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월

__1942년 4월 13일
만주에서 경성으로 가는 기차에서 정국은 곯아떨어졌다. 그와 윤기 둘 다 수염을 붙이거나 모자를 깊게 눌러 써 자신의 얼굴을 가린 상태였다. 이미 꽤 여러 곳에서 수배지가 발견되었다. 무사히 경성까지 도달하는 것이 목표였으므로, 두 사람 사이에는 그 어떠한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윤기는 팔짱을 끼고 시커먼 터널 안을 응시했다. 역사라는 철길은 이 암흑 속으로 그들을 이끌었다. 불확실함과 불신. 그것이 시대가 그들에게 부여한 것이었다. 윤기는 저의 어깨에 기대 잠든 정국의 동그란 머리를 묵묵히 바라보며 이 아이가 저를 이리 믿을 날이 과연 얼마나 남았을지 가늠하였다.


‘어찌 되었든, 최대한 나중 일이었으면 하는데.’


윤기 또한 긴장을 풀고 눈을 감았다. 철길이 그들을 어디로 데려가든지, 기꺼이 살아주리라 생각하면서.




“야.”


정국이 우뚝 멈추었다. 그가 멈추어 선 것을 기척으로 느끼고서 뒤를 돌아본 윤기는 팔짱을 꼈다. 윤기를 올려다보는 저 순진무구한 눈망울이 유달리 오늘 읽어내는 것이 어려웠다. 조금 당황스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짐승의 눈도 읽어보는 윤기가 정국 같은 어린 소년의 눈을 읽어보지 못하다니.


“뭐하냐?”


정국의 손에는 종이가 한 장 들려 있었다. 내놔. 윤기가 그것을 빼앗아 보았다. 그리고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수배지잖아.”


별거 아니었네. 그가 다시 앞을 보고 걸어갔다. 정국은 영 불안한 낯빛으로 윤기의 뒤를 따라왔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아이였다. 두 사람은 한참 말도 하지 않고 걸었다. 전철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인력거가 바람이 휘날리도록 빠르게 달려갔다.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은 서로 팔짱을 끼고 웃으며 경성의 시내를 걸어갔고 일본 헌병들은 유난히 보이지 않았다. 기이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 사이 정국은 몇번 뒤쳐졌다가 다시 걸음을 맞추다가 멀어졌다 했다. 쭉 정국을 주시하고 있던 윤기는 마침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까부터 자꾸 뭐해?”


이번에도 수배지가 들려 있었다. 정국은 빨개진 얼굴로 우물쭈물하며 수배지를 내밀었다. 잔뜩 구겨진 수배지에는 윤기의 얼굴과 이름, 원 단위의 현상금 액수가 적혀 있었다. 이 간나새끼들은 그림을 못 그린다니까. 윤기가 짜증을 내며 매부리코에 혹을 단 모습으로 묘사된 자신의 수배지를 더욱 작게 구겼다. 이러한 행동에 정국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대장님.”
“왜.”
“대장님은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여기 다 동지들 얼굴인데……”


모기만한 목소리로 대답한 정국이 고개를 푹 떨궜다. 그 모습이 누가 보아도 풋풋한 열일곱 살 소년의 모습이라 윤기는 픽 웃고 말았다. 저는 진지합니다! 정국이 고개를 바투 들고 소리치자 윤기가 부러 정색했다.


“야, 이거 봐.”


윤기가 자기 얼굴과 십 원의 현상금이 있는 현상수배보 -옛날 것인듯 하였다.- 를 집어 들었다.


“실물이 훨씬 잘생겼잖아.”
“……”
“어쭈, 대답할 가치도 없다 이거지.”
“아닙니다!”


정국이 눈을 더 크게 뜨며 차렷 자세를 했다. 날래 와, 그런 시답잖은 건 신경쓰지 말고. 윤기가 재촉하였다. 정국은 한결 더 편해진 얼굴로 윤기를 따라왔다.





__1942년 4월 15일
친일 인사인 길버트 존슨이 두 발의 총을 동시에 맞아 죽은 이후, 거리는 더욱 흉흉해졌다. 헌병들은 그 무리가 작아진 대신 걸핏하면 조선인들을 상대로 폭력을 휘두르고는 했다. 일제가 조선을 이렇게 대하지 않은 때가 있었냐만은 그 강도는 심해져 일본인조차 조선인으로 오인해 빈사 지경이 될 때까지 몽둥이로 마구 패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토록 삭막한 세상에서도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존재란 늘상 있기 마련이다.


“자자, 어여들 오이소잉!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이 아니여!”


목소리가 우렁찬 수리가 큰 소리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면 다른 동료들이 줄타기를 준비한다. 구경꾼들이 어느 정도 모였을 무렵, 몸집이 날랜 사내가 뛰어나와 가느다란 외줄을 제집 안방마냥 타고 돌아다니는데 그 광경이 황홀하기 그지없다.


“어여 오이소, 어여 오이소!”


오늘도 수리의 목소리가 경성 저자를 뒤흔들었다. 오랜만에 서는 장이라 그런지 원체 그래왔던 것보다 사람이 훨씬 많았다.


“호석아, 어여 가라잉!”


색동 옷을 입고 패랭이를 쓰고서 제 얼굴만 한 부채를 펄럭거리며 호석이 줄 위로 올라갔다. 외줄 위에서 사뿐사뿐 걸어가는 모습에 다들 손을 꼭 쥐고 바라보았다. 가끔씩 비틀거리며 구경꾼들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의 자태를 보며 나비가 꽃에 맴도는 것 같다고 칭찬하였다. 색동 옷의 소매에 색종이를 넣어두었던 터라 호석이 팔을 움직일 때마다 마치 신선처럼 그의 소매에서 알록달록한 색종이가 떨어져 나왔다. 아래에서는 동료들이 탈춤을 하고 있었다. 양반탈, 각시탈이 아닌 이 놀음패가 만든 탈로, 이 혼란스러운 때를 위해 만든 것이었다. 처음에는 처음 보는 탈의 모양에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곧 이 탈들이 말하는 바를 알아차렸다. 이들은 놀음으로 조선 백성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찬란한 500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일본에 잡아먹힌 조선을 가장 낮은 곳의 사람들이 보듬어 품는 것이었다. 이상하지, 찬란한 시절을 본 적도 없는데 그때의 조선이 생생히 그려지니 말이다. 놀음이 끝나고 저 위에 걸려 있던 줄에서 호석이 사뿐히 뛰어 내려오자 구경꾼들이 휘파람을 불며 동전을 던져주었다. 수리가 그것을 바지런하게 주워 깡통 안에 넣었다.


“자자, 이제 정리 해야지.”


수리의 말에 다들 줄을 접고 탈을 벗어 상자에 넣느라 정신이 없었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색동 옷에 넣었던 색종이도 워낙에 멀리 날아간 탓에 다들 애를 먹었다. 그러던 때였다.


“정호석.”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이미 경성의 대부분이 단발을 했음에도 꿋꿋이 길게 길러 하나로 땋으셨던 머리는 간데없고 양이들처럼 짧게 깎은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호석은 아무래도 괜찮은 듯 싶었다. 도련님은 기골이 장대한 늠름한 사내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얼굴은 여전한 듯하였다. 변화의 시대에서 변하지 않은 것을 찾은 기분은 참 묘하였다.


“어디 갔다 인제 오십니꺼? 도련님이 소식도 안 남기고 가셔서 나가 을미나 놀랐는지 아십니꺼?”
“하하, 내 유학을 다녀왔단다.”


너는 놀음패에 들어갔구나. 도련님의 말에 마시지도 않는 소주잔을 든 호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꽤 비싼 술집이었던 터라 일본인들이 특히나 많았다. 술은 내가 살터이니 걱정 말아라. 도련님이 덧붙였다.


“아까 보니까 실력이 뛰어나더구나. 놀음패 일은 재미있니?”
“하모예. 재미있으니께네 이래 하는 거 아니갓소. 마님이 안 풀어주셨으모, 무신 재미로 살았겠나 싶어라.”


그 후로는 침묵이 돌았다. 몇 번 소주를 털어 넣던 도련님이 곧 일어섰다.


“자, 여기 술값이다. 우리 둘이 마신 것보다 많으니 더 마시고 싶으면 더 마시려무나. 거스름돈은 됐으니 네가 가져가도록 하고.”


도련님은 빠른 걸음으로 술집을 나섰다. 호석만 덩그러니 남아 마시지도 않을 술을 잔에 넘치게 따랐다. 그때 한 남자가 걸어들어왔다. 누가 보아도 신비로운 사내였다. 그의 몸은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듯했는데 그것이 꼭 달빛의 광채가 온몸에서 나는 것 같았다. 책을 들고 있던 남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호석을 발견하고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선 부러 떨어뜨리는 척 호석에게 책을 하나 쥐여주었다. 슨생님! 여기 책 떨어뜨리셨는데예! 그러나 남자는 호석의 말에 쉬잇! 하고서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원체 눈치가 빠른 덕에 호석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호석은 동전을 꼼꼼히 세어 술값을 지불하고 경성 거리를 달음박질했다. 학교를 찾고 있었다. 이 글을 읽어줄 사람이라면 누구든 괜찮았다. 호석은 늦게까지 불이 켜진 교실에 무작정 들어갔다.


“실례하겠심더.”


웬 양이가 그를 바라보았다. 흐미 시부럴! 호석이 소리를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곧 바닥으로 벌러덩 넘어졌다. 아 이 육시랄 놈의 짚신은! 호석이 길길이 날뛰자 양이는 조금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체구에 맞지 않게 잔뜩 몸을 움츠린 그 양이는 팔 척은 넘어 보였다.


"놀라게 했다면 미안해요. 괜찮으세요? "
“시방 뭐라고 하는겨.”
"…뭐라고요?"


양이 사내는 당황한 얼굴로 호석을 바라보더니 곧 그의 옆에 놓인 책을 집어 들었다. 호석은 잔뜩 경계하며 양이가 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양이야 많이 봤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흐미…저거 내껀디……호석이 혼자 중얼거렸다. 양이들은 남의 물건을 덥적덥적 가져가는 습성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이거 어디서 났어?"
“에?”
“Umm……이 좝쥐 어디서 났서효?”


조선어였다. 많이 어눌하였지만 확실한 조선어였다. 왠지 모를 반가운 마음이 솟구쳤다. 양이만 아니었어도 당장 얼싸안았을 것이다. 호석은 발딱 일어나 책의 광고면을 보여주며 또박또박 물었다.


“이거 뭐라 쓰인거여? 나가 무진장 읽고 싶은디 까막눈이라.”
"…뭐라고요?"
“아따 또 시작이네.”





__1942년 4월 16일
범규는 총을 쥔 손을 쥐었다 폈다 하였다. 불그스름한 얼굴의 맞은 자국이 여즉 선명하였다. 칙칙한 복도의 끝자락에서 태현이 나타나자 범규는 일어서서 그에게 다가갔다.


“충성을 쓰지 않고 정확히 둘까요?(충견을 쓰지 않고 그냥 둘 겁니까?)”


태현이 범규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입을 열었다.


“죽으면 죽어서 아비를 물으면 묻는 것을 충견인가, 아니면 그냥 피비린 안에 미쳐 날뛰는 맹목인지 알 수 있습니까?(죽으라면 죽고, 아비를 물어뜯면


범규가 하-! 하고 짧은 실소를 내뱉었다.


“충견인지 맹목인지는 사냥을 맡겨야 몰라요.(충견인지 맹견인지는 직접 사냥을 맡겨봐야
“유감입니다. 나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는 사내가 아니다.(안타까워요.
“그런 일은 보지 않았지만, 공포였어.(그렇게 안 봤는데 겁쟁이었군.)”
“마음대로 생각해 주세요.(마음대로 생각하시지요.)”


태현이 매일 짓던 굳은 표정에 옅은 비소를 머금었다. 마치 범규의 말 따위는 저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범규는 태현의 얼굴을 똑같이 노려보며 주먹을 쥐었다. 도대체 이 나라는 저를 언제쯤 믿어줄 것인지 불투명하였다. 옛말에 대업을 이루려면 낮게 때를 기다리라 하였으나 혈기 왕성한젊은이가 그것을 진심으로 따를 리가 만무하였다.


“내가 내 손으로 내 아버지를 죽인다면 그것은 나를 인정합니까?(내가 내 손으로 내 아비를 죽인다면, 그땐 날
“한치의 망설임도 없어.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추잡스러웠다. 분명 다시 희망이 보이는 듯하다가도 태현이 뒤에 덧붙인 말을 듣자 더는 상대할 마음이 없어지었다. 범규는 형식적인 목례만 하고서 먼저 복도를 걸어갔다. 그리고 문득 관동의 죽음들이 그를 다시 덮쳐왔다. 그것은 환영이고, 지나간 옛것이었으며, 조선에 들어오기 전까지 지워버리라 결심한 그것이었다. 죽창, 빨간 피. 마을 전체에 진동하던 피비린내. 그리고 십오 엔 오십 전. 그 지긋지긋한 십오 엔 오십 전. 범규는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어쩌면 그는 진정으로 피비린내에 미쳐 날뛰는 맹견인지도 모르겠다.




같은 시각, 지민은 사진 앞에 앉아 있었다. 지민의 옆에 태형이 들어와 사진 앞에 큰절을 올리고 앉았다. 바깥에서는 늦은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촛불이 여러 개 켜진 방에는 바람이 작게 새살거렸다. 지민은 손때묻은 책을 쓰다듬었다. 책의 종이가 팔락거렸다.


“조선어학회.”


지민이 한숨 쉬듯이 말했다.


“주 선생님께서 그리 지키고 싶어 하셨던 것인데.”
“훈민정음 말인가.”
“아니.”


지민이 태형을 보며 옅게 웃었다.


“한글.”


태형은 지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생긋 웃은 얼굴에서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깊이 느껴진 탓이었다. 주 선생님께서 살아 계시면 그러한 모습이시려나. 태형이 픽 웃었다. 훈민정음이 아니라 한글이었다. 대한(韓)의 글, 온갖 것을 다 보듬을 정도로 넓은 (澖) 글.


“김태형.”
“……”
“앞으론 나 찾지 마.”


어마무시하게 바쁠 예정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