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나는 여름을 좋아했다. 내 기억으로는 아마 그날은 전혀 특별하지 않았다. 평소와 같이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갔고 달달 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바로 아래에서 옆자리 친구와 낙서도 하고 장난도 치며 수업을 들었다. 찌는듯한 더위로 온몸이 뜨거워져 정신이 좀 없었던 것 같기도 했다. 학교가 끝나자 한 손엔 소다맛 아이스크림을 들고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었다. 평소에도 자주 갔던 학교 앞 사거리, 그 익숙한 노래방에서 그 애를 처음 만났다. 이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지만 어디에도 없는 우리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노래방은 진절머리가 나도록 싫었다. 그럼에도 한 달에 3번씩은 노래방에 갔었다. 함께 다니는 친구들이 말하기를 그 학교 앞 사거리 노래방 아르바이트생이 엄청 잘생겼다나 뭐라나. 난 잘 모르겠던데. 양옆에선 친구들이 정신없이 손바닥만 한 손거울을 들어 앞머리를 정리하느라 바빴다. 오른쪽에 있는 지우가 내 눈빛을 의식했는지 고개를 돌려 내게 물었다.
“앞머리 괜찮은 것 같아?”
심각한 표정으로 묻자 나는 끄덕였다. 여름이라서 앞머리 맨날 떡져, 그냥 아예 기를까? 투덜거리며 자신의 앞머리를 쉴 새 없이 만져댔다.
자주 가는 그 노래방은 3번 방이 가장 컸다. 학교 끝나자마자 빠르게 와서 그런지 역시나 한산했다. 조금만 늦게 들어와도 그 유명한 노래방 아르바이트생 때문에 자리싸움이 치열하기 때문에 언제나 노래방으로 갈 때는 뛰어와서 땀이 났었다. 평소처럼 3번 방에 들어가 나는 소파 구석 자리를 차지했다. 미니 선풍기를 얼굴 바로 앞에 들고 잠시나마 시원함을 만끽했다. 친구들은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내려놓고 노래 예약을 하느라 바빴다. 피곤하게들 산다. 매번 서비스도 주고 시간도 남아도는데 저렇게 호들갑 떨 이유가 있나. 더워서 그런가, 조금 예민해진 것 같다.
“야. 발라드 먼저 부를까, 여돌 노래 먼저 부를까.”
“당연히 여돌 노래지, 원래 첫 곡은 여돌 노래가 국룰인 거 몰라?”
얼굴이 빨개지도록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 친구들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며 박수도 치고 또 누군가의 음 이탈에 한참을 웃기도 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여자 아이돌 노래를 다 부르고 이제 발라드를 부를 차례가 왔을 때였다. 그때, 문에 있는 불투명한 유리창에 검은 형체들이 보였다. 똑. 똑. 노크를 하더니 문이 살짝 열렸다.
“진짜 미안한데 같이 놀아도 되냐. 여기 방 벌써 다 찼어.”
옆 반, 나대는 걸로 유명한 7반 남자 애가 불쌍한 표정 하고 물었다. 남자라면 누구든 좋아 죽는 그 나이대 여자애들은 다 똑같았다. 지우는 내심 좋지만 고민하는 것처럼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못 내기는 척 빨개진 얼굴로 대답했다. 우린 상관없어. 다른 친구들도 신경 안 쓰는 척 괜히 애먼 노래방 리모컨만 만지작거렸다. 친구들이 이렇게까지 부끄러워하고 쑥스러워하는 이유는 아마 옆반, 7반에 잘생긴 애들이 많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허락을 받은 7반 남자애들은 대 여섯 명이 우르르 들어왔다.
별생각 없이 가만히 있다가 시선을 딱 돌리는 순간, 마지막에 들어오는 남자 애와 눈이 마주쳤다. 우주 같았다. 동그랗고 큰 눈에서 그 짧은 순간에 우주를 봐버린 것 같았다. 온몸을 도는 피가 찌릿거리며 손끝, 발끝은 계속 자극했다. 난 바로 눈을 피해버렸는데 그 애는 눈을 피하지 않았는지 계속 시선이 느껴졌다. 갑자기 속도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와 전정국도 왔네. 하이.”
“안녕.”
지우가 인사를 하자 그제서야 그 남자 애도 인사를 하며 시선을 옮겼다. 나와 눈이 마주쳤던 남자 애의 이름은 전정국인 것 같았다. 전정국. 옆 반이라 그런가 많이 들어봤던 이름 같기도 한데 저런 애가 우리 학교에 있었나. 주변은 고음을 내려고 인상을 쓰는 남자 애들이 요란하게 움직였고 친구들을 얼굴이 빨개지도록 노래를 부르는 그들을 보고 큰 소리로 웃었다. 분명 그렇게 시끄러운 상황이었는데도 내 신경은 온통 전정국에게 가있었다. 평소였음 이미 귀를 막고도 남을 소음들을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큰 눈을 천천히 깜박인다. 검은 눈동자에 노래방 화면에 나오는 화려한 불빛들이 비춰 보였다. 웃긴 상황에는 입을 가리고 사르르 웃다가 진지한 상황에서는 안 그래도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떠서 친구들을 바라본다. 와. 사람이 뭐 저렇게 생겼지. 대놓고 볼 수는 없어서 흘깃 쳐다보고 다시 고개 숙이고를 계속 반복했다.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날 쳐다볼까 봐 겁나고 시선이 자동으로 그 애에게 간다. 이런 걸 보고 사람들이 첫눈에 반했다고 하는 걸까.
“야 전정국 너도 불러야지. 얘들아 얘가 우리 중에 노래 제일 잘 부름. 레알.”
“아 맞아, 정국이가 노래 잘 한댔지?”
정신을 차려보니까 7반 남자애들이 정국을 부추기고 있었다. 정국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곤란하다는 듯 손을 만지작거렸다. 약간 부끄러운데, 나 꼭 해야 돼? 해맑게 웃으며 정국의 친구들에게 묻자 그 친구들은 그걸 말이라고 하냐고 무조건 부르라고 아예 정국을 힘으로 일으켜 세웠다. 억지로 일어난 정국은 잠시 고민하더니 노래방 리모컨을 들고 한 글자씩 천천히 입력했다. 오, 전정국 뭔 노래 부를 거냐. 야 다들 기대해, 얘 존나 잘 부름. 다들 집중하며 노래방 화면만 바라보던 그때, 정국의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김태형? 김태형한테서 전화 왔는데? 옆에 있던 지우가 정국의 핸드폰을 들더니 발신자의 이름을 정국이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읽었다. 그러자 정국은 고개를 핸드폰이 있는 쪽으로 휙 돌리더니.
“김태형한테서 왔다고? 잠시만.”
핸드폰을 들고 다급하게 3번 방 밖으로 나갔다. 정국이 나가고 분위기가 약간 어색해지자 남아있는 남자애들은 애써 분위기를 띄우려고 쇼미 더 머니 최근에 나온 곡을 골라 열심히 타령 같은 랩을 불렀다. 한 곡이 끝날 때까지 정국은 다시 방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김태형. 김태형, 내가 이름도 기억하고 얼굴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같은 학교 남자 애다. 사실 모를 수가 없었다. 우리 학교에선 너무나도 유명했기에. 일진은 아닌데 사고를 자주 치고 다녀서 옆 반에서 교무실로 불려가는 건 자주 봤었다. 얼굴이 정말 잘생겼는데 그 잘생긴 얼굴보다 걔가 친 크고 작은 사고들로 더 유명한 애였다. 한참을 김태형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세게 열리더니.
“미안. 나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
“어, 그럴 줄 알았다. 잘 가.”
“응. 오늘 재밌었어, 내일 봐.”
정국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빠르게 자기가 할 말만 하고 그대로 다시 나갔다. 오래 보고 싶었는데. 하필 전화가 와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아 괜히 정국이 방금 전까지 있었던 자리를 보는데 초록색 작은 물체가 눈에 띄었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자세히 확인하니 초록색 네잎클로버 열쇠고리였다. 뭐지. 이 촌스러운 열쇠고리는. 전정국이 놓고 간 건가. 집중해서 열쇠고리를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앞에 있는 친구들이 벌써 일어서서 나갈 준비를 했다.
“이제 갈까? 정국이도 갔고, 그래도 오래 있었다.”
“아쉽네. 너네 전정국이 노래 얼마나 잘하는지 모르지? 걔는 진짜 내가 태어나서 실제로 본 사람 중에 제일 잘 부름.”
“헐 진짜? 아쉽다, 들어보고 싶었는데…”
“김태형한테 전화 오면 그때 뭘 하고 있든 무조건 바로 걔한테 간다고 보면 돼. 항상 그러거든.”
“엥, 왜? 둘이 무슨 사이길래.”
“그냥 친구. 초딩 때부터 친했대. 아주 둘이 끔찍이 아끼나 보지. 대단한 우정이셔.”
우와. 잘생긴 애들끼리 친하네. 잘생기면 뭐 하냐, 김태형 걔는 왜 그러고 사는지 모르겠어. 전정국이 불쌍하지, 맨날 끌려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둘이 같이 다녀서 좋을 게 없어 보이는데 항상 붙어있는 거 이해 안 됨, 안 그러냐. 그런 것 같긴 해. 정국의 친구들끼리 하는 얘기들을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나에겐 전정국은 오늘 처음 본 사람이지만 벌써 그 애의 많은 것들을 알게 된 기분이었다. 어쩌면 들었으면 안되는 얘기들까지. 친구들이 한 명씩 밖으로 나갔다. 생각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가, 야 여주야 나가자. 옆에 있던 지우가 말을 걸어 겨우 몸을 일으켜 천천히 방 밖으로 나갔다. 한 손에는 정국이 놓고 간 열쇠고리를 들고서.
지하에 있는 노래방에서 계단을 올라 몇 시간 만에 지상 위로 올라왔다. 여전히 태양은 뜨거웠고 뜨거운 공기는 기분이 나쁘도록 무거웠다. 네잎클로버 열쇠고리를 치마 주머니 깊은 곳으로 넣었다. 전정국의 얼굴이 다시 생각났다. 환장할 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