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하고 아름다운
여전히 살아가는 이유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고 싶다. 이 이야기는 내 인생에 단 한 번 뿐이었던, 몇 번이고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았던 이상하고 아름다운 곳과 나와 다른 존재들에 대한 것이다.
나는 언제나 삶에 대한 의문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뭔지, 내가 이렇게 살아간 후는 어떻게 그려질지. 나이에 맞지 않는 의문이었다. 이런 생각을 했던 때가 고작 열일곱이었고, 그 의문은 1년 사이 훨씬 더 커졌다.
열여덟이 되었을 때, 딱히 살고 싶지 않았다. 살아가는 이유를 몰랐고, 살아가는 법을 몰랐다. 1년 전의 의문들에 더 추가된 질문들은 나 자신을 너무 괴롭게 만들었고, 내가 보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과 나의 모습이 너무나 달라 나 자신을 혐오하게 했다.
어쩌다 하루, 매일 가던 학교를 처음으로 아무 말 없이 가지 않았다. 하루종일 핸드폰이 징징- 거리며 나를 찾았다. 집에 있던 가족들은 아침에 교복을 입고 나를 봤으니 애가 어딜 갔나 걱정됐을 거고, 학교에서는 성실하던 학생의 부재를 부모조차 모르니 이상했을 거다.
하지만 나는 모든 전화와 연락을 받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핸드폰을 꺼버렸고, 조금은 쌀쌀한 바람이 부는 거리를 나돌았다. 나의 눈에는 공허함과 쓸쓸함만 존재했을 뿐, 마치 아무런 것을 느끼지 못하는 로봇 같았다.
“아-, 나 이제 뭐 하지.”
정해둔 목적지도 없이 무턱대고 걸었다. 그 걸음을 잠시 멈춘 나는 고개를 하늘로 치켜들고서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뱉은 숨과 말은 그 어떤 말보다 묵직했다. 그 안에는 여러가지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으니. 그때였다, 내 인생에 모두가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건. 조용했던 길가에 순간 몸이 밀릴 정도의 거센 바람이 불어왔고, 팔로 눈가를 가리며 바람을 버텨내던 나는 새하얀 빛을 봤다.

빛을 본 순간 몸에 힘이 점점 빠지는 게 느껴졌다. 심지어 졸려오기까지 한 몸이 축 늘어지며 눈을 감은 게 마지막 기억이다.
🏝️
미간을 찌푸리며 조심히 눈을 뜨니 보이는 건 푸른 바다였다. 당황스러웠다. 분명 나는 회색 건물들이 가득한 도시에서 눈을 감았던 것 같은데?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싶었지만, 코 끝을 스치는 물 비린내와 귓가를 맴도는 파도 소리가 생생한 걸 보아 꿈은 절대 아닌 듯 싶었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손등으로 눈을 부비고, 토끼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주변은 온통 바다에 모래와 자갈이 가득한 땅, 쭉쭉 뻗은 야자수까지. 이 곳이 어딘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저 외딴 섬인 것 같다는 생각 뿐.

“얘 누가 데려왔어?“
“지민이 형이요.“
“야, 너 설마 또 납치해 왔냐?!“
”음… 그냥 기절 시켜서 데려왔는데?“
”그게 납치다, 미친 새끼야.“
사태 파악을 위해 정신을 좀 차려가던 차, 귀에 박힌 건 웬 남자들 목소리였다. 이 섬에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이들은 왜 이 곳에 있나 싶었고, 뭐라 한참을 떠드는 그들에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호기심을 못 이겨 발소리를 죽이고 이야기를 엿듣기 시작한 나다.
“아오-, 박지민 저 새끼는 왜 자꾸 인간을 데려오는 거냐고.“
“몰라요. 이번에도 불쌍해서 데려왔나?“
“글쎄 자꾸 인간을 데려오면 우리가 곤란하다니까.“
“알아요, 저도.“

”아는 새끼가 인간을 데려오냐.“
“아니… 쟤 눈빛이 꼭……”
쥐새끼 마냥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미간이 찌푸려진다. 나를 데려온 남자는 박지민이라는 남자가 분명한데…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 수록 그들은 나와 다른 존재인 것 같았다. 분명 나를 인간이라고 했다. 본인들은 그렇지 않은 것 마냥.
나는 보통 처음 보는 사람을 판단할 때,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 구분한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자꾸 인간, 인간 하는 게 좀 많이 수상했다. 내가 그들을 수상히 여기기 시작한 순간 이 섬에서 나갈 방법은 하나 뿐이었다. 그들을 기절시키고 죽어라 달리던가, 그들을 위협하던가. 일단 옆에 있는 돌을 하나 주웠다. 돌의 크기는 내 손바닥에 알맞은 정도. 나는 손에 돌을 꽉 쥐고 한 발자국씩 그들을 향해 조심스레 다가갔다.
“눈빛이 뭐. 전 인간들처럼 또 너무 불쌍하던?“

“아, 형! 이번에는 달라요. 쟤는 불쌍하기보다 위태롭다? 마음만 먹으면 파도에 뛰어들 수도 있는 그런 거 있잖아요. 무튼 보는데 마음이 좀 이상해서…“
“와, 그래서 여기로 끌고 왔어? 돌았냐? 박지민, 너 여기가 어딘 줄 몰라? 여긴 인간이 발을 들이면 절대 안 되는 곳이야. 특히나 이 섬은, 신의 공간이라ㄱ,“
“태형이 형, 잠깐만.”
웬 미친 소리인가 했다. 신의 공간이라니…? 그들은 온통 수상한 말들을 주고 받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라면 쉽게 믿지 못할 말들을 술술 내뱉었다. 아무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나는 여전히 돌을 꼭 쥐고 있었다. 그들이 나를 보면 언제든 던질 준비를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곧 누군가의 손짓에 그마저도 빼았기고, 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만다.

“감히 인간 주제에 뭐 하는 짓이지?“
”도, 돌이…!“
웃는 모습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싸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는 밝은 갈색 머리의 남자였다. 그 남자의 표정보다 소름이 돋았던 건, 그 남자의 손짓 한 번에 내가 가지고 있던 돌이 순식간에 그의 손에 들어갔다는 거다. 나는 자리에 힘이 빠져 모래 바닥에 주르륵 미끄러졌다. 덕분에 엉덩방아를 찍었지만 그 아픔은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나는 떨고 있었다.
“겨우 이 작은 돌 하나로 우릴 치겠다는 건가… 어이없어.“
“야, 야. 정국아, 표정 좀 풀어라. 널 업어 키운 나도 무서울 지경인데 저 애는 어떻겠니.“
”허, 무슨 형이 날 업어 키워요. 저 인간보다 형이 더 어이없네, 진짜.“
악마가 존재했다면 저런 얼굴이었을까 싶던 남자의 시선이 이내 본인을 업어 키웠다는 남자에게로 향했다. 그 둘은 시끄럽게 투닥거리기 시작했고, 둘을 제외한 나머지 남자들은 내게 다가와 주변을 둘러쌌다. 레몬색 머리를 한 박지민이라는 남자는 내게 손을 내밀기까지 했지만 나는 그 손을 잡을 수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잡지 않았다. 현재 내 눈에는 온통 그들에 대한 의심과 공포, 그리고 경계가 가득했기에.
“괜찮아, 잡고 일어나도 돼.”
“… 그쪽이 날 다치게 하면 어쩌려고 손을 잡아요? 싫어요. 저리 가요.“
“야, 인간. 우리 그렇게 안 나쁘거든? 내민 손 무안하게 그러지 말고 좀 일어나지?”
“싫다고 했잖아요. 당신들이 괜찮은 사람이면 애초에 나를 이런 곳으로 데려오지 말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누구는 지 데려오고 싶어서 데려온 줄 아나. 널 데려온 건 우리가 아니라 손 내밀고 있는 저 자식이거든?“
알고 있었다. 이미 그들이 하던 얘기를 충분히 엿들은 상태였고, 날 이리 데려왔다는 박지민이라는 남자와 내게 성질을 부리는 김태형이라는 남자의 이름까지 들었다. 나는 그래서 더욱 그들의 손을 잡을 수 없었다. 모르는 공간과 모르는 사람들, 수상한 그들의 말까지. 내가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이유는 충분했고,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시선을 내리꽂은 나다.
“어휴, 김태형, 넌 성질 좀 죽여라.“
”씨… 내가 뭐!“
“너 지금 쟤한테 성질 부릴 게 아니라 네 친구 놈을 존나 패던가 해야지. 따지고 보면 모든 잘못은 박지민이 했는데.”

“맞지. 내가 봤을 때, 박지민 쟤는 자리 박탈 당해봐야 정신 차릴 듯. 신들만 쓸 수 있는 능력으로 허구한 날 인간이나 납치해 오고 말이야-.“
“형… 나 그 정도는 아니지 않아요?“
”아니긴 뭘 아니야. 도망갈 시간 5초 준다. 잡히면 죽어.“
“김태형 눈깔 돌아간 거 봐… 윤기 형, 나 좀 살려줘!“
“응, 수고.”
박지민이라는 남자는 억울한 듯 입을 삐죽 내밀다 김태형이라는 남자가 손으로 목을 긋는 제스처를 취하자 소리를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둘을 익숙하다는 듯 지켜보며 큭큭 대는 나머지들. 그들과 달리 내 얼굴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나는 이 상황 조차도 저들이 꾸며낸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다음, 아무런 도움 없이 스스로 땅을 짚고 일어나 빈 공간을 통해 달리는 나다. 목적지는 어딘지 나도 잘 모른다. 애초에 이 섬은 나보다는 그들이 더 잘 알 테고, 이 곳을 벗어날 수 없다면 저들에게서라도 멀리 떨어져야 안전하다는 생각이었다.
“형들, 저 여자 저렇게 둬도 괜찮아요?“

”뭐, 본인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당장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보니까 쟤 우릴 엄청 경계하는 것 같더라.”
“음… 24시간 되려면 얼마나 남았지?“
”아직 21시간이나 남았어요.“
“혼자 좀 두다가 해질 때까지 안 오면 그때 능력 좀 쓰자.”
나는 몰랐다. 그들이 어떤 존재들이고, 어떤 마음으로 나를 데려왔는지. 그랬기에 더 필사적으로 달렸을 지도 모른다.
🏝️
헉헉 거리며 한참을 달려 닿은 곳은 이 섬에서 그나마 높은 곳이었다. 떨어지면 파도가 철썩이는 바다로 가라앉을 것만 같은 그런 곳. 절벽까지 달려오면서 느낀 건데, 이 섬은 그들이 말하던 신의 공간? 그런 게 맞는 듯 싶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냐고? 여기까지 달려오는 동안 동물은 커녕 기어다니는 벌레 한 마리 보지 못했거든. 풀과 나무는 이렇게 웅장하게 자랐는데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는 나와 그들 뿐이라는 게 퍽 웃겼다.
“… 아, 눈물이 왜 나.“
내가 방금 웃겼다고 했었나? 아니, 그건 사실 거짓말이었다. 나는 조금 무서워졌다. 살아 숨쉬는 게 식물들과 나, 그리고 그들 뿐이라면… 내가 이 섬에서 의지할 수 있는 건 내가 그렇게 두려워 하던 그들 뿐이었기에.
아직은 그들의 존재 조차 의심스럽고 겁나는데, 내가 여기서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싶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꽉 막힌 지금. 숨이 턱 막혀오는 갑갑함에 주먹으로 가슴을 퍽퍽 때리며 소리내 울었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돌아갈 수 있을까…?“
눈물이 더이상 나오지 않을 정도로 울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절벽 아래 바다를 초점 없는 눈으로 쳐다봤다. 저 바다에 몸을 던진다고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분명 정말 바보 같았다. 알면서도 괜히 그랬으면 싶어 입 밖으로 내던진 말이었는데 혼잣말에 답장이 돌아온 건 내 예상 밖이었다.
“인간들은 원래 그렇게 멍청한가?“
”뭐?“
”아니, 상식적으로 여기서 뛰어내린다고 네가 살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홱 고개를 돌렸다. 내게 답장한 건, 아까 내게 성질을 부렸던 그 남자였다. 이름이 김태형이었나. 전부터 느낀 거지만 이 남자는 묘하게 내 신경을 긁었다. 나를 가소롭게 여기는 듯한 저 표정과 나를 비웃는 듯한 말투. 속에서 울컥 뭔가가 차올랐다.

“거기서 뛰어내리면 죽어. 저 반짝이는 파도에 휩쓸려서 이리저리 치이다 바다 밑바닥까지 가라 앉는다고.“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그를 경계하고, 두려워했던 것도 그때 뿐.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짜증 뿐이었다. 나는 현재 내 앞에서 비아냥 거리는 듯한 김태형이라는 남자가 짜증났다. 속에서 올라오던 무언가와 그를 향한 짜증이 뒤엉켜 나는 부려서는 안 될 오기를 부렸다.
“… 계속 이렇게 있을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야, 너 미쳤어?“
“재수 없는 새끼. 내가 만났던 사람 중에 네가 제일 최악이야, 사람일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피식 하며 그를 비웃었다. 그렇게 점점 뒷걸음질 쳐 절벽 끝자락에 몸을 걸쳤고, 결국 그대로 몸을 뒤로 젖혔다. 절벽 밑으로 떨어지는 순간, 나는 그의 표정을 똑똑히 봤다. 이를 꽉 깨물며 두 눈을 질끈 감던 그 표정이 바다를 향해 떨어지던 내 입가에 호선을 그리게 했다.

그때, 내가 이 곳에 오기 바로 직전에 봤던 그 눈부신 빛이 내 눈 앞에 한 번 더 나타났다. 너무나 반짝여 실눈을 떠 그 빛을 바라봤고, 똑같이 몸에 힘이 빠지며 잠이 쏟아져 왔다. 몸이 축 늘어지기 직전, 내 몸이 어떤 힘에 이끌려 절벽 위까지 단번에 끌어올려졌고 그런 내 몸을 받아 안은 건 재수 없는 그 남자였다. 그 남자의 품에 안긴 걸 끝으로 내 기억은 또 끊겼다.
🏝️
똑같다. 처음 눈을 떴을 때와 같은 물 비린내와 파도 소리가 입술을 꽉 깨물게 했다. 중앙에 떠있던 해가 지며 주황빛으로 물든 하늘을 보니 시간은 많이 흐른 듯 싶었다.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시간은 이렇게 흐르는데 나는 왜 아직도 이 공간에 머무는 건지… 힘을 주어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깼어?“
레몬색 머리 남자였다. 나를 이 곳으로 이끈 장본인이자 나에게 손을 내밀었던 그 남자. 박지민이라던 남자는 내게 점점 가까이 다가왔고, 나는 그가 다가올 수록 몸을 움츠렸다.
나는 여전히 그들을 믿을 수 없었고 그저 두려울 뿐이다. 그 남자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다가오던 발걸음을 멈추고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그가 어떤 생각인지 몰라 신경을 잔뜩 곤두세우고 그를 노려봤다.
“태형이가 능력까지 써가면서 널 구했어. 대체 왜 그런 선택을 한 거야?“
“… 내가 왜 답해야 하죠? 그쪽들은 나한테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으면서.”
“궁금해? 우리는 누구고, 여긴 어디고, 언제 돌아갈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알려줄 수도 있는데.“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그를 멀리하던 나는 나보다 밑에 쭈그려 앉아 다시 한 번 손을 내민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내 손을 가볍게 쥐고선 모두에게 가자며 이끌었고, 나는 두 눈을 끔뻑이다 조심히 그들에게로 향했다.

“헐, 지민이 형이 정말 데리고 왔네요.“
”쟤 성격이 인간들이 혹하기 좋긴 하지. 안 그래, 인간?“
“… 설명해 준다면서요.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빨리 설명이나 해 줘요.“
나는 곧 남자의 손을 놓았고, 그들과 조금은 먼 거리를 유지한 채 앉아 몸을 웅크렸다. 그들은 그런 나를 보더니 피식 웃음을 보였고, 나는 그런 그들을 더욱 수상하게 생각했다.
“워워, 너무 그렇게 보진 마. 우리 정말 나쁜 짓은 안 하니까.“
“그럼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길래…!”

“우린 너와 아예 다른 존재야. 음… 인간들이 그렇게 믿는 신들 중 하나라고 하면 믿을 수 있으려나-.“
“신…?”
“여긴 너 같은 인간들이 닿으면 안 되는 신의 공간이고.“
붉은색 머리를 한 남자는 자신들을 신이라 지칭했고,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재수 없는 남자가 무서운 눈으로 나를 콕 찍으며 입을 열었다. 그 남자의 태도는 좀 어이없었다. 내가 오고 싶어서 온 것도 아니고, 저 레몬색 머리가 날 데리고 왔다는데 이 남자는 나한테 왜 이리 적대적인지.
“내가 있으면 안 되는 공간이라면서요. 그런데 왜 날 데리고 온 거죠?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주세요, 지금 당장.“
“당장은 안 돼. 인간은 신의 공간에 발을 들이면 24시간이 지나야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
“맞아, 이건 우리도 어쩔 수 없는 규칙 같은 거라.“
“… 거지 같아.“
”뭐?”
“거지 같다고.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이런 곳에 데려다 놓는데 누가 기분이 좋겠어요. 대체 왜? 왜 하필 나였는데요!“
두 눈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히기 시작한다. 눈물의 의미는 나도 잘 모르겠다. 원망? 짜증? 분노? 스스로도 도무지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두 눈이 시뻘개진 채 소리를 질러대는 나를 보는 그들의 눈에는 어떤 감정이 담겨있었을까.
사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보던 상관은 없었다. 내가 악에 받쳐 그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 자체가 괜한 화풀이였기에. 한동안 그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 아까와 같이 박지민이라는 남자가 쭈그려 앉아 나와 눈을 맞췄다.
“다른 인간들이랑 달랐어. 인간들은 조금씩 반짝이는 눈동자를 가지고 살거든? 보통 생기가 돈다고 하지. 근데 넌… 회색빛이야. 아무런 빛을 띄지 않는 거지.“
“그게 뭐가 어때서…”

“인간의 눈동자가 반짝이지 않는다는 건, 사는데 별 감흥도 없고 이유도 모른다는 거잖아. 아니야?“
정확했다. 박지민이라는 남자는 내가 이 곳에 오기 전 나의 마음을 그대로 읽어내기라도 한 듯 내게 손을 뻗어온다. 신의 공간에 들어오기 전, 회색빛으로 가득 찬 내가 떠올라 눈물이 한 방울 툭 떨어졌다.
“내가 널 여기로 데려온 이유는 네가 회색빛 안에 갖혀 살지 않았으면 해서야. 고등학생이면 한창 반짝여야 할 때 아닌가-.“
“미친. 박지민,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다 나오네?“
“그러게 말이다. 생각없이 실실 웃고만 다니던 놈이…“
“저 평소에도 되게 멋있는데.“
”지랄.“
이제는 인정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분명 그들을 두려워했다. 어쩌면 그들이 나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건 진작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신이라는 존재를 경계했던 건 아마도 나의 회색빛을 알아챌까 봐, 혹여나 나의 회색빛에 그들의 색이 섞여버릴까 봐 무서웠던 게 아니었을까.
보통 신이라고 함은 감히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어 형태가 불분명하니 사람들이 두려워 한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 였고. 하지만 눈물을 뚝뚝 흘리는 내 앞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잔뜩 웃고 정색하며 별 다를 거 없이 지내는 그들을 보니 나는 이제서야 마음을 놓는다. 내가 그들을 그렇게까지 경계할 필요는 없겠구나. 잔뜩 곤두세웠던 신경을 억누르고, 몸에 주고 있던 힘을 풀어내니 눈물이 얼굴을 뒤덮는다.
“어, 어… 형들 쟤 더 우는데요…?“

“인간 달래는 법 아는 사람-.“
“있을 리가.”
“… 그만 울어. 숨 넘어가겠다.“
당황하던 남자는 옅은 갈색 머리, 달래는 법을 아냐 물은 남자는 진한 갈색 머리, 한숨을 푹 쉰 남자는 하늘색 머리, 그리고 마지막은 김태형 그 남자였다. 그는 나머지 여섯에게 휘휘 손을 저어 보내고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다음, 본인의 손으로 내 눈밑을 훑어 눈물을 닦아내기 시작한다. 나는 그 남자의 손길에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너 아직도 내가 무섭냐?“
“……”
“아니면 재수 없어서 말 섞기 싫어?”
픽 하고 바람 빠진 웃음 소리가 들려 눈을 뜨니 그와 눈이 마주쳤다. 싸늘하게만 쳐다보던 눈빛은 어디 간 건지 처음 보는 온순한 눈과 말아올라간 입꼬리가 괜히 어색해 어깨를 밀쳤다.
“날 왜 구했어? 능력까지 썼다고 하던데…“
“야, 그럼 신이 인간을 죽게 냅둬? 난 그딴 건 신으로 취급 안 해.“
“… 살려줘서 조금 고맙다. 재수 없다고 한 거랑 최악이라고 한 것도 사과할게.“

“고마우면 그냥 고마운 거지, 조금은 뭐야. 그리고 사과는 됐다. 난 네가 우릴 경계한다는 걸 알면서 그랬거든.“
“나쁘네, 신.”
팔로 무릎을 감싸안은 채 나도 그를 따라 입꼬리를 살짝 말아올렸다. 내가 웃고 그가 웃었을 때, 우리의 눈은 서로를 보고 있었다.
“네 세상으로 돌아가면 아까처럼 쉽게 죽으려고 하지 마. 모든 게 회색빛으로 변해도 너만은 버리지 말라고.“
“… 어, 꼭 그럴게.“
그 한 마디에 온통 회색빛을 띄던 내 세상은 어디서부턴가 반짝이기 시작한다. 속이 울렁거리는 이상한 느낌과 왠지 모르게 눈물이 터질 것 같은 묘함이 내 눈동자를 반짝이게 만들었다.
곧, 내가 스쳐간 이 섬과 나를 스쳐간 그들은 결국 내 손을 꽉 잡아준 것이나 다름 없었음을 나는 원래 세상에 돌아와서야 깨닫는다.
이 글은 WORTH IT COMPANY 크미로 작성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