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 마이크 테스트. 둘 셋- 잘 들리나요? 지금 상황이 여간 정신 없는 게 아니므로 이런 식으로밖에 말할 수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리고요.
저는 올해로 스물 하나. 강여주. 꽃다운 나이에 과팅도 못 나가보고, 물론 제가 예쁘장하게는 생겨 인기는 많았지만요, 이게 또 연애 경험이랑은 별개의 문제거든요. 저희 집안이 워낙 엄하디 엄한 터라 결혼까지 골-인! 할 남정네가 아니면 눈독도 들이지 말라는 철칙이 무슨 가훈처럼 떡하니 버티고 있어서. 연애는 아직 못해봤다는 소립니다. 예.
여튼 간에 말하다 보니 변명처럼 들리는 것도 같지만, 현 상황에서 제가 얼마나 억울하고 불쌍한 중생인가에 대해 한 줄 설명이라도 더 덧붙이고 싶은 마음에 말이 길어졌습니다. 본론은 당연지사, 이런 시시한 게 아니죠. 제 연애 스토리 따위 구구절절 읊을 거라면 이렇게 비장하게 서두를 열지도 않았어요.
그러니까, 본론은 말이지, 이렇게 연애도 못해본 제가 난데없이 웬 남자에게 납치를 당해버렸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차차. 제가 배려가 없었네요. 이렇게 대뜸 던져 놓으면 어안이 벙벙하실 테니 조금 더, 아주 조금 더 구차해져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이곳은 지구, 여러분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광기의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이 광기란 게, 예전에는 정말로 좋은 의미로밖에는 쓰이지 않았건만. 지금은 한 톨의 거짓도 없이 실제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광기, 그러니까 미친 인간들. 좀비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죠.
문제는 이 조옴비들, 살아 움직이는 시체 같은 족속들이 좁은 한반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전세계로 쫙 퍼져 있다지 뭡니까?
그래서 몇 달 전부터 재난 경보니 뭐니 징하게 울려대던 새빨간 종도 어느샌가 배터리가 닳기 시작하고, 징그러운 좀비들이 판치는 거리에 배터리 갈자고 나서는 시민 영웅은 나타나질 않고, 일찍이 폐허가 된 방송국들도 누구 하나 나서서 돌보는 이가 없으니 유일한 소통구인 티비 방송도 못 볼 위기에! 네, 처했습니다. 처했죠. 지금 생각해도 정말 꿈도 희망도 없는 스토리네요. 당시엔 힘없고 나약한 일개 여대생이었던 제가, 뭐 어쩔 수가 있나요. 집구석에서 얌전히 벌벌 떠는 수밖에.
하지만요, 어떻게 사람이 안 먹고 안 마시고 잘 살 수 있겠어요. 자취러의 빛과 소금인 식재료는 분명 냉장고며 찬장에 가득 차 있었는데, 사태가 터진 후에 계속된 칩거 생활에 금방 바닥을 드러냈지 뭡니까? 이런.
며칠동안 꼬르륵 소리가 무진장 났어요. 마지막 남은 라면 부스러기를 주워 먹다, 이제 다 끊겨버린 식수를 한 방울씩 핥아 먹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 음식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더욱이, 물 없이는 살 수가 없다. 그래서요? 나갔습니다.
그리고요?
좀비가 됐습니다.

매드 사이언티스트
1 | 나 혼자만 반좀비
워 워, 진정하세요 다들. 제가 이렇게 멀쩡히 사람답게 말하고 있잖아요. 그럴 수 있는 이유가 뭐겠어요? 고도로 발달한 생존 유전자? 나 혼자만 면역자? 아니고. 그냥 쉽게 말해, 제 생각을 여러분에게 그대로 전할 수 있어 가능한 겁니다. 여러분이 제 머릿속에 들어와 계신 거죠. 언더 스탠?
좀비 주제에 어떻게 정신은 말짱하냐··· 아, 이건 저도 의문. 지금까지도 안 풀리고 있는, 세계 3대 미스터리랑 어깨를 나란히 해도 될 급의 미스터리란 말이죠.
아니 처음 물린 날에, 그렇다고 두번째로 물린 날은 없으니 이렇게 말하는 것도 웃기긴 한데, 저는 편의점 입구 앞에서 눈을 떴어요. 다 찢겨진 3+1 아이스크림 광고지. 부서진 채 굴러다니는 노상 테이블. 결국 목적지 진입도 못하고 죽은 거죠. 비참하게.
아무튼 눈을 뜨고 나니까, 목덜미에서 뜬금없이 찬물이 콸콸 나오대요? 찬물이라니, 내가 무슨 수도꼭지로 환생한 건가, 이딴 상상을 하면서 자연스레 목에 손을 대는데, 어이쿠. 물이 아니라 피였던 거죠. 저는 이때 또 기절했습니다.
저런 멘탈로 밖을 나간 것도 용하긴 해요. 정말이지,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차라리 방안에서 굶어 죽고 말지, 길바닥에서 피를 분수마냥 내뿜고 엎어진 최후는 예비된 죽음 중에서도 제일 별로였던 것 같네요. 다시 깨어난 제 눈에는 이제 다른 좀비들이 으르렁거리며 거리를 활보하는 꼴이 들어왔죠. 사실 그때부턴 그렇게 놀라지도 않았어요. 왜냐면 도로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걔네들보다 한 1.5배 정도··· 끔찍했거든요.
정신을 대충 차리고 난 후에야 알아챈 사실은, 살아생전 제 목을 물어 죽인, 그 끔찍한 좀비라는 것들이, 왜 때문인지 저를 동료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 최악 중의 최악.
스스로가 좀비가 되었다는 걸 깨닫기엔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어요. 꼴이 개판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좀비들의 친구라니! 그 사람도 아닌 것들이랑! 놈들이 저에게 산 사람의 팔뚝을 수줍게 던지고 가는 모습을 보며··· 내색은 않았다만 속에서 뭐가 올라오는 듯했죠. 적응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아, 특이점은 한 가지 더 있어요. 바로··· 저는 사람 고기를 먹지 못한다는 것. 정확히는 '못' 한다가 아니라 '안' 한다죠. 지구에 완전한 파국이 도래하기 한 달 전, 저는 어떠한 뉴스를 접했습니다. 먼 나라 이집트 한 지역에서 최초로 발견된 좀비에 관한 다큐멘터리였죠.
좀비는 사람의 형태를 조금이나마 유지하지만, 사람일 때의 습성을 버리고 살아간다. 인육을 먹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하고, 자신들도 본능적으로 이를 깨우치므로 그들은 더욱이 식인이 불가피하다.
뭐? 우웩. 그날 과일 먹으면서 보고 있었는데, 내용이 역해서 진짜 토 나올 뻔했어요. 제가 이 모양 이 꼴이 될 줄도 모르고요. 그런데 이상하죠. 다들 좀비가 사람 살이나 피를 취하는 잔혹한 존재라 하는데, 좀비가 된 지금의 소견으로선, 저는 그냥··· 라면에 김치가 먹고 싶은 걸요.
본론으로 돌아가, 저는 또 고뇌했습니다. 이대로 안드로메다에 빠져버린 제 존재에 관해서요. 하, 이럴 거면 철학과로 전과하는 건데. 참. 피범벅이 된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다가, 종국에 저는 라면을 끓여먹기로 했어요.
왜? 왜라니요. 배고프니까. 일단 먹고 생각해야죠.
편의점 들어가 육개장 집고 물을 따르고. 집에서 안 통하던 전기가 이상하게 여기서 통하더라, 얼씨구 신난 마음을 다잡고 유리창 훤하게 뚫린 가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유는 부실해요. 단순히, 면발이 익는 3분 기다리는 동안에 바깥 세상이 얼마나 망했는지 이 두 눈으로 구경하고 싶더라고요.
말해 뭐해, 성한 땅 한 평 없고, 방 안에서 내내 웅크리고 잤던 나는 몰랐지만야 진작에 포격받아서 무너진 곳도 더러 있었어요. 아이고 무서워라. 그런데 정작 뒤졌어야 할 좀비들은 끈질긴 생명력 덕에 다리가 한짝 날아가도, 두개골이 절반 부서져도, 잘만 "으어어" 거리며 걸어다니고. 세상 참 지 멋대로 돌아간다 생각했습니다.
벗, 엉덩이가 아니고 영어로 but. 이러한 난장판 속에서, 휘몰아치는 모래 바람을 뚫고, 무슨 주인공처럼 등장하는 무리가 있더래요? 좀비들이 슬슬 잇몸 드러내고 시동거는 것부터 저거 사람이네, 생각도 했는데. 너무 자신감 있게 그 틈을 헤치고 걸어오는 거예요. 제가 시력에 좀 안 좋은 편이 아니라, 좀 많이, 안 좋은 편이라서요. 눈을 양쪽 다 찡그리면서 자세히 보려 고개를 뻗었는데, 세상에! 저 놈들··· 총을 가지고 있지 뭡니까!
보니까 좀비들이 물러나는 게 아니고, 대가리 정중앙 백 중 백으로 맞아 바람 앞 돛단배처럼 처참히 쓰러져가는 광경이었습니다. 저는 괜히 쫄아서요, 숨었죠. 사람 대 사람이었어도 총 있는 인간 상대하기 무서운데, 아무렴 지금 전 생물학적으로 '좀비' 인 거잖아요? 마땅히 제거되야 할 대상인 거잖아요? 이대로 총 맞아 두번째 사망을 겪는 미래가 눈에 선한데, 여기서 팔자 좋게 라면이나 처 먹고 있을 시간이 없었죠.
예··· 여하튼 숨긴 숨었어요. 몇 발짝 못 가, 편의점 물류 창고에.

좀비들의 구멍난 몸뚱이를 자비 없이 걷어차고, 남자들은 끝끝내 편의점까지 발을 들였습니다. 저는 틈새로 보다 근접해진 인기척에 숨을 참았어요. 좀비 vs 사람의 구도에서 전자를 응원한 것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여긴 아예 얼씬도 못하게 혼은 내줄 줄 알았거든요. 최강의 바이러스라더니, 최악의 크리쳐라더니. 역시 총 앞에선 뭐가 됐든 얄짤 없나 봐요.
유리창 건너 봤을 때와 같이 두 명. 그 두 명의 말소리가 귀 뒤에서 왔다, 갔다, 이젠 멀쩡하지도 않은 심장을 아주 그냥 펌핑시켰어요.
"여기서 사람을 봤다고?"
"봐, 저기 라면. 김 나는 거 보니까 방금까지 있었나 본데?"
"끓여놓고 먹지는 않았다··· 라."
"멀리는 못 갔을 거야."
어쩌면, 여기 아직 있을 수도?
그 짜증나도록 날카로운 지적에, 아아··· 저는 정말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죠. 이미 이론상 죽고도 남은 상태긴 하나, 다시 한 번 더 장렬히 사망할 수 있을 것만 같이 느껴지더라고요.
저는 두 손으로 입을 꼭 막았습니다. 비루하게도 제 입은 제 생각만큼 제대로 작동하지를 않아서, 어쩌면 바깥에 널려 있는 여느 멍청이들보다도 덜한 언어구사력을 갖추고 있을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실제로 아까 조심스레 시도해본 바로는 "아" 나 "으어" 밖엔 낼 수 있는 소리가 없었어요. 총 맞기 딱 좋은 소리죠.
남자 둘은 대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테이블 밑을 수색하는 듯했어요. 연신 의자 다리가 바닥을 죽죽 긁는 소음이 저에게까지 울렸으니까요. 생각해보면 각 잡고 뒤져봐야 빈 공간은 계산대, 테이블, 그리고 화장실뿐. 아무래도 제가 숨어 있는 창고는 편의점 구조상 깊숙이 위치한 곳이라, 한국이 이 꼬라지가 되기 전에 편돌이가 되어본 경험이 없더라면 여긴 감히 생각도 못할 것이라는, 아주 미약한 희망이 올라왔습니다. 그렇게 공포를 잠재우니 저 남자들이 우습기도 했죠.
그래 가라. 어서 가. 니들이 적당히 과자 봉지나 몇 개 털어가면, 나는 아까 끓여둔 라면에 맛김치를 얹어 아주 맛있게 먹고 이 드러운 동네를 뜰 테다! 마음속으로 선언하면서도 피식 웃었어요. 저는 그때까지 제 실실거리는 웃음이 그렇게 큰 줄은 몰랐거든요. 크고도 남아, 입을 막은 손바닥까지 뚫고, 그들의 소름끼치는 청력에 가닿을 줄은요.
정말로 들었을까요? 네, 틀림없이. 들었을 겁니다. 짱구 굴릴 틈 없이 문이 쾅- 걷어 차였고, 입을 달싹할 수도 없게 서늘한 총구가 제 옆통수에 척, 붙었으니까.
"사람?"
"으, 더러운 피 냄새."
"조용히 해 봐."
"말을 안 하는데. 변종 아냐?"
"··· 변종?"
"라면 먹는 변종이라니, 푸핫. 웃기지도 않네."
옆에 선 남자는 어째 제 본분을 잊고 킥킥거리다 뒤로 넘어갈랑, 말랑. 그 농담같은 얘기를 왜인지 진지하게 되뇌고 있던 다른 남자는 연이어 총을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더 바짝, 붙였습니다.
어땠냐고요? 뭘 물어요. 이보다 새될 순 없는 거죠.
저는 이를 꽉 물고, 침을 꼴깍 삼켰어요. 호랑이굴에 끌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 싶은 심정으로였나. 다행히 좀비에게 턱을 물린 게 아니라서 삼킨 침이 밑으로 줄줄 새진 않았지만, 그걸 고사하고도 충분히 긴장감 도는 상황이었습니다.
남자는 제게 마지막 기회를 주는 듯, 몹시 엄중하고, 또 아주 낮게 물었어요.
"대답해."
"······."
"사람이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