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아치 길들이기
w. 라면

BEST 댓글


"내 여자친구 이름도 여준뎋ㅎㅎㅎㅎ 반가워요!""아···. 혹시 도람여고···?"
"네 맞아요! 아시는구나??"
"하하···. 그럼요. 잘 알지요".
자신의 여자친구 이름이 김여주라는 태형의 말에 여주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지금 7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이게 한 장본인이 바로 김여주였기 때문이었다. 이 일을 설명하려면, 도람여고에 전학 온 첫 날인 어제로 돌아간다.

아빠의 갑작스러운 회사 발령 덕에 여주는 서울로 이사왔다. 인천에서 18년을 살았고, 서울도 애기 때 한 두 번 가본 여주는 서울에 대한 환상이 가득했다. 전학 첫 날, 첫 등교. 여주는 콧노래를 부르며 집 앞 골목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어이. 안경!"
골목을 거의 다 빠져나왔을 무렵, 누군가 여주를 불렀다. 그 자리에서 안경 쓰고 있는 사람은 여주 한 명 뿐이었기에, 여주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잠깐 이리 와봐."
10명은 되어보이는 불량한 학생 무리들 속에서 가장 앞에 있던 남자가 손을 까딱 거렸다. 여주는 잔뜩 겁에 질린 채로 그들에게 천천히 다가가갔다.
"도람여고? 너 도람여고야? 못 보던 애인데."
"오늘···. 전학 왔어."
"어쩌냐. 전학 첫 날부터 돈 좀 빌려줘야겠네."
남자애 옆에 있던 '김여주'라는 명찰을 달고 있는 여자애가 말했다. 여주가 지금 당장 가진 돈은 100원 뿐이었다. 정말 딱 100원. 어제 과자를 먹고 뽑기를 긁으려 주머니 속에 넣어둔 돈이었다.
"너 장난하냐? 더 없어?"
"응. 진짜 이게 다야."
가방과 옷을 아무리 뒤져봐도 100원 밖에 나오지 않았던 여주에게 굉장히 실망한 듯 했다. '김여주' 라는 명찰을 달은 애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
"너 내일까지 이 골목으로 와라. 10만원 들고."
"엥? 내가 왜···?"
"들고 오라면 들고 와. 맞고 싶냐?"
"그럼 내 친한 오빠들이 엄청 화날텐데···! 나 건드리면···!"
위기의 순간에서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여주 자신도 이렇게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는 처음 알았던 것이다. '김여주'와 친구들은 헛웃음을 지으며 여주에게 물었다.
"오빠들? 누구? X따 오타쿠?ㅋㅋㅋㅋ"
"너 지금 나한테 이러고 있는 거 오빠들이 알면 서울 뒤집을 지도 몰라."
"푸합ㅋㅋㅋㅋㅋㅋㅋㅋ X발 X나 웃겨."
너무 하이틴스러운 개뻥을 쳤나. 여주는 순간 후회했지만 돌아갈 길은 없었다. 지금 수중에 있는 용돈이 고작 10만원이고, 3만원은 수영이 생일 선물로 써야 하는데. 이 귀한 돈을 양아치 놈들한테 넘겨줄 수는 없지. 오로지 이것이 여주의 생각이었다.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자구.
"그래. 그럼 그 잘난 오빠들 내일 데리고 와. 면상이나 보게."
"·······."

그래서···. 여주는 7만원이라는 최대치 거금을 들여 이 X랄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10만원 다 뜯겨서 수영이 생일 선물 못 주는 것보다는, 7만원 알바비 쓰고 3만원으로 수영이 생일 선물 챙겨주는 게 낫지. 그런데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가. 여주를 이 상황으로 몰은 장본인의 남자친구가 본인 눈 앞에 있다니. 이리도 상황이 X 같을 수 없었다.

"사채업자 같은 사람들한테 쫓기고 있는 건 아니지?"
"그럴리가요! 어제 삥 뜯기는데 큰 소리 뻥뻥 쳐놔서요···. 아는 오빠들 있다고."
"아ㅋㅋㅋㅋ 다행이네. 내가 잘 연기해볼게."
얘네도 알고보니 걔네랑 같은 무리 양아치인 거 아니냐고. 여주가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생각하고 계획을 짜고 있을 무렵, 윤기가 말을 걸어왔다. 와-. 잘생겼다. X나 내 스타일. 여주가 윤기를 보자마자 들은 생각이었다.

"하여간 요즘 애들 무섭다니까. 아직도 삥을 뜯는 애가 있구나."
"어···. 네···."
뭐야 이 남자. 설마 모르는거야? 자기 여친이 그 무서운 삥 뜯는 요즘 애들이라는 걸? 여주는 태형과 김여주의 관계를 대충 파악하고 미치도록 태형에게 김여주의 실체를 말해주고 싶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겠구나 깨달았다. 어차피 곧 이 골목에서 만날테니까.

"근데 도람여고면 우리 학교랑 가깝네."
"나는 원탄고 2학년. 너는?"
"나도 2학년이야···."
"그래? 그러면 말 놓는다. 어차피 동네에서 계속 마주칠 것 같은데."
"응···!"
얘도 잘생겼네. 여주가 정국과 윤기를 번갈아가며 보았다. 아니, 이렇게 보니 7명이 다 잘생겼네. 진짜 이렇게 보니까 진짜로 잘 나가는 오빠야들 같단 말이지. 여주는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이제 양아치들 따위는 두렵지 않았다.
"어···! 저기 온다!"
분명 두렵지 않다고 말했는데···. 그들을 다시 마주하니 심장이 콩닥콩닥 나대기 시작한 여주였다. 여주는 침을 한 번 크게 삼키고 스스로 주문을 외웠다. 지금 옆에 있는 이 핸섬 보이들은 내 친오빠와 다름 없는 아주 가까운 잘 나가는 오빠야들이다, 나는 괜찮다, 양아치들 안무섭다···.
"어···? 김남준형?"

"너 나 알아?"
"네···! 알죠···! 2년전에 원탄고 3학년 형님을 아주 고냥···!"
"······. 누가보면 내가 의도적으로 때린 줄 알겠네."

"우리 여주 삥 뜯는다는 놈들이 니들이었냐?"
옳지 옳지. 잘한다! 미친! 고객 만족도 100점 만점에 100점입니다. 여주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김남준이라는 사람이 실제로 엄청 유명한 사람인가? 여주는 당황하는 양아치들의 모습을 보고 통쾌한 듯 속으로 쿡쿡 웃었다.
"죄송해요. 뒤에 빽들이 형인줄은 몰랐어요."

"이제 그만 갈까? 별 볼일 없는 시시한 X끼들이랑 대화하기 싫은데."
"······."
"야, 돈이 필요하면 알바를 해. 왜 남의 돈을 꽁으로 받아 처먹으려고 하냐?"
"넵···."
"한심한 X끼들. 그렇게 살지 말아라, 응?"
"······."
와. 진짜 찍소리도 못하네. 여주는 그들의 분위기에 감탄했다. 무언가를 압도하는 느낌이었달까. 저 양아치들은 가볍게 쨉쨉을 날리는 느낌이었다면, 이들은 무겁게 한 방 툭툭 치는 느낌이었다. 그나저나, 여주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 한 명이 있었다.
"김여주가 안보이네···."

"여주? 너 여주랑 많이 친해?ㅎㅎㅎㅎ"
"아니요. 그런 거 아니에요."
"내가 1년동안 짝사랑 하다 며칠 전부터 사귀기 시작했거든."
"아···. 네···."
"그래서 아는 게 별로 없어! 여주 일이라면 다 궁금한데."
"하하···. 그러시구나."
1년동안 짝사랑을 했는데 양아치인 줄도 모른다니. 이 남자도 참 불쌍하구나. 여주는 TMI를 마구 남발하는 태형을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그래, 앞으로 볼 사람도 아닌데 남의 연애사에 끼어 들어서 뭐해. 여주는 아까까지만해도 태형에게 김여주의 실체를 까발리려던 생각을 고이 접었다.
"말 편하게 해! 나도 2학년이거든. 앞으로 자주 볼 것 같은데."
"자주···? 자주까지는 아닐 것 같은데···."
"아무튼ㅎㅎㅎㅎ 나는 김태형이야!"
내 삥을 뜯는 양아치의 남자친구였기 때문에 조금 떨떠름하기도 했고, 아무리 고등학교가 가까워도 자주 볼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의 인사를 시큰둥하게 받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난 며칠 뒤에 김태형과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구독자 69명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