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것이 후회가 된다면.
***
"그래서, 너도 모르게 잠에 들었다고?''
"응. 나 바보인가 봐. 왜 잊으려고 했던 걸까."
그렇게 그 사진을 꼭 껴안은 채 한참을 울었다. 슬픔을 모두 씻어내려줄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슬픈 내 감정은 결국 눈물마저 씻어내리지 못했다.
정신이 드니 어느새 다음날 아침이었다. 나는 이 행복했던 기억을 더 간직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현실이 나를 가만히 두지 못하나 보다. 나는 잠시나마 행복했던 시간을 뒤로한 채 차디찬 현실 속으로 다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회사에 출근했다. 그러나 정신이라도 제대로 차릴 수 있었나. 아주 오랜만에 찾아왔던 달콤한 행복에 중독이라도 된 듯 집중하지 못했다. 결국 점심시간이 찾아오자마자 나는 도망치듯이 부서를 나왔다. 그러고는 한줄기 동아줄이라도 붙잡듯 옥상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자마자 내 눈앞에 보이는 건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했던 하늘이었다.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그때였다. 내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건. 내 마음을 안정시켜 준 건 지연이의 목소리였다.
"내가 그 짓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
"나는 왜 도대체 지민이를 잊으려 했던 걸까."
"너무 자책하지 마. 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우울해진 내 모습을 본 지연이는 담담하게 위로를 해주었다. 거창하지도 않지만 딱 진심만이 담긴 위로를. 내가 무너져 다시 일어설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내 옆에는 항상 지연이 묵묵히 지켜주고 있었다.
그때 마침, 생각하고 싶지 않던 기억이 떠올랐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어지러웠다. 주변에서 다들 수군거리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연이는 묵묵히 나를 토닥여 주었다.
''아직도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걸 좋게 보고 있지 않아."
"당사자가 느낀 아픔도 모르면서, 저렇게 떠드는 게 날 자꾸 괴롭혀."
"오히려 죽어야 할 건 나였어. 내가 그때 조금이라도 눈치를 챘더라면. 지민이가 그날을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았더라면."
"정신 차려. 네가 잘못한 거 아니래도."
"그리고, 그 선택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건 그 당사자일 거야."
"그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라 발버둥 쳤지만, 결국 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자신들이 생각해 봐야지."
지연이는 그 말을 끝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물을 꾹 참고 있는 내 심정을 알기라도 한 듯 나를 토닥여줄 뿐이었다.

"그래서 오늘 상대 회사랑 미팅 가지려고. 그쪽이 먼저 제안했대."
"오늘 컨디션 안 좋다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면 안 돼?"
"응. 꼭 나여야만 나온대. 그래서 속으로 그 회사 엄청 욕하고 있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지연이와 오늘 있을 미팅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빠지겠다는 제안을 이미 하고 왔지만 캔슬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그러면서 지연이는 자기 상사의 이야기를 꺼냈다. 할 말이 많았었다 보다. 30분 동안 숨도 쉬지 않고 속사포로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참아왔나 싶을 정도로 내뱉는 지연이에게 살짝 놀람을 전했다.
점심시간이 곧 끝나가 나와 지연이는 각자 부서로 돌아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상대 회사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그것도 부서 공용이 아닌 내 개인 휴대전화로.
여보세요. BH회사 인사팀 팀장 민윤아 입니다.
전에 콜라보레이션 제안했던 JN회사입니다.
혹시 지금 나오실 수 있나 해서요.
네. 지금 가겠습니다.
개인 휴대전화로 다짜고짜 미팅시간을 바꾸어 버리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엄연히 상대측 회사에서 먼저 제안을 건 것은 우리 회사가 갑인것이 아닌가.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약간은 신경질적이게 회사를 나왔다.

"안녕하세요. JN회사에서 나온 선아현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BH회사 민윤아 입니다."
사실, 처음 보았을 때는 온몸이 굳었다. 선아현. 내 고등학교 동창이자 악연이다. 다시는 말도 섞기 싫었는데.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을 참으며 오묘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 보는 사람은 호의라고 생각하겠지만, 임라희다. 다시 만나기 싫었다는 의미를 알아챘을 것이다.
이 아이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를 시기, 질투했다. 다들 내가 너무 잘나서 그렇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이 아이보다 잘난 게 없었다. 집안, 성적, 친구. 모든 것을 다 갖춘 친구였다.
원래는 이렇게까지 앙숙은 아니었는데, 그냥 김태형과 선아현이 마주치면 서로 으르렁대는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로 오는 눈빛이, 나를 적으로 돌리기에 충분했다.
아무튼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왜냐? 통화 목소리는 남자였거든. 어디에선가 많이 들어본 목소리. 기억하지만 선아현을 보자마자 아닐 거라 부정했던 그 목소리.
그때, 누군가가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때 나는 보았다. 선아현의 웃음을.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그 웃음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이해하고 말았다.

"반갑습니다. JN회사 대리, 김태형 입니다."
나를 배신한 김태형의 얼굴을 보는것. 정확히 10년만이었다.
"난 쟤 마음에 안들어. 박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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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쩌다보니 친해졌다. 박지민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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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지? 아니지? 아니라고 말해."
"박지민이 죽었을리가 없잖아. 너가 옆에 같이 있어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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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싫어. 박지민을 죽인 살인자."
"오랜만이다. 민윤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