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남는 그날의 약속

EP10 백지의 1페이지

다음 날 아침.

호텔 창으로 스며드는 빛에 눈이 떠졌다.


책상 위에는 어제 이샹이 준

작은 스케치북이 있었다.


나는 살며시 표지를 연다.


첫 페이지.

거리에서 길을 잃은 나.

「이런 표정을 짓고 있었구나……。」

나도 모르게 미소가 새어 나온다.


페이지를 넘긴다.

디저트를 먹으며 웃는 나.

미술실에서 할아버지 사진을 바라보는 나.

가주마루 나무를 올려다보는 나.


어느 그림도, 내가 알아채지 못한 순간뿐이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만,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다.


백지.


어제의 이샹의 말이 떠오른다.

「마지막 한 장은, 함께 그리고 싶어서。」

그 페이지를 덮는 손끝이, 조금 뜨거웠다.



「오늘, 조금 돌아가 보지 않을래요?」


마중 나온 이샹이 말했다.

「돌아가기?」


「할아버지들이 수업이 끝난 뒤 자주 오던 언덕입니다。」


차에서 내리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평온한 풍경이었다.

멀리까지 이어지는 거리.

바람에 흔들리는 풀과 나무.


그리고 큰 나무 아래 오래된 벤치.

「여기서 자주 그림을 그리셨다고 합니다。」

이샹은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렀다.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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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찍었어?」


「자연스러워서요。」


「지워줘〜」


「안 됩니다。」


「왜?」


「웃는 모습이 귀여워서요。」


말한 본인이, 제일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

귀까지 빨개지는 이샹.


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건 못 들은 걸로 해줄게。」


「부탁드립니다……。」


둘이서 웃는다.

바람이 분다.

그 시간이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이왕 온 김에。」

나는 가방에서 스케치북을 꺼냈다.

「오늘은, 이걸 이어서 그리자。」


이샹은 조금 놀란 뒤, 기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나란히 벤치에 앉는다.

연필이 종이를 달리는 소리만이 조용히 울린다.


가끔 눈이 마주친다.

그때마다 부끄러워하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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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보지 마。」


「안 보고 있어요。」


「분명 봤잖아。」


「왜냐하면, 진지한 얼굴이 드물어서。」


「그거 칭찬이야?」


「물론이죠。」


그런 아무렇지 않은 대화가, 참 편안했다.


다 그린 뒤, 서로의 그림을 보여 준다.

「에……。」


나는 숨을 삼켰다.

이샹이 그린 것은 풍경이 아니라,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아래 웃는 나였다.

「또 나야?」


이샹은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릴 생각으로 그리는 건 아니에요。」


「?」


「눈치채면, 늘 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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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꼭 조여 온다.


나도 내 스케치를 보여 주었다.

거기에는 풍경이 아니라,

카메라를 들고 웃는 이샹이 있었다.


둘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본다.

「서로 똑같네。」


그렇게 말하며 웃자,

이샹도 안도한 듯 웃었다.


호텔까지 돌아가는 길.

좁은 골목에서 자전거가 기세 좋게 달려온다.


「위험해。」


이샹이 살며시 내 손목을 당겼다.

어깨가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


「……고마워。」


「별말씀을요。」


손은 금세 떨어졌다.


하지만 서로 조금씩 말이 없어졌다.

걸으면서 이샹이 작게 중얼거렸다.


「요즘……。」


「응?」


「당신을 그리는 편이, 풍경을 그리는 것보다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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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도 모르게 멈춰 섰다.

그런 건, 너무 반칙이야.

대답 따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저 웃고,

「나도。」


그 두 글자만 돌려주었다.


노을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늘이고 있었다.

그리고 가방 안에서는,


백지였던 마지막 페이지가,

조금씩 미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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