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

[외전] 석진, 이전 이야기

원래 석진은 홈리스, 즉 노숙자였다.

그러니까... 보육원에 살다가 나온 것이 10대 후반..

석진의 가출은 언제나 마음 속에 예정되어 있었지만, 정작 나간 날은 매우 충동적이었다

왜 하필 그 날이었냐 묻는다면....

그냥...?

어찌저찌 온 보육원에서도 성인이 되면 나가야하는데,

학교를 졸업해도 뭔가 뾰족한 수가 없을 것 같았고...

돈을 벌고 싶었던 것 같지만 명확한 목표는 없었다.

그래서 학교도 너무 답답하고 보육원에 가고 싶지도 않았던 어느날 그렇게 떠나버렸다.

급한대로 모텔에 월방을 끊고 편의점 알바를 시작했었다.

한해 동안 점심을 굶으며 모아온 급식비로 첫 방세를 내고,

처음에는 그럭저럭 살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러다가,

길거리에서 불량배를 만나 돈을 뺏긴 적도 있었고,

급기야는 몇 달 동안 잘 지냈던 월방에서

석진이 어려보인다고 눈 여겨보던 여관 주인에 의해 집에서 쫒겨났다.

이후에도 방을 구하고 알바를 해보려 했지만,

나이가 문제가 되어 쫒겨나거나,

알바에서 말도 안되는 일로 잘리는 등,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알바를 하는 것도, 거처를 구하는 것도 포기하게 된 석진은

엉망진창인 채로, 공원에서 20대를 맞이했다.

구걸해서 돈이 생기면 밥을 먹고 없으면, 공원의 쓰레기 통을 뒤졌다.

그러다가 공원에서도 관리인에 의해 쫒겨난 석진은

길거리에서 아무렇게나 지냈다.

그러다가 어떤 보육원 근처에서 노숙을 하게 된 지 일주일 쯤 되었을 때였다.

얼굴이 보이지 않게 벽보고 누워있던 석진의 위에는

어느날 곱게 펴진 손수건 하나가 있었다.

노숙자 석진

어... 뭐지..?

처음에는 손수건이 있는지도 잘 몰랐던 석진은,

다음날 또다시 손수건을 발견하자, 누가 두고가는지 약간 궁금해졌다.

그리고 다음날 또 다시 손수건을 발견한 석진은

이번에는 공원 공중화장실로 가서 손수건에 물을 적셔 깨끗히 얼굴을 닦았다.

노숙자 석진

누군지 얼굴을 봐야겠어.

다음 날 아침, 석진은 반대 방향으로 박스더미 위에 누었다.

탁탁탁.. 주변에 걷는 소리들...

노숙자 석진

'보육원 아이들 등교하는 시간이겠지..?'

또 하루가 지나길... 가만히 눈을 감는데...

초등학생 여주

아이.. 아저씨 아직도 여기 있네...

초등학생 여주

추워보이는데... 이것 밖에 없네요..

살짝 실눈을 뜨고 보니,

잠깐 서있던 학생용 구두가 머뭇거리다가 갔다.

석진은 아이들의 소리가 사라지고 나자 일어나서 손수건을 곱게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요 며칠 손수건을 덮어주고 간 사람이 조그마한 어린 아이라는 것에 석진은 약간 충격을 받았다.

그나저나 보육원 앞도 경비원이 쫒아내기 시작해서 곧 자리를 옮겨야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날, 또 아이가 왔다.

초등학생 여주

아저씨는 집이 없어요...?

초등학생 여주

이제 이게 마지막 손수건인데.. 이거라도 덮고 따듯하셨으면... 좋겠어요...

아이는 눈을 감고 조용히 자는 척하는 석진에게 손수건을 한장 또 덮어주고는

초등학생 여주

이건 잃어버리면 안되요... 수녀님께 엄청 혼났단 말이에요.. 자꾸 손수건 잃어버린다고..

초등학생 여주

잘 간직해요...

초등학생 여주

집에도 꼭 돌아가시구요..

코를 모은 두 발이 석진의 앞에서 머뭇거리다 사라졌다.

실눈을 뜨고 구두와 걸음걸이를 관찰하던 석진은

그 아이가 누구인지 얼굴이라도 알아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석진은 아이들이 하교할 시간에 몸을 세워 앉아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이 보육원으로 향하는데,

어떤 여자애가 잠시 석진이 있는 쪽을 바라보다 보육원으로 들어갔다.

석진은 여자아이의 구두와 발걸음을 보면서 그 아이가 아침마다 손수건을 덮어주고 간 아이임을 알 수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된 어린애가 자신에게 신경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자 석진은 민폐라는 생각도 들고,

이제는 노숙자로 지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숙자 석진

'.. 더이상은 안되..."

보육원으로 사라진 아이 뒷편으로

요 며칠 밤낮으로 자신을 흔들어 깨우며 집으로 가라고 하던 경비원이 석진이 앉아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노숙자 석진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고.. 뭐라도 해야하는데..'

경비원이 도착하기 전, 석진은 일어섰다.

그러고는 툭툭 온몸에 쌓여있던 먼지를 털어내고는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석진은 공원 화장실에서 대강 씻었지만 몰골이 영 그래서 어딘가에 직업을 구하러 갈 자신이 없었다.

석진은 하는 수 없이 공원에 앉아있는데,

툭,

석진이 깨끗히 빨아둔 손수건을 누군가 쳐서 바닥에 떨어뜨렸다.

불량배

아우씨, 뭐야.....? 미친! 이거, 노숙자 아니야!??

석진과 부딧친 남자는 기분이 나쁘다는 듯 팔을 털고는 바닥에 떨어진 손수건을 밟았다.

노숙자 석진

아니, 이 새끼가!!!

석진은 순간 욱해서 그 남자에게 덤볐다.

남자는 깜짝 놀라 석진에게 주먹을 날렸고, 주먹을 맞은 석진은 비틀거리다가 남자의 허리를 붙들었다.

다시한번 깜짝 놀란 남자는 석진을 두들겨패기 시작했다. 바닥에 쓰러져 맞는 와중에도 손수건을 품에 챙긴 석진은

눈 앞에 있던 남자의 발을 힘껏 물었다.

불량배

으아아악!!!

남자가 발목에 피를 흘리며 사라졌다.

맞은 곳이 아파서 벤치에 앉아 여기저기를 살피던 석진은 품 속의 손수건을 꺼냈다.

손수건은 무참하게 찟겨져 있었다.

복수심에 사로잡힌 석진은 그 남자를 어떻게든 찾고 싶어졌다.

검정색 구두.. 양복

석진은 회사를 다니는 사람일 꺼라 생각하고 며칠째 회사들이 모여있는 거리에서 노숙을 하고 있었다.

며칠동안 눈앞을 지나다니는 발들을 관찰해봤지만 지나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발을 절뚝거리는 사람이 없었다.

이 골목 저 골목 자리를 옮겨다니던 석진은 어두운 뒷골목에 잠을 청하려고 누어있다가, 눈을 번쩍 떴다.

왼쪽 발을 절뚝거리며 검은 구두를 신고 오는 남자.

신발 모양 발바닥이 닳은 모양

그 때 봤던 그대로다..

빙고.. 이 사람이다.

불량배

아우 진짜 형님, 그때 그 사람에게 물려가지고... 지금 완전 발 병신되게 생겼습니더..

대장

야, 이 미친놈아, 니가 잘 피했어야지...!

대장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나참.. 한심해서...

대장의 타박을 받던 남자는 갑자기 겁에 질린 듯 멈춰섰다.

노숙자 석진

너, 이 새끼 잘 만났다.

노숙자 석진

내가 너 찾으려고 여기를 얼마나 뒤졌는 줄 알아..?

석진이 소리지르며 다가오자 남자는 살짝 위축되더니 겨우 되받아쳤다.

불량배

뭐, 이런 미친 새끼가 다있어?

불량배

형, 형님, 이 새끼입니다...!!!

대장

오호라.. 그래..?

자신을 보호해줄꺼란 남자의 기대와는 달리 형님이라고 불리는 대장의 눈은 호기심으로 빛났다.

대장

그래, 얘를 찾으려고 여기를 다 뒤졌따꼬.. ?

대장

고놈, 사람 찾는데 재주가 있네??

그 사람은 아래 위로 석진을 훑었다.

대장

크하하...!! 뭐야, 너 진짜로 그지새끼잖아... ??

대장은 잠시 노숙자 특유의 냄새에 코를 막았다.

노숙자 석진

뭐 그래서 그지새끼는 막 때려도 되? 그리고 남의 소중한 물건도 다 짓밟아버리고!!

노숙자 석진

아우!!! 이 새끼 너!!

노숙자 석진

그래, 그지새끼한테 한번 뒤져봐라!!

석진이 덤비려고 몸을 날리자 남자는 겁을 먹고 바닥으로 납작 나뒹굴었다.

대장

오, 살기도 제법인데..?

대장은 석진이 맘에 들었다는 듯 다가왔다.

대장

너, 내가 하는 일 좀 도울 생각 없나..?

노숙자 석진

..네...네..???

어리둥절해 하는 석진의 어께에 대장은 팔을 둘렀다.

대장

사람 찾는 일인데, 잘하면 돈도 줄께...

대장은 손가락으로 동전모양을 만들어서 흔들며, 씩 웃었다.

아까와는 달리 대장은 냄새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장

일단 같이 가서 목욕 좀 하자,

대장

그래야 사람같아 보이지.. 안 그래?

노숙자 석진

아니.. 저 그게..

석진이 뭐라 말하려하자 대장이 가로막았다.

대장

거 사연없는 사람이 어디있어.. 목욕탕가서 사연도 좀 들어보고 일 얘기도 하고.. 나랑 이야기 좀 나눠보자~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이 남자는 바닥에 넘어져 있는 자신의 부하를 남겨두고 석진과 골목을 떠났다.

이후 석진은 일수 사무실에서 도망간 채권자들을 찾는 일을 했다.

석진은 편의점에서처럼 월급을 받던 것이 편하다고 생각되어, 대장에게 한달에 한번 월급의 형태로 보수를 달라고 했다.

허우대가 멀끔하고, 일하는 방식이 쿨한 석진이 마음에 든 대장은 석진이 원하는데로 해줬으며,

다른 부하들에 비해 제법 존중해줬다.

이후 석진은 김남준 검사에 의해 사무실이 해체되기 전 약 5년 간 이 곳에서 일을 하였다.

김남준 검사 image

김남준 검사

....

남준은 피고인으로 석진을 처음 만났다.

남준의 눈에 석진은 자신이 하던 일이 불법인 줄도 모르고,

이래저래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한 불행한 사람이었다.

일수 사무실에서 석진이 경찰도 찾지 못한 사람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추적하고 찾아냈다는 것을 알게 된 남준은

석진에게 기회를 주고자 경찰 및 검찰의 수사를 돕도록 하였다.

석진은 맡은 일들을 척척 풀어내며, 남준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냈다.

정해진 기간 이후에도 남준은 석진에게 일자리를 제안하였으며, 둘은 이후 오랫동안 함께 일하였다.

여러분... 오랜만이죠!

우와아... 여기까지 쓸 수 있을까.. 뒷얘기는 생략할까... 그동안 연재하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는데...

쓰는 날이 오네요... 싱기방기 합니다....

봐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어찌저찌... 온 것 같습니다...

진짜 봐주시는 독자님들 넘나 감사하고! 감사해요!

이제 다음편.. 찐막.. 갑니다요.. ㅎㅎ

다들 흥미롭게.. 혹은 여러 생각을 하며 보고 계시겠죠...?

어떤 생각이던... 온전한 자신의 것으로 잘 소화하셨길...

그럼 이만!!

*모든 이야기는 작가의 머리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 내 머릿속에 지진정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