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함께 있으면.

함께 있으면.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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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으면.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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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장소. 낯선 교복. 낯선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멈춰서는 것 없이 지나치는 이들과 달리, 눈 앞에 가만히 서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어쩐지 흐릿하게 보이는 그 얼굴을 제대로 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떠봤지만, 선명해질 기미가 조금도 없었다.







'…고마워.'







마치 잡음이 심한 라디오처럼, 들려오는 목소리가 자꾸만 끊겼다. 어떻게든 들어보려 귀를 귀울였지만, 약올리듯 갑자기 목소리가 멀어져갔다.







"안 들려. 다시 말해봐."







그 목소리를 잡기 위해 다급히 말을 꺼냈다. 하지만 멀어지기 시작한 목소리는 가까이 돌아오는 것 없이 그대로 멀어지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게 사라져버린 목소리의 흔적조차 찾지 못하게 되자 번쩍, 눈이 뜨였다.

공허한 시선 가득, 어스름한 새벽 빛이 들어왔다. 천천히 밝기를 더하는 빛을 멍하니 보던 것도 잠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널 만나서 다행이야.'







사라지기 전, 목소리가 남긴 마지막 말이 몽롱한 의식 속에서도 뚜렷하게 들려왔다.









함께 있으면.









웅성웅성. 수많은 목소리가 뒤섞여,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구별할 수가 없었다. 벌써 몇번째인지도 모를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책상 위에 엎드렸다.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잠이라도 자는 편이 아무것도 듣지 않을 수 있으니 편했다.

그런 생각으로 어떻게든 잠들기 위해 눈을 감는 순간, 아이들의 목소리를 끊어내며 교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용들 해라. 아침부터 왜 이렇게 시끄러워?"


"에이, 그렇게 시끄럽진 않았는데요~"


"그렇게 시끄러웠는데요~ 그러니까 입 좀 닫으세요~"







장난스러운 학생의 장단에 맞춰, 장난스레 답한 담임 선생님이 교탁 앞에 멈춰섰다. 습관처럼 출석부로 교탁을 두번 내려친 선생님은 조용해진 교실을 둘러보며, 긴 말 없이 본론을 꺼내들었다.







"자, 오늘은 우리 반에 전학생이 한명 왔다."


"여자예요?"


"남자죠, 쌤! 남자!"


"거 조용히들 하라니까. 들어오면 바로 알 걸 왜 물어봐?"


"아, 그래도요~"


"뭐가 그래도야~"







투닥투닥, 학생들과 선생님 사이로 장난스러운 대화가 오갔다. 그런 상황이 익숙한 듯, 교실의 분위기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 단 한명, 맨 뒷자리에 엎드려있는 여학생만을 제외하고.

있는 듯 없는 듯, 여학생의 존재를 당연하다는 듯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것이 어쩐지 이상했다. 그 이상한 상황을 아무도 바꾸려하지 않는 것이 더욱 이상할 정도로.







"이제 진짜 좀 조용히 하고, 전학생은 들어와라."







다시 소란스러워지려는 분위기를 정리하며, 다시 교탁을 두드리는 선생님의 말에 교실문이 열렸다. 그리고 들어온 전학생이 걸어와 교탁 옆에 설 때까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고요했던 학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학생들에게 시선으로 눈치를 주던 선생님이 전학생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자, 자기소개 한번 해보자."







그리 말했지만 소개는 커녕 미동조차 없는 전학생의 모습에 당황하던 것도 잠시, 선생님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 자기소개 한번 해보자. 당황한 것이 그대로 드러나는 목소리였지만, 이번에도 전학생은 미동조차 없었다.

그런 전학생을 가만히 지켜보던 선생님은 이내 그 시선이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음을 알아챘다. 그 시선을 따라 눈동자를 굴리면, 맨 뒷자리에 엎드려있는 여학생의 모습이 보였다. 뚫어져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선이 따가울법도 한데, 여학생은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마치 잠이라도 자는 것 같은 모습에 미간을 좁힌 선생님이 무어라 말하기 위해 입을 연 순간, 낯선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다.







"이지훈입니다."







이름만 덜렁 내놓은 짤막한 소개에 전학생, 지훈을 바라보던 선생님이 눈을 돌리며 헛기침을 했다.

흠흠. 두어번의 헛기침으로 호흡을 가다듬은 선생님의 말이 길게 이어지는 내내, 지훈의 시선은 여학생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지훈이 빈 자리에 앉은 후에도 여전히 수군거리는 아이들을 지켜보던 선생님이 교탁을 두드렸다. 그제야 조용해지는 아이들에게 짤막한 당부의 말을 전한 뒤 교실을 나섰다.

그렇게 선생님이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잠잠하던 교실이 다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저기, 지훈이라고 불러도 돼?"


"많이 낯설텐데, 우리가 학교 안내 해줄게."







자연스레 모인 두어명의 여학생이 지훈의 앞으로 다가왔다. 당사자인 지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들끼리 신나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 학생들을 가만히 지켜보던 지훈의 시선이 조용히 움직였다. 교실에 들어온 순간부터 쭉 보고 있던, 미동도 없이 엎드려 있는 여학생이었다.

그렇게 다시 한번 지훈의 시선이 여학생에게 고정되고, 지훈의 앞에서 얘기하던 학생들의 목소리가 작아져갔다.







"…지훈아, 너 쟤 알아?"


"안다면 어떻고, 모른다면 어떤데?"


"어?"


"내가 쟤를 알면 어떻고, 모르면 어떠냐고. 너희랑 상관 없는 일이잖아."


"아, 아니 무슨-"


"친한 척 성 떼고 부를 필요 없고, 학교 안내도 필요 없어. 너희랑 친해질 생각 없으니까."


"차, 참 나. 별 꼴이야!"


"그러게. 좀 잘해주려고 했더니…."







그래달라고 한 적 없는데. 그리 말할 생각이었지만, 학생들이 빠른 걸음으로 자리에 돌아간 덕에 입을 닫아야 했다. 눈 앞에 계속 남아있다면 모를까, 이미 가버린 사람에게까지 날을 세울 필요는 없었다. 그것이 가장 쓸모없이 힘을 빼는 일임을 지훈을 잘 알고 있었다.







"…너 뭐야."







아무튼 조용해져서 잘 됐지. 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이었다. 지금껏 아무런 미동도 없이 누워있던 여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일어난거지? 그리 생각하던 것도 잠시, 고개를 돌리자 여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심기가 불편한지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져 있었다. 그 아래로 보이는 두 눈이 짜증으로 물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전학생인데."


"처음 보는 얼굴인데, 누가 그걸 몰라?"


"그럼 뭘 묻는 건데."


"지금까지 한번도 이런 적이 없는데, 네가 있으니까 갑자기 잘 안 들리잖아."


"뭐가?"







핵심이 되는 단어는 단 하나도 없는 말이 상당히 뜬금없었다. 하지만 모르는 척, 되물은 지훈이 여학생의 답을 기다렸다. 슬쩍, 시선을 내리니 명찰이 보였다.

김여주. 역시, 얘가 맞네. 명찰에 새겨진 이름을 빤히 바라보던 지훈이 다시 시선을 올려 눈을 마주했다. 짜증으로 물들어 있던 여주의 눈이 어느새 당혹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웅얼거리듯 내뱉은 여주가 다급히 고개를 돌리더니, 다시 엎드렸다. 흐트러진 긴 머리가 완전히 가려버린 얼굴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훈은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렸다. 지금 굳이 죽어라 얼굴을 보려 하지 않아도, 앞으로 계속 봐야 할 얼굴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