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22화. 폭발


이 정도의 대안이면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두 사람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훈지씨...훈지씨는 뭐가 싫은 거에요?

오피스텔로 와서 공부하는 게 싫은 거에요?

그럼 그냥 연습실에서 수업 했으면 하는 거죠?"





"아니요.. 그건 아닌데..."





잠시 말을 고르던 훈지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대표님 수업은 

 제가 하던 연습실에서 하시는 거 어때요?"





"그게 무슨 말이야? 박훈지.

나는 연습실에서 수업하고, 

너는 오피스텔에서 하겠다는 거야?

아니, 잠깐 오피스텔은 어디야? 

정아가 사는 곳이야?"





"아니. 내가 번역 일 하는 곳으로 쓰는 데야."





"거긴 선생님 개인 공간인데..

너무 이 사람, 저 사람 드나들면 

불편해 하실 거 같아서요.



전 어차피 가봤으니까...

대표님 수업 정도는 선생님도 연습실 쪽으로 

와 주실 수 있죠?"





'박훈지의 이상한 논리... 오늘 또 시작이네...ㅎ'




하지만, 내가 그 이상힌 논리를 

감싸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럼 그럴까요?

대표님은 바쁘시니까 내가 그 정도는 배려할 수 있어."





"왜 훈지만 오피스텔에서 수업하는 거야?

이건 무슨 특혜야?"




"특혜는 무슨...

훈지씨도 대표님이 바쁘신 걸 배려해서 그런 거죠.

그렇죠? 훈지씨?

나도 그 정도는 괜찮을 거 같아.

그렇게 하기로 하고 여기서 마무리 하자. 알았지?"





나는 빨리 이 문제를 매듭 짓고,

집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대표는 묘하게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고,

훈지씨는 묘하게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식사도 거의 끝나가고 

이제 잘 마무리하고 가면 끝이었다.




대표가 다시 그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훈지 너는.. 

 정아 오피스텔에 어떻게 가게 된 거야?"





나는 훈지씨를,

훈지씨는 나를,

우리는 서로 쳐다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어쩌다가 오게 되었지?... 

 잘 기억이 안 나네...

 아...내가 뭐 수업 자료를 놓고 와서 

 같이 갔었나 그랬을 껄..."





나는 적당한 말이 빨리 떠오르지 않아서 

진땀이 났다.





"대표님이랑 저녁 드신 날,

 제가 할 얘기 있어서 밤에 찾아 갔잖아요."





'헉... 왜 저래.. 미쳤어..'




나는 오늘따라 훈지씨가 왜 이렇게 직진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맞다! 그랬었다...

 그날 왜... 마저 못 한 얘기가 뭐냐고 

 김대표가 나한테 물어봤었잖아.

 수업 때 했던 질문이라고 

 내가 대답했던 거 같은데...기억나지?"





그 순간, 훈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거야?'





"잠깐만...둘 사이에 내가 모르는 뭐가 있어?"





"...사실대로 얘기하면..

 전...선생님 개인 공간에 

 저 말고 다른 남자가 드나드는 거 싫어요."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말이, 

결국 그의 입에서 나와 버렸다. 





"박훈지,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대표가 훈지씨를 무섭게 쳐다 보면서 말했다.





"태형씨..

 훈지씨 보내고 나랑 이야기해. 

 지금 좀 흥분 상태인 거 같으니까..

 나랑 차분히 얘기해. 

 그게 좋을 것 같아."





"아니..

 내 생각에는 니가 먼저 들어가는 게 좋을 거 같다.

 니가 지금 자꾸 훈지 변명을 해 주고 있잖아. 

 먼저 들어가.

 오늘 내가 데려다 주려고 차 갖고 오지 말랬는데 

 미안하다. 먼저 가."





"아니야... 나랑 하는 게 맞아.

 훈지씨가 먼저 가요.

 잠을 못 자서 긴장 상태인 거 같아."





"너희 둘, 내가 모르는 뭔가가 확실히 있긴 하구나...

 유정아, 먼저 들어가.

 훈지 말 듣고, 그 다음에 니 얘기 들을께."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향해

대표가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먼저 들어가라고..."




잔뜩 화가 난 그의 목소리에 더욱 긴장이 됐다.

놀라는 내 모습을 보고,  훈지씨는 더욱 흥분했다.





"대표님이 뭔데 선생님한테 가라 마라 명령이에요.

이리 와요. 내가 데려다 줄께요.

대표님은 이따 선생님 데려다 주고,

사무실로 갈테니까 거기서 봬요."




훈지씨는 내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제 더 이상 수습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왔구나....'





건물 밖으로 나와 주차장으로 가는 내내,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 속에서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생각했다.



'어떻게 하지..

 내가 태형씨랑 얘기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



그의 차 앞까지 왔다.



"훈지씨, 

 내가 김대표와 이야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지금은 이 상황을 수습하는 게 먼저에요."





"대표님이 자꾸 내 앞에서 선을 넘잖아요.

 선생님 마음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는 건 

 할 수 있는데,

 대표님이 자꾸 선 넘는 건 못 보겠다구요."





"내가 김대표한테 마음이 없는데, 

 그 사람이 선을 넘든 말든 그게 왜 중요해요?"





"그럼...

선생님 마음은 어디에 있는데요...?"





나는 말없이 한참 동안 그의 눈을 바라봤다.

나의 마음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가만히 생각해 봤다.

그리고, 이제는 어디쯤 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당신...

당신한테 가고 있잖아요...

내 마음은 이래요.. 존중해 줘요.."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 <23화 중에서>

박지훈 팬이 많이 읽은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