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만신창이가 된 나를 대리고 샤워실로 향했고 그들 덕분에 나는 씻을 수 있었다.
“저기... 있잖아...”
수건으로 머리를 털고 있을 때 윤하가 말을 걸어왔다.
“우리 지금 후회하고 있어..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배수지 말이 맞는 것 같았거든..”
“…”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다시 우리 팀으로 들어오는건 무리겠지만.. 정말 미안해..!!”
“미안해!!”
윤하의 말에 신연희와 김은주가 동시에 사과했다. 하지만 이런다고 나를 따돌리고 괴롭혔던건 사라지지 않는다. 상처를 미친듯이 남기고 나서 사과를 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늘 있었던 일은 못 들은 걸로 할게요 선배들. 그리고 오늘 일은 고마웠어요.”
나는 샤워실 문을 열고 나갔다.
***
그녀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왜 일까..? 그들이 한 짓이 후회되서? 아니면 자신들에게 선배님이라고 해서..? 그것도 아니면 데뷔조에서 자신들을 보며 언니언니 하며 저신들을 잘 따랐던 그녀가 너무 성숙해져서..? 아마 그녀들이 우는 이유는 그녀들만 알 것이다.
***
연습실로 돌아갔을 때 멤버들과 배수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다시 연습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어? 여주야!”
하지만 그런 나를 가지고 놀기라도 하는 듯 나를 부르는 배수지였다.
“뭐야 아는 사이야?”
배수지 옆에 앉아있던 전정국씨가 말했다.
“중학교때... 같은 반이었어...”
갑자기 분위기를 잡는 배수지였다.
“근데.. 안 좋은 추억이...”
“그게 무슨 말이야?”
배수지의 말에 정호석씨가 물었다. 그러자 배수지는 나를 힐끗힐끗 쳐다봤고 멤버들의 시선은 나에게로 쏠렸다.
“그게 사실... 중학생때 여주가 나 왕따 시켰어..”
배수지는 내 앞에서 대놓고 자신이 한 짓을 내가 한 것 처럼 말했다. 그럼 멤버들은 같은 시기에 연습생으로 들어와 같이 연습했던 수지의 말을 믿었다. 같은 시기에 연습생으로 들어오게 된 거를 어떻게 알았냐면 방PD님께서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와.. 학교 폭력 가해자였어?”
“데뷔조까지 해체하게 만들고?”
“보기보다 더 인성이 썩었네?”
“저런 애랑 같이 데뷔한다니..”
“데뷔한지 얼마 안 돼서 바로 해체하는거 아니야?”
“방PD님은 생각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저딴 애를 연습생으로 받아 들이고..”
“수지 괜찮아? 많이 무서웠겠다.. 그런데도 이여주랑 친해지려고 그러는 거 보면 얼마나 착한거야..?”
7명의 멤버들이 돌아가며 나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었고 배수지는 자신을 감싸고 도는 멤버들 뒤에서 들키지 않게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너무 뭐라고 하지마.. 여주 불쌍한 애야..”
배수지는 자신이 착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나를 감싸고 도는 척 했다.
“몸이라도 팔았나?”
“그럴수도?”
“…”
그들의 말에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손에 힘을 꽉 주는 것 뿐이었다.
“아 맞다! 나 다음 스케줄 있어서 먼저 갈게!”
분위기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뻔뻔하게 연습실 문쪽으로 걸어가는 배수지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연습실 문쪽에 서있는 나에게로 걸어왔다는게 맞다.
“어때? 너를 아껴주던 멤버들을 빼앗긴 소감이? 이게 너와 나의 차이야.”
배수지는 나만 들릴 만한 소리로 말했다. 그리곤 유유히 연습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
“.....”
“.......”
연습실의 분위기는 닭살이 돋을 정도로 썰렁했다.
“연습이나 하자.”
정호석씨는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그러자 정호석씨의 말에 대형을 맞추는 멤버들이었다.
.
.
.
춤 연습을 시작한지 몇시간이 흐르고 벌써 저녁시간이 되었고 멤버들은 아무말도 없이 하나 둘 연습실을 나갔다. 결국 연습실에 남은 사람은 나 혼자였다.
“여기서 때려칠 내가 아니지! 내가 얼마나 노력해 왔는데!”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마음에 아무도 없는 연습실에서 소리를 쳤고 그 소리는 벽에 부딪히고 부딪히며 연습실 안을 울렸다. 나는 그 소리를 무시하고 노트북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 노래를 틀려고 마우스를 잡았다.
“안녕?”
타이밍이 좋다고 해야되는지 안 좋다고 해야되는지 배수지가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하고 싶은 말 다 한거 아니였어?”
“그게? 너 진짜 웃긴다~”
올라가있던 입꼬리를 내리며 말하는 배수지였다.
“내가 그런 말로 끝낼 사람이 아니라는 건 너가 잘 알지 않나?”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까 내가 했던 말에 대한 대답 들으려고 왔어.”
배수지는 연습실에 있은 의자에 앉았다.
“너랑 할 말 없어.”
사실이었다. 내 마음속에 있던 말을 한 것 뿐이었다. 또한 더이상 배수지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연습실을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나를 못 나가게 하는 듯 배수지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내 머리카락을 잡고 뒤로 쓰러뜨렸다.
“너가 뭔데 내 말을 무시해. 내 말이 말 같지 않나 봐?”
배수지 때문에 누워있던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배수지였고 배수지는 자신의 얼굴과 내 얼굴이 가깝게 다가왔다.
“내가 그때처럼 사람 한명 반병신으로 만들어줘?”
배수지는 나에게서 떨러졌다.
[아아.. 어떻게...]
[살인자]
[어떻게 자기 친구를..]
배수지의 말을 듣 짧막하게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그때의 일이었다. 머리가 욱신욱신 거리며 아팠다. 그때의 일이 떠올라 고통스러웠다. 그런 내 모습을 보는 배수지는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 이제 대답할 마음이 생겼어? 너를 아껴주던 멤버들을 빼앗긴 소감이 어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으로 옷을 털었다. 그리고 말했다.
“미안하지만 멤버들은 나를 싫어해서 말이야. 데뷔하기 몇달 전에 누가 들어와 나를 싫어했던 그 멤버들처럼.”
배수지는 자신이 원한 반응이 아닌지 자신의 머리를 한 번 쓸어 넘겼다.
“우리 여주 많이 컸네? 응?? 이게 어디서!!”
‘짝—!!’
‘쿵—...’
순식간에 배수지는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내 뺨을 때렸고 나는 그대로 털석 주저 앉았다.
“이게 너와 나의 차이야.”
배수지는 미친듯이 웃으며 연습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
연습실 안은 한동안 짝소리와 쿵소리 또한 배수지의 특이한 웃음소리가 울러 퍼졌고 그 소리에 나는 숨을 가쁘게 쉬었다.
.
.
.
어느정도 진정이 되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 가방에서 노트북, 펜과 공책을 꺼냈다. 그리고는 연습실 구석으로 걸어가 앉았다. 노트북을 켜서 미리 찍어두었던 바른 비트를 틀어놓고 리듬을 타며 공책에 한글자 한글자 써내려 갔다.
“너가 뭔데 나를 비웃어. 너네가 비웃을 수록 나는 더욱더 높이 올라가. 비웃기만 하는 너네들은 항상 그자리. 이게 너와 나의 차이..”
다음 가사를 한동안 생각하다가 비트를 틀어 놓은 채로 바닥에 누웠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작업을 하겠다고 생각했는지.. 나는 작업을 때려치 듯 손에 쥐고 있었던 펜을 놓았다. 펜을 놓자 펜은 대굴대굴 굴러갔다.
.
.
.
그렇게 가만히 누워있는지 10분 정도 흐른것 같았다. 나는 공책을 들어 올려 내가 쓴 가사를 읽었다.
“이게 너와 나의 차이..”
피식 웃음이 흘러 나왔다. 배수지가 했던 말을 가사로 쓴 내가 웃겼다. 하지만 덕분에 좋은 가사를 얻은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일어나 펜을 손에 쥐었다.
***
연습이 끝나고 우리는 식당으로 향했다. 물론 수지와 같이. 멤버들은 너도나도 시끄럽게 떠들었다.
“아...”
주머니를 뒤적거리다 지갑을 놓고온 것을 알아버렸고 나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왜 그래 윤기형?”
태형이 물었다.
“지갑 놓고 왔어.”
“잘 갔다 와~”
나로서는 상당히 귀찮은 일이었다. 그런 나를 잘 아는 정국이 나를 보며 놀리듯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오빠! 나랑 같이 가자!”
수지가 말했다.
“너는 여기 있어 나 혼자 갔다 올게.”
내가 한눈 판 사이에 이여주한테 해코지라도 당하면 안되니까.
“싫어 싫어!”
수지는 나의 팔을 잡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야 되는데 아니 귀여웠는데 오늘따라 귀엽지 않았다. 단지 귀찮을 뿐이었다. 왜 이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같이 갔다와요 형.”
남준이 말했다.
“맞아! 저렇게 같이 가고 싶어 하는데 거절하는 것도 좀 그렇지 않냐..?”
이번엔 석진이 형이 말했고 어쩔 수 없이 가치 가자고 말하자 수지는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보니 수지가 귀여워 보였다. 역시 방금전은 내 눈이 잘못된 거였나 보다.
.
.
.
연습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왜 불이 켜져 있지?”
“그러게?”
내 말에 의문형으로 대답하는 수지였고 나는 주변을 둘러 보았다. 그러자 이어폰을 끼고 구석에 쪼그려 앉아 무언가를 끄적거리는 이여주가 있었다. 이여주는 우리가 온 것을 모르는지 계속해서 공책에 끄적거리고 있었다.
“쟤가 왜 여기있어.”
나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이여주가 수지에게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니 이러는게 당연한 것이다. 이여주가 펜을 들고서 기지개를 피자마자 수지를 내 등 뒤로 보냈다.
“...!?”
이여주와 눈이 마주쳤다. 한여주는 깜짝 놀란듯 몸을 움찔 거리며 펜을 떨어뜨렸다.
“너 여기서 뭐하냐.”
“네....? 그게...”
“수지야 여기서 나가있어. 지갑 가지고 빨리 나갈게.”
나는 이여주의 말을 무시하고 수지에게 말을 했다.
“있잖아.. 나 여주랑 대화 좀 하고 나가면 안될까?”
수지는 조심스럽게 나에게 말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문 앞에 있을 테니 빨리 나오라고 말하고 연습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
.
.
“꺄아아아악!!”
몇분도 안되서 수지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무슨 일이ㅇ...”
내 눈에 보이는 건..
“여.. 여주야.. 너가 힘들게 쓴거잖아... 이..이거 어떻게.. 내가 잘못했어.. 내가 안 거슬리게 잘 할게.. 이러지 말자 응..? 내가 이거 테이프로 붙여 줄까..?”
이여주의 팔을 붙잡으며 울고 있는 수지였고 이여주 보자 이여주의 눈에서 눈물 한방울이 또르륵 떨어졌다.
또한 종이들이 찢여져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야 이여주. 너가 진짜 단단히 돌았구나.”
이여주의 눈에서 눈물 한방울이 왜 어떨어졌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나한테 중요한건 이여주의 팔을 잡고 울고 있던 수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