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내생

#단편 4

4살,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순수한 나이. 그 나이에, 우리는 엄마라는 사람들의 이유로 처음 만났다. 피부가 뽀얗고, 예쁜 쌍커풀이 잡혀 있는 눈에, 촉촉한 입술이 얼굴에 오밀조밀 배치 되어 있었다. 그게 강진우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진우가 좋았다. 기억도 잘 안나는 네 살 시절이지만, 강진우를 처음 본 그 날, 그 순간의 감정은 아직까지도 생생했다.











"강진우는?"

"어머, 얘. 진우 여자친구 생겼잖니. 심심하겠지만 오늘은 너 혼자야."











같은 아파트, 같은 동.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녔다. 강진우보다 친한 사람은 없었다. 강진우에 대해 모르는 것도 없었다. 나는 그 애에 대해 모든 걸 알았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는데.










"여자친구···?"

"연이 너 몰랐어?"

"······. 나는 몰랐지."











중학교 2학년, 열 다섯살. 처음으로 강진우에게 여자친구라는 게 생겼다. 첫 번째로 섭섭했던거는, 여자친구가 있다는 중대한 사실을 나에게 첫번째로 알려주지 않은 것.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 소식을 듣게 한 것. 그리고 두 번째로 섭섭했던 이유는, 내가 너를 좋아해서. 강진우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빨리 깨달았다. 고백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지금 이대로도 너무 좋았으니까. 강진우에게 내가 1순위인 것이, 내게 강진우가 1순위인 것이 충분히 만족스러웠으니까. 진우에게 여자친구가 생길 것이라고는 왜 상상도 못했던걸까. 지금까지 여자친구 한 번 안사귄게 오히려 더 이상했다. 생각해보면, 강진우는 항상 인기가 많은 아이였다.













"야, 강진우. 너 이번에 같이 여행 안간다며."

"응. 미혜가 영화 보러 가자고 해서."

"·······. 왜 말 안했어? 미혜랑 사귀는 거."

"너가 나 좋아하니까."










숨이 멎을 뻔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거지. 강진우도 어쩌면 나를 조금이라도 여자로 보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지난날들이 부끄러워졌다. 애초부터 내가 자기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던 애였다. 그게 너무 비참해졌다.












"·······."

"여친 생겼다는 거 알면 난리칠 거 아냐ㅋㅋㅋㅋㅋㅋㅋㅋ"

"······?"

"네가 나를 좀 좋아해야지. 여친 생겼다 하면 바로 나 가둘거 아님?ㅋㅋㅋ"

"아···. ㅋㅋㅋㅋ"












안도했다. 아직 몰랐던거구나. 그래, 알 리가 없지. 내가 어떻게 숨겨왔는데.










"너는 걔 어디가 좋아?"

"웃는게 예쁜데."

"또?"

"나한테 잘해줘."

"또?"

"아 더럽게 궁금한 거 많네 ㅋㅋㅋㅋㅋㅋ 꼭 이유가 있어야 되냐."

"너 여친한테도 이러냐. 개띠꺼워."

"?? 나 지금 너한테 되게 다정한데? 미혜한테는 이것도 안해."

"헐, 미친놈."

"너니까 내가 이렇게 다정한거지~"











내가 미혜보다 위에 있다는 생각이 좋았다. 아직 내가 미혜보다 우선순위구나, 강진우에게 아직 1위는 나구나. 그 뒤로도 여자친구가 몇 번 바뀌었지만 진우에게 1순위는 항상 나였다. 그 덕에 모든 헤어짐의 이유가 '나' 때문이였긴 했지만, 나는 그것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였으니까. 아무리 애인이라도 그것까지 참견하면 안돼는거라고 생각했다. 












"강진우 요즘 너 얼굴보기 진짜 힘들다."

"고삼이잖니. 오빠 바쁘다."

"이번에는 한 달 넘겼네. 맨날 한 달도 못 넘기더니."

"응. 내가 개잘해주니까."

"에휴. 강진우가 잘해줘봤자지. 너 항상 연애할 때 갑이잖아."

"아닌데. 을인데. 내가 더 좋아하거든ㅋㅋㅋㅋㅋㅋ"










처음보는 진우의 모습이였다. 하루는 하루종일 불안해하고 핸드폰을 쉴새 없이 만지작 거리길래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여자친구가 5시간째 연락을 보지 않는 다는 것이 이유였다. 항상 연락을 보지 않는 쪽은 강진우였고, 노력하고 애쓰는 쪽은 여자친구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다. 여친의 한 마디에 일주일을 고민했고, 여친의 작은 웃음에 매일을 행복해했다. 나에게는 그런 강진우의 모습이 낯설었다.












"야, 나 정시로 가기로 마음 먹었어."

"? 3년째 수시파던 놈이 갑자기 왜?"

"지금부터 개빡세게 해서 서현이랑 같은 대학교 갈거거든."

"니 여친은 전교권에서 놀잖아. 꿈도 크네."

"서현이는 지잡대 남친 싫대. 나한테 솔직하게 말하더라고."

"헐···. 출신 대학 보고 남자 고르는 것도 아니ㄱ,"

"반성하게 되더라고."

"ㅁ, 뭐···? 너 강진우 맞냐. 미쳤네, 돌았네 애가."

"응ㅋㅋㅋㅋㅋ 장서현한테 제대로 미쳤어."










고3 초반, 갑작스럽게 정시로 간다며 목표 대학을 한껏 높이던 강진우는 정말 그 해, 장서현과 같은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나도 그런 강진우를 따라 같은 대학교에 입학했다. 강진우가 장서현을 좋아하는만큼 나도 강진우가 좋았다. 그래서 최선을 다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먼저 좋아한것도 진우였고, 고백한 것도 진우였다. 그러니까 장서현은, 진우에게 처음으로 다가온 첫사랑이었다. 강진우가 내게 첫사랑인것처럼. 














"나 서현이랑 헤어졌어."

"뭐···?"

"3년이면 오래 만났지. 최근에 권태기였는데, 복학생이 들이댔나봐."

"미친년. 바람난거야?"

"썸 단계래. 나랑 끝내자고 하더라고. 어차피 군대 기다릴 자신 없었대."

"와. 진짜 개미친년이네. 그런년 빨리 잊어."

"······. 나 벌 받고 있나봐. 헤어지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인줄 몰랐어."

"······."

"군대 다녀오려고."

"언제···?"

"이번 학기 마치고. 너 나 2년동안 못 봐서 어쩌냐 ㅋㅋㅋㅋㅋㅋ"










스물 한 살 봄. 강진우가 미치도록 좋아했던 장서현과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 날,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나는 17년간 참아왔던 감정을 쏟아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날이 아니었으면 내게 기회란 없을 것만 같았다.












"야."

"어ㅋㅋㅋㅋ 벌써부터 글썽거리네. 2년 금방이야 임마."

"내가,"

"······. 너 취했어···? 진짜 우냐?"

"내가 진짜 오랫동안 좋아한 사람이 있거든."

"?????? 진짜??? 누군데? 나 지금 완전 놀람. 미친. 궁금해. 누군데?"

"우리가 네 살때 처음 봤나."

"어. 그건 갑자기 왜ㅋㅋㅋㅋㅋㅋ
나 지금 감격스러워ㅋㅋ 17년만에 드디어 우리 연이한테 짝남이 생겼다니."

"17년 됐네, 너 좋아한지."











솔직히 말하면 약간 취했었다. 아니, 조금 많이. 그래서 알 수 없는 용기가 솟아난 걸지도 모른다. 취했었지만, 진심이었다. 내 말을 듣고 웃고 있던 진우의 표정이 변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런 표정에도 멈출 수 없었다.













"너 진짜 멍청이냐."

"······."

"17년동안 너 좋아했다고. 너만.
그래서 스물 한 살 먹도록 모쏠인 거 아니야.

진짜 웃길 수도 있거든?
근데 나 진짜 거짓말 안치고 너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아했어.
네 살때 너 만났을 때, 그때부터 좋아했다고.

네가 중2때 처음으로 여친 생겼다고 했을 때,
나 그 날 밤에 몇 시간동안 울었어.
그 다음날 아침 네가 나 얼굴 보자마자 눈 밤탱이라고 놀렸었지?
그거 너 때문에 운거야. 라면 먹고 잤다고 말한 거 다 구라라고.

네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한테 어깨동무하고,
가까이 와서 속삭이고, 나 힘들어하면 위로해준다고 안아주고.
네가 친구로써 했던 모든 행동들, 나한테는 너무 떨렸었어.

너랑 친구 못할까봐 이야기 못했어. 근데 17년이면 많이 참았지 않냐.
그리고 나 어쩌면 이거 기억 못 할지도 몰라, 엄청 취했거든 나.
근데 진심이야. 취해서 말하는 거긴한데, 100프로 진심이야.
너 어차피 곧 군대가니까 2년동안 얼굴 못 볼거 아니야.
차여도 2년 뒤에 볼거니까 다 말하는거야.

나 너 좋아해, 강진우.
너무 좋아해서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아."











진심은 통한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을 내 고백 이후로 믿었다. 나의 속시원한 고백은 진우의 마음을 흔들었고, 우리는 천천히 이성으로써 다가가보자며 연애를 시작했다. 학기가 끝나고 진우는 군대를 갔고, 17년을 기다린 내게 2년은 금방이였다. 지난 힘든 시간들에 대한 보상인 것만 같았다.











"진우야."

"응?"

"나 너한테 할 말 있는데···."

"뭔데?ㅎㅎ 좋은 일이야?"

"······. 이번에 회사에서 프랑스로 파견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거든."

"어···."

"스물 여섯살인 나한테 너무 좋은 기회잖아···. 그래서 참가했어."

"뭐···?"

"경쟁률이 50대 1이라서, 나도 정말 기대 안했어···.
괜히 미리 말했다가 떨어지면 그게 더 민망할 것 같아서
말 못했는데···. 오늘 발표가 났어."

"······."

"미안해···. 말 못해서. 근데 나 정말 간절해. 프랑스 가서 배우고 싶어."

"가면 얼마나 있는데···?"

"5년···."

"5년···? 우리 5년동안 떨어져 있어야해···?"

"미안해···."

"연아, 나는 잘 모르겠어. 내가 5년동안 너를 지금처럼 사랑할 수 있을지."

"······. 으응."

"프랑스하고 한국 시차 때문에 연락이 잘 안될거야. 그러다보면 싸우겠지.
왜 연락이 늦냐, 이 시간에 왜 전화하냐 하면서 말이야.
그러다보면 지칠거야. 서로한테 힘이 나는 존재가 아닌 짐이 될거고."

"왜 벌써부터 그렇게 생각해···."

"나도 이제 취업하면 바쁘게 살텐데,
네가 내 유일한 행복인데···. 너도 못 보면 나는 누구한테 기대고,
누구한테 내 하루를 이야기하니."

"진우야···. 긍정적으로 생각 할 수 있잖아···."

"너 돌아오면 우리 서른 하나야. 돌아와서 너 널널할 것 같아?
아니야. 현실적으로 생각해봐. 너는 더 바빠질거고,
나는 그런 네게 지치겠지."

"진우야···."

"미안해. 나는 자신이 없어, 연아."











우리는 그렇게 이별했고, 나는 5년동안 열심히 내 삶을 살았다. 최선을 다해 배웠고, 미친듯이 일했다. 생각보다 5년은 빨랐다. 돌아오면 친구로 보자는 진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는 한국에 오자마자 진우에게 연락했다.













- "여보세요?"

"나야, 연이."

- "공중전화로 한거야?"

"응. 핸드폰을 잃어버렸어."

- "아직도 내 번호 기억하나보네."

"어떻게 잊어. 죽을 때까지 못 잊어."

- "······. 너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잘 됐다."

"나도. 5년만이라 할 말이 많다. 언제 볼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진우를 못 잊었다. 잊을 수 없었다. 지금껏 내 평생에 남자는 강진우 뿐이었으니까. 진우 말고 다른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네 옆에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난 5년간 네 곁에 있으면서 너를 외롭지 않고 행복하게 만들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이상한 감정이 공존했다.













"나 다음달에 결혼해."

"어···. 대박···. 축하해."

"너는···?"

"나는 5년동안 일만 하느라 바빴어. 이제 찾아봐야지ㅋㅋ"

"기분 되게 이상하다. 우리 멀어진 기분이야."

"응, 멀어졌으니까. 그런 기분 느낄만 하지."

"······. 너랑 멀어진다는 거, 진짜 상상도 못하는 일이었는데."

"·······."

"내 10대의 전부는 너였거든. 아니, 스물 여섯까지 내 전부는 너였어."

"그 뒤로는 아니라는게 좀 씁쓸하네."

"······."

"네가 내 모든 걸 가르쳐줬어. 연이 너한테 배운 게 많아."

"나도야. 그래서 너한테 고마워."

"나도."

"우리 늙었나보다. 5년만에 만나서 하는 말이 고작 이런 오글거리는 말이라니."

"서른 하나면 젊지. 뭐가 늙어ㅋㅋㅋㅋ"

"하나하나 다 떠올라. 너랑 보낸 지난 시간들이. 진짜 행복했었어."

"응, 평생 못 잊을 행복한 꿈 같아.
행복한 꿈, 너는 내게 그런 존재였어 연아."













27년의 사랑의 마침표가 찍혔다. 진우가 신부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이제 정말 너를 사랑하는 일도 끝이구나. 27년의 익숙했던 너에 대한 이 감정도 안녕이구나.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장 서툴렀던 시기에 만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적어도 진우는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해볼 수 있다는 게 감사하기도 했다. 27년동안 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경험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니까. 나는 오늘 처음으로 강진우를 그만 좋아하자고 다짐했다. 짝사랑이 아무리 힘들었어도 그만 좋아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결국 타인에 의해 내 감정이 접어졌다. 타인이 아니었다면 평생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강진우는 그런 사람이다. 진우는 내게 봄이었다.





















글이 안써져서 쓰고 싶은 글 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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