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늘 응원해
봄날 (2)


연수와는 자주 연락하자고 얘기한 뒤, 정국과 여주는 메로나 2개를 산 채로 다시 벤치에 앉았다.


정국
왜 아까 고민했어?


여주
으응?


정국
아까 김연수가 김태형 얘기 꺼냈을 때.


정국
왜 바로 대답 못 했어?

정국의 목소리는 추궁한다기 보다는 조심스럽게 묻는, 부드러운 톤이었다.

그랬기에 여주도 그냥 솔직하게 마음을 술술 털어냈다.


여주
연수는... 내가 사고를 당하기 전 태형이 다음으로 친했던 친구야.


여주
가끔 셋이서 어울릴 때도 있었는데, 연수가 전학을 가버리는 바람에 연락이 잠시 끊겼어.


여주
너도 알다시피 곧이어 태형이도 미국으로 가버렸고.


여주
아마 연수도 태형이 소식이 궁금했을 거야.


여주
하지만....


정국
...........


정국
「말할 수가 없었겠지...」


정국
「지금까지의 상황들을 차마..」


정국
김태형에 대한 일은 나도 유감이야.


여주
.....!

여주는 새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나 정국에게 태형이 잊고 싶은 존재일까 두려워 어렵고 조심스럽게 꺼낸 태형의 얘기에 정국이 그다지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여주
그럼 이제 다시 병실로 가자.


여주
앗.....!

특실 107호의 문을 여니, 열어놓고 나온 큰 창문 사이로 따스한 봄바람과 함께 벚꽃잎들이 봄비처럼 여주와 정국을 맞아주었다.


여주
우와.... 진짜 예뻐..

정국도 그 광경이 아름답다는 듯 넋을 놓고 흩날리는 벚꽃잎들을 바라보았다.


여주
굳이 꽃구경을 하러 갈 필요가 없겠는데??


정국
음.... 아냐 그건....


정국
환자복 입고 꽃구경하는 거랑 사복 입고 꽃구경하는 건 엄연한 차이가 있는 거지!


정국
그런 의미에서...


정국
나가자, 우리.


여주
.... 너 머리는?


정국
이건 진심인데, 머리는 그다지 안 아파.


정국
갈비뼈만 조심하면 괜찮을 거야.


여주
흠......

사실 여주도 환자복에서 벗어나 이 봄날에 정국과 데이트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긴 했다.

다만... 석주가 당부하고 간 세 가지.


석주
-첫째, 환자복에서 벗어나지 마라.


석주
-둘째, 병원에서 벗어나지 마라.


석주
-셋째, 회복이 최우선이다.


여주
좋아... 그럼 나도 가고 싶긴 한데 오빠는...?


정국
형한테 걸리면...


정국
둘 다 죽는거지 뭐.

나름 해맑게 말하는 정국에 여주가 반박했다.


여주
야!! 너 오빠가 진짜 화난 거 본 적 없지!!


정국
형이 화난 거....?

그래... 없었다.

정국은 이때까지 석주가 제대로 화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여주조차도 단 한 번.

자신을 괴롭히던 선배들에게 화를 낼 때의 석주의 모습을 기억한 것 뿐.


여주
나도 딱 한 번 보긴 했지만...


여주
진짜... 사람이 달라진다고!!


정국
음....


정국
안 걸리면 되지 않을까?


여주
............ 그....래...


여주
그렇다면... 정말 안 걸리는 걸로.

여주와 정국은 특실 어딘가에 놓여있는 자신들의 사복을 갈아입고 몰래 병원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여주
헥.... 헥..


정국
...... 휴..

겨우 병원을 빠져나와 시내 한복판으로 들어선 둘은 그제야 데이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여주
우리 그거 보자!!


여주
최근에 공포영화 나온 거!!


정국
곤지암...?


여주
어어!!! 그거 보고 울지 않기!! 뛰쳐나가지 않기!!


정국
「왜 공포영화를 보면서 울고 뛰쳐나가...」


정국
아, 알았어..


여주
오빠는 오늘부터 본사로 다시 출근했다고 했지?


정국
어. 이제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회사를 이끌어줄거야.


여주
ㅎㅎㅎ... 그럼 몇 시에 퇴근하려나?


정국
환영식 같은 걸 할 수도 있으니까..


정국
빨라도 11시~12시는 넘지 않을까?

여주의 표정이 환해졌다.


여주
히히, 그럼 더 늦게까지 놀아도 되겠네?


정국
어... 그렇지!


정국
「ㄱ... 귀여워!!!!」

바로 30분 뒤에 상영되는 영화 <곤지암 정신병원> 티켓을 두 장 예매한 둘은 팝콘을 산 후 영화관에 들어갔다.


여주
오오오오 시작한다!!

여주가 팝콘을 한 움큼 집어들며 소곤거렸다.

영화가 시작되고, 주인공들의 시점으로 보이는 카메라들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정국
「아... 화면이 어지러워서 그런가.」



정국
「다친 머리가 갑자기 아파오는데.」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음7 옆자리의 여주를 보니, 귀신이 나와도 신기하다는 듯이 입을 헤 벌리누채 빠져들고 있었다.


정국
「얘가 재밌게 보면 되지 뭐...」

그렇게 정국은 눈을 감은 채, 살짝 잠이 들었다.

06:38 PM
영화가 끝나자 몇몇 커플들은 울며 영화관을 빠져나갔다.

여주가 웃으며 옆자리를 보니, 정국은 떡실신을 한 채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여주
뭐야.. 언제부터 잔 거지!!?


여주
전정구우우우욱!!!! 정국아!!!!

여주가 정국을 흔들어도 보고, 어깨를 두드려도 보고, 귀에다 대고 이름도 불러보았지만 정국은 여전히 고개를 시원하게 뒤로 젖힌 채 코를 골고 있었다.

직원
저... 손님..

직원
이제 다음 영화 시간 전에 정리해야 해서 퇴장해주셔야 하는데....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영화관은 텅 비어있었고, 여주, 정국과 직원 한 명만 남아 있었다.


여주
아! 죄송해요..!


여주
그런데 지금 일어나지를 않아서...

직원
혹시 기절하신 건 아닐까요?

직원
공포영화는 가끔 그런 손님들이 계시거든요.


여주
그건 아닐 거에요.


여주
아까부터 코를 너무 잘 골고 있거든요.

여주가 급한 마음에 한 손을 들어 정국의 볼 한 쪽을 잡고 쭈욱 당겼다.


정국
아! 아아앙ㅇ아아아!!!!!!!!

효과는 엄청났다.


정국
아어하응어야! 아하두헤에!!!

(아뭐하는거야! 아파죽겠네!)


여주
그러게 진작 일어나던가..

정국이 그제서야 상황파악을 하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국
아핫! 죄송합니다..


정국
나... 언제부터 잔 거지?


여주
그러게나 말이야.

여주가 정국에게 눈을 흘겼다.


정국
그, 그 화면이 어지러워서 눈 좀 감다가 그만..


정국
「어떡하지 삐졌나..?」


정국
「아니겠지..?」

그때, 정국의 시야 안으로 여주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였다.


정국
??


정국
「나 여주랑 나란히 걷고 있었는데?」


여주
그럼 머리는 괜찮은거야?


여주
어지러웠다며.

여주가 삐진 줄 알고 걱정하던 정국은 오히려 여주가 자신을 걱정해주자 놀랐지만 금세 웃으며 말했다.


정국
어, 괜찮아.


정국
이제 뭐라도 먹으러 갈까?


여주
음... 좋아!!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