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파트에서 나 홀로 자취한지도 벌써 몇년 째
20대 중반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부모님의 조금은 훌륭한 재력덕에 이 근사한 아파트를
자가로, 심지어 내 명의로 얻을 수 있었다.
한달 전엔
내 앞집에 누군가 이사를 온것 같기도 했다.
물론 몇번 보진 못했다.
그저 키크고..잘생긴 남자라는 것만 알 뿐
일주일에 한번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날 볼까 말까였다.
그리고 평소 불금에
치맥을 자주 먹던 나였기에
평소처럼 치킨을 시키고 맥주를 따고 있었다.
캬 -
시원하다
쇼파에 앉아
몇주 전부터 보고 싶던 드라마를 틀었다
술이 들어가니 노곤해져 소파에 누워 거의 졸고 있었다.
.
.
.
삐, 삐, 삐, 삐삐삐---
응?
뭐야...누가 우리집 도어락을..
잠이 확 달아 깼다.
계속되던 도어락 소리에 현관 쪽으로
조심스레 발을 옮겼다.
문 앞으로 가 잠금 설정을 하려던 그때
삐- 삐- 삐- 삐비빅-
몇번이고 틀리던 도어락이
열렸다...
그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앞집 남자였다.
"...저.."

"밍주야아.."
알 수 없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내 어깨에 자신의 고개를 파묻었다.
확 끼쳐온 그의 술냄새가
내 머리를 더 아프게 조였다.
"...저기"
"난 찡짜 너 없으명 안도ㅒ..."
내 어깨에 파묻은 얼굴을 비비기 시작한다.
이 사람 키 180은 되는거 같은데..
160인 내가 버티기엔
덩치가 너무 커 그만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쿵-
아앜...개무거워
내 위로 덮쳐진 그 사람을 옆으로 밀었다.
술김에 바로 잠이 든 것 같았다.
바로 앞집이라 집에 데려다 줄까 했지만
건장한 성인 남성을 부축하기란 쉽지 않았다.
물론 비번을 모르기도 했고...
어쩔 수 없이 남는 방 한개에
그 남자를 던져놓았다.
후...
아 무거워
아무 용도 없던 방이었기에
별로 상관 없었지만
그 남자가 우리 집에서 잔다는 것은
매우 골치 아픈 일이었다.
하...내일이면 정신 차리고 가겠지
무슨 생각었는지 정성스럽게 이불도 깔아주었다.
아..진짜 새벽에 이게 뭐하는 짓인지
이불까지 덮어준 후 겉옷만 벗겨
정리해주고 나가려했다.
탁-
눈도 잘 못 뜨는 그가 내 손목을 탁 잡았다.
"...민주야.."
"저 민주 아니고요 정신이 드세요?"

"...흐윽..."
아 또 운다...
잡혀있는 손목을 빼려
흔들었다.
하지만 힘이 얼마나 쎈건지
빼지지 않는다.
"저..이것 좀 놔봐요.."
"..가지마"
내 손목을 확 끌더니 날 안아버린다.
"..저...저기요"
그의 가슴팍이
바로 내 얼굴에 보인다.
몸을 빼려 아무리 밀어봐도 소용 없었다.
몇십분에 대치에
결국 지쳐 술 기운에 잠이 들었다.
.
.
.
"으으음.."
하...새벽에 울고불고
다하더니 깼나보네
뒤척이는 남자를 두고 거실로 나와
어제 먹다 남은 치킨을 정리했다.
해장국이라도 사와야하나..
.
.
.
<범규 시점>

아
개운하다.
온몸이 뻐근하지만
얼마만에 이렇게 편안하게 잔거지.
눈을 뜨니 우리집 천장이 보였다.
나 왜 이 끝방에서 잤지...
집에 돌아온것만으로도 다행인걸까.
전여친의 허전함을 잊으려 어제 술을
많이도 먹다보니 필름이 끊겼다.
하...목말라..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어...?
뭐야...
우리 집과는 정반대인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흐릿하게 여자 실루엣도 보인다.
...미...미친
여자가 내 쪽으로 눈을 돌리려 하자
서둘러 원래 있던 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깼어요?"
뭐야...저 사람 누구야....
아 미친...나 어디로 온거야...
바닥에 깔린 이불 안으로 숨어 들었다.
자는척을 하기위해...
"하...나오세요"
"..."
"안 주무시는거 아니까 나오세요.."
"죄...죄송합니다!"
그대로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열곤
밖으로 나왔다.
"아 내 집 어디야..."
아파트 건물을 완전히 나오니
다름아닌 내 아파트 동이였다.
"뭐야...아까 몇 층이었더라..."
서둘러 엘레베이터를 다시 탄 후
내 집인 5층을 눌렀다.
띵 -
5층입니다.
뛰쳐나간 탓인지
머리가 더 아파왔다.
별일없겠지 하던 찰나
엘레베이터 문 사이로 또 다시 그 여자가 보였다.
어떻게 알고 찾아온거지...?
"하.."

"저...죄송합니다..."
서둘러 자신의 집 쪽으로 걸었지만
이내 자신의 앞 집 문이 열려있다는걸 깨달았다.
"해장국 드세요. 2개 시켰는데"
"아...그...괜찮습니다"
"저 휴대폰 두ㄱ.."
쾅-
.
.
.
뭐야..사람이 말하는데 문을 닫아?
그 남자의 집 문을 두드려 열까 했지만
하...아침부터 힘을 너무 썼다.
짜증나게 진짜..
잔뜩 화가 난 채로 집으로 들어와
괜히 2개 시켰던 해장국을 순삭했다.
핸드폰 언제 찾으려 오려나...
갖다주는건 싸가지가 없어서 안될거 같고...
으음...
.
.
.
토요일동안 그 남자 생각에
시간을 너무 많이 썼다.
그래서 일요일엔
술로 생각을 좀 비우자 싶어
며칠 전 술집에서 만나 번호를 땄던 연준을 불렀다.

"오랜만이네요?"
"어..ㅎㅎ 들어가자"
구석쯤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와 여러 안주를 시켰다.
"어떻게 지냈어요?"
"아..ㅎ 잘 지냈지 뭐 ㅎㅎ"
"난 누나 보고 싶어 죽는줄"
"ㅋㅋㅋ 더 늦었으면 죽었겠네"

"그러게요"
아 심장뛴다.
이렇게 다정하고도 섹시한 남자와의 단둘이 술이라니
오늘은 진짜 이 남자와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민..주야..."
한창 달달한 분위기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쯤
우리 뒷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휙 뒤를 돌아보니 역시
그 남자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는 사람?"
"아아...ㅎ 아냐"
너무 돌아봤나..
.
.
.
"아니 계산 안해도 된다니까.."

"누나 만나서 좋아서..ㅋㅋ
집까지 데려다 줄게요"
"ㅋㅋ 알았어"
둘이서 추운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물론 손 잡은채로..ㅎ
"누나"
"응?"
"안 아쉬워요?"
"뭐..뭐가?"
"난 지금 되게 아쉬운데?"
"ㅎ.."
2차 가자고 말 하려했는데
능글맞게 돌려 말한다.
"2차 가자 내 집으로"

"좋아요 ㅎ"
편의점에서 맥주와 소주 몇 병을 산 후
따듯한 연준의 손을 잡고 내 집으로 들어왔다.
"뭐 볼래?"
"저 보고싶은 영화 있어요"
"뭔데?"
말 없이 내 손에 들린 리모컨을 가져가
영화 이름을 검색한다.
...이거 되게 야한거 아닌가..ㅎ

"저 이거 보고싶어요"
"그래 ㅎㅎ"
소파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아
술을 한모금씩 하기 시작했다.
원래 썸이어도...
막 손 잡고 영화도 보고 그러는건가..?
그런 장면이 많이 나오기로 유명한 영화였던 만큼
맞잡은 손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ㅎ 더워요?"
"어...ㅎ 아냐아냐 ㅎㅎ"
"지금 얼굴 되게 빨간데?"
크고 차가운 손이
내 볼을 감쌌다.
"귀여워요"
"ㅎ..."
몇초간 정적이 흘렀다.
서로의 피부가 맞닿은 곳으로
심장 박동이 전해지고 있었다.
이윽고 내 눈동자를 바라보던 눈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해도 되죠?"
천천히 가까워지는 그가
고개를 꺾으며 내 입술을 포개기 바로 직전..
삐-
삐-
삐-
삐비빅-
힘주며 감았던 눈이 번쩍 떠졌다.

"뭐야"
"자기야아..."
"...남친 있어요?"
"어...아니 그게..."
"하...가지고 논거에요?"
"아니 연준아...그...내 말을 좀 들어봐.."

"먼저 갈게요"
어떻게든 이 상황을 풀기위해
연준의 손목을 덥썩 잡았지만
신경질을 내며 내 손을 뿌리치곤 나가버렸다.
"..."
"자...기야..."
"하..."
진짜 오늘 키스까지 할 수 있었는데...
현관에 쓰러져 누운 저 남자를 한 대 칠까 생각했다가
그냥 남은 술이나 목 뒤로 넘겼다.
아 짜증나...
둘이 마시려 잔뜩 사온 술 반도 다 못 마셨는데...
몇분내로 급격히 차가워진 내 옆자리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벌컥벌컥 술을 들이켰다.
우으응...
너무 마셨나...
그대로 필름이 끊겼다.
.
.
.
아...머리아파...
커튼 사이로 비치는 아침 햇살이
정신을 트이게 한다.
습관처럼 침대 옆 협탁 위
핸드폰을 집으려 손을 뻗었다.
탁 -
으응...?
뭐야...
무언가에 막혀
손이 더이상 안 뻗어진다.
햇빛에 누군가의 머리카락이 반짝인다.

"으으음..."
"뭐..뭐야.."
술 기운으로 쏟아지던 잠이 한순간에 확 달아났다.
"...저기..저기요..?"
"아...일어났어요...?"
눈도 잘 못 뜨는 그가
한껏 잠긴 목소리로 스윗하게 물어왔다.

"아...기억 안나나 보네요"
"...왜...여기에..."
"좀 더 누워있어요. 해장국 시킬게요"
당황한 나완 다르게 그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너무나 태연했다.
침대에서 일어난
그가 바닥에 널부러진 옷을 주섬주섬 입곤
거실로 나갔다.
뭐...뭐야...이 상황...
이불로 가려둔 몸을 빠르게 일으켜
바닥으로 손을 뻗었다.

"저 모아해장국 시켜도 괜찮.."
"꺄아악"
"..아...미안해요"
몸을 한웅큼 웅크리곤
갑자기 들어온 그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나가요!!! 부끄러우니깐..."
"ㅎ...뭐 밤에 다 봤는데 어때요"
안 나갈것처럼 얘기하면서도 또 매너는 어찌나 좋은지
시선 처리를 완벽하게 하며 문을 닫고 나갔다.
대체 뭔데 이 상황...
급하게 누구껀지도 모를 흰티를 입고
거실로 조심스레 나갔다.
...거하게도 먹었네
술병들이 즐비하게 거실 탁자를 채우고 있었다.

"좀 더 쉬라니깐"
"저..이게..무슨.."
"진짜 기억 안나나 보네..ㅎ"
말하기 부끄러운듯
시선을 돌리곤 머쓱하게 웃는다.
그러다 음침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터치한다.
"끈 보여요"
"..."
순식간에 가까워진 그에
내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해야 기억이 나려나?"
이미 밀착된 거리를 더 좁히며
날 벽으로 몰아세운다.
"...저.."
"아직도 안나요?"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그는 허리를 숙여 나와 눈높이를 맞춘다.
이윽고 내 눈동자를 바라보던 눈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데자뷰인가?
어떤 기억이 야릇하게 나를 스쳐간다.
.
.
.
우웅...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곤 지쳐
소파에 기대 졸고있었다.
조금의 인기척이 들렸고
간신히 눈을 떠보았다.

"...저기"
"..녜..?"
"제 핸드폰..가지고계세요..?"
"..아앙...우음....ㄴㅔ..."
"저 핸드폰 좀..."
"어뜨케에....사라미이..흐읍..그러케 뻔뻔헤여어....?"
"..네?"
"아니잇..이씨..., 다짜고짜 우리 집
쳐들어와서....키스도오...망치구우...
흐...,그...그리구우...
또오...자,자기...라고오...부르고오.."
"..아.."
너무 서러워서
별로 남지도 않은 술잔으로 손을 옮겼다.

"..그..그만 마셔요"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옆에 앉아 내 손을 끌어당겼다
입 앞에서 아른거리는 술잔을 그에게 빼앗겼다.
"내가아...너때무네...키스도오...못하고...흐어.."
연준의 촉촉한 그 입술이
자꾸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풀린 내 눈 사이로 희미하게 빛에 반짝이는
와인빛 입술이 보인다.
숨결도 없이 돌진하여 입술을 덮쳤다.
뜨거운 입술이 서로를 집어삼킬듯 부딪혔다.
시작은 분명 나였지만
술기운이 조금 달아났을 땐
그가 리드하고있었다.
점점 더 격해지는 그의 입술에
정신을 잃을 뻔 했지만
내 옷 안으로 들어온
그의 차가운 손이 내 정신을 깨웠다.
내 몸을 훑는 그의 손이
아찔하다.
"...해요?"
"..네?"
"왜 이리 멍하냐고요..ㅎ"
'아.."
어느샌가 배달 온 해장국을
그저 휘젓고만 있었다.

"...기억 났구나"
"...네"
"끝까지 기억나요?"
"..아..아뇨..."
"끝이 되게 중요한데?"
아무리 기억을 해보려해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진짜...미안한데...
기억이 안나요..."
얌전히 먹던 그가
머리를 쥐어짜며 생각해내는 날 보곤
풋- 하곤 웃는다.
기분이 묘하다.
왜일까..원하던 상대가 아니었는데
그가 다 먹은 듯 그릇을 들고 일어나 싱크대로 향했다.
"아...그 설거지는..제가 할게요"
"아녜요"
"아...그래도 제가 집 주인인데..."
"좀 이따 해요 그럼."
"..네?"
"우린 할거 있거든요"
내 손에 있는 그릇을 잡아 싱크대에 넣어버리곤
아까처럼 나에게 다가온다.
귓속말을 하려는 듯
그의 고개가 내 귀를 향해 가까워진다.
"..저.."
"내가 다 기억나게 해줄게요"
새벽의 느낌처럼
그의 손길이 나를 스쳐갔다.

네 숨결이 닿으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놓여버려
눈치채도 늦었어
넌 내 안에서 끝까지 흔들릴거거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