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줄게, 나쁘게.
Episode 172 ˚ 육아 일기



뭘 참아, 참기는. 어느새 제 위에 올라가 있던 태형을 손으로 팍, 밀쳐도 꼼짝 않고 그대로인 그의 모습에 여주가 내심 의아했다.


김태형
정말이야, 나 되게 힘들었는데.


정여주
…그래서 뭐, 왜...

힐끗힐끗, 최대한 겁먹지 않은 척(?) 하려 태형의 눈을 마주친 여주. 절로 입술을 앙 다물게 됐다.

그렇게 태형이가 점차 더 가까워지면… 반사적으로 손으로 입을 가린 여주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태형을 바라본다.


김태형
…나 양치했는데.

절레절레, 그게 아니잖아. 부정의 뜻을 보인 여주가 이내 손을 내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것도 아주 조심스럽게.



정여주
……그,

내가… 정말 혹시나일 걸 알고 있는데, 정말 알고… 있는데…….



정여주
………서림이 동생은, 안 돼.

제 손가락으로 태형의 입술을 매만져준 여주가 끝내 말을 매듭지었다. 여주의 말을 기다리던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옅게 깔렸고.


이상하게도 아무 대답이 없는 태형이에, 여주가 재차 소심스럽게 확인했다. 나랑 약속해, 그래줄 거지……?

잠시나마 그런 여주를 눈에 담던 태형이가 여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나 너 힘들게 안 하는 거 알잖아.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여주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우리 남편 때문에 힘든 적이 아예 없지는 않은 것 같은데.




05:15 AM

태형이 출근 준비하기 위해 맞추어 둔 알람이 울리기도 전. 아직까지 밖은 깊은 어둠이 자리 잡은 상태.

얼떨결에 잠 깨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역시나, 그의 품에 안겨 고른 숨을 내쉬며 잠에 든 여주가 눈에 띄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김태형의 상의 착용 중인 여주)

게다가 세로로 누우면 좁은 소파임에도 불구하고, 두 성인남녀가 같이 잠 들었으니 서로를 껴안은 채 얇은 이불을 덮고 있는 것. 여주가 안쪽에 자리 잡은 건 물론.

태형은 이른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마주하는 이 광경이 너무나도 좋았다. 그래서 안고 있던 여주를 더 꼭 끌어안았는데, 그새 깨려 하는지 웅얼거리길래 다시 토닥이며 놓아줬다. 여주 잘 자야지.


김태형
…여주야아.


김태형
자... 자... 아직 새벽이야...

자기도 눈 덜 뜬 상태로 여주 머릿결 빗어주기 바쁜 태형이는 볼 만지작거리고, 입 맞추고… 잠든 사람 데리고 애정 표현도 빼먹지 않았다.

그렇게 어째 순탄한 새벽이 흘러가나 싶었는데-


방문 너머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비몽사몽한 눈이었음에도 몸이 먼저 반응해, 태형이 조심스레 여주를 놓아줬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서림이의 울음 소리에 여주가 뒤척이면, 자기가 가볼테니까 여기 있으라고. 다정하게 속삭여주는 태형이었다.


정여주
……자기야...


김태형
응, 여보야….

태형이 일어나려 하면 그의 목 뒤로 팔을 두른 여주가 가볍게 입맞춤 한 번 해줬다. 태형이는 또 헤실헤실 웃으며 좋아 죽고.

하지만 달달한 기류도 머지않아, 곧장 더 거세지는 울음소리에 방으로 걸음을 옮겨야만 하는 그였다.



방문을 달칵, 열면 서림이 울음소리로 인해 먼저 깬 서우도 비몽사몽 한 눈으로 앉아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눈을 못 떼는 태형은 옷장을 열어 제가 입을 상의를 집히는 것으로 입었고.


김태형
서우 방금 깼어?


김서우
엉... 서우 피고내...


김태형
아빠가 서림이 재울 테니까, 서우 다시 자고 있어-.


김서우
움... 웅!

태형의 말을 들은 서우는 이불을 다시 제 목까지 끌어올리며 뒤로 드러누웠다. 눈까지 질끈 감고서.

그런 서우에게 시선 고정한 채, 서림이 안은 채로 쪽쪽이 물려주며 방을 나서는 태형이었다.



그래도 쪽쪽이 물려주니까 꽤 얌전해진 서림이 반응. 눈물 콧물 범벅된 얼굴을 태형이 조심스레 닦아줬다.


김태형
서림아-.


김태형
맘마 먹을까-? 배고파요?

혹시나 서림이가 울었던 게 허기져서일까 봐, 아기 힙시트에 서림이 앉힌 태형이가 분주하게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소독된 젖병에 일정한 비율로 물과 분유 넣고, 여태 안 썼던 팔 근육 동원해서 그냥 흔들기 바빴다. 서림 공주, 아빠가 너한테 이렇게 진심이다.


김태형
자, 서림이 먹을까-?

마침 완성되어서, 뚜껑을 열어 입구를 서림이 입가에 가져다 대는데… 물고 있던 쪽쪽이를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이 미간에 주름이 진 서림이.


김태형
어, 뭐야. 김서림 지금 뭐하는 거ㅇ…

뿌에엥. 다시금 울음을 터뜨리는 서림이에, 태형이는 멘붕. 젖병도 내려놓고, 쪽쪽이도 내려놓고 서림이 엉덩이 토닥거리며 조금씩 리듬 타주기 바빴다.

어떻게든 서림이를 다시 재우고 싶었거든.


김태형
서림 공주…. 아빠가 널 잘 몰라서 미안해.

아빠가 아직 모든 거에 서툴러서 정말 미안해. 자기도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허공에다 외쳐대는데, 그 말의 진심이 서림이에게 닿기라도 했는지 금방 울음을 그치는 아기였다.



김태형
아빠가 미안해….


김태형
서림아, 아빠가 미안해...

"으우아에에에에엥!..."


멘탈 2차 붕괴. 이유를 모르겠어, 연신 외쳐댄 태형은 체념하며 의자에 앉았다. 서림아 울지마…. 엄마 깬단 말이야.

태형이가 엄마, 부르기 무섭게 거실로부터 들려오는 익숙한 발걸음 소리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보 일어났어?



정여주
응, 자기야... 서림이는?

어, 서림이 요기 있넹! 근데 서림이 왜 울었어~ 눈시울이 붉어. 태형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서림을 안아들며 말을 이어가는 여주.


김태형
하... 자기야.


정여주
응-?


김태형
나 진짜 너무 힘들었어.

정말 잠깐이었지만, 여보 네가 죽도록 보고 싶었다. 서림이와 마찬가지로 울상인 표정을 지은 태형은, 서림이가 안겨있는 앞이 아닌 뒤에서 그녀를 안았다.




김태형
…나 그래도 칭찬해 줘, 자기야. 이렇게 분유도 탔다-.

달랑달랑, 작은 젖병 안의 분유를 보여주며 여주의 어깨에 제 턱을 받친 태형은 세상 자랑스럽게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