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권태기

남들의 이야기였다. 권태기라는 거.

"김여주! 나 너 보고싶어 죽는줄 알았잖아..."

우린 못본 만큼 애정표현이 늘어있었고, 그럴때마다 성우와 우진이는 표정을 찡그리곤 했다.

"와... 이산가족보다 더 애틋해.. 눈물난다 눈물 나.."

너와 같이 먹는 점심, 같이 걷는 산책.

모든 게 그대로였고, 모든게 완벽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건 아마 너와 학식을 먹으러 간 그날.

"오빠! 안녕하세요!"

친한척 너의 마즌편에 앉던 한 여자애.

"어...안녕."

듣자하니 너와 같은 연극영화과에 1학년이었다.

너에게 오빠라는 호칭하며, 살가운척 웃는 미소하며, 애교섞인 목소리 톤까지.

단 하나도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그 애는 그날 이후, 자꾸만 우리 앞에 나타났다.

"너무 신경쓰지 마. 곧 떨어지겠지. 그나저나 이번 주말에 나랑 데이트나 가시죠 여주씨?"

신경이 곤두서는 나에 비해, 너는 아무렇지 않아보였다.

그 여자애가 나타날때면, 너는 내 손을 꽉 잡아주었다. 그리고 단단히 못을 박았지.

"미안한데.. 나 너 못봐줘. 그러니까 그만해."

그말과 함께 나와 꼭잡은 손을 그 애의 눈앞에 흔들어보이곤 하던 너.

너에게는 적응된 일상같았다. 나도 이젠 그럴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적응이 되질 않는 일이었다.

하루는,

"자!"

너에게 마스크를 사다주며,

넌 이거 쓰고다녀. 내가 귀찮아서 살지를 못하겠다 정말..

그말을 한적이 있다. 그때 너는 마스크를 쓰더니,

"어쩔수 없어. 봐. 이래도 잘생겼는걸?"

하고 장난스레 받아쳤다.

그래서 내가 삐진척이라도 하면,

"삐졌어?"

바로 강아지처럼 뽀뽀를 해대며 기분을 풀어주던 너다.

그래 뭐, 세상 제일 철벽남이야. 걱정말자.

그말을 결심한지 딱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어느 순간부터 너와 그 애는 친한 선후배 관계가 되어 있었다.

내 눈에는 여전히 여우로 보이는데,

너는 그냥 후배라고만 했다.

순 멍청이. 그 말을 믿어?

너의 귀에 딱지가 생길듯, 걔는 싫어. 걔랑 점심 먹지마. 걔랑 얘기도 하지마!

라고 말해도, 너는 나더러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그냥 후배라는 말과, 같은 관데 어떻게 안마주치냐는 말만 반복했다.

솔직히, 좀 속상했던 건 사실이다.

그래서 소현이를 불러 대성통곡을 했다.

의건이가 달라졌다며, 걔가 꼬리치는데 넘어가면 어쩌냐며.

그날은 네가 허겁지겁 달려와 우는 나를 또 업고, 자취방까지 데려다 주며

"말했잖아. 나한테 여자는 네뿐이라고."

내가 좋아하던 너의 말을 매번 해주고 갔다.

그리고, 그 1학년. 이다인.

그 아이가 내게 와서 말했다.

"선배. 선배되게 매력없어요. 긴장좀 해야 될걸요?

난 자신 있는데."

매력은 없더래도 힘은 있는데. 한대 쥐어 박으려다 참았다. 나도 자신있었다. 의건이는 세상 제일 멋지고 듬직한 남자친구였으니까.

그런데 그날 오후.

나와 점심약속이 있던 의건이는 갑작스레 약속에 못오겠다고 연락했고, 나는 할 수 없이 우진이와 학식을 먹기로했다.

학식을 먹다 본건, 이다인과 강의건.

믿을 수 없었지만, 사실이었던 그 상황.

나는 끼어들지도 못하고 웃으며 대화하고 있는 둘의 모습을 그저 바라만 봤다.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밥은 들어가질 않았고.

결국 그냥 밖으로 나와버렸다.

그날 저녁.

의건이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했고, 너는 내 연락을 읽지 않았다.

전화도 문자도 답이 없던 너.

나는 할수없이 성우에게 의건이의 행방을 물었고,

내가 알게된 건, 너와 이다인. 둘이서 어디론가 가버렸다는 말이었다.

그 상황에서도 참 한심한 난, 너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렇게 그날 밤이 지나갔다.

다음날에 본 너의 모습은 또 이다인, 그 아이와 함께였다.

만나자 마자 난 너에게 날이 선 말들을 쏘아붙혔다.

어쩌면 긴장 때문이었다. 단한번도 변한적 없던 우리가, 여느 커플처럼 권태기라는 걸 겪을까봐.

"강의건. 너 왜 내 연락 안받아?"

"아, 그게 내...."

"어머 선배! 우리 또만났네요! 어제는 의건이 오빠랑 저랑 술한잔 한다고 그랬어요~ 별로 신경 안쓰셨을 테지만 그렇다구요."

의건이에게 물었는데, 의건이의 말은 이다인의 말에 묻혀버렸다. 다 필요없고. 그러니까, 쟤랑 술마신다고 나한테 연락을 못했다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오늘 5시에 지난번에 갔던 카페에서 봐. 얘기 좀 해."

우리가 나눈 대화 중 가장 차가운 대화였다.

"여주야, 나랑 밥먹으러 갈까?"

"그래요 선배."

요즘은 너랑 있는 시간보다 민현 선배랑 있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오늘은 의건이와 점심 약속도 안했다. 아무말 없는 거보니 또 이다인이랑 먹겠지. 뭐 어때. 무슨일이 있는 거겠지. 너무 예민하지 말자.

난 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 너는 아무런 연락 조차 하지않았다.

민현선배와 밥을 먹는 동안에도 온통 네생각 뿐이었다.

5시에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무슨말을 해야할까. 그 고민이 가장 컸다.

"저기... 여주야..?"

"..아..! 선배.. 죄송해요.. 무슨 얘기 중이었죠..?"

내게 지금 이 순간 중요한건 너뿐이었다.

너의 이야기를 듣고싶었다. 분명, 연락을 못 한 이유도, 어제 이다인과 함께있었던 이유도. 분명히 있을거라고 생각했으니까.

5시가 되기만을 기다리다 좀 빠른시간에 카페에 와버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잔을 시켜놓고 너를 기다리며, 울퉁불퉁해진 마음을 가다듬었다.

너에게 화내고 싶지 않았으니까. 더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해결하고, 이번 주말 아쿠아리움을 같이가자고 말하고 싶었다.

딸랑-

종소리와 함께 들어선 네 모습에 나는 반갑게 일어나 손을 들었다.

그리고 본 건, 너의 뒤에 따라 온 이다인.

열심히 가다듬은 마음이 다시 울긋불긋해 졌고,

나를향해 웃지 않는 너의 얼굴에 다시한번 마음 저 깊숙히가 아파왔다.

"여주..야..."

"혼자 오라는 뜻이었는데..."

"그게.. 사실은...!"

"사이.. 좋아보이네."

"

눈에 이유모를 눈물이 고였다.

울고싶지 않은데, 왠지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여주야 내 말좀...."

"의건아. 그냥.. 오지 말지 그랬어."

감정이 너무 벅차서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너를 믿으면서도 이렇게 불안해하는 나와, 나와의 약속까지 저 껌딱지를 데려온 너. 둘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 그냥 갈래 의건아. 커피는.. 둘이 마시면 되겠다."

그리고 돌아섰다. 머릿속에서도 정리가 되지 않은 것들이, 나를 더 불안함 속으로 빨아들이는 듯 했다.

얼른 벗어나서 내 감정을 정리해야, 너와 대화할 수 있을 것같았다.

돌아서서 한걸음 내딛는 찰나,

탁-

"김여주 내말좀 제발...!"

"난 못 해!"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지 붙잡은 너에게, 내 속마음이 나와버렸다. 그와 동시에 아슬히 걸쳐있던 눈물 한 방울이 차마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내렸고, 그래도 난 울음을 꾹참았다.

"너는 익숙할지 몰라도! 너는 일상일지 몰라도!

난 너와 만나는 매순간 불안해.

매일 마음 졸이며 너 붙잡고 있는 거.. 너무 아파 의건아."

"

너는 내 속마음에 당황한건지, 놀란건지.

나를 바라보며 아무말도 잇지 못했고, 나는 고개를 떨구곤,

"나중에.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의건아.

오늘 밤에.. 자취방 앞에서 만나.."

그리곤 힘이 풀린 의건이의 손을 뿌리치고 나왔다.

카페를 벗어나며, 소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랑 술마실래?"

그렇게 못한다는 술을 다섯병이나 사들고 집으로 갔다. 전화를 넘어서도 느껴졌던 내 물기어린 목소리에 소현이는 급하게 달려왔고, 저번처럼 나는 소현이에게 다 털어놓으며 취했다.

"난 믿어.. 믿는데에.. 그래도 그게.. 막 마음대로 안돼.."

"의건이는 그럴 애 아니야..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구... 근데 왜.. 여기가 이리 아프지..?"

"너무.. 너무 오래 견뎌와서 그런가봐.. 그냥 솔직하게 투정 부릴걸 그랬어.. 어른스러운척.. 안할 걸 그랬어..."

자기 가슴을 퍽퍽 때려대며 술주정을 부리는 나를 보고있자니, 소현이도 마음이 안좋았을 것이다.

그래도 꾿꾿이 나를 위로해 주던 소현이.

그렇기에 난 내 마음을 더 단단히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달랑 소주 반병을 마시고 난 골아떨어졌다.

마음 단단히 먹자. 넌 의건이 믿잖아. 의건이는 그런 애 아니잖아. 그럴리 없는거 누구보다 잘 알잖아 김여주..

이말만 되새기면서 말이다.

눈을 떴을 땐 이미 한밤중이었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는 순간 너와한 약속이 떠올랐다.

아.. 맞다..

12시를 조금 지난 시간.

급한마음에 오늘 입었던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네가 가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했지만, 때마침 보이는 너의 뒷모습.

"강의건"

조심히 너를 부르니, 너는 슬픈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여주야."

하고싶은 말이 많았는데 막상 너를 보니 또 할말을 잊었다. 어떤말을 먼저해야 할까..?

"미안해."

내가 무슨말을 할지 고민하다 들은 너의 말.

미안해..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네가 왜 미안해..?

왜 사과를 해..?

나에게 사과를 하는 게 꼭 잘못한게 있다는 말로 들렸다.

정리된 줄 알았던 감정들이 또 다시 들쑤시다가 시큰히 아리는 마음에 눈물이 고여 너의 눈와 맞출수 없었다.

그렇게 떨군 고개와 함께 내 눈에 들어온건,

너의 주머니에 떨어질랑 말랑 걸터있는

처음보는 여자의 립스틱.

"하..."

난 보나마나 이다인꺼라는걸 알았다.

"의건아"

"..응..?"

확인해보려 너의 주머니를 툭 건들이면,

탁-

소리를 내며 바닥을 나뒹구는 선명한 색의 립스틱.

난 저런거 안쓰는데..

"우리 당분간 생각 좀 하자."

"

"연락.. 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