니와, 직접 제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성정은 아니었잖은가. 그러니 당연히, 소문이 난다면 우연찮은 기회에 사귀는 걸 들키는 상황을 상상했었다. 지금처럼 김석진이 직접 연애 사실을 제 입으로 말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소리다. 졸지에 혼자 뒤통수를 얻어맞은 꼴이 된 채여주가 손에 얼굴을 파묻고는 끙끙거렸다. 아…, 인생 진짜, 심란하다.
채여주가 심란함에 몸을 뒤틀든 말든, 채여주와 김석진의 연애 사실은 ‘진짜 사귄대!!’ 하는 꼬리표를 단 채 학교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소문 다 났던데?”
“좆같다 진짜….”
그 말은 즉, 만나는 사람마다 너 진짜 석진 선배랑 사귀냐?! 하는 질문을 던져댔다는 소리였다. 졸지에 공개 연애를 하게 된 꼴이었다. 전공 수업을 들으러 가는 도중 만난 강서영이 걱정된다는 듯 괜찮아? 하고 묻는 말에 채여주는 힘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좆같긴 한데 괜찮아…. 이게 다 술 처먹고 몸뚱이 관리 잘못한 내 탓인데, 누굴 탓하겠니….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채여주가 중얼거리는 말에 강서영이 으휴, 하는 소리를 냈다.
“다른 과에도 소문 다 났나 봐.”
“난 연예인 못 할 듯. 이런 관심받는 거 끔찍하다 진짜….”
“그게 문제니? 태형이 난리 났던데.”
“…걘 또 왜?”
“걔네 과에 우리 전공 복전하는 애들 많잖아. 벌써 석진 선배랑 너랑 사귄다는 소문 다 들었대. 소문 듣자마자 정국이 데리고 술 마시러 갔단다.”
“어쩐지 아까부터 연락 존나 오더라….”
채여주의 얼굴이 구깃 해졌다. ‘문이 열립니다-,’ 하는 알림음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채여주는 발을 내디디며 어쩐지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는 강서영을 쳐다보며 말했다.
“애초에 만날 생각도 없긴 했는데 이참에 정리 좀 하지 뭐. 걔보고 나한테 연락 좀 그만하라고-,”
“무슨 연락?”
“아 깜짝이엌!!!”
채여주가 놓친 텀블러를 김석진이 빠르게 잡아챘다. ‘문이 닫힙니다-,’ 하는 안내음이 울려 퍼졌다. 조심해야지. 하며 김석진이 쥐여주는 텀블러를 채여주가 멍하니 움켜쥐었다. 와, 진짜 놀랐다. 온몸에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야 나 먼저 간다…, 강서영이 빠르게 속삭이고는 그 자리를 벗어났다. 이제 보니 강서영의 얼빠진 표정은 눈앞의 이 인간 때문이었음이 분명하다고 채여주가 생각했다.
“왜 여기 있어요?”
“같은 수업이니까?”
같이 듣게. 김석진이 빙긋 웃으며 하는 말에 채여주의 입이 딱 벌어졌다. 왐마야~, 누군가가 그런 감탄사를 내뱉었다. 킥킥대는 소리와 수군거리는 소리가 더 커진 것이 느껴져 채여주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갈까요? 하는 김석진의 말에 채여주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얘기 중이었어? 내가 말 끊은 것 같아서 괜히 신경 쓰이네. 연락,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
“아 별일 아니에요. 진짜, 신경 안 쓰셔도 됨.”
“…그래?”
냅다 튀어버린 강서영과의 X톡방을 열며 채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태형보고 연락 그만하라고 꼭 전해라!!!!] 몇 번의 당부와 함께 메세지를 보낸 채여주가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고개를 들자, 눈이 마주치길 기다렸다는 것처럼 김석진이 눈을 접으며 웃었다. 채여주는 어색하게나마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지각하겠다, 빨리 가자. 하며 먼저 걸음을 옮기는 김석진의 뒤를 채여주가 좇았다.
한 발자국의 거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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