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102화. 휴전



"으...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에 눈을 떴다.

머리는 깨질 듯했고, 몸도 천근만근이었다.




침대에 앉아 어젯밤 일을

곰곰이 되짚었다.





"일어났어요?

속은 괜찮아요?"





"어... 훈지 씨.

내가 어제 술을 많이 마셨어요?"





그는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내 손에 컵 하나를 쥐어 줬다.

한 모금 마셔 보니 꿀물이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같이 마신 미겔한테 물어봐요."





'아... 맞다.

퇴근하던 미겔을 만나 같이 술을 마셨었지.'





나는 황급히 훈지 씨를 따라 방을 나왔다.

그의 눈치를 살피며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훈지 씨..."

"내가 어제 술 마시고 뭐 실수한 건 없죠?"





"실수요?

길거리에서 웃고, 비틀거리고,

나한테 소리 지르고,

그리고...

다시는 요리하지 말라고 하고는 장렬히 전사했어요."






"내가요?

훈지 씨한테 소리를 질렀어요?

요리 얘기는 또 뭐에요?"





"내가 끓인 콩나물국은 다시는 먹기 싫다고,

앞으로 요리하지 말라고 한 거 기억 안나요?

혹시...

기억 안 나는 척 하는 거 아니에요?"





"훈지 씨... 혹시 나 놀리려고 지어낸 말 아니에요?"





"참...나...

내 요리 부심을 무참히 짓밟아놓고...

뭐라구요?

지어낸 말이라고요?"






'취중진담이라더니...

내가 술 취해서 진심을 말해 버렸구나...'





"훈지 씨...

내가 어젯밤에 무슨 이야기를 했든,
 
그건 내 진심이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혹시 상처주는 말을 했다면...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줘요. 제발..."





"평상시에 내 요리가 맛없다고

생각한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절대로!

나는 훈지 씨한테

요리를 전담으로 맡길까도 생각하고 있었어요."





"정말요?

아니... 근데 또 그러면 정아 씨 요리 실력이

늘질 않으니까..."





그의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긴... 훈지 씨 말 들어보니 또 맞는 말이기도 하다."

"와... 그런데 이건 다 뭐에요?"





식탁 위에는

햇반과, 3분 국, 김, 깻잎장아찌까지,

훈지 씨가 한국에서 챙겨 온 음식들로

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것들로 대충 차려 봤어요.

얼른 씻고 나와요."





"알겠어요. 훈지 씨!

빨리 씻고 나와서 우리 같이 아침 먹어요."




욕실에 가서 거울을 보니

메이크업이 지워져 있었다.




어젯밤 화장을 지우고 잔 기억은 없는데

의아했다.




상쾌한 기분으로 욕실을 나와

훈지 씨에게 물었다.





"훈지 씨, 나 어제 세수하고 잤어요?
 
기억이 안 나는데 메이크업이 다 지워져 있더라고요."





"내가 클렌징 티슈로 닦아 줬어요.

그냥 자면 뾰루지 날 수도 있고, 피부에 안 좋잖아요."





"아... 그랬구나!"




잠시 그를 바라보던 나는,

두 손으로 그의 뺨을 감싸고 뽀뽀를 했다.





우리는 언제 싸웠냐는 듯,

모처럼 한국 음식으로 기분 좋은 아침 식사를 했다.




"갑자기 왜 생각이 바뀐 거에요?" <103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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