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 좀 주라, 여주야."
음...? 나는 도대체 얘가 왜 이러지 라는 표정으로 태형이를 쳐다봤음. 어쩌면 이렇게 엄청난 연예인이 나한테 번호를 달라는데 벙쪄있는 것 자체도 제 3자가 보기에는 어이없는 상황이겠지만, 현재의 나로서는 뷔가 아닌 그냥 태형이로 보여서일까.......엄청나게 연예인 같지도 않았음. 그냥 김태형. 17살 그때의 김태형.
"내 번호는 왜 필요한데요?"
번호를 달라는 의미가 뭔지를 알면서도 내가 쌩뚱맞은 질문을 하자 태형이는 되레 본인이 뭥미;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음.(아님)
"난 너 많이 보고 싶었는데요, 여주야. 10년 동안 어떻게 한 번을 안 만나."
"너랑 연락할 일이 없으니까... 너는 게다가 지금 연예인이잖아."
"...귀찮게 안 할게. 연락처만 가질 수 있게 해줘."
그렇게 이걸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사이 저 멀리서 매니저가 차 안에서 태형이에게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것이 보였다.
"태형아, 너 빨리 가야겠ㄷ..."

"여주야...."
결국 나는 저 멍뭉미 넘치는 김태형의 눈빛을 이기지 못한 채 내 번호만 후다닥 쳐주고 김태형의 등을 떠밀어 잘 지내라는 인사와 함께 떨어졌음.
집에 돌아와서 침대에 누워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음. 나, 지금 방탄소년단 뷔, 아니 김태형한테 번호 따인 거야...????????
김태형이 내 번호를 찍어간 후 한동안은 연락이 오지 않았음. 그래서 나도 그냥 순식간에 김태형은 잊고 다시 한동안 안하던 신입사원 노릇 좀 하기 시작했음. 뭐 커피 심부름이라던지, 택배 딜리버리 라던지. 정말 그냥 연락처만 가지고 있겠다는 얘기구나, 하고.
하지만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일이 터지고 말았음.
회사 로비에 있는 카페에서 바나나 라떼에 크림 올려서 도도하고 센치한 도시 여성인 척 사원증 걸고 사무실 들어가니까, 모두가 날 쳐다보더니 김이나씨가 후다닥 달려왔음.
"여주씨, 여주씨! 들었어요 그거그거?"
아니 뭘 들어요...
"뭘...요???"
"그 뭐야, 빅히트에서 저번에 식품 관련한 건으로 광고 수익 창출 어떻게 할건지 계약서 쓴다고 여주씨 불렀다잖아요!"

"네?????? 아니 진짜요??? 아니 계약서 쓰는 거면 사장님이나 본부장님을 불러야지 왜 저를...????"
"뭐 저도 모르죠! 그래도 여주씨가 빅히트 사옥 드디어 들어가보는 거 아니에요?? 완전 부럽다..."
나는 김이나씨와 부장님이 등을 떠미는 바람에 먹던 바나나 라떼도 내려놓고 택시 잡아야 했음. 내 바나나 라떼......
(참고로 바나나 라떼 개맛있어요 드셔보셈)
빅히트 사옥 앞에 도착하니 경호원들이 건물 앞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음. 말했다시피 나는 연예계 쪽에 크게 관심이 없었어서 엔터테인먼트 앞에 찾아가본 적도 처음이라 경호원들이 날 나쁜 사람 취급하는 줄 알았음. 그래서 괜히 쭈구리 돼서 저 나쁜 사람 아닌데요....웅얼웅얼 아무도 안 물어본 변명을 했음.
"팬분들은 사옥 출입금지입니다."
"에..? 아니....저....그..."
"밖에서 대기하여주십시오."
"저...팬이 아니라요...빅히트 측에서 절 먼저 부르셔가지ㄱ....."
아뉘....내 말도 끝나기 전에 말 짜르는 센스 뭐임! 구구절절 설명을 하려고 하는데 저 멀리서 누군가 여주야~ 하고 불렀음.

정장 쫙 차려입고 셋팅까지 다 한 김태형이 빅히트 사옥 후문에서 날 향해 웃음 지으면서 달려왔음. 아, 예쁘다. 오랜만이다 저 네모웃음. 나도 모르게 홀린 듯이 헤벌쭉 웃고 있으면 경호원이 옆에서 당황한듯이 속닥속닥 거렸음.
"제가 불렀어요, 정여주. 이번에 방송 촬영분 논의한다고. 들여보내요."
경호원들은 김태형의 말에 군말 없이 사옥 문을 열어주었음.

"안녕."
"..어어 안녕....하세요."
"왜 존댓말 해. 우리 그렇게까지 거리 둔 사이였어?"
"....야. 너야말로 왜 반말...해요. 자꾸 고딩 때 얘기 꺼내지마요. 10년이나 지났는데... 엄연히 남 남 사이잖아요."
"...좀 서운하네. 나는 그래도 그 때 그렇게 너가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슬퍼했으면 내 생각 좀 할 줄 알았는데."
"....그러는 니는 나랑 헤어지고 떵떵거리면서, 어? 잘 살고 있잖아 예쁜 여자 연예인들 사이에서!!!.....................요."

"흐흫. 질투한 거야?"
"그냥 반말 써, 꼬마야."
진짜 저러면서 강아지 대하듯 내 턱 아래를 손가락으로 쓰담쓰담 하는데....오우 위험했다. 심지어 저 꼬마야 저거 고딩 때 얘가 나 부르던 애칭임. 플러팅 잘하는 김태형 스킬에 넘어갈 뻔했음. 무언가에 홀린 듯이 멍-하니 잘생긴 김태형 상판때기만 보다가 정신 차리고 본론으로 들어섰음.
"크흠.흠. 암튼, 나 너네 홍보팀 사무실 어딨는지 좀 알려줘. 나 부르셨는데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겠어."
"으응. 홍보팀은 왜?"
"나도 몰라! 갑자기 나 부르셨다니까?"
"그러니까. 잘 생각해봐, 갑자기 널 부르셨을 이유가 없잖아."
"...........?"
"응?"
"? 뭔소리야. 그럼 나 누가 부른거야 대체??"
"여기 있네."
"어디. 여기 너랑 나밖에 없..........아!!!"
그렇다. 나는 또 김태형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고 있는 거였음. 예나 지금이나.
또 날 속이려고 든 김태형이 너무 짜증나서 나도 모르게 주먹을 둥글게 말아서 김태형 팔을 퍽퍽 쳤음. 김태형은 그렇게 맞는 와중에도 뭐가 그리 좋은지 흐흐흫 거리면서 웃고 있고. 근데 얜 뭐 운동했는지 팔이 너무 딱딱해서 때릴수록 나만 아프길래 관뒀음.
"아 뭐하냐고 진짜아!!!! 야 난 지금 진짠줄 알고 회사도 빼먹고 온건데!"

"흐흐흫. 아 볼 빵빵해진거 봐."
"씨이....."
"아 왜에. 나랑 같이 좀 있자. 회사 빼먹으면 너도 좋은 거잖아.."
어? 듣고 보니 그렇네. 그렇게 나는 그 달콤한 말에 넘어가 김태형 따라 작업실 안에 들어갔음. 내가 생각해도 웃긴건, 나 지금 겁나 유명한 연예인이랑 이렇게 오랫동안 본 친구 마냥 장난도 치고 때리기도 한다는 거였음.
김태형이 날 앞장 세워서 기차 놀이 하듯이 왼쪽~ 오른쪽~ 하면서 길 알려주길래 처음엔 칙칙폭폭 하면서 따라하다가 현타 와서 아 이게 뭐야! 하고 때려쳤음. 김태형 동심 지키기 하나는 성공한 듯.
"내 작업실."
"우와....짱 넓다."
"으응. 넓어? 여긴 넓은 편에도 안 속하는데."
"엥. 진짜? 8명이 쓰는 우리 사무실보다 큰데?"
"너 회사 어디 다니는데."
"나 오뚝이 주식회ㅅ....아 싫어. 너 말하면 회사까지 따라올거 잖아."
"오. 어떻게 알았지."
"..너 지금 너 팬들이 얼마나 많은데 어? 이러는거 정상 아닌거 알지."
"문제 될 건 없지. 난 너한테 사귀자고 한 적도 없고, 여주 몸에 손도 안댔어."
"..하씨 말빨..."
"왜? 손 대줘?"

아악 미쳤나봐!! 나는 볼 귀 다 빨개진 채로 김태형 등을 연속 폭행 했음. 그래....이상한 생각한 내가 쓰레기지.
오늘도 역시 내 심장이 평화로운 하루는 아니었던 것 같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