𝐖𝐎𝐑𝐓𝐇 𝐈𝐓 크루 미션

[1기] 나의 히어로에게

photo

나의 히어로에게

© 2022 방탄내사랑 All right reserved.










모두의 인생에 히어로 같은 사람이 한 명씩 있다. 그 히어로가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의 상상 속의 인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히어로는 특별하기도 하면서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photo

"우리 딸! 먹고 싶은 거 다 말해. 아빠가 다~ 해줄게"





내가 이 세상에 온 뒤로 오로지 나를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바친 나의 히어로. 그 사람은 바로 우리 아빠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우리 엄마는 간호사 일을 무리하게 하다가 몸이 많이 약해지셨다. 그런 엄마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끼신 아빠는 자신의 인생의 1순위여야 하는 자기 자신이 아닌 엄마를 보살피고 아꼈었다. 그래서 아기를 갖는 거에 대해서 더욱더 신중하게 고민했었고, 엄마를 생각해서 꼭 아기를 갖지 않아도 괜찮다는 아빠와 당신을 쏙 빼닮은 우리의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엄마의 의견으로 갈려졌다고 하였다. 결국에는 더 사랑하는 쪽이 두손 두발 다 들게 된다는 말이 있는데, 그쪽은 역시나도 우리 아빠였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서 아기를 갖게 되었는데, 아빠의 지극정성에도 불가하고 약한 몸에 아기까지 밴 엄마는 몸이 더 약해져 내가 태어나는 날, 나에게 하늘에서 내려준 소중한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하람이라는 이름을 주고, 아빠와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곁을 떠났다.

2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갓난아기였던 나를 품에 안고 홀몸이 되어버린 아빠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아무것도 못하고 품에서 칭얼대기만 하는 나를 보살피기에 몰입했다. 모든 게 다 처음인 아빠에게는 어려움은 수도 없이 많았다. 부모님과 형제까지 없는 우리 아빠에게는 엄마가 전부였었는데, 그런 엄마가 남긴 새싹인 내가 아빠의 전부가 된 것이다.






"딸! 아침 먹고 가!"

"오늘 당번이라서 일찍 가야 돼.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


.


.






2010년도 봄.

photo


못 말리는 꼬꼬마였던 유치원생 시절, 6살밖에 되지 않았었던 내가 친구들한테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바비 인형도, 이쁜 원피스도 아닌 엄마였다. 엄마랑 장난치고 놀던 친구들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났었고, 그럴때마다 아빠에게 괜한 투정을 부렸었다.


왜 나는 엄마가 없냐고, 우리 엄마는 어디 갔냐고. 그때마다 안절부절 못했던 아빠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명하다. 나에게서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혼자서 끙끙 앓았을 아빠를 생각하면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유치원에서 가끔씩 '엄마랑 같이 하는 요리 시간'이라는 참관수업을 유치원에서 하였었다. 엄마랑 같이 하는 수업이 아이들의 성장과 학습에 좋은 참관수업이지만, 엄마가 없는 나에게는 엄마를 떠오르게만 하는 고달픈 시간일 뿐이었다. 이런 참관수업을 할 때마다 아빠는 자신의 일을 잠시 내려두고 항상 시간을 내어서 왔었다. 엄마가 아니라서 아빠가 오는 게 엄청 기쁘지만은 않았지만, 싫지만은 않았다. 엄마도 아빠도 없이 선생님이랑 같이 하는 건, 그 무엇보다 슬픈 일이었으니까. 아마도 부모님 없이 혼자 남겨진 아이 같은 느낌이 들었을 거다. 하지만 그런 느낌을 느껴 본 적은 없었다. 내게는 아빠가 있었으니까.

참관수업에 참여하는 엄마들 사이에서 혼자서 아빠였던 우리 아빠. 나였더라면 부끄러웠을 텐데, 아빠는 아니었나 보다. 환하게 웃으면서 나긋한 목소리로 '우리 딸, 정말 잘한다! 하람이 최고!' 하던 아빠는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었다. 복싱선수들을 훈련 시킬 때, 보이는 엄격한 모습은 단 한 번도 나에게 보여준 적이 없었다. 심지어 단 한 번도 나에게 화를 낸 적도 없으시다.


photo


복싱선수들을 훈련 시키는 우리 아빠는 전 복싱선수, 현 복싱선수 감독이다. 운동하면서 단련된 근육과 힘을 나를 안을 때, 요리할 때, 한마디로 나를 위해서 하는 모든 일에 사용을 한다. 그 참관수업 하는 날에도 음식 재료들을 다 아빠가 혼자서 옮겼다는데, 우리 유치원에 있었던 솔로인 여선생님들이 하나 같이 다 넋을 놓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2013년도 여름.

photo


철이 없던 유치원생 티를 벗고 초등학생이 되었던 나. 모두 한 번씩 해보는 짝사랑도 이때 처음 해봤었지. 이제 유치원생 아니라고 혼자서 학교에 갈 수 있다는 나를 아빠는 애 취급하면서 아직은 어려서 안 된다며, 학교에 데려다주고, 학교가 끝나면 마중 나오고는 했었다. 그러던 2학년 어느 날, 단축 수업으로 수업이 일찍 끝나게 되고, 안에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우리 아빠가 일하는 곳이라고 밖에서 몇 번 봤었던 우리 학교에서 가까운 복싱장을 나 혼자서 찾아갔었다.


아빠도 깜짝 놀라게 할 겸 내가 이제 애기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우리 아빠는 날 너무 과잉보호 했었던 같다. 위험한 건 절대 못하게 하고, 나랑 같이 있을 때는 항상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아빠를 놀라게 하기 전에 복싱장 문을 살짝 열어서 빼꼼 들여다본 나는 처음으로 아빠의 화난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내 기억 속의 아빠는 늘 웃고, 미소짓고, 행복한 얼굴이었는데, 인상을 구기며 화난 목소리로 선수들을 혼내는 얼굴이 너무 낯설었다.







photo

"너 여기 지금 놀려고 왔어? 훈련이 장난이야? 이런 
식으로 해서 대회는 어떻게 나가려고 그래, 어?!"






낯선 아빠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딸꾹질이 나기 시작했다. 혹시나 아빠가 들을까 봐, 부리나케 입을 손으로 틀어 막아보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내 딸꾹질을 들은 아빠는 뒤를 돌아봤고, 입을 막고 끅끅거리는 나를 발견하고서는 안 그래도 큰 두 눈이 확장되었다.






photo

"하람아...? 딸, ㅇ,여기는 어떻게 왔어?"





내가 끅끅거리면서 딸꾹질을 멈추지 못하자, 아빠는 정수기에서 미지근한 물을 받아왔다. 아빠가 준 물을 마시고 겨우 진정이 되니, 딸꾹질이 멈췄다. 그제서야 어떻게 해서 오게 된 건지, 아빠에게 설명하게 되었는데. 내 얘기를 듣고 난 아빠를 날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하였다. 상처 하나 없는 나를 보고 나서야 이제야 안심이 되는지 옅은 한숨을 쉬셨다.







photo

"딸, 앞으로는 혼자서 위험하게 여기는 오지 마"





다칠까 봐, 아빠가 너무 걱정돼.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날 품에 꼬옥 안고서는 한참을 기대었다.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본 선수들을 처음 보는 감독님의 모습에 경악했다지. 항상 엄격하고 무서운 얼굴을 하고 누구 하나 잡아먹으실 목소리의 감독님이 이렇게 다정하고 따뜻하고 나긋한 목소리를 하니깐, 아무래도 충격이었겠지. 근데 제일 신기한 건 이런 모습은 오직 딸인 나에게만 보여주는 한정된 모습이라는 거.

그날 이후로 아빠도 화를 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었다. 하지만 아직도 나에게는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다. 내가 생각해도 우리 아빠는 너무 딸바보인 것 같아.








2017년도 가을.

photo

교복을 입기 시작했었던 중학교 때, 사춘기가 왔던 난 아빠를 많이 힘들게 했었다. 초등학생 때는 별생각 안 했었던 아빠의 과잉보호가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했고, 아빠가 하는 걱정 하나하나가 다 짜증 나고 그냥 잔소리처럼 들렸다. 반항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날 위해서 하는 말들을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러버리게 되었다.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려고 최선을 다하는 아빠의 가슴에 못을 박았었다. 그것도 다시는 빼지 못할 대못을.





"아빠가 뭔데, 엄마도 아니면서...!"





차마 입 밖으로 내뱉으면 안 되는 말을 난 아빠에게 내뱉었다. 지금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당장 입 닫으라고 나에게 있는 힘껏 싸대기를 날렸을 거다. 그렇게 아빠에게 모진 말을 내뱉고 내가 가출을 한 소나기가 가득 내리던 그 날 아빠는 빗속에서 우산도 쓰지 않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나를 찾아다녔다.






photo

"하람아!! 하람아!!"







나를 애타게 부르면서 뛰어다녔던 아빠의 그 떨리는 목소리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홀딱 젖어서 벌벌 떨면서도 골목 구석에 쪼그려 앉아있는 나에게 한쪽 무릎을 꿇고는 미안하다는 말을 읊조렸다.






"딸, 아빠가 미안해. 아빠가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은 내가 해야 하는데, 내가 아빠의 인생에 짐이 되고 있는 건데, 정작 사과는 아빠가 나에게 하였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아빠의 얼굴에서 떨어졌고, 자신이 쓰지도 않고 손에 들고 있었던 우산을 펼쳐서 내 위에 쓰여주었다. 

누군가가 날 올가미에 감아버린 듯이 죄송하다, 미안하다는 말이 도저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빠는 아무런 말도 없이 내 손을 감싸주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겠다는 듯이. 그렇게 나를 일으키려는 아빠의 발을 무심코 보게 되었는데, 슬리퍼를 짝짝이로 신고 있었다. 얼마나 급했으면, 신발도 못 신고, 슬리퍼를 짝짝이로 신었을까, 라는 생각에 꾹꾹 눌러 놨었던 눈물이 터져 흘러내렸다. 이런 아빠에게 난 도대체 뭘한 거지. 속으로 날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그 이후로 난 힘들어도 아빠에게 상처 주지 않도록 노력했다. 내 노력을 하늘에 있는 우리 엄마가 알아준 건지. 나의 파란만장한 사춘기는 나도 모르게 어느새 지나갔다.







2021년도 겨울. 현재

photo


누가 봐도 훈훈한 얼굴을 가지고 있는 아빠에게 젊은 여자들이 수도 없이 다가왔지만, 아빠는 언제나 정중하게 거절했다. 나랑 같이 다니면 오빠라고 해도 사람들이 믿을 정도로 우리 아빠는 잘생기겼다.  언젠가 아빠가 나에게 한 말이 있었는데, 이 세상에서 아빠가 죽을 때까지 사랑할 여자는 오로지 엄마뿐이라고. 그걸 듣자마자 아빠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사춘기가 지나기 전에는 아빠가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건 상상도 못 했을 일이지만, 막상 사춘기라는 길이 지나고 나니, 혼자인 아빠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나중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결혼까지 하면 그때는 정말로 아빠가 혼자 살 게 될 텐데, 이제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를 위한 인생이 아닌 아빠를 위한 인생을 살았으면.







"아빠. 만약에 네가 남자친구 생기면 아빠는 
어떻게 할 거야?"

"남자친구?"

"응. 남자친구"

"음... 우리 딸한테 남자친구가 생기면..."







photo


아빠는 되게 속상할 것 같은데? 사랑하는 우리 딸 뺏긴 느낌 들 것 같아. 물에 홀딱 젖은 강아지 같은 얼굴을 하면서 쳐다본다. 누가 우리 아빠 딸 바보 아니랄까 봐. 그냥 가볍게 물어본 건데,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진짜로 남친 생기면 큰일 날 것 같은 예감이...







"당장 남자친구를 사귀겠다는 게 아니잖아"

"아빠는 우리 딸한테 남자친구가 생기면 속상하겠지만, 
그래도 반대하지는 않을 거야"






아빠는 늘 우리 딸 편인 거 알지? 살풋 웃어 보이지만, 슬퍼 보이는 게 눈에 확실하게 보인다. 나밖에 없는 우리 아빠. 그런 아빠를 두고 아직은 누군가랑 사귀고 싶은 마음은 딱히 없다. 그래도 나 밖에 없는 아빠가 마음에 걸렸다.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 아빠에게 내가 팔을 걷고 직접 나서서  좋은 사람을 찾아다녔다. 근데 아무래도 내가 학생이라 보니, 아빠랑 나이가 비슷한 사람을 찾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학교, 학원 그리고 집 사이에만 오가는 나에게는 그렇게 많은 인맥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람 좀 많이 만날 걸. 인맥이 많을수록 좋다는 걸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아빠에게 좋은 사람을 찾기에는 글렀다는 좌절감에 신발 콧등으로 굴러다니는 작은 돌맹이를 굴리면서 가고 있었는데, 내 이름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나를 부른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알던 꽃집 사장님이셨다. 엄마가 없는 나에게 엄마 같은 따뜻하고 착하고 얼굴까지 이쁘신 좋은 분이셨다.






"하람아, 왜 그렇게 풀이 죽어있어? 무슨 일 있니?"






별일 아니에요. 그냥 오늘 좀 쓸쓸해서요. 생각해보니, 꽃집 사장님도 사고로 남편을 잃고 살아간지 오래되신 분이었다. 나이도 우리 아빠랑 비슷하고, 여자에게 관심이 하나도 없는 아빠가 얘기를 나누는 단 한 명의 여자였다. 나에게도 잘해주고, 날 딸처럼 대해주시는 꽃집 사장님을 왜 생각 못 했었지?







"사장님. 제가 실례되는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요?"

"그래, 뭔데? 무슨 질문이길래. 실례가 될까?"

"혹시 만나시는 분 있으세요?"







만나는 사람? 당연히 없지. 나 같은 아줌마를 누가 만나주겠니. 그 말에 나는 살짝 발끈하였다. 무슨 소리예요. 사장님, 아직도 이쁘시고 젊으시고 게다가 얼마나 좋은 분이신 데요. 내 대답에 기분이 좋으신지, 살풋- 웃으셨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하람아. 빈말이라도 해도 좋네.







"빈말 아니에요. 그럼 누구 만나고 싶은 마음은 있으세요?"

"글쎄... 막 누굴 만나고 싶은 마음은 없는 것 같아. 그냥 
지금처럼 이대로 사는 것도 괜찮거든"

"사장님이 저 알게 된 지 얼마나 되셨죠?"

"내가 처음 널 알게 되었던 게 몇 년 전이더라... 내가 아직 30대 초반이었으니까. 5년 전이네. 그때 하람이 너 진짜로 귀엽고 조그만한 초등학생이었는데, 벌써 어여쁜 숙녀가 다 됐네. 시간 참 빠르다, 그렇지?"







꽃집 사장님은 추억에 잠기셨는지, 행복한 미소를 지으셨다. 그 모습이 얼마나 이뻐 보이는지, 내가 남자였다면 첫눈에 반할만한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전 사장님이 제 엄마 같아요. 제가 힘들 땐, 제 얘기 들어주시고. 기쁠 땐, 같이 기뻐해 주시고. 좋은 일이 
있을 땐,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축하해 주시고"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마워. 나도 남편 잃고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들었을 때, 네가 있어서 견딜 수 있었어. 내가 애는 
없지만, 하람이 넌 항상 내 딸처럼 생각했었어"







그럼... 우리 아빠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드디어 가장 중요한 주제를 꺼냈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우리 아빠를 혼자 남길 수는 없었다. 어...? 너희 아버지...? 예상치도 못한 질문이었는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이는 사장님. 네. 우리 아빠요. 우리 아빠 마음씨도 착하고, 따뜻하고 좋은 사람인 거 사장님도 잘 아시잖아요. 게다가 우리 아빠 얼굴도 잘생긴 거 아시죠?








"그래, 너희 아버지 좋은 분이신 거 잘 알지. 그런데, 너 너희 아버지를 나랑 이어주고 싶은 거야?"

"네. 사장님도 좋으신 분이고, 우리 아빠도 좋은 사람이고. 
그리고 우리 아빠가 대화를 나누는 여자는 사장님밖에 없단 
말이에요. 우리 아빠 남자로서는 마음에 안 드세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난 그렇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건 
너희 아버지 마음이니까"

"아빠한테는 제가 직접 말할 거예요. 그럼 사장님은 아빠만 괜찮다고 하면 좋으신 거죠?"








환한 미소를 띤 사장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역시 우리 아빠를 싫어하실리는 없다고 생각했어.





집에 가자마자 아빠의 팔을 끌어당겨서 소파에 앉혔다. 항상 내게 보여주는 미소를 얼굴 가득 띈 아빠는 할 말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아빠에게 천천히 누굴 만날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photo

"딸... 아빠는 우리 딸만 있으면 돼"







어휴, 그 말은 이제 그만하고. 나 나중에 결혼도 하면 아빠랑 같이 못 살 텐데, 그때 혼자서 외롭지 않겠어? 벌써 이런 생각을 한 게 대견해서인지, 아니면 아빠를 생각해 준 것만으로도 감동이었는지.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은 아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람이는 아빠가 누굴 만났으면 좋겠어? 진짜로 괜찮겠어?"

"내가 안 괜찮을 게 뭐 있어. 아빠도 이제 아빠 인생 살아야지. 난 이제라도 아빠가 자신의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






내 말에 울컥했는지, 아빠의 눈가에 눈물이 촉촉히 맺힌 게 보였다. 우리 딸, 많이 컸네. 아빠 생각해줄 줄도 다 알고. 내 손을 꼬옥 잡은 아빠가 소중한 물건을 다르듯이 살살 쓸어내렸다. 아빠는 꽃집 사장님 어떻게 생각해? 꽃집 사장님...? 좋으신 분이지, 특히 우리 딸한테 너무 잘해줘서 항상 고마운 분이시고. 나한테 진심으로 잘해주기만 하면 다 좋은 사람이 되는 아빠의 사전.








"꽃집 사장님이 아빠만 괜찮다면 좋다는데, 진지하게 
만나 볼 생각 없어?"

"꽃집 사장님이 정말로 그렇게 말씀하셨어?"








그럼, 내가 언제 아빠한테 거짓말했어. 음... 거짓말은 많이 했었는데? 크흠...! 암튼 만날 생각 있어? 우리 딸이 이렇게 원하는데, 만나볼게. 진짜지?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다. 딴말 안 해. 아빠는 우리 딸이랑 한 약속은 어긴적 없었잖아. 대신 나중에 나 미워하면 안 돼.



아빠 말대로 아빠는 나랑 한 약속을 어긴 적이 없었다. 모든 걸 기억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아빠가 나랑 했던 약속들 중에서 어긴 건 없었다는 건 장담할 수 있었다.






"아빠, 난 아빠 미워한 적 단 한 번도 없었어. 
아빠는 나 미웠던 적 있었어?"







photo

"하늘에서 아빠에게 보내준 소중한 사람인 우리 딸. 아빠는 네가 있어서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거고, 행복했고, 앞으로도 이건 변하지 않아"

"아빠는 네가 미웠던 적 없었어. 항상 고마웠지, 누군가의 
아빠가 되는 게 처음이라서, 많이 서툴고 턱없이 부족한 
이 아빠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 텐데, 이쁘게 잘 자라줘서"

"내 존재 이유인 우리 딸, 하람아. 아빠가 많이 사랑해"








나도, 아빠. 뭐가 부끄러웠는지, 바보같이 난 아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랑한다는 말을 못 하였다. 원래 가족에게 가장 하기 어려운 말이 사랑한다는 말이라던데, 딱 나를 위한 문장인 것 같다. 밤새 아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못한 게 마음에 걸려서 책상에 앉은 나는 볼펜을 들고서는 편지지에 그동안 아빠에게 하고 싶었지만, 마음에만 담고 꾹꾹 눌러만 놓았었던, 차마 입으로 못했던 말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photo




나의 히어로 아빠. 사랑해, 아주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