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루엘로 여행지를 정하고 나서
계획을 짜며 설레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행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김대표의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태형씨!
무슨 일이야?"
"어. 둘이 싸우진 않고 잘 지내고 있어?"
"뭐...싸우는 날도 있고,
화해도 하고...
그러고 있어."
"너희는 일년 다 채우고 들어 올 생각이야?"
"글쎄...
아직 그 생각까지는 안 해 봤는데..."
"나... 훈지랑 통화 좀 할 수 있을까?
일 때문에 할 얘기가 좀 있어서..."
'왜 나한테 전화해서 바꿔달라고 하지?
쉬고 있는 사람한테...
무슨 일 얘기를 하려는 거야...?'
나는 훈지 씨에게 휴대폰을 건네고
편하게 통화할 수 있도록 밖으로 나왔다.
잠시 후에 그도 따라 나왔다.
"김대표랑 무슨 이야기 했는지 물어봐도 돼요?"
"아... 그게...
대표님이 영화 이야기를 하셔서요."
"영화요?
훈지 씨가 찍을 영화 말하는 거에요?"
"네... 놓치기가 아깝다고 하셔서요.
일단 대본부터 받아보기로 했어요."
"아... 그런데..."
"그런데 뭐요?"
"아니에요."
나는 그 영화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훈지 씨가 이야기해 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에게 여행 이야기를 꺼냈다.
"테루엘로 가는 교통편이 좀 번거롭더라구요.
장거리이긴 하지만
차를 렌트해서 번갈아 운전하는 건 어때요?"
"와~ 그거 너무 낭만적이다.
로드 트립이잖아요!
시간은 어느 정도 걸리는 데요?"
"한... 7시간 정도 걸리는 거 같아요.
아침에 일찍 출발하면
테루엘에 오후쯤 도착하지 않을까요?"
"난 괜찮은데 정아 씨 힘들지 않겠어요?"
"나는... 사실 너무 기대돼요.
훈지 씨가 보여준 테루엘 사진도 너무 멋있었고...
그리고 또..."
훈지 씨는 의외라는 듯 나를 바라봤다.
"우리 둘이 처음하는 여행이잖아요.
운전하면서 이야기도 많이 할 수 있고..."
"맨날 둘이 붙어 있다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 사람은 누구였더라?"
"여행은 다르죠!
우리 한국에서 캠핑 갔던 거 말고는
둘이 여행한 적은 없잖아요."
나는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걸 바라보는 훈지 씨의 표정에도 웃음이 번졌다.
"그럼 우리 차 렌트해서 가기로 해요.
대신 운전은 내가 더 많이 할께요.
정아 씨 힘드니까..."
우리의 여행 준비는 빠르게 진행됐다.
차를 렌트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어느새 출발을 하루 앞두고 있었다.
장거리 운전에 대비해
마트에 들러 간식거리도 준비했다.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떠날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테루엘로
우리의 첫 여행이 시작됐다.
가는 내내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어렸을 적 가족 여행 이야기부터
첫 배낭여행,
그리고 가보고 싶은 나라까지...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루하게 않게 운전할 수 있었다.
프리힐리아나에서 출발한 지 3시간쯤 지나
우리는 휴게소에 도착했다.
"정아 씨, 커피 마실래요?"
"오! 좋아요. 같이 가요.
우리 해외에서 처음 와보는
휴게소니까 사진도 찍어요."
"아니 휴게소에서 무슨 사진을 찍어요."
그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우리 스페인 첫 여행을 위해서
폴라로이드 카메라까지 가져왔단 말이에요.
폴라로이드는 이 세상에 한 장 밖에 없는 사진이라
특별한 거 알죠?"
그렇게 우리는 조금은 촌스럽게
스페인의 한 휴게소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휴게소에서의 짧은 휴식 후,
4시간 정도를 더 달려
드디어 테루엘에 도착했다.
도시 전체가 주는 느낌이
프리힐리아나의 전원적인 풍경과는
완전히 달랐다.

말을 타고 다니는 기사가 지나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는 훈지 씨가 이야기했던
테루엘의 연인들을 보기 위해
산 페드로 성당을 가장 먼저 찾았다.
전설 속 디에고와 이사벨의 조각상은
서로에게 손을 뻗고 있지만
끝내 닿지 못한 모습이라
그들의 이야기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렇게 사랑했는데...
죽어서도 서로에게 닿지 못했네.'
나는 말없이 그들의 조각상을 바라봤다.
내 곁으로 다가온 훈지 씨가 말했다.
"어? 나 이곳 생각나는 것 같아요..."
"여기 처음 오는 것 아니었어요?"
"이사벨과 사랑을 속삭였던 곳이
이 근처였던 것 같은데..."
"아...
이사벨과 사랑을 속삭이다가
이사벨 아버지한테 혼난 기억은 안 나고요?"
"혼난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전생에도 인기가 워낙 많으셨나봐요?"
우린 두 손을 꼭 잡고
그곳에서 한참 동안이나
두 연인의 조각상을 바라 보았다.
"영화 촬영이 생각보다 빨리 시작돼요."
<121화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