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비가 내리는 날 밤

24화

모든 게 끝난 것 같았다. 이제야 현재를 사는 것 같았고, 이제야 내가 내가 된 느낌이었다. 

이젠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

뜨겁게 사랑했던, 마지막까지 나를 사랑해줬던, 의건이를, 작별인사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웃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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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가 회사를 다녀간 후, 다니엘씨는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미안하다고 했다. 괜히 나에게 화풀이를 한 것 같다며.. 솔직한 마음도 드러냈다. 성우가 나에게 함부로하는 말이 너무 듣기 싫고 거슬렸다고. 그렇게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고 싱긋 웃어보였다. 그 감정 또한 나를 너무 좋아해서 그렇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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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는 괜히 소문이 나고, 우리들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점심 식사 수다거리가 되는 게 싫어서 일부러 알리지는 말자고 했지만, 다니엘씨의 눈빛으로는 아무도 속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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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씨, 팀장님이랑 다시 만나는 거야?? 뭐야 둘이?? 눈에서 아주 그냥 꿀이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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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착각했던건, 꼭 점심시간의 수다거리만 된다는 건 아니었다. 그냥 잠시 커피 한 잔 사러 다녀올 때도, 일하던 중 기지개를 펴면서도 한 마디씩 흘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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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잘하는 잘생긴 능력자 팀장님에서, 남자친구인 팀장님은 어떤 스타일이냐며 물어오는 회사 여직원들에 부담스러움이 묻어 넘치는 미소를 지었지만,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아무도 나의 반응은 신경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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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잘 해주시는 것 같아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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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당연한 한 마디에도 환호성을 지르며 역시 팀장님이라는 감탄사를 마구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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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마침 화장실을 갔다가 돌아오신 팀장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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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내 얘기 중이었죠? 지은씨, 여주씨가 뭐라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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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 그냥 잘 해주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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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참, 그냥 잘 해 주기만 한답니까?

기왕 들킨거, 오늘 점심은 여주씨랑 단 둘이 먹어도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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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도 당당히 내 손을 잡고 점심은 뭘 먹고 싶냐며 물었다.

예전 같았으면 사람들 다 보는 데 왜이러냐며 밀어냈겠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보다 잡힌 손이 너무 신경쓰이고 떨려서 무어라 대답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남들 시선을 신경쓸 겨를이 없게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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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을 잡은 채로 밖으로 나가던 팀장님이 직원들에게 점심 맛있게 먹으라며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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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냥 다같이 아무거나 먹어도 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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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내가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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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씨와 의건이는 얼굴은 닮았지만 말투와 행동은 전혀 달랐다. 내가 이 두 사람을 왜 헷갈렸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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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밥 먹으면서 그 얘기 좀 해줘요.

전에 아쿠아리움에서 잊으려고 왔다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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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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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물어봐도.. 괜찮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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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말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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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채워줬으니까. 너무 공허해서 아팠던 내 삶을 당신이 채워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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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씨와 단 둘이 점심을 먹으러 나와서 회사 근처 식당에 앉아 식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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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쿠아리움은 의건이랑 처음 만난 장소에요. 초등학교 때 처음 갔었는데, 선생님만 따라 다니라고 했는데 제가 넋놓고 보닥 길을 잃었거든요. 그 때 의건이가 도와줬어요. 그래서 그 때부터 쭉 친구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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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였다가 연인이 된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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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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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씨가 내게 아쿠아리움에서 그렇게 말했다. 이 곳에서 있었던 소중한 추억을 이제는 잊으려고 다시 온거라고. 이제는 잊고 놓아주려고. 그건 죽은 의건씨와의 첫만남이라는 소중한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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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엘씨한테 거기를 가자고 했던건, 거기서 또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곳에서 있었던 예쁜 추억이 하나가 더 생기면 옛 추억은 좀 가벼워질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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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가벼워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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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하지만 분명한건 이제 이렇게 옛날 일을 말하고 떠올려도 눈물은 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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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씨가 옛 일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건, 나로서는 거의 모든 바람을 이룬 것이었다. 나의 한 가지 목적, 이거 였으니까. 이제는 웃을 수 있는 여주씨가 되어서, 웃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앞으로 더 많이 남은 날들이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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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예쁜 추억, 내가 많이 만들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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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었던 미소, 그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여주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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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말 나온김에 우리 오늘 회사 마치고 영화관 갈까? 전에 가자고 해놓고 못갔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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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는 말 할거면 안 가. 진짜 괜찮다니까 그러네. 오늘 야근 없어요? 그럼 난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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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약속이 잡힌 퇴근 시간은 평소 보다도 더 시간이 안가는 것 같았다. 기어가는 시계 바늘을 보며 속으로 이리저리 욕도 했다. 제발 좀 일어나서 뛰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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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루종일 시계와 컴퓨터만 번갈아보다가 드디어 6시에 긴 바늘과 짧은 바늘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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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수고 했어요! 내일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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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다시 여주씨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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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무슨 영화 볼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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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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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영화 있었던 거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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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데. 난 그냥 여주씨랑 같이 영화관에 가고 싶었던 게 다야. 여주씨는 보고 싶은 영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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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저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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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영화관에서 나는 여주씨의 손을 잡고 상영중인 영화를 둘러보았다. 

액션은 정신없고, 슬픈건 별로. 귀신은 무슨 귀신.

그러다가 보게 된건 범죄 스릴러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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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경찰에 되는 게 꿈이었다며 영화가 정말 기대된다고 들뜬 얼굴로 말을 하는 여주씨, 오늘 따라 진해진 립스틱 색이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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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지금 무슨 생각을..!

영화보러 온 거잖아. 나란히 앉아서 영화보는 동안은 꼼짝없이 앉아 있을 수 밖에 없는 영화관. 여주씨가 영화에 집중한 얼굴 실컷 보려고 오자고 한 거잖아. 정신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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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뜬 건지 평소보다 말이 많아진 여주씨는 내가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상상이나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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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이즈의 팝콘과 각자 음료를 하나씩 들고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다. 

좌석을 확인하고 자리에 앉을때 까지도 여주씨는 엄청 들떠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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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 오랜만에 오나봐. 되게 신나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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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고등학생 이후로 처음일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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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될 것인지 불이 꺼지고 깜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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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깜깜한데, 여주씨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한 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아직도 웃고 있네. 영화관에 온 이후로 계속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원래 이렇게 잘 웃는 사람이었네, 여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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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스릴러답게 긴장되는 배경음악에 빗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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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씨는 내 손에 들린 팝콘을 하나씩 꺼내 먹으며 영화에 집중했고, 나는 또 집중하느라 약간의 힘이 들어가는 여주씨의 입술에, 팝콘을 오물거리는 여주씨의 입술에 눈길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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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미친거 아니야..? 이 정도면 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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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집중하는 여주씨를 실컷보려는 이번 계획은 접어야 할 것 같았다.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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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심호흡을 하며 팝콘을 입에 집어 넣었다.

영화나 보자, 영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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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기대 없이 보게 된 영화가 생각보다 재밌었다. 

조용한 마을에 갑자기 생긴 사건과 아직 감도 안잡히는 범인. 

사실 영화를 즐겨보는 성격은 아니라 가만히 보고만 있었는데 그때 여주씨가 내 귀에다 대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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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씨는 범인 누구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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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놀라서 옆으로 돌아보자 방긋이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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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범인이 누군지 알것 같아요. 니엘씨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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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누군지 난 하나도 모르겠고, 하나도 관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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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장님이 범인이에요. 내 말이 맞을 걸요? 기다려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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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영화관에서 화면 빛에 비쳐 보이는 빨간 여주씨의 입술에 나도 모르게 입을 맞췄다. 

깜짝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뭐에요! 공공장소인데!'라며 내 어깨를 아프지 않게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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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나도 끝까지 진짜 참으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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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귓속말 하지 마요. 한 번만 더 그러면 뽀뽀로 안끝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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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내 말을 듣지 않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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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완벽히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도 난, 내 마음을 남들에게 잘 숨길 수 있어서 이때까지 잘 숨겨왔고, 그래서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물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왜 여주씨에게는 내 마음을 숨길 수가 없는지. 속으로 생각만 하던 것들이 이성을 거치지 않고 말로, 행동으로 드러나 버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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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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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적에 아버지가 재혼을 했었다. 우리집에는 새어머니가 왔고, 그때부터 나는 남들에게 나의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감춰오기 시작했다. 

그게 내가 11살때였으니까 벌써 15년쯤 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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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엄마가 새엄마라는 것도, 진짜 엄마는 어디 계신지도 모른다는 것도, 사실은 우리엄마가 정말 보고 싶다는 것도. 11살의 난 너무 잘 숨겨왔다. 엄마 애기만 나오면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셨으니까. 

새엄마의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도 잘 먹어 왔고, 그렇게 억지로 먹은게 채해서 밤새 토를 하다가 잠을 못자고 아침에 등교를 할 때도 피곤한 티도 내지 않았다. 

그렇게 사는 게 적응이 되어서 학교에서도 기분이 나쁜일이 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반응했고, 몸이 안좋아도 수업도 빠지지 않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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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살아온 지난 15년동안 내가 얻은 건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 뿐이었다. 

기분 나쁜일이 있어서 사람들과 다투는 일도 없었고, 다른 이유로도 기분이 상해있다고해서 남들에게 드러내지도 않았으며, 늘 웃으며 늘 젠틀하게 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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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 삶의 변수는 여주씨를 만난 후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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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으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것만 같은 슬픈 눈으로 나더라 다른 남자의 이름을 부르던 그 순간의 답답함. 아니, 그날 아침 눈을 떳을 때 본 잠든 여주씨의 얼굴. 그때부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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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깨워서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전날 술에 취하지도 않았고, 내 집에 있었던 내가 어떻게 여기 있는 건지 조곤조곤 물어야 했을 내가 도망치듯 그 집을 나왔고, 회사에서 여주씨를 다시 만났을 때도 나답지 않게 답답한 마음을 온전히 언성을 높이며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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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씨에게 죽은 애인이 돌아온 것이 말이 안되는 일이지만, 그 만큼 여주씨에게 있어서 내가 하는 나답지 않은 반응들도, 나에게는 심각하게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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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번, 또 '뽀뽀해도 됩니까?' 속으로만 생각하던 그 말을 내 뱉은 것으로 두 번, 정말로 여주씨 집으로 올라가 그녀에게 키스를 퍼부은 그 날로 세 번. 그리고 옹성우라는 남자의 말에 날카롭게 반응한 것으로 네 번, 마지막으로 영화관에서 여주씨에게 입을 맞춘 다섯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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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이나 말도 안되는 일이 내게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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