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영씨, 오늘 왜 이렇게 멍해?"
"오늘따라 더 그러네."
"... 내가 언제 그랬다고."
"지금이요, 지금."
노트북 전원 버튼을 꾹 누른 순영이 외투를 챙겨 나왔다. 어디가냐는 승철의 말에 대답없이 그냥 밖으로 향했다. 순영의 기분은 모르는 듯 기분 나쁘게 맑은 날씨가 자신을 반겨주고 있었다. 순영은 천천히 거리를 걸어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로 향했다.
"... 먼지,"
오랜만에 그 앞에 섰다. 자신의 집이 아닌 그 옆호실에. 뚫어져라 문만 보고 있으니 쌓인 먼지들이 문고리에 들러붙어 있었다. 멍하니 문짝만 바라보다 초인종을 눌러보았다.
띵동-
명쾌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어짜피 아무도 나오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도. 금방이라도 문이 열리며 뛰어 안길 것 같은데... 순영은 가슴 한 구석에 답답함이 번져갔다. 이럴거였으면 그냥 좀 더 잘 해줄걸, 이럴거였으면... 그냥, 그냥...
"한 번은 먼저 다가가줄걸..."
지금에서야 후회하면 뭐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회가 안 된다고 한다면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26살이 된 지금, 그러니까 한 살이 더 먹은 지금 현재. 과거와 많이 변한 점이 있다면 혼자라는 것. 항상 온기 가득했던, 항상 대화가 이어졌던 자신의 집이 처음으로 허전하다고 느껴졌다.
"... 문 안 열어주네."
당연한 소리였다. 그냥 투정삼아 한 번 해보았다. 역시 있다 없어지면 쓸쓸하고 외로웠다. 그냥 집에서 혼자 울기만 했었다. 그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시간 감각도 없었다. 커튼을 치고 살았다. 낮인지 밤인지 구별을 굳이 해야하나 싶었다.
"순영아, 정신 차리자. 응?"
"그만 울어...., 형 밖에서 기다릴게. 나와줘 순영아."
"순영아, 괜찮아? 밥은? .... 연락 좀 봐 줘."
"야, 순영아. 너희 부모님 오셨어."
"...... 안 뵐 거야? 걱정 많이 하신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집 비밀번호는 바꿔버렸다. 그냥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서. 승철이 형은 항상 우리 집 앞에서 시간을 보내다 가곤 했다. 가끔은 부모님이 와서 승철이 형 옆에서 가만히 기다렸다. 하지만 그거마저도 별로 반갑지 않았다. 정말 아무도 보기 싫었다.
".... 어디 갔어, 지훈아..."
하루종일 외쳤다, 그 이름을. 보고싶다고, 어디갔냐고, 좋아하니까 미안하니까 한 번만 만나달라고. 사정사정을 했다. 눈물이 흐르는 걸 굳이 닦으려고 하지 않았다.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었다.
어지러웠다. 모든 것이 어지러웠다. 그러다 문득 나 자신이 너무 미웠다. 그때 전화만 받았더라면. 그렇다면 지금 지훈이는 내 곁에 있었을까, 그때 폰만 들고 내렸더라면 지훈이는 아프지 않고 나와 함께 있을 수 있었을까.
어느날은 그냥 죽을까 싶었다. 그게 가장 힘이 들지 않을 것 같아서. 부엌으로 향했었다. 온갖 부엌 칼들을 훑어보았다. 식칼 하나를 빼들었는데 바보같이 손이 떨렸다. 죽기는 무서웠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식칼의 손잡이를 꽉 잡았다. 힘껏 배를 찔러보려고 했는데 손이 미끌어졌다. 아직은 무서웠다. 이런 걸, 이렇게 무서운 것을 지훈이는 얼마나 당했길래 아무렇지 않아 할 수가 있었을까.
"... ㅈ,지훈아 미안해... 난 왜 아직 겁이 많을까..."
무서웠다. 그대로 주저앉아 소리 높여 울었다. 집이 다 떠나갈 정도로 울었다. 이렇게 소리내어 운 것도 오랜만인데. 그냥 울었다. 승철이 형은 걱정이 됐는지 문을 두드렸다. 괜찮냐고, 정신 차리라고.
"순영아, 우리 아들."
"이 엄마가 너무 늦었지, 미안해."
"우리 아들... 힘들지? 너무 미안해 우리가."
"아들, 아빠야. 밥은 잘 먹지? 힘들어도 먹어야 돼."
".... 울어서 나아지면 좋은데 너무 울지는 마, 힘들어."
귀에 들리지 않았다. 저런 말을 들어봤자였다. 필요가 없었다. 속이 아팠다. 너무 울어서인지, 너무 안 먹어서인지. 둘 중 하나였다. 속이 울렁거렸다. 휘청거리는 몸을 벽에 지탱한 채로 화장실로 갔다. 울렁거리는 속을 개워냈다. 그래도 나아지는 건 없었다. 이대로 죽으면 되는걸까. 기대했다.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고.
".... 형."
승관이였다. 어느날은 승관이가 왔었다. 형 한 글자를 외치는 그 목소리가 떨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자기조차 아직 진정을 하지 못 한 것 같았다. 떨리는 목소리가 점점 선명히 귀에 들려왔다.
".... 형, 순영이 형."
"항상 씩씩했던 형... 응, 씩씩한 형..."
"형은... 무너지지 마요. 형은,... 순영이 형은..."
승관이 또한 문 밖에서 눈물을 참는 소리가 들려왔다. 끊기는 목소리가 방 전체에 잘 들려왔다.
"지훈이 형이... 그랬어요."
"형은 씩씩하다고... 혼자서도 잘 해내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 더는 무너지지 말았음 해요, 저는..."
"그리고 지훈이 형도..."
아랫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비릿한 맛이 입 전체에 퍼져나갔다. 원래도 마른 편이었던 순영의 얼굴은 더욱 창백했다. 비틀거리는 몸을 지탱하곤 한 발, 한 발 걸어 현관 앞에 섰다.
".... 지훈이 형이 저한테 보내줬어요, 그 날."
"꼭 순영이 형한테 들려줘야 한다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들려줘야 한다고 했어요...."
"전 안 들을거예요, 형.... 형 폰으로 보내놨어요."
".... 들어주세요."
승관은 이 말을 끝으로 아무 말도 없었다. 순영은 소파 구서박에 놓어있는 그 폰을 들었다. 여러 연락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승관이 보내놓은 녹음본이 보였다. 그리 길지는 않은 그 녹음본의 시작 버튼을 누르자 참고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그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순영아, 뭐해? 연락이 안되네. 바쁘다며, 나 때문에...
난 그것도 모르고 뭐했지, 그치? 나 나쁘지?
... 나 근데 어떡하지, 우리 순영이 이제 못 볼 것 같은데..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서... 순영이 얼굴 못 보겠다.
.... 그래도 나 때문에 너무 아파하지는 마 알지?
울지 말라는 말은 못하겠다...ㅎ
그래도 나 죽으면 울어주는 사람 생겨서 행복하네.
원랜 없었는데 아무도...
벌써 보고싶은데 나 이제 한계인가 봐... 어쩌지?
순영이 얼굴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는데...
얼굴 못 보고 가는 건 좀 슬프다ㅎㅎ...
.... 안녕, 순영아. 고마웠고... 응, 고마웠어.
사랑해, 많이. 내가 많이 사랑하니까 아프지 말고.
꼭 건강해야 돼. ... 나 잊어도 상관은 없어. 아프지만 마.
.... 사랑하고 미안해, 순영아.
끝난 녹음 파일을 몇번이고 돌려 들었다. 이젠 이것뿐히 없어서. 잊기 싫어서, 계속 틀었다. 잊기 무서웠다. 모든 것이, 지금까지 만났던 그 이지훈이 정말 사라져버릴까봐. 그게 너무 싫어서 계속 들었다.

"오랜만이네, 들어오는 건."
이 집을 파는 짓은 죽어도 못 할 것 같아서 남겨뒀다. 계속 비워져있던 곳이라 그런지 당연히 더러웠다. 가만히 둘러보았다. 항상 자기 집에만 있었지 지훈의 집을 이렇게 본 적은 없었다. 침실로 들어오니 익숙한 향이 아직까지도 남은 것인지 순영의 코에 맞닿았다.
".... 뭐야."
✔마지막 고백은 우리 집에서 하기
고백... 6번째 고백에서 멈춰버렸다. 아직 4번이나 남아있는 고백 기회인데. 듣지 못했다. 거의 시든 꽃이 놓여있는 책상을 바라보았다. 서랖을 열어보니 죄다 의료품뿐히 없었다. 가만히 바라만 보다 옆 다용도실을 가보았다. 세탁기 안에는 제대로 된 옷이 없었다. 죄다 찢어지고 붉게 물들어져 있었다.
순영은 그의 집을 나와 지훈과 자주 걸었던 길을 따라 걸었다. 새록새록 생각나는 기억들에 순영은 희미한 미소를 띄었다. 그러다 주변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음료 하나를 주문한 후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켰다.
_지훈아
_너 그거 알아?
_벌써 11월달이래
_너 생일 11월달이라며
_그게 오늘이다?
_벌써 11월 22일이래
_그래서 그런가
_오늘따라 계속 너가 기억나서 미치겠다
_나 오늘은 일도 포기하고 나왔어
_너 장례라도 치르고 싶어서
_뒤늦게 시체처리반한테 물어보고 그랬는데....
_이미 상대 조직이 없앤 것 같더래 승관이가 그랬어
_그래서 그냥 아쉬운 그 마음만 가지고 사는 중이야
_무슨 케이크 사줄까?
_너 딸기랑 초콜릿 좋아했잖아
_둘 다 올려져있는 생크림 케이크 괜찮아?
_사가지고 가서 먹어야겠다ㅋㅋ
_오늘 하루는 네 날이니까 잘 보내
_사랑해 지훈아
_"형, 뭐해요?"
_"어, 승관이네. 오랜만이다."
_"그러게요!!ㅋㅋ 오늘 한 번 만날까요?"
_"응, 좋다. 어디서 만날까?"
_"음... 그럼 여기서...! "
지훈아 어때, 거긴?
이제 아프진 않지? 건강해?
아프지만 말아줘, 사랑해.
100번 1000번 말해도 다 전해지진 못하겠지만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 지훈아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찾아왔답니다ㅎㅎ
만족스러우실까요...~??
댓글로 평가 부탁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