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수사일지
Ep. 67 ° 명문유치원 아동학대 사건 (8)



8일 정도가 지나고 과학 수사 결과가 나왔다는 소식에 강력 1팀은 아침 9시에 사무실로 모였다. 연락 받고 바로 뛰쳐나온 거라 다들 비몽사몽했고 머리가 까치집인 사람도 더러 있었다. 어차피 결과 확인차 출근이어서 그 꼴을 별로 신경 쓰진 않았다.

"갑자기 불렀는데 나와줘서 고마워."

"1주일 동안 잘 쉬었을 거고..."

"바로 결과 보자."

연락을 먼저 받은 김 경사가 꼭두새벽에 받아온 결과 서류 봉투를 열어 그 안에 들어있던 서류 뭉치들을 꺼냈다. 보낸 증거품 만큼이나 우리에게 온 결과 서류들도 한 움큼이었다.


".....어?"

서류들을 손으로 헤집으며 눈으로 대충 훑던 김 경사의 손과 눈이 동시에 멈춘 건 정신 없이 글자들이 적힌 서류에서 보인 단어 때문이었다.

"아편... LSD... 케타민..."

".....뭐?"

김 경사가 결과 서류를 손으로 짚으며 줄줄이 읊는 단어들은 모두 마약의 한 종류였다. 수사 맡긴 물품들 전부 다 원생들의 손이 닿는 거였고, 심지어 식판까지 있을텐데...

물품마다 다양한 종류의 마약들이 골고루 적혀있는 걸 본 팀원들은 할 말을 잃었다. 제발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이 모든 서류가 우리를 혼란에 빠지게 하려고 조작한 거였으면, 차라리 그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하... 이 미친..."

그렇게 팀원 모두가 멘붕에 빠져있을 때 전 순경의 휴대전화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였고, 분위기도 가라앉아있었기 때문에 잠깐 안 받을까도 고민했지만 이내 수신 버튼을 누르는 전 순경.

- "여보세요?"

- "......."

- "...여보세요?"

전화기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소리를 좀 키우고 집중하던 전 순경에도 아무 소리가 안 들리자 장난전화인 줄 알고 끊으려던 찰나, 미세하게 나는 톡톡 소리.

- "......어."


-"이거... 연후예요. 연후가 건 전화예요."

오연후군을 처음 만난 날, 전 순경이 오연후군 손보다 훨씬 큰 자신의 명함을 쥐어주며 말했던 구조 요청 신호. 말을 못하는 상황이면 휴대전화를 톡톡 쳐라...

"김 경사, 당장 위치 추적해."

온몸을 떨면서 말하는 전 순경에 김 경감도 더 안 묻고 김 경사에게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지시했다. 오연후군이 무슨 연유에서든 위험해진 건 확실했으니까. 당장은 오연후군을 구하는 게 우선이다.


위치 추적 결과 오연후군이 전화를 건 건 공중전화 부스였고, 오연후군은 그 공중전화 부스 안에 식은땀을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살기 위해 동전 몇 푼 넣고 유일하게 번호를 아는 경찰에게 전화를 걸기까지 이 작은 아이에게 어떤 힘이 나왔던 걸까.

전 순경이 작디작은 오연후군의 몸을 들어안아 식은땀을 닦아줬고 민 경위가 신고를 하러 휴대전화를 드는 과정까지 일사천리였다. 부디 너무 늦은 게 아니었으면...

"여기서 제일 가까운 병원으로 가죠. 한주대학병원."

"한주대병원은... 최대한 피하는게..."

"왜?"

"...오병식씨 계시잖아요. 연후 이렇게 된 거 직접 보시면 못 사실 겁니다."

".....그러면 한국대병원에 걸게."

이런 하 순경의 사소하지만 확실한 배려까지 모든 게 강력 1팀의 완성이었다. 이제서야 모든 게 제자리가 되고, 비로소 온전해지고 있었다.


한국대병원에 도착한 오연후군은 병원에서 꾸준한 치료를 받아야만 괜찮아질거라는 소견을 들었다. 그리고 덧붙여진 실신 사유는... 마약에 의한 중독성 쇼크였다. 유치원에서 차곡차곡 쌓인 게 기어코 터진 것이다.

"...우선 유치원 먼저 휴원 조치 내리죠."

"다른 아이들의 등원을 막는 게 우선입니다."

"그래. 연후 부모님께는 연락 드렸어?"

"두 분 다 오시는 중이랍니다."

워커홀릭 오병식씨도,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작가 박윤희씨도 지금 만큼은 한 아이의 부모로서 모든 걸 내던지고 달려오고 계실거다. 아이가 없으면 자신들의 사랑인 직업조차 없게 되니까.

김 경사의 말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병실문이 거세게 열리고 땀범벅의 오병식씨와 박윤희씨가 들어오셨다. 작은 몸에 어린이용 주삿바늘을 꽂은 채 링거를 맞으며 누워있는 아들을 본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아마 지금은 감히 헤아릴 수 없겠지.

"...안녕하세요, BU경찰서 강력 1팀입니다."

"수사에 협조해주신 만큼 빠르게 수사를 진행했고, 오연후군이 위험하지 않게 하려고 했는데..."

"어떠... 어떤 상황입니까, 우리 연후."

"...마약에 의한, 중독성 쇼크입니다."

"아마 등원하던 오연후군이 의식이 희미해지는 걸 느꼈을 거고..."

"기절 직전 저희에게 공중전화로 연락해줬습니다."

"...말 못 하는 상황이면 전화기 툭툭 치라는 제 말 안 잊었더라고요."

"덕분에 빨리 발견돼서 치료 후 호전될 거라고 합니다."

"잠시, 잠시만요. 마약에 의한 중독성 쇼크요...?"

"마약이 어디서... 설마..."

"...믿고 싶지 않으시겠지만, 오늘 유치원 물품 과학 수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물품들에서 빠지는 것 없이 모두 마약이 발견됐고, 유치원은 당장 휴원 조치를 시도중입니다."

비싼 원비인 만큼, 교육과정이 좋은 만큼, 시설이 좋은 만큼, 무엇보다도 우리 아들이 좋은 곳에서 잘 먹고 잘 크길 바라서 믿고 보낸 곳인데 난데없는 마약이라니.

정말 벼락 맞은 심정인 거 같을 오연후군 부모님은 결국 무너졌다. 그 작은 몸으로 마약과 접촉했을 걸 생각하며, 그럼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작은 아이일 뿐이니까,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 것들 때문에 오늘도 피해자만 고통 받았다.

여기서 강력 1팀이 할 수 있는 건 유치원 휴원 조치를 재촉하는 것과, 오연후군의 작은 팔다리를 정성껏 주물러주는 것, 주저앉은 피해자 가족 곁을 말없이 지켜주는 것 뿐이었다.

당장이라도 마약을 유통한 사람들과 그 유치원 관계자들을 잡아족치고 싶었지만 꾹 참아야했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말이다.


무거운 마음을 뒤로 하고 일단 서에 복귀했다. 강력 1팀이 심하게 재촉하자 위에서도 별 말 없이 유치원 휴원을 허가해줬기 때문이었다. 이제 유치원 관계자들을 먼저 체포해야 했기에 그 계획을 짜러 사무실에 모였다.

"우선 거기 원 선생님들도 그렇고, 급식 관계자나 관리인 싹 다 잡아야돼."

"현장 체포에, 이송에, 심문, 증거물 추가 수집까지..."

"해야할 게 많아서 인력 보충이 좀 필요한데 부를 지원이 있는 사람 거수."

"아마... 과학수사팀 강 경위 지원 가능할겁니다."

"강력 2팀 김 순경 지원 가능합니다."

"심문도 지원 있으면 좋죠?"

"그렇지, 아무래도."

"전문들이 하는 심문은 우리보다 나을 테니까."

"장 경감님 괜찮으시대?"

"...모르겠어. 저번에 일이 잔뜩 쌓여있는 걸 봐서."

"그러면... 상담심리 3팀 최 경사님 지원 요청하겠습니다."

"안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데 그래도 한 번 말씀 드려볼게요."

"그래, 고맙다."

"이제 슬슬 출발해야 하니까 장비 챙기고."

강력 1팀 팀원들은 오랜만에 체포 장비를 챙기며 이를 갈았다. 죽어야 마땅한 유치원 관계자들을 잡아처넣고 학부모와 원생들에게 하루빨리 안정적인 삶을 되찾아줘야 했다. 오연후군 뿐만 아니라 또 다른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도 말이다.


망설임 없이 소망유치원에 들이닥친 강력 1팀과 그들의 지원군들. 원생들도 있는 시간대라 최대한 원생들이 충격 받지 않게 케어하면서 관계자들을 체포하고 증거물을 수집하는 게 목표였다.

"어어, 괜찮아. 이모랑 장난감 놀이 할까?"

제복을 차려입은 경찰들의 기습 방문에 유치원은 금세 아수라장이 됐고 울음을 터뜨린 원생들을 강력 2팀 김 순경이 다독여줬다. 그 사이에 유치원 관계자들을 하나둘 체포했고 저번에 과학 수사에 맡기지 않았던 유치원 물건들을 싹 쓸어담았다.

"팀장님. 원장이 안 보이는 거 같습니다."

"뭐?"

"원장실에도 없고, 휴게실에도 없고..."

"도망... 간 거 아닐까요."

"...샅샅이 뒤져."


"절대 놓치면 안돼."

김 경감의 가라앉은 눈빛과 잠긴 목소리가 지시의 진중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강력 1팀 팀원들과 지원군들은 그런 김 경감을 보고 이 사건을 끝내러 유치원을 헤집기 시작했다.


유치원 중에서도 원장실을 제일 먼저 들어온 김 경사와 전 순경. 서랍과 옷장, 소파 밑까지 죄다 뒤지며 원장에 대해 더 건질 건 없나 확인해보는 중이었다. 이런 놈들은 하나라도 더 파헤쳐 오래오래 감옥에서 썩어야되는 게 맞으니까.

"...어?"

"뭐 찾으셨습니까?"

"이것 좀 봐."

김 경사가 원장의 책상 서랍에서 찾은 것은 마약 유통업체와 교류한 증거 서류 뭉치였다. 마약 거래 확인 서류, 마약 종류 기재된 서류, 거래 영수증 등등... 이젠 심증이 아닌 물증으로 들이댈 수 있었다.

그런 서류들 끝에는 '메드'라는 이름의 협회가 싸인하거나 지장 찍은 흔적이 있었다. '메드'라... 김 경사가 이 이름을 어디서 봤는지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때 전 순경이 다급하게 김 경사를 불렀다.

"김 경사님...!"

"어, 왜?"

"이거... 마약 같습니다."

"...뭐?"

전 순경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옮기니 책장 한켠에 소복이 쌓여있는 하얀 가루가 보였다. 평범한 유치원 원장실이었다면 마약이라곤 생각도 안 했을텐데 오연후군 몸에서 나온 마약 성분들 때문에 의심은 곧 확신이 됐다.

"여기 비닐팩. 장갑 끼고 수집해."

"네, 알겠습니다."

전 순경은 한 톨도 남기지 않고 꼼꼼하게 마약으로 추정되는 가루들을 수집했고 마침 원장실에 들어온 강 경위에게 장갑과 함께 비닐팩을 넘겼다.

"강 경위님, 이거 과학 수사 넘겨주세요."

"뭐야, 이거 뭔데요?"

"아마... 마약일 겁니다."

"...알겠습니다. 꼼꼼히 해달라고 부탁드려 놓을게요."

"감사합니다."

마약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표정이 굳는 강 경위가 이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라도 꼭 오늘 안에는 원장을 체포해 이 끔찍한 상황의 연속을 끝내야만 했다.


빨리 보여드리고 싶어 분량을 줄여서 왔습니다 🥺 아마도 골치 아픈 불법 조직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거 같죠?! 명문유치원 아동학대 사건은 끝을 바라보고 있지만, 강력 1팀은 이제 시작이니 끝까지 잘 달려보아요 💞

이제 종강을 하기도 했으니...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 받고 있는 많은 관심에 보답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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