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공식 [연재 중단]

11. 열 일곱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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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공식




W. 망개찐떡












서로 부둥켜 안고 얼마나 울어댔는지 둘다 눈이 마카롱이 되어버려서는 앞이 잘 안 보였다. 결국, 눈 마사지 할 것을 가져온다며 집 안으로 들어가버린 여주의 뒤로 나는 벽을 지지대 삼아 주저앉아 머리를 감쌌다. 아무리 슬프고 울컥해도 그렇지, 앞뒤 안 가리고 끌어안고 울었다 생각하니 뒤늦게 수치심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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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어.”


그렇게 한참을 자책하며 부끄러움이 발을 동동 굴렀을까. 일회용 비닐에 얼음을 잔뜩 담아온 여주의 현관문이 열렸다. 투명 비닐에 담긴 얼음. 옛 생각이나 순간 푸흡.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던 시절, 열이 나면 약을 살 돈이 없어 저렇게 열을 내렸던 때가 생각나 터트렸던 웃음이였다. 이젠 좀 형편이 좋아져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될텐데, 여전히 이렇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니 꼭 옛날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뭐야, 왜 웃어?.”
“옛날 생각이 나서.”


건네받은 봉투를 눈에 가져다대며 웃었다. 처음엔 자신을 놀리는건가 싶어 뚱- 했던 여주의 얼굴도 활짝폈다. 맞아, 우리 그랬었지. 이미 지나가버린 추억을 다시 되뇌이며 나란히 쭈그려앉아 봉투를 눈에 가져다대며 말했다.


추억은 끊임없이 나왔다. 고등학교 시절, 방과후를 하기싫어 몰래 담을 타고 나간것과, 수능이 끝난 1월 1일에 거하게 놀다가 지각한 것. 그래서, 함께 늦게까지 남아서 반성문을 쓴 것.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절로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부도 공부지만, 노는것도 정말 진하게 놀았던 것 같다.


“선생님이 그러셨잖아. 그렇게 놀면서 성적 유지하는 우리가 신기하다고.”
Gravatar“그랬었지ㅋㅋㅋㅋ.”


사실 선생님의 말은 틀렸다. 노는 것을 빙자해, 우린 공부했으니까. 서로가 처한 상황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에, 해결책이 공부라 생각했던 우리는 교과서를 가지고 놀았더랬다. 한 사람이 문제를 내면, 다른 사람이 맞추는 걸로. 틀리면 딱밤. 재미있었느냐- 라고 묻는다면 글쎄. 재미있었던 것 같다. 공부가?, 아니 둘이 함께 있는게.


“사실 우리는 그것 밖에 할게 없었지. 돈이 있어서 어딜 놀러갈 수 있는것도 아니고.”
“맞아. 그러고 노니까 어쩔 수 없이 공부가 되는거야-. 우리에게 최고의 놀이는 그거였으니까.”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 대학 합격 발표가 날 당시에 뼈저리게 느낀 것이였다. 돈이 없어서 그렇게 밖에 놀 수 없었던게 가끔은 불편하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로 대학을 함께 붙을 수 있어서 ‘다행이였다.’ 라고 생각했었더랬지. 


“그냥… 내 생각엔 상황 자체가 최악이였던 것 같아.”


고개를 떨구며 말하는 여주에 나는, 그 ‘상황’ 이 언제를 뜻하는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우리가 헤어지던 그 해. 우린 너무 지쳐있었다. 서로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현실에 지쳐버려서 나가떨어지던 그때. 씁쓸하게 웃었다. 어쩔 수 있나, 빨리 철이 들었다고 해서 힘들지 아니한 건 아니니까.


“…난 말이야. 그동안 내가 제-일 불행한 줄 알았거든?.”
“… …”
“그래서 은연중에 괜찮다고 생각했나봐. 눈치 없는 척 하는거, 까칠하게 대하는 거. 나는 그만한 자격 있다고 생각했어.”
“… …”
“그래서 너한테도 그렇게 행동했고. 넌 절대로 떠나지 않을거라 생각해서… 밀어내고, 또 밀어내고. 확인받고 싶었어. 너한테 내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네 말이 맞아. 고개를 돌려 여주를 바라본 내 얼굴이 눈동자에 비춰 거울을 이뤄냈다. 몇 번을 상처받고, 바닥에 나뒹굴어도 결국엔 난 또 네 옆을 멤돌았을 것이였다. 이루어지기도 힘들고, 잊기는 더 힘든 첫사랑. 그게 차여주 였으니까.


“…그러니까, 너만 괜찮다면…”
“… …”
“우리, 다시 고등학교 때로 돌아갈까?.”


긴장했는지 가녀린 무릎 위로 꼼지락 거리는 여주의 손가락이 보였다. 다시 돌아가자고?… 그때로?. 푸른 나무 아래에 있는 것만으로 내 심장을 떨리게했던 차여주… 나는 대답대신 그저 미소지었다. 어떨 때는 백마디의 말보다, 표정 하나가 확실한 대답을 주기도 했다.


내 인생, 두 번째 열 일곱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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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씨, 정국씨한테 파일 좀 넘겨달라고 해줄래요?.”
“네!.”


그날 이후로 우리 사이에는 사귀자거나, 다시 만나자거나. 별 다른 말이 오고가지 않았다. 다만, 확실한건… 우리 사이에 진척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


“정국씨, 잠시 탕비실로 올래요?.”
“네, 사수님.”


우린 시간에 맡기기로 했다. 이러다 자연스레 만나게 된다면, 그것 또한 운명이겠거니 하고. 


탕비실에 들어선 정국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한달음에 달려가,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손깍지를 끼고서 잡아 끌었다. 우리도 우리가 무슨 사이인지는 모르겠는데, 적어도 이제는 밀어내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어느 커플 부럽지 않게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것이- 달라진 우리 사이이다.


Gravatar“근데 이도현, 원래 너한테 그렇게 잘해줘?.”
“뭐야. 질투해?.”
“아니, 그런게 아니라… 사, 사내인데- 좀 거리를 유지해야 되는거 아닌가 싶어서…”


당황했다는 것이 얼굴에 뻔히 들어나는데 아닌척은. 나는 그대로 깍지 낀 손을 들어올리며 물었다. ‘그럼, 나도 이거 뺄까?. 탕비실도 사내인데.’ 정국이의 반응이 예상처럼 깍지낀 손에 더욱 힘을 실어 잡았다. 그리고선 어느새 붉어진 두 귓가로 아무렇지 않은 척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우리는 예외고.”
“왜, 예외인데?.”
“…그야, 우린…”
“우린?.”
“우, 우린…”


입술이 뻐끔거렸다. 하여간, 귀여워가지고. 피식- 웃은 나는 그대로 정국이의 이마를 아프지않게 검지 손가락으로 밀었다. 무슨 말을 하고싶은지는 알것 같았다. 평소같았으면 장단 맞춰 주었겠지만, 이번엔 귀여워서 놀리고 싶었다.


“우선 그건 됐고. 우리 워크샵 준비 잘 하고있어?.”
“워크샵?…”


와일드 컴퍼니의 자랑. 워크샵이 코 앞까지 다가왔다. 오로지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시작한 이 워크샵은, 주변 회사에서도 부러움을 살 정도였다. 음식도 최상급, 숙소도 최상급, 그리고 직원들의 재미를 위한 게임들도 최상급!. 이러니 직원들이 하나같이 워크샵을 기다리고 있던거였는데,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정국은 커피를 내리는 나의 뒤로 다가와 허리에 팔을 감고서 목에 얼굴을 파고묻으며 웅얼거렸다. 


Gravatar“…그냥 워크샵아니야?. 준비할게 뭐가있다고.”


워크샵 할 바엔 그냥 차라리 휴가를 줄 것이지. 그랬다면, 쉬는 날엔 여주와 집 데이트를 할 수 있을텐데-. 라고 생각한 정국은 심통했다. 전 회사에서 간 워크샵은 그야말로 최악이였기에. 업무의 연장선으로 생각해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워크샵이라니. 1년에 단 한번 있는 축제인데.”
“축제?.”


응. 직원들이랑 놀 사람은 놀고, 숙소에서 쉴 사람은 쉬고. 게다가, 워크샵 기간동안은 전용 리조트 시설을 전부 다 이용할 수 있는걸?. 이라 말하며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며 말했다. 하지만, 정국이도 좋아할 거라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다르게 그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였다.


“왜, 그날 어디가?.”
“아니, 뭐… 그런건 아닌데. 좀…”
“좀?…”


워크샵으로 기대를 잔뜩 하고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별로라고 말하겠나. 깊게 한숨을 내뱉은 정국은 별거 아니라며 말을 돌렸다. ‘그래?.’ 라고 말하며 다시 커피와 함께 하하호호. 웃으며 수다를 떤 두 사람. 얼마안가 탕비실로 들어와 정국을 찾는 직원에 두 사람의 애정행각은 거기서 그만 두었지만… 직원을 따라가는 정국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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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가 여행을 좋아했던가?.”


둘이서 여행을가야하나, 진심으로 고민하던 정국이였다.

























[찐떡이의 사담]
로맨스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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