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

사람들로 붐비는 수선스러운 뉴욕 공항 안.
"와··· 대박······! 대박!"
처음 밟아보는 뉴욕 땅에 입꼬리가 주책없이 올라가는 동시에 감탄사 밖에 안 나왔다. 여주는 얼른 수화물로 가, 캐리어를 찾아 이끌고 공항 밖으로 나가자 대한민국과 또 다른 낯선 풍경에 뉴욕에 왔다는 걸 또 한 번 실감이 났다.
"진짜 짱이다. 대박! 대박!!!"
여주는 단 하나라도 놓치기 싫어서 주변을 세세하게 훑어보며 걷자 순간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밤새도록 업무만 보던 나날들과 상사가 자신을 괴롭혔던 모습들이 슥 지나쳐가자 괜스레 울컥했다.
22살 때 운 좋게 대기업에 취직했으나 바로 첫날 회사 사람들한테 찍혀버리고 말았다. 이유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커피 한 번 안 탔다고 5년 동안 꼽이란 꼽대로 다 먹고, 자기네들이 할 일들을 자신이 대신 다 했었다.
심지어 상사는 자신하고 그런 짓을 어떻게든 한 번 해보려고 포기하지 않고 저질스러운 멘트를 날리거나 자신을 꾸준히 괴롭혀왔다.
그래서 매일 같이 사직서를 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꾹 참고 열심히 일한 덕분에 지금 자신이 여기에 있을 수 있었다.
처음으로 사직서 내지 않길 잘했다고 드는 순간이었다.
"여주야, 넌 참 대견해. 잘했어, 잘했어."
여주는 자신을 토닥여주곤 택시를 잡아탔다. 여주는 영어로 택시기사한테 말했다.
"JM 호텔로 가주세요."
(JM 호텔까지 가주세요.)
"좋아요."
여주는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돌려 풍경들을 봤다. 그러자 살짝 피곤함이 몰려와 눈을 살며시 감았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차가 멈추는 게 느껴졌다. 여주는 눈을 뜨자 택시기사가 돈을 지불하라는 듯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여주는 택시비를 알맞게 지불하곤 캐리어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몸을 돌려 JM 호텔을 보자마자 입이 떡 벌어질 수 밖에 없었다. 갓난 아기도 이 호텔을 본다면 바로 고급 지고 세련된 호텔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호텔이 고급지고 세련됐다. 여주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만큼이나 건물 안도 세련되고 고급 졌다. 여주는 반짝이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프런트 데스크한테 다가가자, 프런트 데스크는 환히 웃으며 물었다.
"예약하셨나요?"
(예약하셨습니까?)
"예."
성함을 알려주시겠습니까?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이.여.주요."
여주는 프런트 데스크가 알아듣기 쉬우라고 한 글자씩 천천히 말했다. 프런트 데스크는 여주의 이름을 알아듣곤 갑자기 당황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여주의 얼굴을 봤다.
소문으로 듣기론 고양이 상이라 했는데 자신의 앞에 있는 여자는 강아지 상이었다.
프런트 데스크는 똑같은 이름에 다른 사람이란 걸 알곤 안심을 했다. 그리곤 그녀가 묵고 갈 방을 검색하려고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곤 컴퓨터 화면을 보니 '이여주'라는 이름으로 방을 예약한 사람이 단 한 명 밖에 없었다.
프런트 데스크는 당황해하며 설마 설마하는 마음으로 여주를 쳐다봤다. 그리곤 속으로 소문을 믿을게 못 된다며 욕을 해댔다. 프런트 데스크는 다급하게 말했다.
"못 알아봐서 죄송합니다."
(못 알아봐서 죄송합니다.)
"예···?"
"여기 카드 키입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카드 키 여깄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여주는 당황해하는 프런트 데스크에게서 카드 키를 받곤 엘리베이터에 탔다. 여주는 맨 꼭대기 층을 누르려고 버튼을 봤다. 그런데 이미 눌러져 있어 여주는 양쪽 눈썹을 올렸다가 내리곤 아까 자신의 이름을 듣고 당황해하던 프런트 데스크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나랑 이름 같으신 분, 엄청 잘 나가는 부자인가···. 왜 같은 이름 다른 느낌이지. 대체 왜지···. 나도 엄청 잘 나가는 부자였으면 좋겠다. 이름 딱 대면 사람들이 다 알아보는 그런 사람!"
여주는 머릿속으로 자신이 엄청난 부자가 되어, 이곳저곳 다니는 상상을 끊임하는 사이에 맨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 여주는 정신을 차리고 캐리어를 끌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여주는 카드 키를 꼭 쥐곤 며칠동안 머물 곳인 309000호로 간 뒤 카드 키를 대는 곳에 카드 키를 대자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효과음이 들렸다.
여주는 문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먼저 보이는 건 한 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바깥 풍경이 다 보였다.
"와··· 밤에 보면 완전 멋지겠다."
여주는 캐리어를 끌고 문을 닫았다. 그리곤 캐리어를 아무렇게나 놓고 방이란 방은 다 구경했다. 왜 그렇게나 비싼지 알 것 같았다. 여주는 구경을 다 하곤 이제 나갈 준비를 했다. 여주는 지갑, 핸드폰, 휴지 등 필요한 것들을 다 챙기며 말했다.
"내가 오늘 죽는 한이 있어도 여기에 있는 모든 음식들 다 먹고 죽는다."


"와아! 대박! 홉아 이거 봐봐!!!"
"뭔데, 뭔데. 뭘 보라는 거야!!!"
"이거!!!"
"헐 미친 대박!!! 꽃이 무슨 왜 이리 예뻐!?"
윤기는 이 상황이 못마땅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꽃을 거들떠보지 않던 녀석들이 외국 나와서 꽃 보고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게 황당할 따름이었다. 윤기는 쭈그려 앉아 꽃을 관찰 중인 호석과 태형을 냅두고 먼저 갔다. 그걸 본 태형은 윤기를 향해 소리쳤다.
"야 같이 가!!!"

"그래!!! 우리랑 같이 가!!!"
"아 정말 아는 척 하기 싫다."
윤기는 빠르게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호석과 태형도 카페 안으로 들어가, 윤기가 앉은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호석은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너희 뭐 먹을 거야? 응?"
"으음··· 뭐 먹지? 홉아 넌 뭐 먹을 거야?"
"몰라! 우리 가서 정할래?"

"좋아!"
호석과 태형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주문표를 보러 갔다.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윤기는 목덜미를 주므르며 중얼거렸다.

"아··· 기 빨려."
"홉이 홉이 와쪄여!"
"뷔 뷔 와쪄여!"
"제발 내 눈 앞에서 꺼져버려."
"히잉."
"히잉."
"아 이래서 내가 너희랑 안 오려고 한 건데."
호석은 서운하다는 표정으로 윤기를 보며 말했다.
"야 그래도 우리가 너 마실 것도 시켜줬는데···."
"맞아!"
"그건 잘했네. 그래서 뭐 시켰는데?"
"난 망고 스무디! 뷔는 초코라떼에 휘핑 2번에 또 뭐였는데··· 몰라, 되게 길던데. 네 건 뷔가 시켰어."
"뷔 내 건 뭐 시켰어."
윤기의 물음에 태형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아 그거! 딸기 스무디 위에 휘핑 2번에 시럽 3번에 토핑은 으음 딸기 말린 거? 해달라 했어."
"아니 그거 내 거 맞냐? 네 거 아니고?"
"네 거 맞아!"
"···."
"응? 왜?"
"누가 네 입맛대로 시키래."
"히잉···."
윤기는 더 이상 상대할 기력이 없어 참기로 했다. 그때 진동벨이 울리더니 호석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갔다. 곧 호석은 아까 주문 시킨 음료들을 갖고 왔다. 각자 싱글벙글 웃으며 음료를 가져갈 때 윤기는 인상을 팍팍 쓰며 가져갔다.
윤기는 검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신나게 자신의 음료들을 마시고 있는 호석과 태형을 불렀다.
"뷔, 홉."
"응?"
"왜?"
"우리 작전 짜야 돼."
"그냥 쳐들어가자!"
"뷔 말이 되는 소리를 해."
"힝···."

"그럼 어떻게 할 건데?"
호석이의 물음에 윤기는 몇 분간 고민을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일단 총격전이 일어날 수 있으니 홉은 호텔 안에 있는 사람들을 대피시켜."
"그럼 난?"
"뷔, 넌 대기해. 내가 위험하다 싶을 때 널 부를 테니까 그때 바로 나와."
호석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윤기에게 물었다.
"그럼 넌 어디에 있게?"
"난 걔가 머무는 호텔 방 안에 숨어있을 거야."
"알겠어, 조심해."
"맞아! 조심해."

"그래, 이제 회의 끝."
윤기의 말이 끝나자마자 호석과 태형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더니 눈빛으로 무언가 주고 받았다. 그리곤 서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동시에 윤기를 쳐다봤다. 윤기는 불안한 기분이 들어 태형과 호석이가 입을 열기 전에 입을 열었다.
"싫어."
"아직 얘기 안 했는데···. 우리 잠깐동안 놀다 오자."
"뷔 말대로 잠깐동안만 놀다 오자! 응?"
"너희끼리 갔다 와, 난 피곤해."
"알겠어··· 홉아 가자!"
"그래!"
윤기는 카페를 나서는 호석과 태형을 보며 다짐했다. 다시는 저 둘을 데리고 오지 않을 거라며 다짐을 수천 번 했다.

여주는 볼록 나온 배를 손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으, 배불러. 근데 더 먹고 싶단 말이지···. 좀 이따가 뭐 먹어야겠다. 뭐 먹으면 좋을까?"
여주는 행복한 고민을 하며 식당에서 나와, 의도치 않게 어두컴컴 해진 밤하늘을 봤다. 맑게 어두워야 할 밤하늘이 우중충하게 어두웠다. 금방이라도 비 올 것 같은 우중충한 하늘을 보곤 안 내려올 것 같았던 입꼬리가 저절로 내려왔다.
"비 오는 거 아니지? 비 온다는 소식 없었는데···. 비 오면 안 돼. 진짜 안 돼! 진짜 내가 여기에 어떻게 온 해외여행인데! 비 오면 나 저기 한강에 뛰어들 거야!"
그 순간 말 끝나기 무섭게 비가 한 방울 두 방울씩 오더니 곧, 빗방울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주는 비를 맞으면서 한강과 밤하늘을 번갈아 보며 중얼거렸다.
"신 님··· 저 진짜 한강에 뛰어들게 하려고 이렇게 비 내리는 거예요? 그렇지만 망할 신 님··· 전 그래도 아직 못 먹어본 게 많아서 조금만 더 살다 가겠습니다···."
외국 사람, 여기에 놀러 온 한국 사람 등등 너 나 할 것 없이 여주가 한 혼잣말을 들은 것인지 흡사 물에 빠진 생쥐마냥 홀딱 젖어있는 여주를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슥 쳐다보며 갈 길 갔다.
하지만 여주는 지금 사람들의 시선 따윈 중요치 않았다. 왜냐하면 황금 같은 시간을 호텔에 써야 된다는 게 매우 절망적이었기 때문이다.
"망해라."
여주는 하는 수없이 택시를 잡아탔다. 그러자 택시 기사에게 따가운 눈초리로 받았다. 아마 비로 인해 홀딱 젖은 자신이 앉은 곳에 시트가 젖어서이겠지. 그런데 어쩌겠는가. 죄송스럽긴 하지만 이 방법 말곤 호텔까지 가긴 무리였다.
여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힘없이 택시 기사한테 영어로 며칠간 자신이 머물 곳인 JM 호텔에 가달라고 부탁했다.
택시 기사는 불쾌한 티를 팍팍 내며 알겠다고 답하곤 JM 호텔까지 데려다줬다.
여주는 택시 기사에게 돈을 지불한 뒤 차에서 내려 재빠르게 JM 호텔 안으로 들어가자 훅 들어오는 시원한 공기에 나는 한기를 느꼈다.
동시에 불안한 기운이 자신을 둘러쌌다. 하지만 그걸 생각할 틈도 없이 이대로 있다가는 감기에 걸릴 것 같아 빠르게 프런트 데스크한테 가, 카드 키를 받은 뒤 사람들로 인해 붐비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엘레베이터 안은 사람들로 붐벼서 그런지 나는 한없이 쭈구리가 되어 있어야 했다. 그리고 또한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야만 했다. 여주는 속으로 사죄를 했다.
비를 맞고 타서 죄송합니다···.
여주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고 눈을 아래로 내리깐 채 곁눈질로 층수를 누르는 버튼을 보곤 맨 꼭대기 층인 60층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한 층 한 층 멈출 때마다 밀물 썰물마냥 반복적으로 진행 되었다. 여주는 이 지옥 같은 순간을 참고 또 참자 드디어 60층에 도착했다. 여주는 곧바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와, 엘레베이터에서 내렸다.
여주는 재빨리 자신의 방문 앞으로 가, 카드 키를 대곤 문 손잡이를 잡아 당겼다.
그러자 또 다시 불안한 기운이 자신의 주변을 감쌌다. 한기가 돌았다. 하지만 오늘 하루 피곤하고 비에 맞아서 그런 거라며 자기합리화를 한 뒤, 카드 키를 꽂는 곳에 카드 키를 꽂으니 칠흑 같던 방 안이 환해졌다.
여주는 비에 젖은 신발과 양말을 벗은 뒤, 맨발로 캐리어 앞까지 가, 캐리어에서 슬리퍼를 꺼내 슬리퍼를 신었다.
"아 찝찝해, 얼른 씻어야지."
여주는 캐리어에서 속옷을 꺼내려고 쭈그려 앉으려는 순간, 아까보다 더 커진 불안한 기운과 싸한 기운에 흠칫 떨었다. 여주는 심장이 엇박자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 뭐지?"
여주는 빠르게 쿵쾅대는 심장을 위해 얼른 진정하라고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후···."
그렇게 몇 분동안 그러고 있었을까, 진정이 되었지만 무서움 반, 장난기 반이 발동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야! 너··· 너 거기에 있는 거 다 알고 있거든? 좋은 말로 할 때 나와라! 그럼 봐··· 봐줄게!"
여주의 말이 끝나자마자 긴 정적이 찾아왔다. 여주는 괜히 머쓱해 뒷머리를 긁적이며 옷과 속옷을 꺼내려고 쭈구리려는 찰나, 옷장 문이 열리더니 어느 건장한 사내가 옷장 밖으로 나오는 동시에 낮게 말했다.
"역시 듣던 대로 뛰어나네, 내가 여기에 있는 걸 단 번에 알고 말이야."

📌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