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109화. 뜻밖의 부탁



스페인의 두 번째 집에서

첫 번째 아침을 맞이했다.




어젯밤 서로의 위시리스트를 확인하느라

늦게 잠든 탓에 피로가 가시질 않았다.




"훈지 씨~ 오늘 아침은 뭐에요?"




"어? 맞다! 내가 아침 담당이었지!

미안해요. 깜빡하고 있었어요."




"그럼... 오늘은 내가 토스트 만들게요.

참, 훈지 씨는 토스트파에요?

아님 샌드위치파에요?

훈지 씨가 좋아하는 걸로 할게요."




"음... 나는 토스트가 더 맛있어요."




"헐... 나랑 똑같아!!

이럴 때 입맛 취향이 은근히 중요한 거 알아요?"





훈지 씨는 신나서 내게 물었다.




"토스트에는 뭐가 더 좋아요?

우유 vs. 쥬스, 하나 둘 셋!"





"우유!!" "우유!!"





"와~~ 이거지!!"





"훈지 씨, 그 뿌듯한 표정은 뭐에요? 풉."




"정아 씨가 방금 이런 입맛 취향이

중요하다고 했잖아요.

하나 더 해볼까요?

비냉 vs 물냉?"




"비냉!!" "물냉!!"





"훈지 씨, 청소기 돌려요."





"네..."



훈지 씨는 가던 발길을 돌려 말했다.



"그런데 비냉이랑 물냉은

반반씩 나눠 먹는 게 국룰이에요."




"빙고!! 그거죠.

둘 다 똑같은 거 먹으면 그건 완전 최악이다."





이사 다음 날의 첫 끼는

토스트와 우유, 그리고 시리얼이었다.





"훈지 씨, 우리 이따

장 좀 보러 가야 할 것 같아요."





"여기선 차가 없으니 그게 좀 불편하긴 하네요."





"그 대신... 다른 장점이 많잖아요.

예를 들면...

우리 둘이 이렇게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거?"




"음. 그러네!!"


그가 활짝 웃어 보였다.





그 때 방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당연히 한국에서 온 전화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이미 끊겨 버렸다.




발신 번호를 보니

줄리앙의 번호였다.





"누구에요?"


설거지를 하던 훈지 씨가

큰 소리로 물었다.





"아..."



나는 잠시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잘 못 온 전화에요."





나는 통화 기록을 삭제하고

휴대폰을 무음 모드로 바꿨다.

괜히 훈지 씨가 보면

싫어할까 봐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왜 전화했지...

하다가 끊은 건 왜지...'





하지만 받지 못한 줄리앙의 전화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훈지 씨가 빨래감을 들고

세탁을 하러 간 사이,

나는 줄리앙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줄리앙, 나에요.

아까 전화를 했던데...

받으려고 하니 이미 끊겨서 못 받았어요."





"정아 씨."





"네."





"그게... 내가 전화했다가

괜히 당신을 신경쓰이게 하는 것 같아서

바로 끊었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무슨 일 있어요?"





"사실은... 내가 수술을 받게 됐어요."





"어디가 아픈 거에요?"





"심각한 건 아니고요.

예전에 다쳤던 곳 때문에 수술을 하게 됐어요."





"수술이요?"





"네... 그런데...

수술 당일에 보호자가 있어야 한대요.

사실은... 정아 씨한테 부탁하려고 전화 했었어요.

부모님 걱정하실까봐...

되도록이면 말씀드리고 싶지 않아서요."

 



"아... 네..."





"전화걸고 보니

괜히 정아 씨까지 번거롭게 하는 것 같아서

급하게 전화를 끊었어요."





"네... "





"정아 씨, 친구에게 부탁하면 돼요.

그러니까 신경쓰지 말아요."



줄리앙은 잠시 멈칫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의사가 수술할 때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설명하는데,

정아 씨가 내 옆에 있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가 너무 염치 없죠?"

 



"... 줄리앙."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도와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을 것 같아요. 미안해요."





".... 네. 알아요."





"수술 잘 받고요."





"고마워요."





"이만 끊을게요."





"정아 씨!"


그는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지난번 스페인에 가서 당신 봤을 때...

잠깐이지만 정말 좋았어요.

그다음 날까지 당신이 호텔로 와 줬으면 하고

많이 기다렸어요."





"줄리앙. 아프지 말고 건강 잘 챙겨요.

끊을게요."





그의 인사를 마저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아픈 사람한테 내가 너무 했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훈지 씨가 세탁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줄리앙의 전화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가 훈지 씨 때문에 힘들어 할 때

줄리앙이 내 옆에 있어 줬는데...'



'나한테 부탁하려고 전화하기까지

많이 망설였을 텐데...'



'어떻게 하지...'





그 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아 씨~

내가 오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딸기맛 아이스크림 사왔어요."





"훈지 씨.

나... 잠깐 파리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절대 안 된다고 난 분명히 얘기했어요."

<110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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