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선의 끝

1. 새벽 2시 47분


댄스 연습실은 숨을 죽인 듯 조용했다. 

형광등 몇 개는 꺼져 있었고, 

남은 빛은 흐릿하게 깔려있었다. 


거울은 두 사람의 실루엣을 조용히 복제하고 있었다. 

명재현은 음악을 끄고, 숨을 가다듬었다. 

김여주는 물병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목이 말랐지만, 지금은 입 안이 마르는 이유가 물 때문만은 아니었다.


둘은 이미 몇 시간째 함께 있었다. 

리허설용 안무를 맞추기 위해 연습이 길어졌다. 

다른 멤버들은 다 빠졌고, “우리 둘이서만 마저 하자”는 건 여주의 말이었다. 

재현은 웃으며 좋다고 했고, 그때부터였다. 

몸은 똑같은 안무를 반복하지만, 마음은 딴 데 있었다.


팔이 닿고, 숨이 스치고, 손바닥이 등허리를 감쌀 때마다

온몸이 조금씩 긴장으로 얼어붙었다가, 서서히 녹았다.

“너… 안 피곤해?”

재현이 여주의 뒤에서 물었다. 

그녀는 거울 속에서 그의 시선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응. 오히려 지금이 더 집중돼.”


그 대답이 너무 진지해서, 재현은 잠깐 말이 없었다. 

그리고 걸음을 내디뎌, 그녀에게 다가왔다. 

딱, 등이 닿기 직전까지. 숨결이 목덜미에 내려앉았다.

“여주야.”

그 이름은 낮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불렸다.

“…왜.”

목소리는 작았고, 떨렸다.


재현은 그녀의 허리선 바로 위에 손을 올렸다. 

안무상의 동작이지만, 손가락의 긴장감은 평소와 달랐다. 여주는 거울을 보며 눈을 감았다. 

재현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음 동작.

여주의 팔이 들어올려지고, 재현의 손이 그녀의 옆구리를 타고 올라가 어깨까지 지나쳤다. 너무 익숙한 루틴인데, 오늘은 어쩐지 느리다. 일부러 그러는 걸까, 아니면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걸까.


숨이, 가슴 한복판에서 멎었다.

서로의 체온이 마치 열처럼 번졌다.

“…조금만 쉬자.”

여주가 말했다. 재현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그대로 뒤로 물러섰다.


거리.

단 세 걸음. 그런데 그 세 걸음이 너무 멀었다.

둘은 벽에 기대어 앉았다. 땀이 식으며 서늘한 공기가 살을 파고들었고, 그 때문인지 자꾸 한기가 들었다. 

여주는 무릎을 끌어안았다. 

재현은 그녀를 보고 무심한 듯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자꾸 입술에, 쇄골에, 어깨선에 걸렸다.


그는 결국 물었다.

“방금… 나 일부러 느리게 했던 거, 알아챘어?”

여주는 잠시 고개를 떨구었다가, 작게 웃었다.

“응. 나도… 일부러 숨 안 쉬었어.”


아무도 웃지 않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새벽이 둘을 감싸고, 감정은 그 어둠 속에서 무겁게 부풀어올랐다.


재현이 몸을 숙였다.

이제, 거리는 두 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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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야. 나—”
말이 끝나기 전, 여주가 먼저 몸을 돌렸다.


입술이 닿기 직전, 손끝이 먼저 재현의 턱선을 스쳤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아주 천천히 물러났다.
그리고 숨을 뱉었다.
“…이쯤이, 예쁘게 기억되는 선이겠지?”


그 순간, 재현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손길이 남은 자리를, 조용히 꾹 쥐었다.


그 밤, 아무것도 넘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것이 가장 깊숙이 다녀온 밤이었다.
거울 너머의 두 사람은 마치 안무가 아닌, 

서로를 탐색하듯 움직이고 있었다.


김여주의 손끝이 명재현의 팔을 타고 흘렀다. 

루틴이지만, 오늘따라 손이 느리다. 

미세하게 조금씩 길어진 접촉들. 

재현의 시선은 더이상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눈이 마주치면 감춰왔던 게 다 드러날 것 같았으니까.


다음 안무.
재현의 손이 여주의 허리를 감싸며 뒤에서 끌어안는 동작.
그는 숨을 삼켰다. 너무 가까웠다.
아니, 이제는 가까우면 안 될 거리였다.


“여주야,”
목소리가 허스키하게 갈라졌다.
“이 동작… 생략해도 되지 않을까.”
“왜.”
여주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대꾸했다.
그런데 말투가 이상했다. 조금, 들떠 있었다.
“나… 지금은 자신이 없다.”
“무슨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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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넘을 자신.”
그 순간, 그녀가 돌아섰다.
재현과 완전히 마주 선다.
숨결과 숨결이 마주 부딪히는 거리.
어느 쪽도 피하지 않는다.
“그럼 해봐.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지.”
그 말은, 도발이었다.


하지만 여주의 눈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이건 게임이 아니었다.
재현의 손이 천천히 그녀의 팔을 따라 올라가 어깨에 닿았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의 목 뒤를 감쌌다. 여주는 한 발짝 다가갔다. 이제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재현은 이마를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기댔다. 

입술은 단지 몇 센티미터.
그보다 가까워지는 순간, 모든 게 달라질 거란 걸 두 사람 다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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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진짜… 위험하다.”
그가 속삭였다.
“그래서 물러날 거야?”
여주의 목소리는 숨에 실려 떨리고 있었다.
잠깐. 아주 짧은 침묵.
재현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떴다.
손끝이 그녀의 뺨을 스쳤고, 그의 눈동자가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
그리고—멈췄다.


“아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래.”
그 말은, 뜨겁고 참혹하게 아름다웠다.
여주는 눈을 감았다.
그의 손이 아직 그녀의 뺨에 닿아 있었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다음엔?”
그녀가 물었다.
“다음엔… 그때는, 넘을 거야.”


그 밤, 입술은 닿지 않았지만
서로의 심장은, 벌써 다녀갔다.
그날 이후, 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연습을 계속했다.
서로 말도, 표정도, 거리도 평소처럼 유지했다.

하지만 그것은, 애써 붙들고 있는 얇은 막 같은 거였다.


.

.

.

.


그리고 며칠 뒤, 또다시 새벽 두 시의 연습실.
오늘도 다른 멤버들은 다 돌아가고, 둘만 남았다.
여주는 무대 조명 테스트를 마치고, 땀에 젖은 채 한쪽에 앉아있었다.


재현은 아무 말 없이 그녀에게 물을 건넸다.
손끝이 닿았고, 둘은 동시에 멈췄다.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무런 연기 없이, 가식 없이.
오늘은… 숨기지 않았다.
“계속 피하지 마.”
여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 그날 이후로 계속 너 생각했어.”
재현은 조용히 다가왔다.
“피한 거 아니야. 버틴 거지.”


그리고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는 그녀를 안았다.
겁내지 않았다.
이번에는 완전히 품에 안았다.
여주의 손이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두 사람 사이에 있던 기다림과 주저함이 무너지는 소리 없이 무너졌다.


숨결이 뒤엉켰다.
이마가 닿고, 코끝이 스쳤고—
입술이, 아주 천천히 서로에게 다가갔다.
단순한 입맞춤이 아니었다.
갈망과 억제, 그 사이에서 끓어오른 감정이 쏟아졌다.


재현의 손이 여주의 허리를 따라 올라가 등을 감싸쥐었고,
여주는 그의 몸에 완전히 기대며 고개를 젖혔다.
조용한 연습실엔 음악도 없고, 말도 없었다.
그저 입술이 부딪히는 미세한 숨소리.
섞여 들어가는 호흡.
두근거리는 심장이 서로에게 울리는 것 같았다.


그는 그녀를 천천히 거울 앞까지 데려갔다.
여주가 등으로 거울에 닿았을 때,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비친 둘의 모습은 숨이 멎을 만큼 가까웠고,
너무도 솔직하게 뜨거웠다.


“계속 이렇게 되면—”
재현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갈라져 있었다.
“응. 계속 이렇게 돼도 돼.”
여주의 대답은 짧았지만 단호했다.
그 순간, 다시 입술이 격렬하게 포개졌다.


이번엔 머뭇거림이 없었다.
오래 참았던 욕망과 애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그날 새벽의 연습실은 처음으로 ‘완전히’ 그들의 공간이 되었다. 그저, 오래 참았던 ‘우리’라는 감정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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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으신 멤버와 주제 댓글에 적어주시면 의견 반영해서 작품 만들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