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들어와. "
" 아··· "
기억이 담겨 있는 그의 병실을 보자 다시금 죄스러움이 밀려온다.
" 왜 그래? "
" 아, 아니에요··· "
잠시 망설이자 그가 나를 불렀다.
" 편하게 들어와, "
" 아, 네.. "
병실 안은 여전히 깔끔하다.
" 이쪽에 앉을래? "
침대에 앉아 자기 옆자리를 두드리는 그에 그쪽으로 다가갔다.
" 음··· "

" ···. "
서로 말을 꺼내기가 망설여져 입을 꾹 다물고 조용한 분위기가 흘렀다.
" 그. "
" 오빠, "
" 아···, 너 먼저 말 해. "
" 아니에요, 오빠 먼저.. 말 하세요. "
" 그러니까···, "
답지 않게 자기 뒷머리를 쓸어내리는 모습.

" 진짜, 미안해. 아까 사실 너무 감정이 북받쳐 있었어서 지금 뭐라고 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서 일단···, 사과할게. 미안해 수아야. "
" 아니에요.. 제가 죄송한데. 저도 몰래 가버려서 죄송해요.. 오빠 곤란하게 되셨죠. "
" 내가 미안해···. "
" ..왜 이렇게 풀이 죽어 있어요.. "
" 미안하니까..? "
" 지금부터 그 일로 저한테 미안하다는 말.. 정말 그만해도 돼요. 그만하기로 해요. 저도, 잘 한 거 없는데.. "
" ···미ㅇ, 아. "
" 제가··· 제가 미안해요. 진짜. "

" 네 잘못이 뭐가 있다고, 아니야 수아야.. "
" 그냥 진짜 그러면.. 저 좀, 안아주세요. "
이렇게 괜찮은 척 센 척이라도 해야지 그 잔상이 지워질 것 같아서. 지우면 안 되는데, 지워질 것 같으면 안 되는데, 또 그렇게 도망친다. 좋은 말로 포장해서 또 현실에서 도피해 버린다.
" ···. "
아직도 미안해, 가 얼굴에 쓰여 있는 표정으로 그가 나를 안아준다.
그리고 스치는 모습은 안타깝게도 그가 아니라,

" 밖에 뭐 있어? "

" 여기 진짜 오랜만이다, 그치. "
하필 다른 누군가의 모습이라서.
그런 상태로 이렇게 행동하면 안 되는데, 그걸 잘 알면서도 스스로 안아달라고 말해 그에게 안겨 있었다. 알면서도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뭘 바라는 건지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을 두고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죄악이고 잘못인 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는데 그의 품이 따뜻해서였을까, 아니면 그냥
날씨 탓이었을까.
순간 문이 덜컥 열린다.
*
승철은 눈을 꾹 감았다.
수아가 사라진 병실에는 대화를 할 상대도 없었다. 조용한 병실에서 탁한 기침을 뱉으면 소리가 병실 안에 울린다.

" ···. "
침대에 올라가 눈을 감는다. 잠들려는 건 아니다. 그저 눈을 감았다 뜨면 조금.. 조금 더 밝은 세상이 있기를 바라면서. 그냥 그때처럼 수아가 있고 건강하면, 그러면 된다고 작은 듯 너무나도 큰 소원을 빌면서. 눈을 아무리 감았다 떠도 승철을 옭아매는 건 공허한 병실 안이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그저 서로 사랑하고 함께하는 누군가에겐 쉽게도 느껴질 그런 일이 왜 자신만은 그렇게 냉정하게 빗겨가는지 그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떠나보내야 할 거였어, 하고 울지 않고 보내려 하지만 그 일이 생각보다는 그렇게 쉽지가 않았다.
" 어차피, 어차피 헤어지려고 했잖아. 잘된 일인데···, "
가슴을 쿵쿵 내리쳐 보아도 답답한 심장이 싫었다.
/

" 오빠 오빠, 이것 봐ㅇ...! "
민규의 어깨에 기대 있는 수아를 보고 예원의 손에 들려 있던 것들이 큰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렸다.
" 누구···. "
" ..그, 학생? "
" 누구세요? "
" ···? "
" 아니 누구신데 남의 남자친구를, "
···남자친구?

" ..수아야, 잠시만 나갔다 와도.. 될까? "
" 아.. "
순간 스치는 보고 싶지 않은 잔상에 수아가 눈을 꾹 감았다 떴다.
" ···편하게 다녀오세요. "
/

" 수아야···, "
" ···오빠. "
" ···. "
머뭇거리는 민규를 수아가 가만히 바라보았다.
" 미안해, 둘이 있는데 찾아오게 해서··· "
" 괜찮아요, 저는.. "
저는... 저도,
" 사실은 기억을 잃었을 때 매일 찾아와 줬던 애···야. 고백했을 때 못 쳐내서··· "
" 아.. 여자친구예요? "
" 응, 미안.. "
그를 바라보며 죄스러움에 고개를 깊숙히 떨군다.
" ···오빠. "
" 응? "
" 아니에요.. "
말해야 한다. 꼭 말해야 한다는 걸 안다. 그렇지만···,

" 미안해.. 금방 얘기 끝낼게, "
···말할 것이다. 언젠가는, 꼭 말할 것이다. 그 다짐이 지켜질지 수아 자신도 알 수 없으면서 곧 말하겠다고 다짐을 반복할 뿐이었다.
/
" 최승철!! "
헐레벌떡 달려왔는지 담당 의사의 상태가 말이 아니다. 꽤 전부터 병을 앓아왔던지라, 의사와는 안면이 튼 사이이다.
" 하, 너··· 안 된대도 나아서 오겠다면서 꾸역꾸역 나가버리더니, 도대체 요 며칠 밝던 애가 이렇게 된 이유가. "
" ···. "
" 뭐 차이기라도 했어? "
" 비슷해요. "
" ..네가? "
농담을 해도 지구 반 쪽 날 소리를 하냐, 실없다는 듯 고개를 삐뚤게 기울이고 웃던 의사의 웃음소리가 뚝 멎었다.
" ···진짜? "
딱 두 번째 보는 환자의 처연한 표정이다.

" 진짜죠, 그럼. "
" ···승철아. "
입술을 꾹 깨물던 의사가 환자에게 중대한 충고를 하나 건네려 한다.
" 너, 병원에 있는 동안은···, 여자 안 만나는 게 좋을 것 같다. "
" ···그거 평생이잖아요. "
얼마 남지도 않은.
" 안 그래, 나을 수 있어. 그리고 연애란 게.. 사람 감정 기복을 심하게 만들잖냐. 너 몸 상태가 그렇게 안 좋은데 감정 기복도 심해지면··· "
" ···. "
" 나을 수 있어, 다. 완치되고 나서, 그때에 만나는 게. "

" ···그래요, "
벌려지지 않으려 하는 입술을 힘겹게 떼어 승철은 그리 대답하였다. 알겠다는 대답을 끄집어 내었다. 어차피 만날 사람도 없고, 지금 누군가를 만나봐야 득보다는 실이, 마음의 안정보다는 상처가 양쪽에 훨씬 클 터였다. 그런 연애 시작하지 않는 게 맞는데, 좋은 건데, 그래서 정리하려 했던 일이 정리된 건데.
근데 응어리진 마음이 풀리지가 않는다.
승철의 텅 빈 눈에 민규에게 안겨 있던 수아의 모습이 스쳤다.
···차인 것 같네요, 단단히. 고개를 희미하게 끄덕이는 의사를 보며 그는 대뜸 그런 말을 꺼내었다.
/

" ···. "
" ···. "
병실은 조용했다. 창밖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만이 이따금씩 정적을 장식했다.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지 서로를 안은 채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 ···수아야. "
" 네. "

" 사랑해. "
" ···저도요. "
수아가 민규를 올려다보았다.
두 눈이 오로지 민규만을 향해 있다.
민규가 예쁘게 웃어 보인다.
그녀의 시선이 올곧게 다른 이를 향해 있는 것도 모른 채로···,
민규의 올곧은 마음은 어쩌면 어울리지 않게 새파랬다.
/

" ···. "
다음날 아침, 가만히 앉아 있다 승철이 자신의 핸드폰을 집어 든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그대로 앉아 있어 봤자 변하는 게 없을 걸 알기에. 수아는 그렇게 허술한 사람이 아니어서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거란 걸 아니까.
/

" M그룹 김민규입니다. "
수아가 화장실에 간 사이 민규의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그에게서 사무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 " C경영 장남 최승철입니다. 지금 XX대학병원에 입원해 계시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
아, 최승철.
몸이 약해서였나, 병이 있어서였나- 이 대학병원에 꽤 오랜 시간 동안 있었다고 들었던,, 재계서열이 상당히 높은 그룹, 민규네 회사와 협업 관계에 있는 회사의 장남.
" 맞아요. "
- " 실례가 안 된다면 한 번 찾아봬도 될까요? "
" 좋습니다. 언제 가능하신가요? "
- " 오늘···, 두 시쯤에 괜찮으신가요? "
" 네, 괜찮습니다. 편하게 오세요. 같이 점심식사 하시겠어요? "
- " 좋아요, 감사합니다- "
뚝, 끊어진 전화에 민규가 전화를 물끄러미 응시한다.
" 무슨 일 있어요? "
" 아, 응···. 혹시 이따가 회사 일 관련해서 사람이 찾아올 건데, 괜찮아? "
" 네, 괜찮아요- 저 나가 있을까요? "
" 어디 가 있으려고? "
" 어··· 병원 산책이나 하고 있죠 뭐. "

" 음.. 아니면 정국이 불러서 잠깐, "
" 에이 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정 심심하면 밖에 나가서 뭐라도 하고. "
" 알겠어···, "
떨어져 있기 싫은데. 수아를 껴안는 민규에 수아는 마냥 밝게 웃지 못했다.
/
약속시간이 되어갈 때 즈음.

" ···후, "
혹시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티가 날까 봐 몇 번이고 거울을 보며 모습을 확인한 승철이 병실 문을 연다. 집중하자, 최승철. 집중. 이건 일이니까. 근데 생각해보니까 웃기네, 점심식사를 어디 나가서 하려나.
실없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걸어서 옆 건물에 있는 민규의 병실로.
/
" 그럼 오빠 저 나가 볼게요. 일 잘 해요. "
" 응, 잘 다녀와. 미안해. "
" 회사 일인데 뭐가요. 이따가 봐요- "

" 응, "
그녀가 병실의 문을 열었다.
웬만하면 그와 마주칠 일을 줄이겠다는 마음으로 수아가 굳이 옆 건물로 가는 통로를 이용하지 않고 바로 계단으로 향하려면,
" ···수아? "
익숙한 목소리가 복도에 가득히.
/
잡생각을 지우려 노력해 약간은 밝아진 낯빛으로 승철이 옆 건물로 통하는 통로를 걸었다.
쏟아지는 햇빛에 잠시 눈을 가렸다가 이내 가던 길을 걷는다. 좀 이른 시간이라, 10분 정도 기다렸다 갈까 고민하는 그.
" ···. "
그때 민규의 병실 문을 여는 익숙한 실루엣이 승철의 눈에 띈다.

" ···수아? "
/
못 박힌 듯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있던 수아가 천천히 돌아선다.
설마, 설마···.
돌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승철에 숨이 턱 막혀 다시 한 번 멈춰 섰다.
" ···. "
앞으로 가지도, 뒷걸음질치지도 못한 채, 병실 문에서 조금 떨어진 그대로 수아는 멈춰 있다.
" ···수아야, 잠시만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
약속 시간에 늦은 핑계를 생성해낼 겨를도 없이, 그가 그녀를 불렀다.
/

" ···. "

" ···. "
병원 1층의 카페에 와서도, 두 사람 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그저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 ···미안해. "
먼저 말을 꺼낸 쪽은 승철이었다.
" ···. "
여전히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듯 수아의 눈엔 초점이 없다가..
" 아니, 오빠.. 내가 미안해.. "
둘 사이에 깊은 정적이 흐른다. 그 사이 보이지 않는 두꺼운 벽이라도 세워진 듯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 어제···, 그렇게 사라진 건. "
" ···. "
" 아니··· 맹세하건대 절대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야. 근데··· "
" ···. "

" 우리 그만 만나자 수아야. "
" ···. "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 없는 수아에 승철의 눈빛 또한 떨린다.

" 내가 왜 병원에 있느냐고 네가 물었었지. "
" 응···. "
" 나 살 확률 거의 없는 사람이야. "
" 뭐..? "
상상도 못 했던 말에 수아의 고개가 꺾여 올라갔다.
" 그러니까,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병원에서도 지금 조금 연명 치료를 받고 있는 거지, 살 확률 거의 없어. 너랑 헤어지고··· 몇 주 뒤였나, 그때 발견해서. "
" ···. "

" 그러니까 나처럼 너한테 행복을 줄 수 없는 사람 말고, 더 좋은 사람 만나. "
몇 년 전 수아의 말을 승철이 그대로 내뱉었다. 상대의 입장에서 받아보는 것 또한 너무 아렸다. 수아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려다 승철이 멈칫하곤 손을 거둔다.

" ···넌 앞길도 창창한 애잖아. 나는 잊어버리고 그냥 이제 행복하게 시작했으면 좋겠어. "
원래 말할 의도였던 것도 아닌데. 수아가 민규의 병실에서 나오는 장면에 승철의 입에서 그냥 말이 술술 나왔다. 나보다 더 잘 챙겨줄 사람이 옆에 있나 보구나, 싶어 화가 나기보다는 애매한 안심이 먼저 되었다.
" 오빠 같은 사람··· 다시 못 만날 거야. 나는···, 나는 진짜로, "
" 네가 왜 못 만나. 나한텐 과분한 사람이니까 나보다 훨씬 좋은 남자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 "
" ···. "
미안하다, 고맙다, 수많은 말들이 머릿속을 헤집는 동안 수아는 멍하니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커피를 바라봤다.
" 이제 우리 다시 안 보는 걸로 하자. 행복한 시간 줘서 고마웠고 살아본 시간 중에 제일 소중했어, 너랑 있던 시간이. 근데 더 이상 소중한 시간을 질질 끌고 남기면 나 떠나기가 너무 싫을 것 같아서 여기까지 해야 될 것 같아. "
" 나, 나···. "

" ···가볼게, 수아야. 잘 지내. "
마지막이다. 굳이 자신의 기억을 더 남기고 싶지 않아서, 한 번만 마지막으로 안아달라는 말도 없이, 정말 더 이상의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고 승철은 옅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 나도···. "
오빠랑 같이 있었던 시간이 너무 행복했는데. 너무 소중한데. 눈물 한 방울이 턱에서 떨어지고,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 나도, 끕··· 나도 사랑했어. 나도 행복했고, 나도··· "
그에게 닿지 못할 말들을 혼자서 조금씩 뱉으면서 혼자 남은 수아의 어깨가 들썩였다. 모든 것을 정말 체념하고 더 이상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는 듯한 그 눈빛에, 그리고 몰려오는 죄스러움에 그녀는 승철을 붙잡지 못했다.

뭐 설마 기다리신 분 없으시죠?(= 진짜 죄송하다는 뜻..)
간당하게 11시 5ㅇ분이라니 ㅠ 한 세 번 정도 날려먹고 핸드폰 막히구 그러다가 한숨쉬면서 보니까 벌써 목요일.. 그냥 올릴까 하다가 애매하니까 그냥 다음거랑 몰아서 토요일에 올리자 ,, 했는데 분량이라도 좀 괜찮나요 😭 그와중에 내용은 또 찌통,,? 오늘부터 절 지각쟁이라고 불러주세요 독자님들이 호칭 지각대마왕으루 하셔도 전 할 말 없음.. 계속 응원해주신 분도 너무 감사하고요 ㅠㅠㅠㅠ 공지라도 올렸어야 됐는데 8ㅅ8 ...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