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어느덧 실력자로 자리잡아 하루하루 꽤 큰 돈을 모으던 여주는 이 생활도 어느덧 청산이라는 생각이 한구석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다 슬슬 기회를 엿보던 참인 어느 날 밤, 달빛이 광활한 자객 처소의 뒷 편에서 그녀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오는 17일 경, 새로 즉위할 국왕을 죽이거라."
"만약 성공할 시 엄청난 금은보화와 함께
네가 원하는 만큼 보상을 해주리라."
...는 중대하고도, 그만큼 어마무시한 명령.
그렇지만 이 생활을 청산하려던 여주에겐 그만큼 달콤하기 그지없는 청이었다. 더 이상 사람을 죽인다고 느낄 죄책감 따위는 그보다 더한 눈물들로 쏟아내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명령을 받아들이게 된다.
자객이 된 후,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왔던 여주는 그저 "새로 즉위할 국왕을 어떻게 죽일까." 만 생각했다. 더 이상 사람을 죽이는데에 무뎌진 그녀는 그게 누군지도 모르고.그저 이 어마어마한 금은보화를 받고 이곳을 뜰 생각만 하고 있었다.
한편, 그런 여주를 쳐다보던 누군가. 그는 여주의 행동을 모두 확인한 뒤 빠르게 어디론가 달려갔다. "두목." 굵직한 음성이 두목이라 불리는 사람의 귀에 들어왔다.
"확인했나?"
"확인했습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렇군."
"...그녀에게 이 일을 시키는 이유를 물어도 됩니까."
"저 애는 옛날부터 궁과 자주 교류했으니, 궁의 지리는 그 누구보다 잘 알 터. 복잡한 궁을 뚫고 임무를 완료하기엔 가장 적합한 인물이다. 만약 국왕의 심장을 찌르면 이 나라엔 큰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겠지."

"혼란을 틈 타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을 잡는다."
"그게 우리의 목표다."
두목의 말을 끝으로 그들은 말이 없었다. 이 모든것은 두목과 자객들이 꾸민, 쿠데타 계획이었다. 그리고 여주는 그 계획에 말려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자객들은 아무 말 않았다. 그저 코앞에 다가온 국왕의 즉위식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여주가 얼른 국왕의 심장을 난도질해 버리길 바랐다.
그런 계획을 모르는 여주는 그저 초점이라곤 없는 눈으로 매일매일 날랜 칼놀림을 위한 수련에 매진할 뿐이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꿈에도 모른 채.

즉위식 날이 다가오고, 새벽 일찍 왕궁으로 향하는 여주. 그녀는 자신이 처음으로 받았던 가장 아끼는 단검을 옷소매에 꽁꽁 숨긴 채 긴장감을 놓지 않으며 한 걸음, 한걸음 조심스레 발을 옮겼다.

하늘 끝까지 찌를 듯 높고 두꺼운 담을 더듬더듬 짚어가며 겨우 넘고, 쥐새끼 하나도 들킬듯 고요한 복도를 조용히 숨죽인채 살펴가며 국왕의 침소를 찾았다. 현재 시각은 오전 9시, 즉위식이 시작하는 10시까지 1시간도 남지 않은 시간에 여주의 발길이 다급해졌다. 하나같이 화려한 장식들에 쉽사리 기억 속 침소를 찾기 쉽지않아 조금 더 빠르게 속도를 올린순간,
삐거덕_ 순간 여주가 밟은 나무판자에서부터 큰 소리가울려퍼졌고, 병사들의 귀에까지 들어가버렸다. 잠시 몸이 굳은 여주가 상황파악을 하기 시작한 순간 많은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여주는 숨을 곳을 찾았지만 이렇다할 공간하나 없는 뻥 뚫린 복도에서 숨을 곳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누구더냐!!!"
"
"...뭐야."
병사들이 달려온 순간, 몰아쉬는 숨이 무색하게도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리 여겨 잠시 수색을 하던 병사들이 쥐의 소리일 것이라 생각해 걸음을 돌리자, 천장 위에 겨우 매달려있던 여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몇 분이 지나고 경비가 설렁해질 때 다시 조심스레 바닥으로 내려온 그녀는 더욱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용히, 그러나 신속하게. 온 궁을 다 뒤질때 쯤 그녀의 발걸음이 멈췄다. 긴 복도 속 가장 끝에 위치한 유달리 반짝거리고 웅장한 문 하나, 국왕의 침소가 틀림 없었다.

익숙하디 익숙한 문 앞에 도착한 뒤, 여주는 마지막 거사를 앞두고 작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터질 듯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킨 뒤, 문을 열자마자 그녀의 칼은 준비중이던 국왕의 심장을 겨누었다.

푹-
순식간에 단검이 정확히 목표물을 찌르고, 순간적으로 힘이 빠져 칼을 탱그르르- 떨어트렸다. 이제 끝이구나, 싶어 후련함이 몰려옴과 동시에 국왕이 힘없이 쿵- 쓰러졌다. 여주는 마지막이라도 보자싶어 그의 얼굴을 확인했고,
그녀는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니... 니가 왜..."
"...여,ㅈ..."
"아, 아니야... 야...!! 일어나!!!"
오늘 즉위할 예정이었던 국왕이.
"안돼...!!!!!!"
과거 자신의 친구, 세자였을 줄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