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에도 예보가 있다면
05


윤여주
네?!!


김석진
왜 그러세요?

윤여주
혹시 그 사람이 누군지 생각났어요?


김석진
아··· 아니요. 그것까진 기억이 안 나요. 그 순간이 저에겐 좋았던 순간이었나 봐요. 그래도 그 순간은 기억이 좀 있어서.

윤여주
아···. 그러시군요. 처음 느껴본 감정 그게 뭔지 여쭤봐도 돼요?


김석진
음··· 첫사랑이라고 하면 그거일 수도 있겠어요. 아팠던 순간들만 가득했는데 그 사람은 아팠던 순간을 잠시 잊게 해준 사람이기도 해요.

윤여주
······.

결국에는 옛날 생각 하고, 곧이어 눈물도 흐르게 됐다. 절대 안 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을 지금 전부 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볼을 타고 흐르고 있던 눈물을 얼른 닦아내었다.


김석진
여기 휴지요.

윤여주
아, 감사해요···. 감동이어서···.

작가님이 그래도 신호등에서 누군가를 만난 건 기억한다. 난 작가님을 처음 만났을 때 비 오는 날 우산 씌워줬다고만 말했다. 지금이라도 말하면 조금이라도 기억해 줄 수도 있을 텐데 차마 입에서 튀어나오지 못했다.


김석진
그런가요···.

윤여주
또, 또 다른 거 걸고 싶은 건 뭐예요?


김석진
큐레이터님이 뽑아주실 수 있어요?

윤여주
제가요?


김석진
보는 안목 남다르시잖아요. 전 사실 구분이 잘 안 가요.

윤여주
걸었으면 하는 작품 사실대로 말해도 돼요?


김석진
그럼요. 어떤 건데요?

윤여주
이거 학교 시리즈요.


김석진
어···.

윤여주
그 시절 작가님에게는 안 좋았던 기억이지만, 풍경만큼은 작가님에게 행복을 준 거잖아요. 이참에 새롭게 의미 해석을 하면 되죠.

윤여주
슬펐던 게 아닌 풍경을 보고 그리며 행복했던 기억으로. 시리즈로 내어도 전 좋을 거 같은데···.


김석진
큐레이터님 안목뿐만 아니라 설득도 잘하시네요.

윤여주
제가 그랬나요? 설득이 되었다면 좋은데요?


김석진
시리즈··· 좋은 거 같아요.

그렇게 작가님과 오랜 시간 상의 후 전시할 작품 셀렉은 다 정리가 되었다. 되게 짧은 시간 안에 한 것 같았는데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났다.

윤여주
아, 그때 작가님께서 좋아하셨던 그 전시실이요.


김석진
네네.

윤여주
그 전시실에서 진행하기로 했어요.


김석진
정말요?

윤여주
그곳에 작가님 작품이 걸린다는 것을 생각하니 벌써 들뜨네요.


김석진
저는 기대 반 걱정 반이네요.

윤여주
뭐가 걱정돼요?


김석진
사실 전시도 이번이 처음이기도 하고 관람객들이 많이 와줄까도 걱정이고요. 괜히 망치는 건 아닐지.

윤여주
작가님, 그런 생각을 왜 해요. 물론 많이 와주실 거고, 전혀 망치지 않을 거예요. 그런 생각 진짜 하지 마세요.


김석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볼게요.

윤여주
네, 좋아요. 그럼, 다큐 찍을 때 또 봬요.


김석진
조심히 들어가세요.

윤여주
김태형 큐레이터?


김태형 큐레이터
어··· 아··· 큐레이터님.

윤여주
김 큐레이터가 여기 왜 있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김태형 큐레이터
아··· 그게···. 큐레이터님 걱정돼서 왔어요.

윤여주
몰래 따라온 거야?


김태형 큐레이터
죄송해요···. 그래도 계속 혼자 보내는 게 마음에 걸려서.

윤여주
나 생각해 준 건 고마운데 말도 없이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건 하지 마.


김태형 큐레이터
네···.

윤여주
많이 기다렸어?


김태형 큐레이터
네···?

윤여주
많이 기다렸냐고. 작가님이랑 얘기 길게 했는데 여기서 계속 기다린 거야? 난 추워죽겠는데 넌 춥지도 않냐?


김태형 큐레이터
춥죠. 그런데 큐레이터님이 언제 나오실지 모르니까.

좀 걷다가 그 신호등 길을 마주했다. 아까 작가님이 한 얘기가 문득 떠올랐다.


김석진
‘음··· 첫사랑이라고 하면 그거일 수도 있겠어요.’

첫사랑···. 나도 그때의 선배가 첫사랑이었는데 그럼, 선배도 그때의 내가 첫사랑이었던 거다. 첫사랑··· 되게 설레는 말인데, 나에게는 그저 첫사랑은 슬픔뿐이다. 슬픔이 뭐라고 그때의 좋았던 설렘을 전부 가려버렸다.


김태형 큐레이터
큐레이터님?

윤여주
어?


김태형 큐레이터
갑자기 넋 놓고 계시길래.

윤여주
아··· 아니야. 가자.


김태형 큐레이터
그런데 어디 가는 거예요?

윤여주
어디 가긴. 들어가야지.


김태형 큐레이터
저 차 가져왔는데요?

윤여주
그걸 왜 이제 말해.


김태형 큐레이터
아니··· 그냥 계속 큐레이터님이 가시길래 따라간 건데···.

윤여주
그러면 들어가라.


김태형 큐레이터
네? 큐레이터님은요?

윤여주
나? 나 오늘 외근이 일정 끝인데?


김태형 큐레이터
그럼 저 지금까지 뭐 한 거예요···?

윤여주
그러니까 누가 기다리래?


김태형 큐레이터
와 큐레이터님 너무 합니다···.

윤여주
추울 텐데 얼른 들어가라. 수고~

사실 그래도 지금까지 나 기다려 준 걸 생각하면 뭐라도 사 먹이고 싶은데 계속 같이 있다가는 내 마음 들킬 것 같아 서둘러 보냈다. 금요일 저녁이 다 되어가는 지금, 항상 자주 들르던 바를 찾았다.

윤여주
사장님, 저 왔어요.

사장님
오늘은 일찍 왔네? 힘도 없어 보이고.

윤여주
네···. 술 땡기는 날이네요.

사장님
왜 또 뭔 일인데.

윤여주
오늘은 사장님이 추천해 주세요. 가능하면 좀 높은 걸로. 아무 생각도 안 나는 그런 거로요.

사장님
뭔 일이 있는 건 맞구나?

자연스레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고 사장님은 걱정하는 듯하더니 또 도수 높은 술은 잘만 주신다. 한 모금 입 안에서 한참 굴리고는 삼켰는데 뭔가 이제야 살 거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 옆자리에 누군가 앉았다.

B
사장님 안녕하세요. 늘 먹던 와인으로 주세요.


MEY메이
오늘도 보러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