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튼 간 걘 아니야
크게 한 판 했네 또



한동민
”크게 한 판 했네, 또“

한동민(여주의 남사친(18))이 문 열고 들어온 최여주(18)의 얼굴을 보곤 말했다.

눈두덩이 부어 있었고, 목소리는 나긋했지만 지쳐 있었다.


최여주
"그래도… 마음은 착한 오빠(명재현(19)/ 1살 연상, 같은 고등학교 선배)야."


한동민
“또 그 소리냐."

여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동민이 고개를 돌렸다.


한동민
"다시 만난다 했을 때부터, 느낌 존나 쎄했어. 그냥 말해. 너도 알았잖아."


최여주
“…”


한동민
“다투는 거까지야 오케이야. 근데 지금이 몇 신데 연락이 없어?“


한동민
“메시지 읽고도 대답 없는 거 보면 걔 백 프로 게임 중이다.”


한동민
“하, 미친 거지."

여주가 조용히 시선을 피했다.


한동민
"뭐가 잘못됐는진 알겠지?“


한동민
“그리고 솔직히, 여기 있는 너도 책임이 커.”

여주는 자리를 피하려고 한다.


한동민
“얘기 안 끝났어. 앉아”한동민이 딱 잘라 말했다.

여주가 그 말에 주춤했다. 무겁고, 진심 어린 어조였다.


한동민
“너 지금, 이 상황 똑바로 봐야 돼.”


?
"…여주야?"

낯익은 목소리.

여주의 남친, 명재현이었다.

캡모자에 늘 하던 브랜드 바람막이. 익숙하게 여주에게 다가왔다.


명재현
“여기 있었네? 연락 왜 안 받았어.”

여주는 자리에서 일어섰다가, 재현의 눈치만 살폈다.


최여주
“아… 그냥 친구랑 얘기 중이었어.”

재현의 시선이 동민에게 향했다.

그리고 동민도 조용히 재현을 올려다봤다.


명재현
“…너가 그 친구?”


최여주
"응. 한동민."


명재현
“…많이 친하신가 보네?"


한동민
“많이요. 얘가 울면, 제일 먼저 연락 오는 사람 나거든요.”

공기 순간 얼어붙었다.

여주는 눈치를 보며 중재하려다 말았다.

둘 다 한 치도 물러나지 않은 눈빛이었다.


명재현
“그만 가자, 여주야.”

하지만 동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말했다.


한동민
“아직 얘기 안 끝났어. 나는 얘가 더 상처 받기 전에 할 말 다 해야 돼요.“


명재현
“…웃기네.“


명재현
“사귀는 것도 아니면서 참견이 심하네?”


한동민
“그래. 사귄 적 없지.“


한동민
“근데 사귀는 사람보다 얘를 더 오래 지켜본 사람인 건 확실하니까.”

재현의 눈썹이 꿈틀했다.


명재현
“그렇게 잘났으면, 너가 고백하지 그랬냐.”

동민은 잠시 말을 아꼈다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한동민
“그럼 지금 할까?”


명재현
“뭐?”


한동민
“…너한테 자격 없으면, 그 자리는 나라도 채울 수 있어.”

여주의 숨이 멎었다.

재현은 한발 다가왔고, 동민도 물러서지 않았다.


명재현
“지금, 너 누구 앞에서 말하는지 모르냐?”


한동민
“알아. 여주 앞이잖아. 이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명재현
“…장난하지 마.”


한동민
“장난이면 좋았겠다.근데 난 진심이야.“


한동민
“지금까지 여주가 울 때마다 네 얼굴 떠올리며 옆에 있었던 사람이, 나야.”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그리고 동민은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던졌다.


한동민
“네가 그렇게 좋은 사람이라면, 왜 얘가 날 보면서 ‘미안하다’고 하겠어?”

재현의 턱이 약간 들렸고, 눈매가 날카롭게 휘어졌다.


명재현
“…그건 네가 자꾸 우리 사이에 끼어들어서지.”


명재현
“자기 감정 못 주체하고 친구 탈 쓴 거지.한심하다, 진짜.”


한동민
“한심?나는 적어도 여주를 외롭게 만든 적은 없어.“


한동민
“넌 옆에 있어도 맨날 없는 사람이잖아.”


명재현
“그럼 넌 뭐,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아?기껏해야 감정 소비 받아주는 어깨잖아.“


한동민
“나는 최소한,사람 울리면 같이 울어줄 줄은 알아.”

여주가 고개를 떨궜다. 머리카락 밑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명재현
“그래봤자 넌 여주가 널 고른 적 없다는 거,그게 진짜 자존심 긁히는 거겠지.”


한동민
“…그 말,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거야.”

정적이 흐른다.

둘 사이의 공기가 점점 팽팽하게 조여 온다.

지금 손 하나만 뻗으면, 싸움이 터질 것만 같은 분위기.


최여주
“…그만해.”

목소리는 낮고, 숨을 가쁘게 삼켰다.


최여주
“둘 다… 이제 좀 그만해줘.”

여주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커피 뚜껑 위에 얹힌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려서 작은 탁탁 소리가 나고 있었다.

눈은 깜빡이지 않았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재현은 그 모습을 보고 말없이 시선을 피했다.그리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민도 따라 일어났지만, 시선을 떼지 못했다.

한참 동안 여주를 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한동민
“…같이 가자. 그 상태로 혼자 가게 못 놔두겠어.”

여주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런데, 재현이 조용히 끼어들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명재현
“내가 데려다줄게.”


한동민
“…당신이 지금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명재현
“아니, 얘가 아직 나랑 있는 게 덜 불편한 것 같으니까.그리고 내가 얘 남친이야“

둘의 시선이 다시 부딪혔다.


최여주
“…그만, 제발. 나 그냥… 집에 가고 싶어.”

그 말을 끝으로 동민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한동민
“…그래. 그럼 잘 들어가“

그는 그 말만 남긴 채, 동민은 자리를 떠난다. 걸음은 느렸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잠시 뒤, 재현이 여주의 손목을 가볍게 붙잡았다.

평소 같으면 따뜻한 손이었겠지만, 지금은 다만 익숙한 감촉일 뿐이었다.

바깥 공기는 축축하고, 어두운 골목엔 습기 찬 공기만이 감돌았다.

습기 때문에 손이 더 미끄러졌고, 서로 붙잡은 손목은 금세 땀이 찼다.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둘 다.

가로등 밑에 도착했을 때, 재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명재현
“…그 자식 말, 다 믿는 건 아니지?”


최여주
(조용히) “뭘?”


명재현
“네 친구. 한동민.“


명재현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감정 포장해서 말하는 거잖아.”


명재현
“나 나쁜 놈 만들어서 네 마음 얻고 싶어서.”

여주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저 발끝을 보고 걸었다.


최여주
“근데… 듣고 있는데 반박이 잘 안 되더라.”

재현이 멈춰 섰다. 그 앞에서 여주도 멈췄다.


명재현
“반박이 안 돼?”


최여주
“기념일, 안 챙긴 거. 연락, 느린 거. 나 기분 안 좋을 때, 오빤 늘 바빴던 거.“


최여주
“진짜 하나도 틀린 말 없었어.”

재현이 숨을 들이켰다.이해 못 하는 표정은 아니었다.다만 인정하기 싫은 얼굴.


명재현
“…그때그때 내 사정도 있었고—”


최여주
“사정이라는 말, 이제 좀 지겨워.”

그 말에 재현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한숨처럼 작게 뱉는다.


명재현
“그래.나도 알아.나 요즘 너한테 집중 못 한 거.”


최여주
“…근데, 그게 끝이야?”

재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을 서 있다가, 그는 천천히 여주의 손목을 내려놓았다.


명재현
“그래도 오늘은… 내가 데려다주고 싶었어.”


최여주
“….응”

그들은 다시 걸었다. 말 없이, 가끔 옷깃만 스치는 거리로.

도착한 건 여주의 원룸 앞.익숙한 길인데, 오늘따라 더 멀게 느껴졌다.


명재현
“…내일 연락할게.”


최여주
“……….응“

며칠 뒤, 카페.

여주가 민지(여주 친구(18))이랑 얘기하다가 울먹이는 걸, 동민은 옆자리에서 듣고만 있었다.


한동민
"휘둘리고 있네, 또." 그가 조용히 말했다.


한동민
"걔랑은 꼭 짚고 넘어간다며.“


한동민
“그래놓고 어물쩍 화해해버리지.”


한동민
“항상 그래. 코앞에서 포인트 놓치고."


유민지
"기념일은 지 혼자 넘어가고, 게임 약속은 지켜.“


유민지
“그걸 너는 또 이해하겠다고 앉아있고.”


유민지
“진짜 바보 아니냐, 최여주."


한동민
"거기다 너는 로고 크고 튀는 거 싫어하잖아.“


한동민
“근데 걔가 준 선물 뭐야?명품에 박힌 로고, 존나 크게."


한동민
"그걸 받고 ‘고마워’라니. 하… 진짜 병신같아."

여주가 아무 말도 못 하자, 동민은 피식 웃었다.


한동민
"SoundCloud에 추가된 트랙들, 걔가 구독 중인 유튜브 채널만 봐도 너랑은 평생 대화 안 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