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상처 없는 이별. 1
예쁜 이별이 뭘까.
서로에게 상처 없이 깔끔하게 헤어진 이별, 그건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상태에서 발생한 이별이다.
서로의 행복을 빌고 미래를 응원해주며 헤어진 이별, 그건 서로보다 자신의 미래, 또는 자신이 더 중요할 때 발생한다.
내 이별은 전자였다.
그는 내 첫사랑이자 가장 긴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
내 10대와 20대 중반을 함께 지켜봐준 사람이다.
우리가 사랑한 시간은 길었지만 우리가 끝나는 건 한순간이었다.
물론, 이별은 결심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너에게 이별을 말했을 때, 너의 대답이 너무 쉬웠고
그 대답으로 인해 너와 함께한 8년이 허무해졌다.
한창 공부해야 할 나이를 앞두고, 우린 첫 연애를 했다.

"배고프지 않냐"
"완전. 뭐 먹을래?"
"오늘 기분 어때?"
"오늘 기분? 좋은데?"
"그럼 떡볶이 먹자"
"내 기분이랑 떡볶이랑 무슨 상관이야"
"너 짜증나는 일 있으면 불닭발 먹고 없으면 떡볶이 먹잖아."
"...너 변태야?"
"조용히 하고 떡볶이나 먹으러 가자 - "
돈도 없었던 고등학교 2학년, 너랑 공부하다가 집으로 가는 길에 함께작은 떡볶이를 사먹는 것도 행복할 때가 있었다.
"나 오늘 화장 엄청 대충했어."
"음, 몰랐는데."
"근데 연한 게 더 예쁘긴 하다."
"...목적이 있는 예쁜 말이야?"

"야, 뭐래. 얼른 먹어."
"목적 있지? 그럼 그렇지. 넌 어떻게 여자친구한테 예쁘다는 말을 꺼내지도 않냐."
"아, 알겠어."
"김여주 완전 예뻐. 세상에서 제일 예쁘지 우리 여주가."
"야, 노력하지마...눈빛에서 티 엄청 나.."
"아, 많이 나?"
"...난 니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
"괜찮아. 나만 좋으면 됐지.
"어쩌라고. 이것도 너 혼자 다 먹고 나와."
"아, 야야,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 사줄게."
"...진짜?"
"당연하지 - 비싼 거 골라도 돼."
"오키. 빨리 먹고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좋기만 했었다.
공부만 하느라, 학원 다니느라 정말 지쳤던 나에게 밝고 좋은 니가
나와 평생 함께할 줄 알았으니까.
"3,2,1"
"해피뉴이어 -"
"고3된 거 축하해"

"아, 뭐야 - "
"원래는 그냥 축하한다고 해야되는 거 아니야?"
"그런 게 어딨어. 우리 이제 고3이야."
"그래, 너도 고3 축하한다. 우리 원숭이."
고3때는 공부만 해야 할 나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서로가 너무 바빠만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독서실 갔다가 늘 보는 동네 놀이터가 우리의 데이트 장소였다
"힘들지. 얼른 들어가서 자. 집 들어가면 그냥 문자만 남기고 바로 자."
"너도. 근데 잠 안 오면 바로 전화해. 받을 수 있어."
"아 뭐야. 알겠어. 잘자"
"응. 사랑해 김여주."
그렇게 생각보다 안정적인 고3 생활을 보냈다.

"야 나 미치게 떨려."
"야, 뭐가 떨려. 우리 붙을 거야."
"헐, 야 1분 남았다"
"여주야, 라면 끓어줄까?"
"오, 좋다. 결과만 보고 바로 끓이자. 수험번호 입력했어?"
"응...야 근데 진짜 한명만 붙으면 어떡해"
"아, 좀."
"...야, 떴다."
"라면 끓인다 -"
그리고 축하해. 이제 우리 대학생이네.
"아이고, 너 어떡하냐.. 또 나랑만 계속 붙어있어야겠다."
"아, 그러게."
"뭐야, 싫은 거야?"
"에이, 싫기는. 나 지금 눈물 나오려고 하잖아."
"...어..아까 눈물 닦는 거 다 봤어.."
그렇게 떨리고 긴장되던 대학교 합격소식도, 대학교도 너와 함께였어.

"너무 많이 마시지 마라"
"혹시 아냐. 내가 너 업고 갈지도 몰라."
.
.
.
"아 이거 이럴 줄 알았어.."
"야, 야 박지민, 정신 좀 차려봐"
"여주야 나 추어..."
"아 이놈새키야 내가 많이 마시지 말라고 했지."
"추우니까 빨리 집에 가자. 데려다줄게"
"웅 가자 가자"
20살이 되고 처음 마시는 술도 너와 함께 마셨고, 덕분에 너의 주사가 이렇구나_ 하는 걸 내가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오 - 경영16 박지민"

"경영16김여주 오늘 좀 꾸몄다?"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내가 잘 보일 사람 너 말고 또 있냐"
"오, 아주 뿌듯해 그 대답."
"내 책가방 들고 다니던 애가 요새 자꾸 나를 이기려든다."
아, 박지민이랑 나랑 고딩 때 처음 만난 건 아니고 고향친구였는데 중딩 때 내가 먼저 이사 가면서 헤어졌었음.
그래서 고딩 때 오랜만에 만난 건데, 얘가 먼저 고백해서 사귐
그건 나중에 또 썰 풀어줄게 (반응 좋으면)
"좋냐?"
"당연하지."
"우리 OT 끝나고 과끼리 모여서 신입생환영회 한다는데, 갈 거지?"
"안 가면 찍히잖아."
"그럼 얼른 마시고 나와서 우리집에서 영화 보자"
"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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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얼른 마시고 나가서 너네집에서 영화 보자며."
"이렇게 취했으면서 집에는 가겠냐? 정신 좀 차려봐."
"주야..우리 집에 가쟈.."
"알겠어, 빨리 가자. 여기 팔 걸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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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내일 아침수업인 거 알지. 알람 맞춰놨으니까 알아서 일어나"

"니가 그냥 여기서 자고 가면 되지"
"...이거 아주 상놈이네. 어차피 윗층인데 뭐하러 자고 가."
"나 간다."
"자고 가. 내가 허전해서 그래"
"...뭐래. 우리 지민이 많이 취했다. 자라."
"김여주 말 진짜 더럽게 안 듣는다."
"나 그렇게 많이 안 취했어. 일로 와, 빨리."
그래서 그냥 자고 갔지...
근데 나 솔직히 박지민 앞에서는 센척 엄청했는데
이날 얘가 이런 말하니까 귀 엄청 빨개지고 심장 엄청 빨리 뛰고 소리 엄청 크고 얼굴도 엄청 뜨거웠음..
고딩 때 단순했던 박지민이 아니더라..
삐 - 삐 - 삐 -
"박지민, 일어나."
"...일어나 있었는데, 나 어제 너한테 뭐 실수한 거 있냐."
"없었으니까 헛소리하지 말고 일어나."
"아니 이상한 기억이 났어."
"...나도 니 눈치 엄청 보고 있는 거 안 보이냐.."
"...죽을 죄야?"
"그런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얼른 아침 먹고 학교 가자"

이날 얘 하루종일 이 표정이었어 ;;
근데 그 행복도 오래가지 않았어
니 군대 가는 걸 보는 날이 올 줄은 몰랐고, 마냥 기다리던 너의 제대가이렇게 빠를 줄도 몰랐어.
"전역했는데 하고 싶은 거 없어?"
"너랑 하루종일 집에서 뒹굴거리고 놀기. 우리 영화 볼까?"
"엥, 그건 많이 해본 거잖아. 다른 거 없어?"
"특별한 거 말고 너랑 그냥 편하게 있고 싶어."
"그러면서 니가 좋아하는 떡볶이도 시켜먹자. 오늘은 좋은 날이니까떡볶이잖아"
"...아주 사람 꼬시는 건 천재야, 천재."
"좋지?"
"응. 니가 다른 여자한테만 안 그러면 진짜 좋을 것 같아"
"야, 누가 들으면 내가 뭐, 전에 그랬었는 줄 알겠다."
"나 고2때랑 달라진 거 없어. 그때랑 똑같아. 여전히 너한테만 이래."

"나 방금 좀 말 잘했다."
"응. 내가 잘 키웠네, 잘 키웠어."
"그런 고백 진짜 좋다. 주기적으로 좀 해"
"이런 건 말로 말고 보여줄 수도 있어"
"아 그건 필요가 없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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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살, 더이상 너와 떨어질 일이 없다는 생각에 안심했던 때.
"뭐 볼까?"
"니가 전에 보고싶다고 했던 거 보자."
"그래! 사실 이미 답은 정해져있었잖아."
"괜찮아. 이기적인 여자도 꽤 매력적이지."
"튼다"
4년 째, 같이 봤던 영화가 이제 거의 30편이 넘어갔다.
하지만 아직도 적응하기 힘든 게 하나 있었다..
로맨스 영화에서 절대 빠지면 안 되는 장면..그거 맞음..
바로 키스신임..
나는 원래 그런 거 잘 못봐.. 근데 박지민은 더 못봄
근데 그때 또 내가 박지민 입술을 톡톡 건드리고 있었음..
박지민 입술이 되게 새부리같이 생겼거든? 근데 그걸 옆에서 보니까너무 귀여운 거야..
그러고 있었는데 그런 장면이 딱 나온 거임..
근데 이놈새키 입꼬리가 아까부터 계속 꿈틀거려 ;;
"...뭐냐"
"너 왜 내 입술 만지냐"
"불만 있냐"
"이게 니가 툭툭 건드리라고 있는 게 아닐 텐데."
"...어쩌자고"
나는 얘가 이런 말할때마다 너무 적응이 안 돼..
"영화 재밌어?"
"응. 너무 재밌으니까 그냥 너도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노력해볼게."
그렇게 영화에 집중하고 한 15분정도 지났나.
아니 이상하게 몇분 전부터 얘가 나만 쳐다보고 있는 거야 ;;
"..뭘 봐"

"니 얼굴."
"왜. 뭐 뭍었어?"
"아, 얘가 군대 갔다오더니 철들었나."
"그걸 왜 들어, 무겁게."
"아 너 진짜 싫어."
이런 말하는 거 보면 뭐 그냥 장난치는 것 같기도 하고.
"이거 언제 끝나?"
"몇분 안남았어. 왜?"

"우리 아까 말했잖아. 설레는 고백타임 가지기로."
"아니야. 이제 필요 없어."
"아니야. 나는 필요해"
"..왜 이래."
영화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 점점 여주에게 지민이 다가온다.
계속 뒤로 물러나던 여주는 결국 끝내 쇼파의 끝자락으로 몰렸다.

"난 너 진짜 보고싶었어"
"우리 1년6개월동안 못 본 거 아니고 3개월만 못 봤어.."
"그래도 길었어."
"..어쩌라고"
"야, 야 너무 가깝다. 야, 좀 저리로 좀 가봐 좀.."
"아니야. 난 너 많이 보고 싶었어."
"나도야. 나도 너 많이 보고 싶었고 사랑해. 근데 좀, 좀 떨어져봐 우리너무 가까워, 지금."

"사랑한다고 니가 먼저 말했다."
사귄지 6년까지는 괜찮았어.
근데 남은 2년이 그 예뻤던 6년을 최악으로 만들었지.
우리가 헤어진 이유는 다음에 풀어줄게
엇? 내 손가락이 다 어디갔지? 오글거려서 다 쭈글해졌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