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시즌2)
64화. 각서

sophie97
2026.09.23조회수 70
"정아 씨."
훈지 씨가 나를 불렀다.
"나 종이랑 펜 좀 갖다 줘요."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훈지 씨를 바라봤다.
"갑자기 종이랑 펜은 뭐 하려구요?"
훈지 씨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나 정아 씨한테 각서를 좀
받아 놓으려구요."
"각서요?"
나는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각서요?"
"내 여친으로서 지켜야 할
항목들을 좀 정해 주려구요."
나는 그가 과연 어떤 항목들을 적을지
궁금해서 펜과 종이를 갖다 주었다.
그는 식탁에 앉아 한참을 고민하더니
곧 뭔가를 열심히 적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게스트룸을 청소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정아 씨. 이리 와 봐요."
훈지 씨가 날 불렀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에게 다가갔다.
"다 적었어요?"
"응. 봐요.
이런 것들을 좀 지켜줬으면 좋겠어요."
나는 종이에 적힌 내용을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 각서 >>
나 유정아는 박훈지의 여친으로서
다음의 항목들을 준수합니다.
1. 박훈지를 제외한 다른 이성과의
신체적 접촉을 일절 하지 않는다.
단, 악수는 허용한다.
2. 다른 이성과 단둘이 커피나 식사를
하게 될 경우에는 박훈지에게
미리 일정과 장소를 공유한다.
3. 다른 이성에게 고백을 받았을 경우에는
박훈지에게 숨기지 않고 이야기한다.
4. 카페 손님 중 유난히 자주 오거나
말을 많이 시키는 이성 손님은 주의한다.
5. 앞으로는 선이나 소개팅 주선이 들어올 경우
모두 거절하도록 한다.
서명: 유정아
"악수는 허용한다?"
여기서부터 어이가 없었다.
"훈지 씨. 이렇게 꼼꼼히 적었어요?
GPT한테 물어봤어요?
훈지 씨가 이렇게 꼼꼼할 리가 없는데..."
"아... 무슨 소리에요?"
훈지 씨가 시치미를 뚝 떼며 말했다.
"내가 그동안 정아 씨한테 하고 싶은
말들이었는데 못 하고 참고 있던 것들이에요."
"훈지 씨. 그동안 어떻게 참은 거에요?"
나는 어이가 없기도 하고,
그가 귀엽기도 해서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나는 서명을 할 수 없어요."
"뭐라구요? 왜요?"
"아니 내가 무슨 훈지 씨 소유물도 아닌데
이런 각서까지 쓰라고 해요?"
"그리고! 얼마나 나를 못 믿으면
이런 세세한 사항까지 다 적은 거에요?
나 은근히 화나려고 해요."
"정아 씨를 못 믿는 게 아니라...
사실은...
좀 못 믿는 구석이 있기도 하고..."
"이거 봐... 내 이럴 줄 알았어."
"이런 각서 따위에 서명하라고 하면
난 그냥 훈지 씨 만나지 않을래요."
그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해요..."
"올가미도 아니고 이게 뭐에요?"
그는 풀이 죽은 모습으로
각서를 주섬주섬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그런 그를 뒤에서 안았다.
"훈지 씨.
미겔 일은 내가 미리 상의 못 해서 미안해요.
그런데 우리 사이에 그런 각서는 싫어요.
난 훈지 씨 믿어요."
그는 내 팔을 풀어 뒤돌았다.
"나도 정아 씨 믿어요.
그런데 가끔씩....
줄리앙도 그렇고
대표님 일도 있고 해서..."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앞으로 나는 훈지 씨만 볼께요.
훈지 씨를 위해서라면
나는 내 목숨도 바칠 수 있어요."
나는 진지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끌어당겨 안았다.
"미안해요..."
우리의 사랑에는 아직도 믿음이 부족한 걸까...
한 주가 지나고 드디어 오늘,
미겔이 도착하기로 한 날이다.
점심 무렵 도착 예정이라
늦은 아침을 먹고 나서 차를 몰고
공항으로 향했다.
도착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지나서야
드디어 미겔이 나타났다.
나는 미겔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미겔!! 웰컴 투 코리아!!
보고 싶었어요."
나는 그에게 반갑게 포옹을 하고
내 차가 있는 주차장으로 안내했다.
"소피, 잘 지냈어요?"
"네. 잘 지냈어요.
마리아와 안토니오는 어때요?"
"잘 지내세요.
한국에 여행간다고 하니까
소피에게 꼭 안부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어머니가 전해 달라고 한 선물도 있는데,
그건 집에 도착해서 줄게요."
"정말요? 뭔지 궁금하다.
피곤하진 않아요?"
"피곤하긴 한데 한국 공항이 너무 크고
깨끗해서 깜짝 놀랐어요."
"멋지죠?
그런데 여기에서 놀라긴 일러요.
한국에 멋진 곳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기대돼요.
그런데 소피네 집에서 지내도
정말 괜찮겠어요?"
"그럼요.
참!! 그런데 훈지 씨도 미겔이 있는 동안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어요."
"... 그거 나 때문이죠?"
"하하... 미겔 벌써 눈치 챘어요?"
"훈지가 스페인에 있을 때도
질투가 많은 거 알고 있었어요."
"빙고!!
미겔이 한국에 있는 동안
우리 재미있게 지내봐요."
이때만 해도
미겔이 한국에 온 것만으로도 기뻤었다.
그에게 엄청난 비밀이 있다는 것을
예상치도 못 한 채 말이다.
"내가 아니라면... 누구랑 가는 거에요?
<65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