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는 살아남길 원한다

Episoed 07. 단호박 같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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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는 살아남길 원한다





W. 꽃서령















나란히 앉은 두 사람 사이에서 오고가는 무거운 정적들 속에, 제이홉의 눈동자는 바삐 움직였다. 이상했다. 전에 황궁에서 마주쳤을 때와 분위기가 확- 달라져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 했다. 잠시나마, 다른 사람이 공녀로 변장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바뀐 모습에 눈, 코, 입 모두 하나씩 살펴본 제이홉은 입술을 감춰물었다.

이건 의심할 새도 없이, 카밀라 에덴베르였다.





“마탑주께서 먼저 제게 궁금한 점을 물으세요.”





제이홉은 소파 손잡이를 손톱으로 두들겼다. 무엇부터 물어봐야 할까. 이 방대한 마력의 출처부터 물을까, 아니면 왜 이곳에 있는지 부터 물어야할까. 미간이 자동적으로 찌뿌려졌다. 카밀라 에덴베르는 온실 속 화초였다. 막내 딸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지라난. 모든게 아이러니 했다. 온실 속 공주님이 왜 부모가 죽자마자 180도 바뀐 것인지, 그리고 저 방대한 마력은 어디서 났는지. 모든 경우의 수를 세어봐도 말도 안되는 것들 투성이였다. 그 중에서도 제일 말이 안되는 것은, 없었던 마력이 생긴 것. 제이홉은 손잡이를 두드리는 것을 멈추고, 천천히 자세를 고쳐 잡으며 물었다.





“에덴베르 공녀, 당신의 정체가 뭡니까.”

“… …”





마력에 대해 먼저 캐묻기로 한 제이홉은 카밀라에게 물었다. 누가봐도 비정상적인 흐름인 마력은 몸을 갉아먹기 마련이다. 더 나아가서는 빠른 속도로 마력이 줄기도 하지. 그런데 카밀라는 달랐다. 비정상적이기는 하나 방대한 마력량과, 마탑주인 자신을 뛰어넘는 실력을 가졌을거라 예상한 제이홉은 바로 대답해주지 않는 카밀라를 향해 다가가 그녀의 얼굴 뒤로 소파 등받이를 손으로 짚었다.





“누구냐고, 너.”

“… …”

“에덴베르 공녀는 마력 보유자는 커녕, 개미 한 마릴도 죽이지 못하는 온실 속 화초였어. 그런데 갑자기 방대한 마력을 가지고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내게 나타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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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지금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쥐새끼 취급하는 건가?.”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놀라웠다. 여기까지 눈치 챌 줄이야. 카밀라는 제 앞을 막아선 제이홉을 위로 올려다보며 천천히 소파 등받이에 팔짱을 끼며 자세를 잡았다. 아무리 악마의 피를 이어받은 ‘반마’라 하더라도, 결국 반은 인간. 오백년간 날고 기던 카밀라를 쉽게 본 건 제이홉의 실수였다.





“왜, 내가 아직도 온실 속 화초라 생각하는거지?.”

“뭐?.”

“그대의 말이 맞아. 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지, 근데 과연 보이는게 다 였을까?.”





눈썹이 찌푸려졌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싶은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보다, 더 황당한건 카밀라의 자세였다. 보란듯이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모습은, 귀족가의 영애로써 할 행동이 아니였다. 그게 본래 카밀라라면 더더욱. 





“미안하지만, 난 온실 속 화초가 아니였어. 밖에서는 사랑받고 했을지 몰라도, 저택 안에서도 과연 그랬을까?.”





제이홉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얘기겠지. 카르시아 마저도 마찬가지였다. 카밀라의 기억을 보기전까진.

카밀라 에덴베르, 참으로 아름다운 여인이였다. 사교면 사교, 댄스면 댄스, 하다못해 자수마저도 수준급으로 했던 그녀는 사교계의 ‘모란’ 이였다. 최고의 신붓감, 모두가 우러러보는 최고의 레이디. 하지만, 현실을 더욱 참혹했다. 평생을 황족에게 시집가기 위해서 받았던 훈련들은 혹독했다. 잠을 자면 안됬으며, 먹어서도 안되었고, 늦게까지 자수, 댄스, 사교 공부를 해야했던 환경 속에서도, 그녀가 쉽사리 포기하지 않은 것은 제게 이런 환경을 만들어준 ‘부모’ 때문이였다. 아무리 학대하고 굶겨도 부모는 부모, 카밀라는 스스로 더욱 혹독하게 자신을 채찍질을 했다. 밖에서는 공작 부부가 자신을 사랑해주니까.

비록, 연기일지라도.





“난 황궁에 시집을 가기위해 만들어진 대용품 이였을 뿐이야. 마탑주, 그대가 본 순하고 순종하는 카밀라?. 하, 그건 전부 내 부모가 만들어준 이미지였을 뿐이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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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웃기지 않나?. 원래 내 본 모습은 이건데, 사람들은 이게 내 본모습이 아니라 하니 말이야.”





제이홉은 소파 등받이를 짚던 손을 내렸다. 자존심 상하긴 하지만, 틀린 말 하나 없었다. 사람들은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상한 점이 있었다. 카밀라 공녀가 마력이 없는 것은 자신을 빼도 모두가 아는 사실이였는데, 갑자기 어떻게 마력이 생긴걸까. 묻고 싶었지만,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입술에 머뭇거리는데 카밀라가 먼저 입을 뗐다.





“마력은, 그동안 숨기고 다녔어.”

“…말도 안돼, 아무리 나라도 마력은 기운이라 자유자제로 숨기지 못한다고!.”

“그건 너고, 난 나잖아?.”

“… …”

“모든걸 네 기준에 맞추지 마. 너보다 강한 사람은 다름아닌 나니까.”





세차게 뒤를 돈 제이홉은 머리를 털어내며 한숨을 내뱉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마력을 숨길 생각을 하다니 치밀한 걸 넘어서 완전 용의주도한 전략가가 아닌가. 그런 줄도 모르고 사랑받는 공주님 취급을 했으니, 제 행색이 우스워 지는 느낌이였다.

카밀라는 그런 제이홉을 보며 애써 표정을 갈무리했다. 카르시아가 카밀라의 몸을 차지했다는 걸 모르게 하기위해, 나름 치밀하게 짠 스토리텔링이였는데 보기좋게 믿어버린 마탑주에게 웃음이 날뻔 했던 것이였다. 이 몸의 ‘진짜’ 주인인 죽은 카밀라에게 미안하지만 아직은 들켜선 안 되었다. 복수를 위해서라도. 혼란스러운 마음을 정리한 제이홉은 얼마안가 건너편에 있는 소파에 아까처럼 나란히 앉았다. 여유롭게 차를 입가에 가져다댄 카밀라는 느슨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서, 나를 부른 이유가 뭡니까.”

“내 마력 때문이야.”

“…충분히, 저보다 강하신데 문제가 있습니까?.”

“풉, 강하다고 전부가 아니지-. 네 눈에도 보이잖아?, 내 마력이 비정상적인걸?.”





하지만 마력이 줄어드는 기색도 없고, 카밀라의 얼굴도 어딘가 아파보이는 것도 아니였다. 비정상적인 흐름이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상관없지 않나?. 라고 생각하자 카밀라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꼬았던 다리를 풀고 느릿하게 상체를 숙이며 턱을 괴었다.





“그게 문제가 아닌걸.”

“네?, 그럼…”

“마력이 봉인되었어.”





순간 속을 식히기 위해 찻잔을 입으로 가져다댄 제이홉이 풉- 하고 차를 뿜어낼뻔했다. 마력이 봉인되어있다니. 제 눈에 뻔히 일렁이는 마력들이보이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카밀라는 이번에도 눈 하나 깜빡이지않고 거짓말을 술술 내뱉었다.





“어릴때 부터 알 수 있었어. 지금 내가 자유자제로 쓸 수 있는 마력외에, 또 다른것이 봉인되어있다는 것을.”

“…그래서요?.”

“처음에 마력을 부모님께 숨겼을 때는- 능력이 궁금했지만 죽을까봐 봉인을 피했었지. 난 그들의 인형이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이라면 상황은 달라. 내 부모는 죽었고, 이젠 내가 에덴베르 공작가가주가 될테니까.”

“그래서, 그 봉인을 풀고 싶다?.”

“맞아.”





…봉인이라, 제이홉은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본디 봉인이라는 것은 잘 알아채기 쉽다. 그 상대가 강하면강할수록 말이다. 그렇다면, 카밀라가 봉인을 당했다는 것은 거의 사실로 보아야한다는건데-. 이건 좀 특이 케이스이지 않나. 종종 마력 보유자들끼리 서로에게 자격지심을 가져 상대에게 봉인을 거는경우가 있긴한데, 그건 일반 마력 보유자들을 말하는 것이고… 카밀라는 완전 예외 상황이였다. 마력도 마탑주인 자신보다 월등히 강하고, 무엇보다 이런 케이스는 특이하지 않은가. 이건 제국, 아니 전 세계를 뒤져도 다시는 나오지 않을 케이스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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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고서를 뒤져보며 조사를 해볼 수는 있겠지만, 봉인을 풀 수 있다고 장담은 하지 못합니다.”

“왜지?.”

“공녀님은 특이 케이스이지 않습니까. 지금껏 여러 마력 보유자들의 봉인을 풀어왔지만, 그들 전부다 저보다 약한 이들이였으니까요.”

“…그런가”

“하지만, 마계에 가보면 무엇이 있을지도 모르죠. 저는 아시다싶이 ‘반마’니 마계 출입이 자유롭습니다. 그곳에 있는 고서도 한번 찾아보죠.”





조금이나마 희망이 보이자 카밀라는 속으로 안심했다. 참 아이러니 했다.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 때는 이렇게 소중한지 몰랐는데, 막상 없어지니 그 힘이 간절하다니… 제 자신이 참 이중인격자로 느껴졌으나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자신이 죽는 순간, 유일하게 눈물을 흘려준 태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고맙네. 보상은 나중에 두둑히 하지.”

“됐습니다. 저도 연구할 것이 늘어났으니, 제 입장에서도 좋은 기회죠.”





곧바로 연구를 돌입하기 위해 소파에서 일어난 제이홉은 연구에 대한 중간점검 날짜부터 잡기로 했다. 워낙 특이 케이스이다 보니 손쉽게 찾아질 것이 아니였기에, 그래도 기간이 오래걸릴 것을 감안해야 했다. 그때,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저기 다음 황실 무도회때가 어떻습니까?.”

“…뭐?.”

“중간점검 말입니다. 지금부터 그때까지 기간도 넉넉하고, 모든 귀족이 모이는 자리이니 그렇게 눈에 띄지도 않을 것이고요.”





…황실 무도회. 그럼 당연히 하인스도 황제니까 그 자리에 나올 것이였다. 생각만해도 심장이 빨리 뛰었다. 분노와 증오로 얼룩진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니까. 치맛단 위로 새하얗고 가녀린 손이 드레스를 주름지게만들었다. 그때가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인스 그 개새끼를 죽일 수 있는 기회 말이다.





“공녀님?.”

“… …”

“공녀?, 에덴베르 공녀!.”

“어, 어?…”

“중요한 얘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 그래, 황실 무도회날로 하도록 하지.”





부모의 죽음 이후로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이 힘들어서 생각한 제이홉은, 농담조로 말했다. ‘정 힘드시면, 제가 친밀하게 에스코트를 해드리던가요-.’ 그제서야 능글맞은 어투에 웃음을 터트리게 된 카밀라는 입 언저리에 손을 가져다대며 웃었다.





“그럼 뷔가 가만히 두지 않을 걸?.”

“…뷔?. 아, 아까부터 묻고싶었던 건데. 프로메테우스 공작과는 무슨 사이입니까?.”





의미심장하게 입꼬리를 늘리던 카밀라는 단 한 문장으로 제이홉을 돌아서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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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정- 궁금하면, 황실 무도회까지 열심히 연구해 와. 그럼 그때 알려줄게.”





정말 피도 눈물도 정도 없는, 단호박같은 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