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타지적 요소가 있습니다.
※ ⚠️ 트리거 경고 ⚠️

"오늘 새로 전학생이 왔다- 자기소개 한 번 해볼까?"
창문 틈새로 눈부신 햇살이 비집고 들어오는 어느 한 고등학교에,
"반가워- 나는, 도여주라고 해."
내가 전학 오게 되었다.
•••
모종의 이유로 전학을 벌써 세 번째 오고 있다. 첫 번째, 두 번째 학교는 전교생 수가 몇 십 명에 불과한 폐교 직전의 학교였어서 지루했지만 이번 학교는 국내에서 알아주는 명성 높은 고등학교였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의 시설, 학생들과 교사들의 수준 등 전 학교들과는 남다른 부분이 분명하게 있었다.
"안녕-"

"반가워. 나는 정호석, 이라고 해."
창문 틈새로 들어오던 햇살보다 더 눈부시던 웃음을 짓고 있던 우리 반의 반장이 별 볼 일 없던 내 인생에 들어오면서 내 인생은 송두리채 바뀌었다.
•••
전학 온 뒤 1주일간 대강 들은 정호석이라는 남자아이의 소문은 꽤나 요란스러웠다. 이 학교에서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하고 있던 약 2년의 세월 동안 이유 모를 일부 여학생들의 대거 전학 사건의 주동자였고, 햇살 웃음 뒤에 살기 어린 눈빛을 숨기고 다닌다는 것과, 그 외에 기괴하고 과장하게 부풀려진 입소문들. 딱히 믿어본 적도, 믿고 싶지도 않았지만 터무니 없는 건 확실했다. 그래도 그 남자아이는 내 하나 뿐인 친구였다. 내가 벌써 3번째 전학이라는 소식에 이상한 애인 거 같다며 피하는 애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나와 같이 다녀주는 친구였다. 이 학교는 그냥 소문을 만들어내는데는 도가 튼 학교인 거 같다.
"다음 시간 뭐야?"
"영어~"
"아, 맞다. 오늘 부교재 검사랬나..."
"엉. 보여줘?"
"아냐. 그것도 한 두 번이지."
"그냥 가져가- 또 점수 깎였다고 찡찡대지 말고."
"...그렇겠지?"
"ㅋㅋㅋ 어~ 빨리 가자. 얼른 옮겨적어야지."
정호석은 키도 크고, 얼굴도 봐줄만 한데다, 성격, 공부, 예체능 등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애였다. 나 같은 애한테 관심 안 가져도 인생 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도 나한테 유독 잘 해줬다. 정말 이상하리만큼.
"...뭐야."
정호석의 부교재를 빌리려고 교실에 들어왔을 땐 내 책상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더럽혀져 있었다. 우유를 몇 팩이나 터트렸는지 터진 우유팩들과 우유를 너무 많이 흘린 나머지 책상에서 우유가 뚝뚝 흐르고 있었고, 그런 책상 위에 체육복을 올려놔서 당장 2시간 뒤에 있는 체육수업에 입어야 할 체육복에서 우유 꼬린내가 풍겼다. 그것도 모자라 내 필기구는 바닥에 몽땅 떨어져 거의 다 망가져있었고 의자에는 빨간색 글씨로 입에 담지도 못 할 험한 욕들이 가득적혀있었다. 소설에 글으로나 있을법한 묘사가 내 눈 한가득 펼쳐졌다.
"누가... 이런..."

"어떤 새끼야."
정호석의 낮게 깔린 목소리에 시끄러웠던 교실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시끌벅적한 점심시간이었지만 정호석의 소문 때문인지 학생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그 자리에 멈춰섰다. 교실 및 복도에는 정적만이 흐르다가 누군가 냉소를 지은 채 교실에 들어온다.
"난데?"
우리 학교의 양아치 무리, 그 무리에서 중심자인 김현나였다.
"...너야?"
정호석의 눈빛과, 주먹을 꽉 쥔 손이 심상치 않아서 말리려고 손을 뻗었지만, 그것보다 정호석의 행동이 빨랐다. 김현나를 밀쳐 벽에 부딪히게 하고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너무 놀란 나는 다급하게 정호석을 불러보지만 정호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학생들은 저들끼리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그 기괴한 소문의 출처가, 정호석의 이런 행동이었다니.
"도여주한테 사과 해."
"내가, 왜, 아...!"
"사과 안 하거나, 한 번만 더 내 눈에 띄었다가는, 그땐 죽어."
"이거... 이거 놔...!!"
"대답해."
"알겠어, 알겠으니까, 이것 좀...!"
그제서야 목을 조르던 손에 힘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정호석. 나는 겁에 질려 정호석에게 다가가지도 못 하고 있었는데 정호석은 또 다시 햇살 같은 웃음을 내게 지어보였다. 내 햇살이던 너가, 이제는 그 미소가 예전 같지 않아보였다. 도대체 왜 나한테만...
"여주야, 미안..."
"아, 어... 괜찮아..."
"이거 너가 더 치우고 가. 체육복도 빌려주고."
"어, 알겠어..."
정호석은 우유 냄새가 진동하는 책상에서 떨어지라는듯 내 손목을 잡고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억누르는 것처럼 내 손목을 꽉 쥐었다, 힘을 풀었다 반복했다. 내가 정호석을 올려다보자 굳었던 표정을 펴고 웃어주는 정호석. 너는... 뭘까.
"정호석, 김현나! 너네 둘 다 교무실로 따라와."
소식을 들으셨는지 화가 나신 학생부장 선생님이 교실을 찾아오셨다. 정호석과 김현나는 학생부장 선생님을 따라 학생부로 갔고 아직 덜 치워진 책상에 나는 앉지도 못 하고 교실 뒤에 얼이 빠진 채 서있었다.
"....."
"참... 정호석 쟤는 전학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어?"
정호석이, 전학 온 지 얼마 안 됐다고?

"나? 나 이 동네에서 한 8년 살았어~ 이 학교도 1학년 때부터 다녔고."
"...그게 무슨 소리야? 정호석이 전학 온 지 얼마 안 됐다니."
"뭐야. 쟨 정호석 절친이면서 왜 모른대?"
"몰라. 또 정호석이 뭔 짓 했나?"
"아냐... 분명..."
"야."

"잠깐 얘기 좀 하자."
•••
그 남자아이와 나는 몇 번 말을 섞어보지도 않은 애였다. 아는 거라곤 유일하게 정호석과 같이 다니는 남자아이라는 점. 이름도 몰랐는데 나란히 조퇴증을 끊으며 이름을 알게 되었다. 김남준... 친구끼리 이름도 특이하네. 얘는 도대체 얘기할 게 뭔데 아픈 척까지 해가면서 조퇴를 하는지. 그나저나 아까 애들이 수군거리던 그 소리는 뭔지. 어리둥절만 한 기분에 가방을 메고 운동장을 거닐며 모래알을 차고 있는데 굳게 닫혀있던 김남준의 입이 열렸다.
"도여주, 맞지?"
"아, 응."
내 이름은 어떻게 안 거야.
"아까... 많이 놀랐지. 정호석 때문에."
"...그치."
".....있잖아."
"응?"

"너 나 기억 안 나?"
***
김남준이 꺼낸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내가 전학을 세 번 다닌 이유가 정호석 때문이었다는 이야기. 내가 첫 번째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자 정호석이 가지고 있는 비범한 능력으로 처음은 실수로 내 기억을 지웠지만 그 다음에는 고의로 기억을 지웠다고 한다. 정호석은 나와 오래 된 친구 사이이자 연인 사이였고 김남준 또한 정호석으로 인연이 이어져 나와 꽤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다 한다. 내가 전학 가는 학교마다 항상 며칠 먼저 전학을 가서 나와 제일 먼저 친구로 지냈다는 정호석. 두 번째 학교에서도 내가 적응을 잘 못 하자 아예 수도권으로 전학을 보내라 한다 했다. 기억을 지우는 행위, 전학을 보내는 행위는 부모님도 모두 동의했다는데 김남준이 곁에서 보기에는 그냥 정호석의 집착 같다고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어 얘기해주는 거라 했다. 아까 애들이 수군거리던 말을 내가 듣기도 했고 말이다. 어쩐지, 왜 전학을 세 번이나 다녔는지 명확한 이유를 몰랐다. 부모님은 그저 나에게 그냥 일 사정 때문이라고 그러면서 전학을 다니게 하셨는데...
"...결론은, 오늘 너가 김현나한테 그런 일을 당했으니까 정호석이 곧 네 기억 또 지우고 또 전학 시킬 거야."
"...정호석이, 어떻게..."
"세 번째 학교는 내가 며칠을 졸라서 나 다니는 학교로 왔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가스라이팅 짓이라는 게 더 확실해지네."
"그러면... 그 소문이..."
"응, 저 지방 고등학교에서부터 올라온 소문들이야."
"...나 이제 어떡하지."
"뭐... 나한테 들었다 해도 나는 상관 없으니까, 정호석이랑 얘기 좀 해봐."
"일단, 알겠어. 고마워..."
"뭘. 잘 갔다오고... 연락해. 내 번호야."
"고마워... 진짜로."
•••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터덜터덜 향하자 언제 왔는지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정호석이 보였다. 정호석을 보고 나도 모르게 힘 없던 발걸음을 멈추자 정호석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으며 웃는 정호석이, 왜 그렇게 무서웠는지. 정말 너가 나한테 한 짓이 이게 맞는지. 수없이도 묻고 싶었던 말들을 꾹꾹 목구멍 뒤로 삼켰다.

"왔네? 나 엄청 기다렸어~"
"...날 왜 기다려?"
"우리 원래 맨날 하교 같이 했는데, 오늘은 못 그랬으니까."
"...있잖아, 호석ㅇ,"
"김남준이랑 둘이 조퇴했다더라?"
"어?"
"그러면 다 들었겠네?"

정호석이 처음으로 나에게 아까 김현나한테나 지었던 표정을 지어보였다. 순식간에 주변 공기가 싸늘해졌다. 이게 너의 본색이구나. 나를 지키려고 했던 너의 욕심이 변질된 결과물이기도 하고. 그 기괴한 소문들도 결국엔 진짜였네. 여학생 대거 전학 사건, 그거 다 나 때문이잖아. 기괴한 소문보다 더 기괴한 게 여기 있었네. 소름 끼친다. 내가 지금 동안, 너를, 너와, 어떻게 대하고, 어떤 시간을 보냈는데, 어떻게 뒤에서 이런 짓을 해. 어떻게. 결국 눈물 한 방울이 내 눈에서 비죽 나와서는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너가 어떻게..."
"기억 나지도 않으면서 이제 와서 억울한 척 하지 마."
"왜, 왜 그랬어...?"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
"그냥 갖고 싶어서 그런 거지."
"넌... 넌 진짜 나빠."
"알아. 나 나쁜 거. 근데 어쩌겠어. 널 가지려면 이 방법 밖에 없는데."
"적어도 날 생각했으면, 이랬으면 안 됐지..."
"방식이 뭐가 중요해. 어차피 넌 이제 나한테서 못 벗어나는데."
말이 통하지 않았다. 정신이 이미 반 쯤 나간 사람 같았다. 나는 지금까지 정호석의 어떤 모습에 홀렸던 걸까.
"그러니까..."

"그냥 내 곁에 영원히 있어줘."
정호석은 쉴 새 없이 흐르는 내 눈물을 손가락으로 한 번 훑더니 손가락에 묻은 내 눈물을 입에 넣고는 달다고 말 하며 다시금 웃어보였다. 그래, 내가 저 웃음에 홀렸었지. 저 웃음으로 세 번이나 날 홀리고 가두면서 매번 기억을 지워갔겠지. 너가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라는 명목 하에 나는 세뇌 당했겠지. 내 머리 위로 올라오는 정호석의 손을 잡아보지만 정호석은 웃으며 사랑한다고 속삭이곤 능력을 쓴다. 이 기억도 언젠가는 지워지겠지만, 다음 생에도 나는 너의 웃음에 홀릴 것이고, 김남준 같이 알려줄 사람도 없는 학교에서 너라는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 하겠지. 천천히 눈을 감자 의식이 흐려지고 눈에는 흰색 바탕으로 가득 차더니 병원에서 환자가 심정지 했을 때나 들리는 기계 소리나 내 귀에 울려퍼졌다. 영혼을 지배 당했으니, 죽은 사람이 맞긴 하지.
***
"안녕-"
"나는 정호석이야."

"우리 친하게 지낼래?"
*
안녕하세요! 울력휘학 백호관 아지라고 합니다 😎
울력휘학 2기이지만 이번이 처음으로 울력휘학에서 과제물 수행을 해봅니다! 제 주제는 "브라우니" 🍫 였고 많이 부족한 글 실력이지만 최선을 다 해서 썼으니 간단하게 해석 해드릴게요 🌟
글 중 호석과 여주는 연인 사이입니다. 비록 여주는 기억 못 하지만 연인 사이입니다. 요즘 연인 사이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가스라이팅. 호석과 여주 관계에서도 보입니다. 이는 브라우니의 특징인 '머랭을 칠 필요도 없고, 베이킹 파우더를 넣을 필요도 없으며, 초콜릿을 녹여먹는 번거로움만 빼면 케이크 중 제일 만들기 쉽다.'를 이용하여 가스라이팅이 그만큼 쉽게 녹아드는 걸 표현하고 싶었고 대사 중 호석이 여주의 눈물을 먹고 "달다"라고 표현한 것 또한 브라우니의 위 특징을 이용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여주의 눈물을 먹는 장면이 호석의 집착이 극에 달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사소한 디테일로 브라우니의 탄생 배경 중 하나인 '초콜릿 케이크를 만들려다가 실수로 만든 것.'을 이용하여 호석이 처음 여주의 기억을 지운 건 그저 실수였을지 몰라도 그 이후에는 고의로 지우는 내용을 써봤습니다.
한 마디로 호석은 여주라는 존재가 '브라우니'였다고 생각해주세요 🫠
열심히 썼는데 마음에 안 드는 거 같아 아쉽지만 다음 과제물에는 더 열심히 참여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