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는 쓰레기통에

7화 - 했다

“그만 좀 쳐다보지. 뚫리겠는데.”

 

 

상원이 마른행주로 컵을 닦으며 다가왔다. 잠시 마주쳤던 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손에 든 컵을 향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턱을 괬다.

 

 

“널 안 쳐다보는 여자도 있나?”

“넌 아니지.”

 

 

비실비실 비꼬듯 말했더니 칼같이 대답이 돌아왔다. 또 실소가 흘러나왔다. 평소였다면 재수 없다며 인상부터 썼을 텐데 오늘은 이상하게 웃음이 자꾸 났다.

 

아, 진짜 취했나 봐.

 

한 잔밖에 안 마신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정신을 놓을 정도로 많이 마신 것도 아니었다. 김준서와 있을 때 평소보다 빠르게 잔을 비운 탓인가. 아니면 술이 아니라 다른 것 때문인가. 나는 빈 잔을 손에 쥐곤 빙글빙글 돌리며 장난을 쳤다. 시선은 잔에 고정된 채로 입을 열었다.

 

 

“왜. 내가 너한테 관심 주니까 싫어?”

 

 

상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천천히 컵을 돌려가며 남은 물기만 닦았다. 꼭 들리지 않은 척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내 앞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멀리서 손님이 부르면 갈 법도 한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바 안은 조금씩 한산해지고 있었다.

 

몇몇 테이블에서는 계산을 마친 손님들이 겉옷을 챙겼고, 다른 직원은 비어 있는 테이블 위의 잔을 치우기 시작했다. 잔잔하게 흐르던 클래식 음악도 아까보다 작아진 것 같았다. 그 사이 상원은 컵 하나를 다 닦고도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얘는 말하기 싫다면서 왜 안 가지.

그런 생각이 들자 괜한 자만심이 생겼다. 아니, 용기였나. 혹은 착각인가.

 

이상원이 정말 내가 신경 쓰여서 이러는 건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아까 김준서가 가까이 붙었을 때부터 계속 이쪽을 보던 것도, 굳이 다가와 취향이 특이하다고 시비를 건 것도. 모두 내가 착각한 게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나는 잔을 이리저리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걔 여자친구 있어.”

“근데.”

“네가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컵을 닦던 손이 멈췄다. 컵만 향해 있던 눈동자가 천천히 올라왔다. 상원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표정은 무심했지만 아까처럼 바로 받아치지는 못했다. 봐. 궁금했잖아.

 

 

“……착각이야.”

“그럼 티나 내지 말든가.”

“내가 언제.”

 

 

퉁명한 대답에 확신이 조금 흐려졌다.

내가 잘못 짚은 건가. 그냥 시끄러운 손님이라 쳐다본 걸 수도 있었다. 김준서가 바짝 붙어 말했으니 무슨 사고라도 칠까 지켜본 걸지도 모른다. 애초에 이상원은 여자가 끊이지 않는 놈이었다. 굳이 나한테 질투할 이유가 있나.

 

하지만 아니라고 하기엔 얼굴이 너무 일그러졌었지. 그것만은 착각이 아니었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거라는 내 말에 손에 쥔 행주까지 내던지듯 내려놓고 돌아갔다. 내가 노골적으로 바라봐도 끝까지 시선을 피했고, 김준서가 여자친구 이야기를 할 때는 하필 멀리 떨어져 있었다.

 

모르겠다. 대화를 나눌수록 더 알쏭달쏭해.

 

이상원은 세상 모든 여자를 귀찮아하는 것처럼 굴면서, 내겐 먼저 다가온다. 내 소문을 묻고 믿는다는 말을 하기 위해 거짓말까지 한다. 바에서는 내숭 떨기 싫다며 내 앞에서만 표정을 풀었다.

그러면서 정작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면 내가 먼저 관심을 보인다는 식으로 비꼬았다. 대체 어느 쪽이 진짜야.

 

 

“야.”

“…….”

“질투 났냐?”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아, 시발. 이게 무슨 질문이야. 초딩도 아니고.

 

술기운에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었다. 상원의 대답을 기다리는 몇 초가 지나치게 길게 느껴졌다. 차라리 또 착각이라며 비웃었으면 좋겠는데, 이번에는 입도 열지 않았다.

 

손에 들고 있던 컵만 내려다보는 얼굴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나는 뒤늦게 시선을 피했다.

 

 

“아니다. 못 들은 걸로 해.”

 

 

빈 잔을 밀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더 앉아 있다가는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다. 계산이고 뭐고 일단 화장실이라도 가서 정신부터 차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 순간 바 건너편에서 뻗어 나온 손이 내 어깨를 꽉 붙잡았다. 중심을 잃었지만, 흔들릴 뿐 곧 자세를 잡았다.

 

 

“궁금해?”

 

 

일어나려던 몸이 어정쩡하게 멈췄다.

 

 

“뭐?”

 

 

상원이 닦고 있던 컵을 옆에 내려놓았다. 내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이상원 쪽으로 살짝 끌어당겨졌다. 곧 속삭이듯 이상원이 말을 이었다.

 

 

“나는 궁금한데.”

“…….”

“네가 왜 물어봤는지.”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이 천천히 떨어졌다. 그런데도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상원이 바 테이블에 한쪽 손을 짚으며 몸을 살짝 숙였다. 조명 아래로 얼굴이 가까워졌다. 늘 내려다보기만 하던 눈이 지금은 정면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왜 물어봤을까. 나도 몰라서 물어본 건데.

 

단순히 골려주고 싶었던 건지, 정말 질투하기를 바랐던 건지 알 수 없었다. 김준서가 여자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말을 이상원이 듣지 못한 게 못내 신경 쓰였다. 오해하게 놔두면 그만인데 굳이 여기에 남아 계속 쳐다봤다. 이상원이 다가와 묻기를 기다리기까지 했다.

 

왜 그랬을까.

 

시선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갔다. 흰 셔츠 위로 단정하게 묶인 넥타이, 셔츠 깃 사이로 드러난 목선. 마른 침을 삼킬 때마다 움직이는 목젖. 조금 전 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던 입술. 마지막으로 다시 눈을 마주쳤다.

 

상원은 피하지 않았다. 아까와 달리 웃지도 않았다. 그 눈을 마주 보고 있으니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었다. 취해서 그런가. 뺨이 뜨거워지고 손끝까지 열이 도는 기분이었다.

 

그래. 오늘은 정말 빨리 취했다. 그러니까 이건 취기 오른 행동이고, 치기 어린 행동이었다. 내일 술이 깨면 후회할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오늘이 떠올라 아예 교양 수업을 빼버리고 싶을 수도 있다.

 

 

나는 손을 뻗어 상원의 넥타이를 잡았다. 손가락에 매끄러운 천이 감겼다. 상원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대로 힘을 주어 끌어당겼다. 바 테이블 너머에 있던 몸이 앞으로 확 기울었다. 놀라 커진 눈이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곧 입술이 맞닿았다.

 

상원의 손이 바 테이블을 짚었다. 갑작스럽게 기울어진 몸을 지탱하느라 손바닥이 테이블 위에서 미끄러졌다. 잔 하나가 살짝 흔들리며 작은 소리를 냈다. 한 번 닿은 입술은 바로 떨어지지 않았다.

 

상원은 처음엔 그대로 굳어 있었다. 밀어내지도, 다가오지도 않은 채 숨까지 멈춘 사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더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이 새었다. 그제야 상원의 고개가 아주 조금 기울어졌다. 맞닿은 입술이 움직이고, 벌어진 틈으로 혀가 얽혔다. 희미하게 술의 향이 올라온다. 달큰하면서 쓰디쓴, 내가 늘 마시던 술의 맛이었다. 평소보다 단맛이 훨씬 진한 채로. 입안에 남은 알코올 향과 숨이 뒤섞여 머릿속이 아찔해졌다.

 

손님들의 말소리와 음악은 멀어지고, 바로 앞에서 뒤엉키는 숨소리만 선명하게 들렸다. 오늘 내가 앉은 자리는 구석진 자리. 조명이 제대로 닿지 않아, 어두운 자리. 남들이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찾기 급급했다. 이따금 혀가 섞이는 끈적이는 소리가, 잇새로 몰아쉬는 거친 숨이, 아랫 입술을 빨며 나는 진득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빠르게 술잔과 이야기 소리에 묻혔다.

 

 

감은 눈을 뜨면서,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상원의 얼굴이 보였다. 늘 여유롭고 재수 없던 낯이 보기 좋게 어그러져 있었다. 눈은 여전히 나를 향한 채였고, 숨이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귀부터 뺨까지 붉게 물든 게 보였다. 조명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목까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얘도 이런 얼굴을 하는구나. 묘한 만족감이 들었다. 더 보고 싶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넥타이는 아직도 내 손 안에 있었고, 나는 피식 웃으며 손의 힘을 풀어 넥타이를 놓았다. 힘없이 떨어진 넥타이가 상원의 가슴팍 위에서 흔들렸다.

 

 

“야, 너 언제 끝나냐?”

 

 

입가를 손등으로 훔치며 물어보자, 상원의 입술이 뒤늦게 움직였다.

 

 

“이런 미친…….”

 

 

욕을 하면서도 물러나지는 않았다. 여전히 바 테이블 위에 손을 짚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잔을 잡으려다가 비어 있는 걸 확인하고 다시 내려놓았다. 손끝으로 잔의 테두리를 천천히 훑었다.

 

 

“같이 놀까.”

 

 

상원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내가 한 말을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하는 얼굴이었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봤다.

흥미가 생겼다는 사실을, 이제는 인정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내가 반했으면, 유턴은 없다. 씩 웃으며 물었다.

 

 

“왜.”

“…….”

“나랑 놀기 싫어?”

 

 

상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흐트러진 넥타이를 바로잡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손등으로 입가를 가렸다. 고개를 살짝 숙여도 붉어진 얼굴은 숨겨지지 않았다.

 

잠시 후 다른 테이블에서 상원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상원은 그제야 몸을 바로 세웠다. 나는 그가 떠나기 전에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입술 근처를 엄지로 훑었다. 내 립스틱이 묻어있는 까닭이었다. 입술에 손이 닿을때, 이상원은 흠칫 어깨를 떨었다. 귀여운 구석이 있네.

 

 

“술 한 잔 더. 같은걸로.”

 

 

대답 대신 나를 한 번 빤히 내려다보더니 닦던 컵과 행주를 챙겼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평소보다 조금 빨랐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잔에 남은 얼음을 입에 넣었다.

차가운 얼음이 혀끝에서 금세 녹았다. 그런데 입술에 남은 열기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

 

 

 

상원은 손님이 주문한 술을 선반에서 꺼내면서도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익숙한 병을 한 번 잘못 집었다가 내려놓고, 셰이커를 찾으면서도 괜히 입가를 손등으로 문질렀다. 닿았던 입술의 감촉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힐끗 고개를 돌리자 날 괴롭힌 여자는 아까와 똑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눈이 마주치자 피하지도 않고 입꼬리를 올렸다.

 

가십의 중심에 서 있는 여자.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소문이 붙고, 누가 뭐라고 하든 해명 한마디 하지 않는 여자. 가까이하면 피곤할 게 뻔해서 처음부터 모르는 척하려 했던 여자.

 

결국 그 소문의 중심에, 나까지 끌어들인 여자.

 

상원은 다시 입가를 팔로 가렸다. 애써 숙인 얼굴은 여전히 붉었다. 이런 미친 여자를 다 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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