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락한 선배들
W.아룸쒸

오래간만에 일찍 눈이 떠진 김에 그냥 빨리 집을 벗어났다. 차갑다고 하기엔 따뜻한 바람이 불었고, 꽃 냄새를 맡으며 학교로 향했다. 나무를 물들인 꽃들이 어찌 예쁘던지. 사진만 몇십 장 찍었다.
강의실 문을 열었을 땐 역시 아무도 없었고 난 기분 좋게 구석 자리에 앉았다. 필기구들을 미리 꺼내놓고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러자 보이는 카톡 알람. 정호석 새끼였다.



"개또라이 새끼..."
개썅또라이 새끼... 더 험한 욕들이 나올 뻔한걸 꾹 참았다. 누가 들으면 안 되니깐. 휴대폰을 가방에 쑤셔 넣고 노트를 펼쳤다. 복습이나 하려는 참이였는데.

"여주 안녕."
"악 깜짝이야!!"
"그렇게 놀랐어?"
"놀라지 그럼 안 놀라요??"
"또 존댓말이네."
"익숙해져서 그런 거라고!!"
"네네~"
흐즈므르... 어금니를 꽉 물고 루시퍼 1을 노려봤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그저 픽 웃는 그를 보니 자존심이 팍 상했다. 뭘 쪼게. 내 말에 그는 피식 웃으며 내 볼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줬다.
"...?"
"머리카락."
"...헐."
볼에 머리카락을 붙이고 감성이란 감성은 다 잡고 왔다는 생각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누가 봤으면 어떡하지? 날 미친년으로 봤다면? 그럼 진짜 망하는 거다.
책상에 얼굴을 박고 머리를 헝클었다. 난 몰라...시바알... 아직 누가 봤다는 소리도 안 했지만 그냥 나 자신이 창피했다. 루시퍼 1은 그저 그런 내가 웃겼는지 키득거리며 웃었고. 진짜 죽일까.
사람이 하나둘씩 강의실로 들어오기 시작하고 난 루시퍼한테 이제 자리로 가보라 했다. 내 말에도 불구하고 의자를 꺼내 앉았지만. 의아한 눈치로 그를 쳐다보니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 자신의 노트를 꺼냈다.
"뭐 하는 거야?"
"왜? 곧 교수님 오시잖아."
"왜 내 옆에 앉냐고!!"
"쉿...다 듣겠다."
"

오늘만 여기에 앉을게.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돌리는 그에 허탈했다. 당연히 모든 여자애들의 따가운 시선들은 나에게로 향했고. 눈빛들이 부담스러워 고개를 푹 숙였다. 인생 22년 차 처음으로 느껴보는 시선들이었다.

"교수님 오신다. 모두 열공해."
"네에!!!"
그 시선들이 오래가진 않았지만.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교수님이 인자한 미소를 띠시고 유유히 강의실을 나가셨다. 2시간 사이에 눈이 침침해진 거 같았다. 지잉... 에코백에서부터 느껴지는 진동에 눈을 비비며 화면을 켰다. 그러자 보이는 카톡 알람.

"...헐"
석진 오빠였다.


"히히..."
김석진. 사촌 오빠였다. 나와 4살 차이가 나고 옛날부터 오빠를 제일 좋아해서 그런지 성인이 되서도 애교나 애정표현이 어색하지 않았다.
잠시 해외 출장을 간다고 했었지만 결국 거기에 2년동안 머물었다. 자연스레 연락이 끊기고 서로 삶에 살아가기 바빴다. 그리고 오늘. 2년만에 재회하는 날이 찾아왔다.

"석진...오빠..하트?"
"왜 봐요."
"미친 사람처럼 실실 쪼개고 있는 걸 어떻게 신경 안 써."
"허? 미친 사람?"
"그럼 뭐라고 해?"
"됐네요."

"남친이야?"
"깜..짝이야..."
"...남친인가 보네?"
"다 왜 이래? 비켜!! 나 과방 갈 거예요!!"
날 가로막은 3명 사이를 비집고 강의실을 탈출했다. 왜 오지랖이야...괜히 투덜거렸다. 혼자 터덜터덜 과방으로 걸어가는 길. 오랜만에 혼자여서 그런지 왠지 씁쓸했다. 예전에는 이런 길도 그냥 그랬는데, 이게 다 저 루시퍼들 때문이야.

"...어? 이거 왜 이래??"
철컥철컥. 과방 문이 단단히 잠겨있었다. 안에서만 잠글 수 있는 구조라 분명 안에 누군가 있다는 거다. 저기요! 안에 계세요?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안에서 자는 건가. 포기하고 대학 도서관으로 옮기려는 참이었다.
드르륵_ 과방 문이 열리고 서늘한 에어컨 바람이 새어 나왔다. 과방으로 들어서자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둠이 날 반겼다. 왜 이렇게 어두워? 휴대폰을 꺼내들어 손전등을 키려는 때. 쾅! 하고 문이 닫혔다.
"뭐, 뭐야?"
"...너 누구야.."
"...저 정여준데요?"
"정여주...?"
"혹시 거기 근처에 스위치 있으면 불 좀 켜주세요."
"...여자야?
"그건 왜 물어봐ㅇ..."
터업! 무언가 내 입을 막았다. 후두둑 에코백에 들어있던 물건들이 떨어지고 발버둥 쳤다. 우읍!!! 으읍!! 소리를 질러도 막혀들어갔다.
그 상황에 머릿속을 스쳐가는 글. 대나무숲에 올라왔었던 글이었다. 과방에 납치범이 학생들을 납치한다는 타이틀에 글이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는데. 그 일이 지금 나에게 닥친 거였다.
"조용히 해!!!"
"으으읍!!!"
"과방 비상구 어디 있어."
공포감이 덮쳐왔다. 입은 틀어막혔고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와. 나 이제 장기들 팔리는 건가. 눈물이 비집고 나왔다. 석진 오빠 봐야 하는데... 정호석한테 아직 5만 원 못 받았는데. 아직 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똑똑_ 가벼운 노크 소리에 나도, 납치범도 행동을 멈췄다. 정여주. 폰 충전기 떨어트렸어. 전정국 목소리였다. 문 좀 열어봐. 납치범이 당황한 틈을 타 온 힘을 다해 그를 밀어내고 과방 문으로 달려갔다.
"선배!!! 저 좀 살려주세요!! 선ㅂ..으읍!!!"
"닥쳐! 진짜 죽여버리기 전에!!!"

"정여주? 거기 있어?"

"...야 비켜봐."
정여주. 너 괜찮아? 대답할 수 없었다. 입은 이미 또다시 틀어막힌지 오래. 납치범도 화가 오른 건지 그냥 날 끌고 다니며 비상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쪽 아닌데 병신. 욕도 서슴없이 하면서.나 진짜 죽는구나.
그때 밝은 빛이 들어왔다. 과방문이 열린 거였다. 가파른 숨을 내쉬며 열쇠 꾸러미를 쥐고 있는 박지민이 보였다. 그 뒤에는 교수님과 많은 학생들이 서있었고. 살았다는 안도감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경찰에 신고하고, 납치범은 순순히 감옥에 들어갔다. 그의 집에는 과방에서 납치된 여자 5명을 발견했고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했다. 사채에게 빚을 진 납치범은 죽는 게 무서워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의 장기를 팔려고 했다고 자백했다.

"여주야. 괜찮아?"
"어떻, 어떻게 열었어요?"
"과탑이 과방 열쇠 갖고 있는 건 당연한 거잖아. 넌 괜찮지?"
"...괜찮아요.."

"...진짜?"
"
"솔직히 말해. 너 괜찮아?"
아뇨...안괜찮아요..무서웠어요... 겨우 멈췄던 눈물샘이 또다시 눈물을 내보냈다. 박지민은 그저 날 안아줬다. 자존심이고 뭐고 눈에 안 들어왔다. 그저 공포심에 두려웠을 뿐.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지나갔다.


1일1연재는 개뿔 몇일동안 안돌아온 저를 매우 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