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저격

색채의 미학


벚꽃이 피었다. 나무들이 온통 벚꽃으로 물들어 세상이 아름답게 변해가는데도 우리는 제자리였다. 세상이란 게, 사회라는 게 참 우리를 신경 쓰는 것처럼 보이고는 하지만 종국에는 무관심으로 변한다. 고민 또한 그렇다. 처음에는 죽을 것 같이 힘들어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 일 없던 듯이 다시 살아가게 된다는 것. 적어도 조금은 더 힘들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빨리 끝나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하여간 인간들은 무지식하고 단순해서 어떤 문제에 대해 길게 생각할 줄 모른다. 그걸 장점으로 삼는다면 장점이고, 단점으로 삼는다면 단점이겠지만 이런 순간에서는 대부분 단점이었다.



"이 성적으로 그 학교는 좀 어려울 것 같은데···."



너의 꿈이 한순간에 짓밟히는 이런 순간 말이다.




***




"그래서 담임이 뭐래?"

"못 간대, 그 학교."



꿈이라는 건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되려 웃음이 없는 삶일지라도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겠지, 하고 생각했던 내 유년과는 달리 참혹한 사회에 홀로 비판을 해보기도 했다. 꿈이 매일 바뀌던 앳된 시절을 지나, 하나의 목표를 잡고 걸어가는 나에게 담임 따위의 조언이란 하나도 도움이 되는 말이 아니었다. 나도 그 학교 못 가는 거 알거든요. 근데 어떡해. 가고 싶은데. 친구가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예체능을 주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가지는 오해가 '예체능이라 공부를 안 해도 된다'라는 것인데 이는 완전히 잘못된 사실이다. 구기종목도 수학이고, 미술도 과학인데 공부를 어떻게 안 하겠냐고. 결국 예체능 준비생들은 예체능 능력을 포함해 지식까지 겸비하는 초사이언이 되어야 했다.



"솔직히 실습으로는 자신 있는데, 아니지 없나. 사실 잘 모르겠어."

"변했나 보다, 우리."

"뭐가?"

"모든 게 말이야. 그네도 너무 작아졌고, 아이스크림도 한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어."



살랑이던 그네가 서서히 멈췄다. 그게 무슨 말인데? 친구가 멍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그때의 네 눈은 적어도 색채가 남아있었는데 지금은 뭐랄까, 너무 탁해. 다양성이란 존재하지 않는 흑백 사회에 물들은 것처럼. 내려앉은 눈가가 빠르게 주저앉기 시작했다. 친구는 눈을 감은 채로 그네 위에서 다시 발을 굴렸다. 아무렴 어때, 적어도 나 혼자 알록달록해서 눈에 띄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 감정 없이 말하는 녀석이 두려워졌다. 미련은 많은데 그 많은 미련들에 대처할 힘조차 없어 보였다.



"이상한 생각하는 거 아니지?"

"내가 뭘."

"난 너 없으면 안 돼."

"나도 너 없으면 안 되거든?"



느릿하게 뜬 눈과 시선을 맞췄다. 손에 든 알 수 없는 색의 아이스크림이 녹아들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조차 색을 잃어갔다. 네 눈에 삶에 대한 열정이 하나도 없는데, 내가 여기서 무슨 답변을 해야 너에게 색을 칠할 수 있을까. 백지 같던 우리가 알 수 없는 색들로 물들어졌었다. 자의는 없었다. 전부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도화지에 한 획 씩 긋고 간 것인데 어느새 내 그림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적어도 난 네가 나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넌 예술을 하고, 난 학문을 하니까. 하지만 애초에 거기서부터 잘못된 생각이었다. 네 주변 사람들과 똑같이 생각해버렸으니. 넌 그렇게 혼자 다른 색을 칠하기 시작했다. 이미 망가진 그림 위에 홀로 밑그림을 그리고, 덧칠하고, 다시 써 내려가고. 설령 네가 노력했다고 해도 망가진 그림은 이미 망가진 그림이었다. 넌 더 이상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망 갈래?"

"갑자기? 나 오늘 실습 있는데."

"야, 누가 도망을 실습 같은 거 신경 쓰면서 해. 갈 거면 한 번에 가줘야지."




처음에는 무의식적으로 던진 말이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얼마나 간절했으면 무의식적으로도 도망가자는 말이 나올까 싶었다. 그래서 난 그네를 박차고 일어났다. 나 30분 뒤에 학원 있는데, 진짜 도망가도 될까. 내적으로 심히 고민했지만 어차피 답은 하나였다. 이런 나를 의문스럽게 쳐다보는 친구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무색해. 그러니까 우리, 색을 좀 입히러 가보는 건 어때. 예쁘던 그 빛깔로, 찬란하던 그 순간으로.



"갈래?"

"···"

"가자."

"··· 그래."





***




무작정 근처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가 가까운 기차역에서 내렸다. 기차역 앞에도 벚꽃이 가득했다. 벚꽃은 금세 활짝 피어 화려하게 물드나 싶다가 봄비가 내리면 잎만 푸르게 남는다. 잠깐 숨 돌리는 사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 느끼는 덧없음이랄까. 이렇듯 짧고 화려하기에 더욱더 잊히지 않는 추억으로 남는 것이겠지. 그래서 저 사람들이 저렇게나 밝은 웃음으로 사진을 찍어대는 것이고. 친구는 내가 기차 표를 끊을 때에도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지 계속해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계를 확인했다. 애석했다.



"폰 꺼."

"끄라고?"

"켜두면 계속 불안해할 거잖아. 곧 있으면 전화도 올걸. 그러니까 꺼. 아니면 문자 하나 남기던가."




잠깐 망설이는 듯하더니 결심한 듯 짧은 문자를 보내고 현실과의 전원을 끈 친구는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다만 아까보다는 더 후련한 표정이었다. 미리 계획해둔 도망은 아니지만 이왕 온 김에 그동안 보지 못했던 벚꽃을 보러 가기로 했다. 벚꽃도 보이고 바다도 보이는 어느 정거장에서 내리자고, 이번 도망은 그렇게 계획했다. 기차 시간이 남아 기차역 카페에 들러 음료수를 샀다. 뭐 마시지. 카페에서 사 먹어 본 음료가 잠을 깨기 위한 방도로 마시던 커피뿐이라 대체 뭘 먹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너 무슨 과일 좋아하더라."


"나? 나 딸기. 그래서 딸기 스무디 마시려고."

"좋네."

"너는 뭐 먹을 건데."

"난 너랑 똑같은 거. 네 선택은 매번 옳더라고."



내 선택이 매번 옳다니. 불신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친구는 헛웃더니 말을 꺼냈다. 내가 미쳤다고 학원 다 째고 온 이유가 뭐겠어. 네 선택이니까, 넌 매번 옳았으니까. 매일 초콜릿만 먹던 나에게 그토록 싫어하던 사탕을 건네던 네가 난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거든. 친구는 바스락거리더니 교복 주머니에서 사탕 껍질을 꺼냈다. 오늘만 벌써 2개 먹었다, 나 진짜 이 썩겠는데? 밝게 웃어대면서 주문을 마친 친구는 일그러진 일정에 대한 미련 따위 보이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걱정이 사그라들었다. 다행이다, 좋아해서.




"여기가 벚꽃 제일 예쁘게 핀 것 같지 않아?"

"그럼 여기서 내릴까?"




처음 보는 지명이었다. 처음 와보는 장소인데다가 가만히 서있으면 내 존재가 먼지처럼 사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인산인해였다. 사람 되게 많다, 그치. 나와 너만 오는 곳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 알록달록한 어른들 사이에 교복 몇몇 개가 옥에 티처럼 껴있었다. 우리처럼 사회에 지쳐 사회로 도망 온 사람일까. 사람이 다 빠질 때까지 기다리다 마지막으로 기차역을 빠져나왔다. 택시들이 줄을 지어 서있는 것을 보며 지갑을 살폈다. 합쳐서 40,000원. 갈 때 탈 기차표 금액 빼면 별로 없네, 택시도 못 타겠다. 그렇지만 매일 타는 버스를 타기에는 도망 온 기분이 안 날 것 같아 그냥 기차역 주변을 걷기로 했다. 벚꽃이 비가 내리듯이 흩날렸다.




"사람들이 왜 벚꽃을 보러 이곳저곳 돌아다니는지 알 것 같아. 진짜··· 진짜 너무 예뻐."

"몇 살 이후로 처음이지?"

"기억도 안 나. 내가 최근에 본 벚꽃은 며칠 전에 내가 학교 수업 시간에 교과서에 그린 벚꽃밖에 없는데."

"확실히 실물이 예쁘지?"

"확실히 그렇네."




벚꽃 꽃말 중간고사라던데. 농담처럼 뱉는 어투에 후회가 가득했다. 조금 더 열심히 할 걸 그랬나. 짧은 한숨을 내쉰 친구가 고개를 돌려 바다를 바라봤다. 근데 있잖아, 바다는 원래 무슨 색일까. 어릴 때는 분명 그저 푸른색 하나로 칠했던 것 같은데 왜 요즘은 이런 단순한 바다 하나에 여러 색을 부여하는지 잘 모르겠어.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그냥 이런 거에선 좀 단순해도 괜찮잖아. 친구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선선히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나조차도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내 기억 속의 바다는 분명 내 손안에 가려지는 작은 바다였는데, 글쎄 지금은 너무 커서 다가갈 용기도 안 나. 바다가 내 기억을 조작한 걸까, 내가 바다를 우습게 보던 걸까. 나의 바다는 그렇게 변해버렸다.




"가까이 가볼래?"

"옷 젖으면 갈 때 불편해. 그냥 여기서 보자."



사실 나도 바다가 무슨 색인지 나도 잘 모르겠어. 우리도 변해버렸나 봐. 그렇게 한참 벚꽃과 바다를 번갈아 보던 중에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에 음료수까지 먹었는데 왜 배가 고프지, 싶어 핸드폰을 들었더니 이미 전원을 끈 상태라 시간을 볼 수가 없었다. 다만 핸드폰을 켜고 싶지는 않았다. 쌓여있을 알람과 내일 감당해야 할 일들은 실감하는 것이 두려워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벚꽃을 다 본다는 기분으로 몇 시간 동안 기차역 주변을 돌다 보니 어느새 하늘이 어두워졌다. 우리의 도망이 점점 끝나가고 있었다.



"밥 먹어야 하나. 돈 부족할 것 같은데. 집 가는 표도 사야 하잖아."

"그냥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사 먹지 뭐."



결국은 또 편의점이었다. 우리는 도망을 와서도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는구나. 괜스레 초라해지는 마음에 가장 비싼 삼각김밥을 골랐다. 이렇게 해서라도 우리를 위로해야 했다. 같지 않다고. 어제와 오늘은 분명히 틀리다고. 똑같은 하루를 살아가더라도 오늘만큼은 달랐다고. 바닷가 앞 벤치에 앉아 삼각김밥을 까먹었다. 이제는 하늘이 검게 변해 가로등이 없었으면 옆에 앉은 우리도 서로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넌 무슨 색이 제일 좋아?"

"나? 난 검은색. 제일 단조롭고 편안하잖아. 너는?"

"난 색의 이름은 없는데 새벽 밤 하늘색이 그렇게 좋더라. 푸르스름한데 어딘가 붉은 그런 하늘. 뭔지 알지?"



우리 오늘 그 하늘 보면서 기차 타겠지? 야밤에 설레어 발을 동동 구르던 친구는 그렇게 잠시 들떠있다 또 금세 사그라들었다. 밤이 되니 내일이 더 걱정스러웠다. 어떻게 수습하지. 금요일도 아니고 주말도 아니고 무려 목요일이었다. 도망쳐도 처리해야 할 문제가 많은, 도망에 최적화되지 못한 요일. 내일 학교도 가야 하는데 무턱대고 도망을 왔네. 우리 진짜 대책 없다, 그치. 헛웃음이 순식간에 울상으로 변했다. 이번에는 네가 옳지 않은 것 같아.



"너는 그래도 가끔 도망치긴 했지만··· 나는, 나는 이런 일 따위에 휘말려 본 적 없는데,"

"그래도 너 오늘 행복하지 않았어?"

"행복은 했지만 지금은 안 행복해. 돌아갈 자신이 없어."

"도망을 쳤으면돌아올 때도 있는 거지. 어떻게 도망만 쳐, 안 그래?"



나 오늘 여기 돌아다니면서 되게 익숙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우리 여기 와본 적 있더라. 우리 여기 7살 때같이 여행 왔었잖아. 가족들 다 같이. 친구는 그제서야 기억난다는 듯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도 기차 타고 왔었는데, 우리 이 바닷가에서 모래성도 만들었잖아. 가끔 옛날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느끼는 건데, 과거를 떠올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황홀한 표정이었다. 다시는 오지 못할 그날을 기리는 듯하지만 그러한 과거의 모습마저도 사랑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의 버릇. 그리고 그 황홀함 속에는 늘 처절함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일까, 과거는 우리의 심리를 잔뜩 뒤엉키게 만들어 놓고는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그리고 그 진실을 받아들이고, 내뱉을 수 있는 힘까지도.



"사실 조금 힘들었어. 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살아왔는데 모두가 내 미래를 앞다투어 막더라고."

"···"

"정말 살다 보면 유난히 내 인생이 망했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고 다들 그러잖아. 난 그 순간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진짜··· 정말 사는 게 너무 어려워."



웃고 있었다, 입만큼은. 너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으니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걱정한다고 위로될 마음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네가 어떤 마음으로 지금까지 버텨왔는지도 잘 알고 있다. 우리의 도망은 끝을 맺고 있고, 내일이 되면 오늘을 후회할지도 모르지. 때때로 불행은 행복을 아주 쉽게 삼켜버린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살아남은 자그마한 희망과 오늘의 현재이자 내일의 과거인 지금 이 순간이 때때로 불행을 지나가게 만들고야 만다.



"물론 지금은 안개가 잔뜩 낀 어두운 하늘처럼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아서 무서울 수도 있지."

"···"

"그래도 하늘은 원래 파랗잖아. 구름이 끼면 하늘이 회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국 하늘은 파랗거든."

"···"

"너의 하늘에 누군가 구름을 얹어도, 혹은 네가 구름을 만들어내도 흘러갈 대로 흘러갈 거야."

"응."

"너무 두서없었나···. 아무튼 너 너무 잘 하고 있으니까 걱정 말라고. 누가 뭐라든 구름처럼 흘러가게 내버려 둬. 넌 푸른색이니까."



바다를 보던 네 눈은 내가 문장을 이어갈 때마다 점점 나에게로 시선이 휘었다. 그 눈빛은 아까 도망가자고 말하던 그때의 눈빛과 확연히 달랐다. 별이 잔뜩 들어있는 밤 하늘 같았다. 반짝거리는 시선 때문인지 괜히 부끄러워서 흐지부지 말을 끝냈지만 내 말로 인해 친구는 꽤나 큰 힘을 얻은 듯 했다. 다 먹고 남은 삼각김밥 봉지를 꼭 쥔 채로 잠시 동안 파도 소리만 들리던 적막 사이에서 친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역시 넌 옳아."

"뭐?"

"매번 넌 옳다고. 뭘 해야 할지 이제 알겠어."

"뭔 소리야."



내가 대체 무슨 옳은 행동을 했다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널 바라보자 별거 아니라며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버리는 너였다. 뭔 소리냐니까! 저 멀리로 걸어가는 친구의 뒤통수에 윽박을 질러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혹시라도 네가 사라지기라도 할까 열심히 쫓아갔더니, 먼저 걸어가서 하는 게 겨우 일반 쓰레기에 삼각김밥 봉지를 버리는 일이었다. 기차역에 놓인 시계의 시침이 3을 향해 가고 있었다. 삼각 김밥을 살 당시에 미리 끊어둔 기차 표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얼마 안 남았네. 처음 도망을 시작할 때와 같은 자세로 앉아 기차를 기다렸다. 다만 아까와 지금의 표정은 확연히 달랐다.




"좋았어?"

"당연하지. 가끔 이렇게 혼자서라도 도망 와볼까 봐."

"같이 오면 되지, 뭘 혼자 와."




기차를 타고 나서는 쓰러지듯이 잠만 잤다. 종착역이 우리가 내릴 곳이었기에 부담 없이 편하게 잠을 잤고, 우리가 기차에서 내렸을 즘은 아침 6시였다. 완벽해, 이대로 학교 가면 되겠다. 어제 너무 돌아다녔는지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한 친구가 비틀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야, 조심해. 겨우 팔을 잡아 팔짱을 끼면 그제서야 제대로 걷는 너였다. 기차역을 나와 우뚝 멈추니 다시 현재였다. 이래서 도망가기 싫다니까. 도망가면 이곳으로 돌아오기 싫어져. 눈을 뜨면 보이는 장소가 이곳임에 실망스럽기도 하고.



"또 여기네."

"그러게, 또 여기야."



허무한 기분에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중에 핸드폰에서 알림이 마구 쏟아져오기 시작했다. 전원을 킨지 1분도 안 된 것 같은데 문자들과 부재중 전화 알림으로 가득했다. 저절로 한숨이 나오는 와중에도 왠지 모르게 짜릿함이 느껴져 지금까지 온 모든 알림을 보지도 않은 채로 한꺼번에 삭제했다. 어차피 오늘 다 마주칠 텐데, 뭘. 바닷바람은 아니지만 봄의 결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바람이 우리를 에워쌌다. 기차역 앞 벚꽃조차도 여전히 흩날리고 있었다. 어제와 아무 다를 바가 없는 이곳에 완전히 달라진 우리가 멀대같이 서있었다.



사회에 일정함과 지루함에 목말라 충동적으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적어도 우리는 더 이상 무채색이 아니었다. 밤 하늘의 어두운 획과 반짝이는 별들, 벚꽃의 투명한 분홍, 바다의 다양한 푸르스름, 그리고 하늘의 색. 더 이상 구름 하나하나에 신경 쓰지 않는 강인한 하늘이었다. 내가 본 너의 하늘은 적어도 그랬다. 아름다웠다.


















위로 되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너무 얼렁뚱땅이네요...
다들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라며!
그 누구보다 반짝거리는 하늘이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