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홀씨되어

너는 결국 별이 되었구나 (2)

 어제 새벽 1시 10분쯤에 뭘했을까 고민하고 곧바로 술을 퍼먹던 기억이 떠올랐을 때 지훈이가 오빈이의 사망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 남자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폰을 끄고 술을 마신 그 시간에 오빈이는 죽은 것이다. 정말 현실감 없는 이야기였다. 차라리 지구가 멸망이 되었다는 말이 더 현실감 있을테야. 범규는 그리 생각을 하며 어이없다는 어투로 지훈이에게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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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방금 음성메시지를 받았는데요? " ((범규

   " 아마 새벽에 보낸듯 합니다. 저희가 기록 찾아봤거든요. " ((지훈






 뭐래. 뭔 말도 안되는 소릴하고 있어. 범규는 너무 기가 막혀서 말도 안나왔다. 그저 귀에서 폰을 때고 쇼파에 고쳐누워 스피커폰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오빈이가 음성메시지를 보낸 시각을 확인했다.






   " 12시 27분. 맞죠? " ((지훈






 12시 27분 34초. 지훈이의 말이 정확했다. 범규는 빠르게 긍정회로를 돌리다가 멈췄다. 순간이라도 지훈이의 말이 사실이라 가정한 자기 자신이 멍청하다 생각하며 머리를 콩 때렸다.






   " 그니까... 그쪽이 경찰이고 오빈이가 자살했다... 뭐 그런겁니까? " ((범규






 범규의 물음에 지훈이는 잠시 침묵했다. 지훈이가 침묵하는 동안 범규는 작게 그럼 난 대통령이다라고 꿍얼거리는 것이 수화기 넘어로 들렸다.

 역시 바로 믿을거라 믿지 않았다. 만약 그에게 지금 바로 오빈이가 자살했다라는 말을 들으면 혹시 범규가 전화를 끊어버릴까봐 지훈이는 본론부터 꺼내기로 했다.






   " 정오빈씨의 보호자분이 계시지 않아 연락드렸습니다. " ((지훈


   " 잠시만요. 뭔가 잘못 착각하신거 같은데 오빈이가 왜 죽어요? 아니, 정오빈이 맞아요...? " ((범규


   " ...죄송합니다. " ((지훈


   " 당신 경찰이라면서 경찰이 시민을 지켜줘야하는거 아니야??? 오빈이가 스토커 때문에 몇번 전화한 것도 다 무시했으면서 이제는 뭐? 죽어? 정오빈이? 그 정오빈이? " ((범규






 범규는 머리가 새하얗게 번져만 갔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무슨말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손이 심하게 떨리기 시작하고 숨이 턱 막혔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온몸에 뜨거운 피가 도는게 느껴졌다.






   " 정확한 사인은 부검을 해서 알아야겠지만 자살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지훈


   " 거짓말. 그걸 어떻게 알아? 그리고 내가 그쪽들을 어떻게 믿고? " ((범규


  " 죄송합니다. 다만... " ((지훈


  " 자살이라니... 말도안된다고요. " ((범규






 범규는 지훈이의 말을 끊었다. 오빈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고 100번, 아니 1000번 양보해도 오빈이는 그런 선택을 할 애가 아니였다.

 분명 스토커짓이다. 범규는 그렇게 단정지었다.






   " 스, 스토커! 스토커요. 수사 방향을 거기로 잡아주시고... 아니, 아니지 오빈이는 안죽었어요. " ((범규


   " 유서가 발견되었습니다. " ((지훈






 범규는 그때까지만 해도 지훈이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 믿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기에 직접확인해야 속이 편할거 같았다. 왜 자꾸만 오빈이가 아닌데 오빈이라 단정짓는지 범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 그래서 지금 서로 와주셔야겠습니다. " ((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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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빈이가 지금 경찰서에 있어요? 지금 진짜 사기꾼같은거 아시죠? 죽은 사람이 경찰서에 있다니... 무슨 귀신이 직접 신고했습니까? " ((범규






 감정적으로 나오는 범규의 반응에 어쩔줄 몰라한 지훈이는 결국 결단을 내렸다. 경찰서로 와서 이것저것 범규에게 물어보는 것보단 오빈이를 보여주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 ...댁으로 가겠습니다. " ((지훈






 지훈이는 그 한마디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어이없어. 누가 정오빈이 죽었대? 말같지도 않은 장난질이야. 범규는 전혀 현실감을 느끼지 못했다.






   "진짜. 세상이 미쳐돌아가는구나. 오빈이한테 말해줘야지. 진짜 웃긴일을 당했다고. " ((범규






 범규는 혼자 웃기다는 듯 키득키득 웃었지만 웃음 소리가 너무 어색해 그만 웃기로 했다. 정말 지훈이의 말이 맞다면 아까 받은 음성메시지는 이미 죽은 오빈이가 보낸 것일 테니까.






   " 전화 받아 정오빈... " ((범규






 오빈이에게 전화를 거는 범규는 여전히 통화음만 들리자 손톱을 깨물기 시작했다. 불안감은 더 켜져만 갔고 초인종이 울리기 전까지 범규는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다.






   " 최범규씨, 박지훈 경위입니다. " ((지훈







 범규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고요했다. 그리고 이내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부정했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민감해진 척수의 감각을 느끼며 범규는 초점이 잡히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떨리는 동공을 하곤 폰을 바라보았다.

 폰은 여전히 빌어먹을 신호음만 들릴 뿐이었다.




민들레 홀씨되어

너는 결국 별이 되었구나











 오빈이의 장례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오빈이의 죽음은 너무나도 완벽한 자살이었다. 3개월 전부터 혹은 이보다 더 먼저 아주 천천히 준비해온 그런 죽음이었다.

 그렇기에 이건 타살이다. 누군가 오빈이를 죽였다 그리 주장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이 범규는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 그... 범규씨... " ((지훈






 범규의 표정을 본 지훈이는 빠르게 오빈이의 사진 앞에서 절을 하고는 범규에게로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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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이 한번 굳게 마음을 먹으면 바꿀 수 없어요. 너무 자책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 ((지훈






 지훈이는 범규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말했다. 범규는 꾸벅 고개를 숙여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건내었다. 진심인걸 알아도 후회하는건 마찬가지였다.

 차가운 오빈이의 시신을 본 그 순간부터 범규의 자책은 시작되었다. 죄책감에 흘린 눈물이 말라가면 오빈이에게 향한 분노의 눈물이 흘리고 그 눈물 또한 말라 더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으면 그리운 감정에 사무쳐 깊은 어둠 속을 유영하는 듯 했다.






   " 문 작가 정말 안됐어. 젊은 사람이... 에휴... "

   " 문작가 같은 인재는 없지. 문작가만 안됐어. "






 오빈이가 생전에 꽤나 유명한 작가였는지라 오빈이의 장례식에 온 사람들 대부분 출판업계에서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 입에서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오빈이는 범규가 알던 오빈이가 아닌 듯 했다.

 이따금 오빈이의 친구들이 와 오래전 오빈이의 모습을 들려줄때면 다시 자신이 알던 오빈이로 돌아왔다.






   " 만나서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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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네... 반갑...ㅎ '' ((범규

   '' 작가님은 정말 제가 알던 그 누구보다 작품에 진심이셨어요. 작가님이 나중에 자신의 작품에 뮤즈가 된 남친분을 소개 시켜주신다 했는데... 이렇게 만나뵙네요. ''





 오빈이의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까지 오빈이의 장례식에 와서 오빈이의 이야기를 전해주니 마치 오빈이의 장례식이 아니라 스몰 토크 파티같았다.






   " ...문 작가님은 정말 범규씨를 좋아하셨어요. 애정이 느껴졌거든요. 그러니... 문 작가님이 깊은 잠에 빠지신건 범규 씨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

   '' 제 탓이 없다면 오빈이는 죽지 않았겠죠. '' ((범규

   '' ....작가님이 좋아하신 대사중에 그런 대사가 있어요.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한 원인을 너에게서 찾지마> 어쩌면 작가님이 남긴 마지막 말...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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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언했습니다. 위로 감사합니다. '' ((범규






 범규는 그저 다른 어느 말들처럼 영혼없는 감사인사를 건내며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공허, 허탈, 허무, 무기력.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한대 어울려 느껴지기만 했다.

 장례식 기간 동안 한참을 울다 지쳐 잠들기도 하고 눈감으면 사라질까 두려워 잠을 못들기도 했다. 음식 냄새면 토가 나올 정도로 역했다가 다시 참을 수 없는 허기를 느끼며 허겁지겁 먹기도 했다.






   " 야 최범규 " ((수빈

   " ... " ((범규

   '' 최범규!! 정신차려 제발... '' ((수빈






 그런 범규의 모습을 지켜본 수빈이는 범규를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범규는 시체 마냥 축 늘어져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 하... 일어나. 너 꼴이 말이 아니다. " ((수빈






 수빈이는 정말 이러다가 오빈이의 장례를 치루고 범규의 장례를 치룰까봐 무서웠다. 지금의 범규는 툭하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을 내던질 그런 위태로운 상태였다.






   " 어디가게요? " ((범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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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이나 쐬러가게. " ((수빈

   '' 싫은데... '' ((범규

   '' 그럼 밖에서 오빈이가 안보이는데서 울던가. 오빈이한테 마지막까지 우는 모습만 보여줄거야? '' ((수빈






 수빈이를 따라 억지로 나온 밖은 아주 캄캄했다. 아침인줄 알았는데 칠흑같은 어둠이 쌓인 밤이었다.






   '' 아... 밤이구나... '' ((범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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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 밤이다 임마. '' ((수빈

   " 별이네요. " ((범규






 범규는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에 박힌 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오빈인가보지. " ((수빈

   " ...오빈이는 달이라고요. " ((범규






 오빈이가 왜 달이었지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어릴적 자신은 반짝이는 별이 될테니 너는 달이 되라고 말한 자신의 목소리가 아득한 곳에서 들렸다.

 오빈이는 별을 더 좋아했는데. 더 반짝거린다고 자신 별이 더 이쁘다고 했는데. 그래서 별이 되었나보다. 범규는 오빈이와의 모든 순간에서 이기적인 사람은 본인이었음을 곧 깨달았다.






   " 나만의 별이었는데... " ((범규






 자신은 이제 별도 달도 볼 수 없겠다 생각하며 의미없는 말만 내뱉었다. 수빈이도 더는 범규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둘은 그 긴 침묵을 지켰다.

 그때 하늘에서 눈송이가 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 춥지도 않은데 눈이라니 정말 어울리지 않았다. 범규는 손을 뻗어 눈송이를 잡았고 이내 폭신폭신한 눈송이를 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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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들레 홀씨네... " ((범규






 범규는 다시 접었던 주먹을 천천히 폈다. 바람이 범규의 손끝을 스치며 홀씨와 함께 날아갔다. 제 손에서 멀어지는 홀씨를 보며 범규는 다른이들에게도 봄을 알려주러 가겠거니라 생각했다.






   " 너는 결국 별이 되었구나. " ((범규






 범규는 그 한마디를 내뱉고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수빈이는 그런 범규를 보곤 다급히 뒤를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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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 범규야!! " ((수빈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범규는 잠시 멈칫할 뿐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옅은 숨소리에 울음 소리가 섞여나오는 것을 느끼며 수빈이는 범규가 울고있음을 짐작했다.






   " 죄송해요. 지금은 혼자 있고 싶네요. 그래도 아까보단 기분이 좋아졌어요. 정말 감사해요 형. " ((범규






 범규는 점점 속도를 빨리하더니 화장실을 박치고 들어왔다. 빠르게 물을 튼 범규는 세면대를 타고 주르륵 흘러 앉더니 얼굴을 가리고 그제서야 마음 편하게 울었다.

 올해는 유독 지독한 봄이 찾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