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 남자아이
이야기 10



전정국은 자신이 정여주를 좋아하는지 궁금하냐고 물어봤고, 그것은 정말 앞으로 들어도 뒤로 들어도 굴러서 들어도 누워서 들어도 맞았다.

어떻게 알았을까, 초능력자야 뭐야, 자기도 그걸 물어보려고 했던 것을 알아챈 걸까, 등 많은 생각에 잠겨 전정국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전정국
“야.”


최수연
“ㅇ, 어? 어.! 그래, 그거 물어보려고 했다!”


전정국
“ㅇ,”


최수연
“아니! 그거 물어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어차피 나는 전정국이 여주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전정국의 대답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최수연
“내가 이어줄게.”



전정국
“뭐?ㅎ”

전정국은 세상 어이없는 비웃음과 함께 되물었고, 나는 그의 행동에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뭐, 여주에게는 잘해주니까 그거면 됐다.


최수연
“네가 정여주 좋아하는 건 알고 있어. 그리고 넌 생각보다 되게 좋은 애야. 그, 너 친구 그 누구냐….”


전정국
“박지민?”


최수연
“그래. 그 친구를 대하는 모습이며 그 친구에게 하는 행동이며 너의 역사 점수, 등등 충분히 여주의 남자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전정국
“……뭔.”

나는 전정국이 내 말을 듣고 당황할 줄 알았는데 내 착각이었다.

예상과는 달리 전정국은 어이가 없었는지 피식하며 웃었지만 그래도 내심 좋아하는 기색이었다. 내 예상에서는 벗어났지만 그래도 덩달아 뿌듯했다지.


최수연
“아무튼, 우리 좀 있으면 수학여행 가잖니? 그때 멋있는 모습을 좀 보여줘 봐.”


전정국
“……왜.”


최수연
“그럼 안 하겠다고?”


전정국
“……아니……이상한 아이네….”

나도 내가 충분히 이상한 아이인 것을 알기 때문에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남은 쉬는 시간 동안 전정국을 설득시키느라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뿌듯한걸.

여주도 나와 최수빈을 이어주기로 했으니 나도 여주와 전정국을 이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리 욕구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최수연
“알겠지?”


전정국
“아오 진짜…알겠다고.”

얘와 대화하면서 한 가지 느낀 점이 있다면 짜증 나거나 답답할 때 ‘아오’라는 말을 많이 쓴다는 점이다. 쓸 때마다 좀 거슬리긴 하지만 뭐…어쩔 수 없지.

나는 끝내 전정국을 설득시키는데 성공했고, 수학여행 때 전정국이 어떤 행동을 할지 너무너무 기대가 된다.



전정국
“야.”

반으로 돌아가려던 참, 전정국이 뒤에서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이지 하며 뒤돌아봐서 전정국을 봤더니 무슨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리는 모습이었다.


최수연
“왜, 할 말 있어?”


전정국
“아니…그…. 니도 똑바로 하라고.”


최수연
“……ㅋㅋㅋㅋ, 알겠어.”

생각보다 여주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막 생각한 작전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좀 귀엽기도 하고, 빨리 여주와 이어주고 싶기도 하공.




_수학여행 D-2


—아니 언제 시작하냐고.

정여주
“잠시만!!! 기다려 수연아! 금방 올게!”


최수연
—하이고…. 못 살겠네.

지금은 수학여행 이틀 전날 밤. 수연이와 내가 전화를 하면서 수학여행 짐을 싸기로 했는데 내가 내 캐리어를 못 찾아서 헤매는 동안 수연이가 휴대폰 너머로 짜증을 내는 상황이다.


왜 굳이 이틀 전에 싸냐고? 나도 모른다.



최수연
“야 여주야, 너 짐 쌌냐.”

정여주
“아직, 하루 전에 쌀 생각.”

수학여행 3일 전날, 한창 뭐 입을지 고민하던 때에 짐을 쌌냐고 물어보는 수연이었다.


최수연
“그럼 내일 전화하면서 쌀래?”

정여주
“굳이?”


최수연
“…그러니까…. 하루 전에는 다른 거 해야지!!!”

정여주
“그래, 뭐.”

수학여행 바로 전날 밤에 싸놓으면 편리할 텐데 굳이 2일 전에 싸야 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뭐 상관없으니 수연이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아무튼 이렇게 우리는 이틀 전에 짐을 싸기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수연이의 말이 옳은 듯하기도 하고.


정여주
“하…. 어디 있는 거야….”

—빨리빨리 안 올래!!!

정여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기다려!!!ㅋㅋㅋㅋ.”

캐리어를 찾느라 내 휴대폰과 거리가 많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저 멀리서 휴대폰 속 수연이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들려서 웃음이 나왔다.


정여주
“어, 야 찾음!!!”


최수연
—빨리빨리 와.

나는 캐리어를 찾은 즉시 바로 방바닥의 한자리에 앉아서 캐리어를 양옆으로 폈다.


최수연
—오우…. 야 너무 큰 거 아니냐, ㅋㅋㅋㅋ.

조금 크긴 했다. 하지만 수학여행에서의 2박 3일에는 상당히 많은 짐이 필요했기에 아주 적합한 캐리어였다. 아닌가, 너무 큰 가.

정여주
“괜찮아, 괜찮아. 자자, 지금부터 여주와!”


최수연
—수연이의!

정여주
“짐싸기를!!”


최수연
—시작하겠습니다!!!

정여주
“ㅋㅋㅋㅋㅋㅋㅋㅋ.”


X 튜브 방송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우리 둘이 통화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라이브 방송을 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우리만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궁금하지는 않다.



최수연
—너 잠옷 뭐 챙길 거야.

정여주
“수면바지에다가 반팔.”


최수연
—안 춥냐?

정여주
“응.”

원래 더위를 너무 잘 타서 겨울에도 반팔에 수면바지를 항상 유지하고 여름에는 그냥 죽는 나를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내가 챙길 옷들도 죄다 미니스커트이거나, 얇은 긴 바지이거나, 얇은 셔츠이거나 한다.

어제 엄마가 내 옷을 보시더니 높은 곳에 뿔날 일 있냐면서 뭐라 하셨지만 어쩔 수 없다. 더위를 심하게 타는 걸 어떡해.

(고뿔)

아무튼 나와 수연이는 정성을 다해 열심히 열심히 짐을 쌌다.


• • •



최수연
—야


한창 짐을 싸던 중, 집중하느라 조용하던 수연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귀는 수연이를 향하게, 눈과 손은 짐들을 향하게 세팅해놓고 별생각없이 수연이의 말에 대답했다.

정여주
“왜.”


최수연
—그, 너 옷 잘입는 남자애들 중에서 어떤 스타일 좋아함.

정여주
“깔끔한 스타일, 왜?”


최수연
—그니까, 막 맨투맨 후드티 이런거 말하는거야 아니면 셔츠에다가 조끼나, 니트나 이런거 말하는거야?

정여주
“후자, 왜.”


최수연
—아니, 그냥.

갑자기 물어보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후드티, 맨투맨은 일상생활이나 학교에서 입는 게 좋고, 니트, 셔츠, 조끼 이런 거는 놀러 갈 때 입는 것을 좋아하니깐.

그러던 중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 사람, 내 찜콩 이상형님이었다.

정여주
“야.”


최수연
—왜.

정여주
“찜콩 이상형님은…어떤 스타일로 입으실까…?”


최수연
—찜콩 이상형님이 누ㄱ, 아…. 모르지, 근데 후드티나…맨투맨 이렇게 입을 거 같은데….

정여주
“그런가…. 니트 이런 거 입으시면 어울리실 거 같은데….”


최수연
—난 우리 학년 애들도 옷 잘 입는 거 같더라.

정여주
“누구.”


최수연
—음….

수연이는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끝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뭐 하자는 거지.


정여주
“아 뭐. 누구, 말해봐.”


최수연
—……전정…국…?

엥.

정여주
“아니, 너 전정국 좋아하는 거냐? 최수빈 말고?”


최수연
—뭐???!! 아니거든?!! 내가 걔를 왜 좋아하냐!!!

정여주
“근데 왜 자꾸 요즘 전정국전정국 거려. 너 최수빈 얘기보다 전정국 얘기 더 많이 하는거알아?ㅋㅋㅋㅋ.”


최수연
—에ㅋㅋㅋㅋㅋ 아니야…. 절대 절대. 난 최수빈 좋아해…. 너도 알잖아! 내가 최수빈이랑 사귀는 꿈 꿔서 흘러내립니다 이 지랄한 거!!!

정여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주 조금 의심스럽지만 수연이의 흘러내립니다는 나도 알기 때문에 모르는 척 넘어가 주기로 했다.

그래, 최수연은 전정국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전정국과 나의 사이를 제 혼자 엮는 걸 좋아하니. 이번에도 전정국 얘기를 꺼낸 거 보면, 아마 그 때문일 수도.


그렇게 한 시간이 넘도록 웃고 떠들며 짐을 거의 다 싸갈 무렵,

뚝-

갑자기 수연이와의 통화연결이 끊기면서 내 휴대폰 화면을 채우고 있던 수연이의 못생긴 얼굴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내 눈이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다행이라 여기긴 하지만 왜 갑자기 끊긴 건지 영문을 모르겠고, 수연이도 다시 나에게 전화를 걸지 않는 걸 보면, 살짝 걱정이 되는 나였다.


정여주
"뭐여 얘는. 갑자기 끊기고 연락이 안 돼.”

페메를 보내봐도, 인스타 디엠을 보내봐도 읽지 않는 최수연에 슬슬 짜증이 밀려오며 걱정도 함께 밀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짐 싸기는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숨겨진 이야기_



최수연
“아니 그래서 개 웃겼다니깐ㅋㅋㅋㅋ.”

정여주
[ㅋㅋㅋㅋㅋㅋㅋ미친 거 아니야.]

우리의 소중한 여주의 끔찍한 얼굴을 보면서 재미나게 통화를 하고 있던 참에,

-♬♩

갑자기 여주와의 통화가 끊기며 일반전화로 누군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가 페메로 통화를 하고 있어서 누군가가 일반전화를 걸면 바로 끊기고 일반전화만 남게 된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렇게 끊긴 듯했다.


최수연
“아 뭐야…. 누구야.”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전정국’이라는 세 글자 이름이 발신자 표시 부분에 떡하니 있었다. 나는 전정국으로부터 온 전화인 것을 확인하고 지금 시각을 보니 밤 11시.


최수연
“뭐야…. 11쯤에 전화하자 했는데 딱 11시에 전화했네. 시간 약속도 잘 지키는구만. 우리 여주의 남친감이 딱 좋겠어.”

나는 온갖 혼잣말을 다하며 진동이 울리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최수연
“여보세요.”

—…했냐.


최수연
“알아왔다. 옷 입는 스타일은 맨투맨이나 후드티보다 셔츠에 조끼나 니트가 좋다고 했고,”


전정국
—응.


최수연
“그리고 내가 너 옷 잘 입는 거 같다고 했어.”


전정국
—……ㅎ, 그래.

이제서야 밝히지만 나는 오늘 밤에 여주와 통화를 하며 여주의 이상형이 아닌듯한 이상형을 알아오기로 했고, 여주에게 전정국을 어필해 주는 역할이 되어주기로 했던 것이다.

막 생각한 작전이지만 이 정도 퀄리티면 성공한 듯하다. 여주도 알아채지 못한 것 같고 말이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여주가 내가 전정국을 좋아한다는 것으로 오해한다는 것이다.

음, 이거까지는 전정국에게 말할 필요는 없어 보이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해주기로 하자.


최수연
“근데 너 목소리 되게 좋다. 여주가 좋아할 거 같아."


전정국
—입닫아.


최수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덕분에 그 무섭다고 소문난 전정국과 조금 친해진 것 같기도 하고…. 내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수학여행이 너무나도 기대가 되고 이제 내 할 일은 끝났으니 전정국만 잘해준다면 둘이 사귀는 건 시간문제인 것이다.


최수연
“수학여행 기대할게. 잘 자고.”


전정국
—어.


결국 여주에게 다시 연락하는 걸 까먹고 잠든 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