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로 살아남는 법

# 13

- 작가가 조금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썼습니다.

- 대체 무슨 글인지 작가도 모릅니다.

- 왜 썼는지 작가도 모릅니다.

- 클리셰 덩어리입니다.

- 가볍게 읽어주세요... 어차피 개연성 개나 준 엉망진창인 글입니다...

- 여주의 원래 이름이 나오는 부분은 일부러 비워뒀습니다. 독자님들 이름 넣어서 읽으시면 될듯...

-TRIGGER WARNING! 2010년대 초에 유행하던 인터넷 소설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폭력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TRIGGER WARNING! 유혈주의





엑스트라로 살아남는 법

:어느 날 소설 속 엑스트라가 되어버렸습니다.

W. 그쁨





입을 떡하니 벌리곤 내 앞에서 씩씩거리는 권연희를 오목조목 뜯어보았다. 실례인 줄은 알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알던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 그랬다. 길게 늘어뜨린 검은 긴 생머리나, 눈썹보다 약간 아래 길이로 단정히 잘린 앞머리나, 단정한 일자 눈썹, 그와 다르게 고양이처럼 삐죽 올라가 새침한 모양새를 한 눈꼬리, 오똑한 코, 그리고 코랄빛이 도는 뺨이나 예쁘게 붉은빛이 도는 입술까지도,

"…암만 봐도 아닌데?"

"이익…!"

외형만 봐서는 전혀 모르겠다. 저를 못 알아본다는 사실이 여간 억울한 게 아닌지 이제는 발까지 쾅쾅 굴러가며 악을 쓴다. 나 맞거든!! 억울하기 짝이 없다는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어이가 없는 것이었다. 저기야, 지금 황당한 걸로 따지면 내가 더하거든? 나는 다시 한번 권연희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뜯어보았지만, 아까와 별다를 게 없는 결론만이 남았다. …진짜 아닌데, 내가 알던 권연희…. 조그맣게 중얼거리는 말인데도 귀가 어찌나 밝은지 분하기 짝이 없단 표정으로 다시금 발을 쾅쾅 구른다. 내가 저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데서 열을 내는 것이었다. 그래도, 암만 그래도,

'원래 얼굴이 하나도 없는데…?'

그러니까, 친하게 지냈던 친구이니만큼 'XX고등학교 1학년 4반 권연희'에 대해서는 나도 기억하는 바가 있었다. 무려 1년을 같은 반이었는데, 게다가 고등학교 들어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이기도 한데 기억하지 못할 리가 만무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내 눈앞에 있는 저 '권연희'가 'XX고등학교 1학년 4반 권연희'와 동일 인물일 것임을 예상은커녕 의심조차 하지 않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말이었다. 일단은, 이름부터가 그리 흔하지 않은 이름은 아닌 데다, 24세 인생 동안 '연희'란 이름을 꽤 많이 들어왔던 차에 그저 동명이인이겠거니 하고 넘어갔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 이유라 함은 바로 내가 앞서 설명했던 저 외관에 있다.

여기서 잠시, 'XX고등학교 1학년 4반 권연희'에 대한 외형을 설명해 보자면 이러하다. 곱슬기가 돌아 정리되지 않은 머리를 항상 틀어올렸고, 순한 인상에 어울리는 아치형 눈썹을 가지고 있었으며, 눈, 코, 입이 모두 동글동글하니 순하기 그지없게 생긴데도 볼살이 오동통하게 오른 아이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 그야말로 내 눈앞에 있는 권연희의 정 반대가 바로 'XX고등학교 1학년 4반 권연희'였다. 분명히 다람쥐를 닮은 얼굴이었다. 귀여운 걸 좋아하는 탓에 그 얼굴에서부터 호감을 가졌으니 똑똑하게 기억하는 바였다.

나는 다시금 권연희의 얼굴을 마주했다. …다람쥐를 한입에 삼킨 고양이면 모를까, 절대 내가 알던 권연희의 얼굴이 아니었다. 백 번을 뜯어봐도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절대 믿기지 않을 것 같아 나는 입을 열었다.

"…그래, 네가 그 권연희라 치고…,"

"그렇다 치는 게 아니고 진짜라니까?!"

"아니, 못 알아보겠는데 어떡해 그럼…!"

나는 좀 억울했다. 이 정도면 닮은 사람도 아니고 그냥 아예 다른 사람인데…! 아무튼, 나는 내 앞에 있는 권연희가 내 옛 친구인 권연희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90% 정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무리 봐도 저 열이 올라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아서 그랬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의문들이 완벽하게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되려 몇 가지 의문점들이 더 생겼으면 모를까. 그렇잖아, 오랜만에 본 동창과 반가운 재회를 하지는 못할망정 냅다 죽이려 드는데, 그것도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는 고등학교 1학년, 같은 반 친구에다 꽤 친하게 지냈던 상대라 더욱 그랬다. 암만 머리를 굴려봤자 당최 권연희가 날 죽이고 싶어 할 정도의 원한을 가지게 된 이유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단 말이다. 아무튼 그렇다 치고…,

"…궁금한 게 있어서 얘기 좀 하자고 불러내긴 했는데, 네가 그 연희란 말을 들으니까 더 궁금해지네,"

"……."

"왜 그랬어? 뭐…, 따로 원하는 거라도 있어서 이래?"

수학여행을 시작으로 권연희는 끊임없이 자잘한 괴롭힘을 지속했다. 짜증이 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어쨌든 무슨 이유가 있겠거니 싶어 참아왔던 것뿐이었다. 아니면 이 또한 소설의 전개라던가. 당연히 그럴듯한 이유가 있으리라 기대하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권연희가 내가 알던 권연희라면, 게다가 내가 알던 권연희와는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인다면 그 이유를 들어보고 싶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었다. 나는 잠자코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꽤 참을성 있게 말이다.

"…네가 너무 얄미워서 그랬다, 왜!!"

참을성의 대가가 이딴 대답인 건 내 예상 밖이긴 했다. 권연희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씩씩거리며 날 죽어라 쏘아보는 탓에 나는 좀처럼 얼빠진 낯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뭐? 하는 얼빠진 대답을 내놓은 것도 그래서였다. 내가 뭐 했다고? 하는 억울한 마음도 없잖아 들었더랬다.

한참을 씨근덕거리던 권연희가 입을 열었다. 아까의 나처럼 와다다다-, 정리되지 않은 말들을 쏟아냈다. 길고 긴 이야기의 시작이었고, 그 시작점은 현실에서의 내가 17살이 된 해의 봄날이었다.





📘 📗 📕





열일곱이 되던 해의 3월 2일은 조금 특별했다. 3년간 지겹게 입었던 교복 대신 새 교복을 입은 것부터가 그랬다. 물론, 앞으로 펼쳐질 지옥 같은 3년과 야간자율학습을 생각하면 퍽 기꺼운 일은 아니지 않을까 싶었지만, 새 학교가 주는 설렘은 그딴 잔걱정은 다 잊히게 할 정도로 강렬한 것이었다. 그런 학교에서의 첫 친구가 권연희였다. 권연희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꽤 멀리 떨어진 중학교에서부터 온 탓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는 죄다 떨어진 채였기에, 서로의 처지에 공감할 수 있었던 탓에 친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둘 다 김여주나 이유진처럼 미친 친화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친해지는 방법에는 친화력 말고도 많은 방법이 있었으니 별다른 문제는 아니었겠다. 아무튼 그래, 고등학교 1학년, 권연희와 -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딱 반년 동안만.

내가 생각하기로는, 내가 그리 좋은 친구 축에는 속하지 못할지언정, 그렇다고 나쁜 축에 끼는 것도 아닐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다. 그냥 적당한 친구. 뜨뜻미지근할지언정 꽤 오래 친구로서 남아있을 수 있는 적당한 친구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었기에, 여름방학이 끝나고 난 뒤, 새로이 시작된 2학기부터 권연희가 나를 피해 다니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더랬다. 인사를 해도 어색한 대답만, 점심시간엔 당연하다는 듯 다른 친구와 함께 급식실로 가는 모습을 보며 그때의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할 수가 없었다. 꽤 옛날 일이기도 하고? 아무튼, 내가 권연희와 가장 친하게 지냈다는 게 다른 친구들과의 우정 전선을 죄다 말아먹었다는 뜻은 아니었기에 나는 금세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다닐 수 있었다. 내가 다른 친구와 어울리기 시작한 뒤로, 퍽 편안해 보이는 권연희를 보며 그냥 막연히 '아, 나랑 잘 안 맞는 성격이었나? 여태 참고 같이 다녔을 수도…', 하는 생각만 어렴풋이 했을 뿐이었다. 그래,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랬다.

그런데 여기에 권연희의 이야기가 들어가게 되면, 내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예컨대 이런 것이었다. 내가 넘겨짚었던 나와 권연희가 멀어진 이유에 대해 권연희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날 친구로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보란 듯이 다른 친구와 더 친하게 지내지 않았느냐'. 이뿐만 아니라, 내가 다른 친구와 더 친하게 지내기 시작하며 저가 소외감을 느꼈단 이야기까지. 듣다 보면 …내가 그랬나? 싶다가도, 권연희가 내뱉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딘가 맞지 않는 퍼즐 조각을 억지로 욱여넣은 것마냥 이야기가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닌 것이었다. 어느새 내가 저보다 다른 친구들과 더 친하게 지내며 저를 왕따시킨 주범이 되어있는 것만 해도 그랬다. 맹세코 난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곱씹고, 또 곱씹고, 또… 곱씹어 보면, '…어?'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계속해서 반복되는 문장이 하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다른 친구들이랑 더 친한 게 서운했다…?"

"…아니! 전혀 다르잖아!"

"내가 너 말고 다른 애들이랑 더 친하게 지냈다는 얘기만 지금 몇 번짼데…, 그래서 내가 너 갖고 노는 것처럼 느꼈다며?"

"……."

확실히 스물네 살이나 먹은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올 법한 발상은 아니었다. 너무 유치한 발상이니까…. 권연희도 어렴풋이 그걸 느낀 것인지, 귓가를 발갛게 물들이고는 제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다 '어쨌든!!' 하며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이야기가 끝난 것 같은 눈치는 아닌지라, 나는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권연희에게 계속하라는 듯 손짓했다. 그 손짓에 또 한 번 울컥한 듯싶었지만, 어쨌든 권연희는 시뻘게진 얼굴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는데, 그 뒤의 내용이 더 가관이었다.

"나는…, 나는 그런 네가 너무 얄미워서,"

"엉,"

"…그래서 소설을 하나 썼어,"

"…어?"

암만 눈치가 약에 쓸래도 없는 사람일지언정, 지금 권연희가 말하는 '소설'과 현 상황에 대한 상관관계를 어렴풋이나마 눈치채지 못할 사람은 없다고 믿는다. 나는 상당히 얼빠진 얼굴로 권연희를 멀거니 쳐다봤다. 설마…,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자니, 권연희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친하게 지내던 어떤 언니에게 권연희는 네 명의 남고생들 이야기를 들었다. XX고등학교 전설의 졸업생들(이 대목에서 나는 뒷목을 잡았다)…. 넷 다 잘나서 진짜로 F4란 별명이 붙었던(B4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별명이었다는 게 내 망상이 아니었다.) 네 명의 남고생들. 아는 언니 덕에 그 네 남고생들의 사진까지 보게 된 권연희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조잡하기 짝이 없는 소설 속 주인공은 예쁘고 착해서 네 명의 남자 주인공에게 사랑받고, 이따금 질투 어린 사람들의 행동에 상처받을지언정 또 네 명의 남주인공들에게 번갈아가며 힐링 받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아니, 겪어본 이야기를 말이다.

'…실화야?'

이 소설이 김석진을 비롯한 네 명의 남주인공에 대한 팬픽인 건 알고 있었다(이미 미친 듯이 웃어젖혀 김석진에게 째림을 받은 전적도 있다.). 그런데, 그 팬픽을 쓴 장본인이 내 친구였다. 근데, 그 친구는 날 미친 듯이 싫어한다. 이참에 죽여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이나 말이다. …이게 말이 되나? 싶은 표정으로 난 권연희를 쳐다봤지만, 그는 꿋꿋하게 이야기를 계속할 뿐이었다. 주인공에게 자신을 대입시킨 채 망상에 빠졌었던 지난날들을. 현실에서의 네 남고생이 원체 유명 인사였던 탓에 권연희의 소설도 유행을 탔더랬다, 그게 본인들 손에까지 들어간 사실은 권연희도 모르는 듯싶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현실이란 게 그리 녹록지 않은 탓에 그 망상마저도 언젠가 끝을 맺었고, 그 소설이 권연희, 저 자신의 기억 속에서도 희미해졌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면, 애초에 권연희와 내가 여기서 이렇게 마주 보고 있었을 일도 없었을 테니, 나는 잠자코 그 뒷말을 기다렸다.

어느 평범한 날에 권연희는 다시 그 노트를 펼쳤다. 발견한 건 아주 우연이었다. 추억 팔이라면 추억 팔이었다. 오랜만에 소설을 꺼내들곤 깔깔대며 저 혼자 소설을 읽던 그날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눈을 뜬 곳이 소설 속임을 그는 빠르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야, 자기가 이 소설의 작가니까…! 혹시 자신이 주인공이 된 걸까? 한낱 꿈이라 생각했던 권연희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등굣길에 올랐더랬다. 그리고 그 앞에 김여주가 나타났다. 소설의 진짜 주인공이었다.

권연희는 소설을 뜯어고쳤다. 한번 주인공이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단 욕심에서부터였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권연희의 머릿속을 탁, 치고 지나갔다. 이미 완결 가까이에 있던 소설임에도 작가가 직접 손을 대기 시작하니 한번 완성에 가까웠던 세계마저도 손쉽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권연희는 네 남자 주인공의 사랑을 듬뿍 받는 주인공인 김여주의 옆에 '권연희'라는 조연을 세웠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점점 소설을 뒤바꾸기 시작했다. 여주인공의 친구였던 '권연희'에서, 끝내 주인공의 자리까지 차지하게 된 '권연희'로.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다. 권연희의 눈앞에 익숙한 사람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래, 그게 나다. 젠장.

권연희는 또 소설을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만들어놓은 '권연희'의 자리에 '김연주'를 채워 넣었다(어쩐지 김여주가 미친 듯이 친한 척을 하기 시작하더라니만…). '권연희'의 역할은 또다시 생겨났다. 이번에는 '김연주'의 자리를 빼앗자. 그런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더랬다. 씨근덕거리며 날 원망스레 쳐다보고 있는 권연희만 보더라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네가 다 망쳤어!'

"네가 가졌던 걸 나도 가지고 싶었을 뿐이야."

"……."

"그래봤자 소설 속일 뿐이지만, 아니, 소설 속에서라도 너보다 잘나보고 싶었어. 근데-,"

"……."

"근데 넌 왜 소설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어디에서나! 왜! 나보다 훨씬 더 반짝반짝 빛이 나서는!"

"허어…."

권연희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너만 아니었으면, 내가 다 가질 수 있었어!"

'너만, 너만 없으면 내가 전부 가질 수 있어!'

언젠가 산에서 들었던 권연희의 목소리가 겹쳐들리는 것 같았다. 어쩐지 막연한 기분이 들어 나는 고개를 뒤로 젖히곤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체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뭐?"

"이야기 잘 들었다,"

중간부터 다리에 힘이 빠져 쪼그려앉았던 몸을 일으켰다. 구깃 하게 주름이 진 교복 치마를 툭툭 털어낸 나는 여태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고 있는 권연희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넌 이 모든 게 내 탓이라 말하고 싶은 거지?"

권연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간을 한껏 구긴 채 날 죽어라 노려보고 있는 그 얼굴만 봐도 대답은 들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네 탓이잖아, 하는 그 얼굴.

"근데 이건 내 탓 아냐, 정확히 말하면 네 탓 아닐까?"

"…뭐, 뭐-,"

"네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것 같아. 그게 좋은 감정은 아니라는 것도. 근데 그거-,"

어차피 다 열등감 아니야?

더는 붉어질 것도 없겠다 싶었던 권연희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내가 듣기에는 그랬다. 당최 이해가 가질 않는 권연희의 말들은 어째서인지 다 나를 탓하고 있었음은 진즉 깨달았다. 그게 열등감이라는 감정임을 알아채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권연희가 제 입으로 '소설 속에서라도 너보다 잘나보고 싶었다'라는 말을 했기에 더 그랬다.

"네가 소설을 쓴 이유가 뭐든, 날 괴롭히는 이유든 이제 뭐 딱히 상관도 없고…. 그렇게 내 탓으로 돌리고 싶으면 그렇게 해, 난 이제 너한테-, 끄악-!"

"뭐? 뭐?! 너 말 다했어어?!"

"아악!! 야, 너, 미쳤…!!"

…그렇다고 해서 정곡을 찔린 권연희의 행동이 냅다 내 머리채를 잡아뜯는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지만 말이다. 길고 고운 손가락에 내 머리카락이 휘감겼다. 두피가 말 그대로 뜯겨나가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질세라 결 좋은 권연희의 머리카락을 잡아챘다. 놓으라고!! 하는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여전히 씨근덕대며 권연희는 내 머리카락을 쥐고 잡아뜯으며 말했다.

"네가 뭘 알아! 네가-!! 너는 다 가졌잖아, 다!! 근데 네걸 조금 뺏는 게 왜 나빠?! 여긴 현실도 아닌데!! 그게 뭐가 나빠!!"

"악! 미친년이…! 애초에 내가 뭘 다 가졌는데! 가지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냥 살았는데!"

"다 가졌잖아! 김석진도, 박지민도, 전정국도! 심지어 김태형도! 김여주도! 다 너만 좋다잖아-!! 네가 너무 잘나서! 빛나서!"

"아오-, 사람이 물건이냐, 가지게?!"

"내가 가질 거야, 김석진도, 박지민도, 전정국도! 네가 가진 것들 전부! 네가 다 잃었으면 좋겠어, 네가 나처럼…!"

권연희의 말이 뚝 끊겼다. 격렬하게 내 머리를 잡아채곤 흔들던 손길도 멎었다. 누군가가 그 손목을 단단히 잡아챈 탓이었다. 권연희의 손에서 차츰 힘이 빠져나감과 함께 나는 권연희의 머리카락을 내팽개치곤 내 머리를 감쌌다. 시발, 진짜 두피 뜯어지는 줄…!




Gravatar

"네가 얘를 얼마나, 어떻게 괴롭히든, 내가 네 것이 될 일은 없어."

잔뜩 화난 표정의 김석진이 내 어깨를 감쌌다. 엉킨 머리카락을 풀어주는 손길은 다정한데, 딱딱하게 굳은 표정은 그렇게 못했다.

"너, 너어-!"

입을 떡 벌리곤 당황스러움을 표출하는 게 나뿐만은 아니었다. 내가 멀거니 김석진의 굳은 얼굴을 쳐다보는 동안에 권연희는 곧게 뻗은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며 연신 저 말을 내뱉었다.

"내, 내가 분명히 혼자 오라고…!"

그야 그랬지만, 김석진이 내 뒤를 몰래 밟을 줄은 나도 몰랐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자 권연희가 씨근덕대며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 같이 나를 쳐다보았다. 열이 단단히 뻗친 모양새였다.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달싹거리는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것도 거친 숨소리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이윽고 그 입에서 제대로 된 단어들이 나오기 전에, 김석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와 같이 냉담한 어조로 내뱉는 김석진의 말들에 권연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겨우 그런 이유로 사람을 죽이려 들어? 제정신이야?"

"주, 죽이려 든 게 아니야, 석진아, 그게-,"

"이미 네 입에서 나온 말들 다 들었어, 네가 김연주한테 한 짓들도 이미 다 알아. 발뺌해 봤자 소용 없-,"

"…죽이려 한 게 아니야!!"

권연희의 외침이 김석진의 말을 끊었다. 다급하다 못해 절박하게까지 들리는 음성이었다. 형편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권연희는 더듬더듬 말했다. 죽이려 한 게 아니야….

"…도, 돌려보내려 한 거뿐이야, 원래 세계로…."

"사람을 죽여서? 그게 이유가 된다고 생각해?"

"지, 진짜야! 여기서 죽으면, 현실에서 깨어날 수 있으니까…!"

"확신해? 어떻게?"

"그건…,"

어떻게 확신하냐고, 김석진이 물었다. 낮은 목소리에 권연희가 연신 몸을 움찔거렸다. 그건, 그건…,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거리는 권연희를 김석진이 싸늘하게 쳐다보았다. 이렇게까지 화가 난 김석진을 마주하는 건 처음인지라, 나 또한 쉽게 입을 열거나 김석진을 붙잡는 등의 행동을 하지 못했다. 여태 권연희가 한 행동들이나 그가 내뱉은 말들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궤변인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어서. 그렇지만, 그다음에 이어진 김석진의 행동에 나는 굳어있던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비명소리와 함께.

허리를 천천히 굽혀 무언가를 집어 든 김석진이 제 손바닥을 긋기 전까지는 나도 멀거니 권연희와 김석진의 대치를 보고 있었을 뿐이지만, 바닥에 굴러다니는 날카로운 유리조각을 손에 쥔 김석진이 그걸로 제 손바닥을 깊게 긁었을 땐 그러지 못했다. 갈라진 살 틈에서 선명한 붉은색 핏방울이 투둑, 떨어졌다. 

"…야!! 미쳤어?!"

경악 어린 비명과 함께 나는 김석진의 손을 붙들었다. 유리조각을 쥐고 있던 손을 때려 조각을 떨어트리고, 계속해서 울컥, 울컥, 핏물을 내뱉는 상처를 소맷자락으로 꾹 눌러 지혈하려 애썼다. 그러는 동안에도 김석진의 시선은 여전히 권연희를 향해 있을 뿐이었다. 김석진의 행동에 놀란 것인지, 아까보다 더욱 창백한 낯을 한 권연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김석진의 싸늘한 눈빛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Gravatar

"…이게 한낱 꿈인 줄 알아? 이래도, 죽으면 원래 세계로 갈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어?"

권연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김석진은 제 물음에 대답도 않고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문 권연희를 잠시간 쳐다보다, 제 상처를 감싸고 있던 내 손을 떼어냈다. 가자, 하는 말에 들어있는 감정들이 결코 가볍지는 않아 나는 권연희에게 무어라 더 말을 얹지도 못하고 김석진을 따라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최악의 하루였다.





📘 📗 📕





자그마한 유리조각으로 얼마나 깊게 그은 것인지, 김석진은 손바닥을 일곱 바늘이나 꿰매야 했다. 병원 복도의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는 내 시야로 붕대를 감은 손이 들어왔다.

"…가자."

"……."

어색한 침묵만이 함께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김석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김석진의 붕대 감긴 손을 계속 쳐다보며 걸을 뿐이었다. 단순히 '걱정돼서'라는 이유뿐만은 아니었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일전에 김석진이 내게 했던 말들을 오늘 이 일이 벌어지고 난 후에야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렇게나 내가 다치는 것에 예민하게 구는지, 권연희의 행동들을 지켜보기만 할 뿐, 어떠한 제재도 않는 내게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머리 좋은 그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소설 속 세계가 우리가 밤중에 꾸는 꿈처럼 가볍게 벗어날 수 있는 세계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계속해서 품어왔을 것이다. 어쩌면 체육대회 날부터일지도 몰랐다. 계주 대타로 나갔다 바닥을 구른 탓에 생겼던 내 다리의 상처를 묘한 표정으로 계속 쳐다보던 김석진이 이제야 생각이 난다. 죽어서 끝일까? 하지만 이 세계의 우리는 현실에서의 우리와 다름없이 먹고, 자고, 다치면 피를 흘리고, 상처가 나고, 상처가 아무는 시간은 무섭도록 더디기만 한데. 소설 속에서 죽어 눈을 감을 때, 현실에서 눈을 뜨는 것이 아닌, 현실의 나도 같이 눈을 감아버리는 건 아닐까. 안일하게 '이건 꿈과 비슷해, 죽으면 깨는 것과 똑같을 거야' 하던 내 생각이 얼마나 안일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었는지를.

김석진은 아무런 말 없이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들어가. 별다른 첨언 없이 그 말만을 내뱉은 김석진이 몸을 돌렸다. 나는 그 등에 대고, 집에 오는 내내 생각했던 말을 내뱉었다. 이해한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아니었다.

"위험했어."

"……."

"다음부턴 그러지 마."

김석진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렇다고 곧장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가던 방향의 정면만을 쳐다보던 김석진이 몸을 돌렸다. 성큼성큼, 그 긴 다리로 금세 내 앞에 다가선 김석진이 내 어깨를 쥐었다. 다친 손이 아프지는 않을까 절로 내 시선이 그 손으로 돌아가는 탓에 김석진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위험해? 위험한 건 알아?"

"……."

"제발, 제발 너부터 잘 해…! 너부터 위험한 상황은 좀 피해, 제발…."

"……."

"오늘도, 혼자 권연희를 만나고 있단 걸 듣고 내가, 얼마나…."

김석진이 무너졌다. 자연스레 나도 그를 따라 쪼그려앉을 수밖에 없었다. 기어이 김석진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아이고야, 말 한마디가 이런 결과를 가져올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조심했을 것을. 나는 어설프게 김석진의 어깨를 토닥였다. 채 끼우지 못했던 퍼즐의 한 조각이 저절로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Gravatar

"좋아해…."

좋아해서 그래, 좋아해서 더 신경 쓰여. 울먹임과 함께 내뱉는 김석진의 말에 귀 끝에 열이 올랐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김석진의 어깨를 토닥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우정치고는 너무 무거운 마음이다 싶었다. 몰랐다 하기에는 너무나도 티가 나는 것이었다. 대답하기에는 확신이 없는 마음이었다. 훌쩍이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