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 남자아이
이야기 8



나만 빼고 재미있었던 보건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반으로 올라갔다. 나는 어쩐 일로 어색해도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길을 걸었다. 아까 일로 어벙해진듯했다. 그래도 궁금한 건 물어봐야지.

정여주
“너 아까 왜 그랬어.”


전정국
“늦겠다. 빨리 가자.”

내 말이 끝나자마자 늦겠다, 빨리 가자.라며 저 혼자 긴 다리로 빠른 걸음으로 쌩 가버렸다. 다리는 어찌나 긴지 내가 뛰어야 속도를 따라잡겠거니 했다.

결국 전정국은 정말로 가버리고 나 혼자 남았다. 진짜 갈 줄은 몰랐는데.

아주 외롭고 고독한 시간이 지나 우리 반 복도로 온 나는 저 멀리 나와서 나를 기다려주시는 선생님에 한번, 그 뒤로 아마 선생님 몰래 뒤에서 조용히 손 흔들어주는 수연이에 두 번 감동했다.

정여주
“허어…쌔앰…….”

"아이고, 여주야 괜찮니? 에고. 두 쪽을 다 막았구나….”


최수연
“ㅋㅋㅋ좀 웃기당.”

“응? 뭐야 수연이 너 언제 나오래. 떽! 안 들어가?”


최수연
“치…. 넹….”

정여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국어 선생님께서는 나이가 있으신지 우리를 손녀 돌보듯이 가르치셔서 나는 국어 선생님이 제일 좋다. 아까 호랑이 선생님보다도 훨씬.


초롱초롱한 국어시간이 끝나자마자 최수연은 내 자리로 왔다. 신나 보이는 표정을 하면서 왔지만 내 눈에는 무서웠다. 공개처형할 것 같은 얼굴 알지. 그 느낌….


최수연
“그래서. 어떻게 밀어줄 건데? 응?”

아. 난 또 보건실에서 있었던 일 물어보는 줄 알고 김칫국만 마셔댔네. 아까 보건실에서 그런 일이 있어서 더욱더 찔렸나 보다. 다행히 최수빈 얘기라서 나는 얼른 이상형을 알려주기로 했다.

정여주
“이상형 알려줄게.”


최수연
“ㅎ허러러ㅓㄹㄹ…. 좋아.”


나는 하나하나 빠지지 않고 모두 알려주려고 했다. 수연이가 많이 알면 알수록 둘은 더 좋아질 테니까. 하지만 방해꾼이 있었다. 잠시 잊고 있던.


전정국
“여주야.”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 이름을 듣자마자 고개를 돌려 걔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그리고 거기에는 저번과 똑같이 손을 흔들고 있는 전정국이 보였다.

아오. 우리가 이제 다시 화해한 줄 아나. 나는 전혀 아닌데. 제 혼자 착각하고 우리 반으로 왔다. 내가 하지 말랬는데 분명히. 이름은 왜 부르는 거야. 민윤기였나, 아무튼 그 애가 내 이름 알고 있었던 것도 쟤 때문이겠지.

정여주
“어. 안녕.”

나는 손으로 인사해 주면서 혼잣말로 제발 가라고 했다. 그래서 전정국은 못 듣고 나는 속으로 온갖 욕을 다 했다지.


최수연
“뭐. 누군데, 최수빈?”

정여주
“아니, 완전 아님.”


최수연
“그래…….”



“잡았다 요놈.”

여주에게 인사를 하고 반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누군가 내 양쪽 어깨를 잡고 말을 뱉었다. 누구지 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웃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는 박지민과 눈이 마주쳤다.


박지민
“쟤구나? 너의 마음을 뺏어간 여자.”


전정국
“어…? 아니, …어….”


박지민
“올ㅋ. 완전 너 이상형이다. 단발에 유쌍에 고양이 상에. 아주 그냥. 좋아죽네?”



“응. 존나.”



박지민
“ㅋㅋㅋㅋㅋㅋㅋㅋㅋ병신. 쪼개네.”


전정국
“어제 헤어지고 질질 짠 주제에.”


박지민
“ㅋㅋㅋㅋㅋ씨발련이ㅋㅋㅋㅋ.”


“언제부터 좋아함?”

“걔 이상형은 아냐?”

“아 좀 그만 물어봐 쫌."



이튿날_


정여주
“ㅇ와…. 시발 세이프…헉, 헉….”

지금이 무슨 상황이냐면, 늦잠을 자버려서 학교에 전력 질주로 뛰어온 나의 상황이다. 다행히 지금 시각은 8시 57분.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양치라도 하고 올걸 그랬다.


최수연
“욜ㅋ 용케 지각 안 했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수연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그래 너는 여유롭게 학교 와서 좋겠다.

“자리에 앉자. 전달할 사항이 있어.”

아직 58분인데 선생님이 벌써 오셨다. 아까 양치하고 올 걸 후회한 것을 취소해야겠다. 만약 양치를 하고 왔다면 선생님보다 늦게 왔을 것이니.


“자. 너희가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이지? 고등학교 2학년이 하는 활동 중에서 너희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 뭘까?”

아이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수학여행이요!!!라고 대답했다. 내 생각으로는 그중 수연이의 목소리가 제일 큰 것 같았다.

“……맞아, ㅎ 눈치는 빠르네. 오늘은 다다음 주에 있을 수학여행을 위해 장소를 뽑을 거야. 원래 1반이 뽑기로 했는데 우리 반으로 넘겨졌다. 다들 준비됐지?”


선생님은 말씀을 끝내시고 컴퓨터로 수학여행 제비뽑기 파일창을 띄우셨다.



무슨…. 우리가 오늘 사용할 제비뽑기는 만개가 넘어 보이는 선택지가 있는 돌림판이었던 것이다.

정여주
“와…ㅋㅋㅋㅋ. 왜 이렇게 많앜ㅋㅋㅋ.”

여기저기서 저희 보기 못 보게 하려고 저렇게 많이 만든 거냐, 왜 이렇게 갈 장소가 많냐, 똑같은 거 계속 넣은 거 아니냐 등 많은 말들이 쏟아 나왔다.

“자자…. 조용하하고, 너희들 못 보게 하려고 많이 넣은 거 맞고, 똑같은 장소 몇 개 많이 있다.”

“이제 돌린다. 장소가 별로든 말든 기회는 딱 한 번이다. 장소가 어디가 되었든, 친구들이랑 가면 재미없을 곳이 없으니, 불만 가지지 말자 알겠지?”

선생님은 그 말을 끝으로 드디어 저 많고 많은 돌림판을 돌리셨다. 그에 우리 반 학생들은 모두 책상을 쳤고,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마지막 수학여행이니 모두들 긴장된 듯해 보였다.


결과가 나왔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정여주
“ㅇ, 와…. 와아 와. 와 대박 와아아아!!!”


최수연
“대박!!!ㅋㅋㅋㅋㅋ 아싸라뱌!!!”

“할렐루야!!! 할렐루야!!! 제주도야!!!”

“와 진짜 개 좋아 개 좋아 개 좋아 ㅠㅠㅠㅠ.”

우리는 모두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고, 어떤 학생은 너무 신이 났는지 책상 위로 올라가서 춤을 추더라.

정여주
“저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


최수연
“야 여주야……. 저기 봐봐 선생님….”

수연의 말을 듣고 선생님을 봤는데, 너무 신이 난 학생들 탓인지 금방이라도 돌아가실 것 같아 보였다.

정여주
“조오오용!!!!!!!!!!!!!”


내 큰 목소리에 우리 반 아이들은 겨우 진정을 하게 되었고, 선생님께서는 말을 이어나가셨다.

“……. 고맙다 여주야. 자 우리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모두들 알다시피 2박 3일이고, 1반 2반 3반 따로, 4반 5반 6반 따로 간다.”

“헐 안돼요…4반에 친구 있는데….”

“쌤 반 바꿔도 되나욬!!!”

“조용조용!!! 입닫아 모두. 우리는 다다음 주 수요일인 11월 1일에 수학여행을 가게 된다. 모두 홀로그램 창 띄워봐. 일정 나눠줄 거야.”


“와 미친…. 헐 풀장 이용 가능하다고?”

“와 이번 수학여행 개 재밌겠다ㅋㅋㅋㅋ. 헬로키티 박물관 있다!!!ㅋㅋㅋㅋㅋㅋㅋㅋ.”

“얘들아 다 보이지? 안 보이는 사람 있어? 없지? 우리 1일차 일정은 이거야 입 아프니까 따로 설명 안 하고, 알아서들 봐라.”

그냥 말 그대로 수학여행의 일정은 아주 그냥 환상적이었다. 리조트에 풀장에 헬로키티 아일랜드에. 수학여행에 카페를 가는 학교가 우리 학교 말고 있을까.

심지어 6시 30분 집합이다. 이렇게 행복할 수가 있나. 초등학교 중학교 수학여행은 둘 다 8시 집합이었는데.

수학여행 날 아침은 동트기 전에 수연이와 만나서 편의점에서 밥을 먹어야겠다. 아 생각만 해도 재밌겠네….

“자, 이제 2일차 보여준다. 잘 봐라.”



최수연
“여주야 나 너무 행복해. 동국 고등학교 교사될래.”

정여주
“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미쳤다.”

2일 차도 말 그대로 그냥 미쳤고, 수학여행 일정 짜주시는 선생님 정말 누구신지 궁금했다. 이따가 물어볼까.

“자 이건 2일차 일정이고, 이것도 입 아프니까 알아서들 봐라. 3일차 일정은 그냥 집 가는 거니까 없다.”


“어때 얘들아, 마지막 수학여행 잘 보낼 수 있겠어?”

“네!!!!!!!!!!!!!!!!!!!!!!!!!”

“ㅎ좋아. 고등학교 수학여행 클라스는 원래 이래 얘들아. 초등학교 중학교 수학여행과 완전히 비교될 것이고, 훨씬 재미있을 거야. 그러니까 다다음 주까지 마음의 준비 잘하고, 캐리어 끌고 와도 된다. 질문 있는 사람?”

정여주
“수학여행 일정 짜주신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내 질문에 우리 반 아이들은 환호와 탄성을 자아냈다. 내 질문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뭔가 기분은 좋네.

“……누구일 거 같아?”

정여주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은 잠깐 고민하시는가 싶더니, 끝내 두 팔을 양쪽으로 벌리고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외치셨다.

“나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악ㅇ앙앙ㅇㄲㄲㄱㅇ앙앙ㅇㅇㅇㅇㅇㅇㅇㅇㅇ아ㅏㅏ오아!!!!!!!!!”

“쌤 대박이에요오오옹ㅇㅇㅇㄲㅇㅇㅇㄹ아ㅏ아ㅏ와아아아앙아ㅏ아아ㅏㅇ 찬양해!!!!!!!!!!!!”


최수연
“와씨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 찬양한다 석철쌤”

그렇다. 몇 화만에 밝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반 담임쌤 성함은 이석철 선생님이시다. 이름도 멋있지. 성격도 좋으시다. 심지어 수학여행 일정도 잘 짜시는 우리 석철쌤….

이석철 선생님
“자자 진정들 하시고, 이상. 행복하디 행복한 조례를 마친다.”

“안녕히가세요옹용요ㅛㅇ요용ㅇㅇㅇㅇ어ㅏ어ㅗ아아아아아앙아와아아아!!!”

이석철 선생님이 학생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실 때까지 우리 반 아이들은 멈춤 없이 계속해서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우리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행복하디 행복한 조례 시간을 보내고, 다시 이 지루한 3000초의 수업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지루하다가도 수학여행 일정만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니 오늘 하루 수업은 재미있을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