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
04


다음날, 태형과 월은 아침의 일과 중 하나인 문안인사를 위해 강녕전으로 향했다.

아직 초봄이라 그런지 날씨가 꽤 쌀쌀했다.

김태형
아바마마, 소자 들었사옵니다.

김태운
그래, 들어오너라.

둘은 왕 앞에 조심스레 앉았다.

김태형
어젯밤엔 평안히 주무셨습니까?

김태운
그래. 세자와 세자빈은 어떠했는가?

김태형
저희 또한 잘 잤습니다, 아바마마.

김태운
세자야, 세자빈이 마음에 드느냐?

김태형
.....

태형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김태형
저... 그것이.... 아바마마

말까지 더듬는 태형을 보며 왕은 크게 웃었다.

김태운
하하하하!!! 세자의 대답은 잘 들었다. 허면 세자빈은 어떠냐. 우리 세자가 마음에 드느냐?

허 월
.....예, 전하. 마음에...듭니다.

김태운
그것 참 다행이로구나. 이제 그만 나가보도록 하여라.

김태형
예, 아바마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강녕전을 나선 태형은 계속 아까의 상황이 떠올라 월과 눈을 맞추지 못했다.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못드는 것은 월 또한 마찬가지였다.

태형을 오랫동안 모셔온 태형의 아버지 같은 존재인 상선은 그런 둘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강녕전 다음은 교태전이었다.

김태형
어마마마, 밤새 평안하셨습니까?

윤희연
예, 세자저하. 덕분에 매일 잠도 잘 자는것 같습니다. 세자 저하는 어떠십니까?

김태형
저도 무탈합니다, 어마마마.

윤희연
헌데, 세자저하. 세자빈에게 말동무를 붙여보는 것 어떠십니까.

김태형
말동무라 하셨습니까?

윤희연
예. 이제부터 내명부에서 예절교육을 받게 되면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눌만한 동무 한 명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윤희연
세자빈은 어떻게 생각하오?

허 월
중전마마께서 친히 신경 써주시니 황송하옵니다. 저에게 동무를 붙여주시겠다면 저야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되옵니다, 마마.

윤희연
세자빈이 기뻐한다니 나도 기쁘오.

김태형
어마마마, 그러면 그 동무는 누구로 할것인지 이미 정해놓으신 겁니까?

윤희연
예, 그때 삼간택날 세자저하께서도 보신 아이입니다.

김태형
설마....?

윤희연
예, 저의 조카아이 윤설희입니다.

김태형
........

윤희연
똑똑하고 영특한 아이이니 말이 잘 통할것이오, 세자빈.

허 월
예, 중전마마. 이리 베풀어주시니 감사하다는 말 외엔 드릴 말씀이 없사옵니다.

윤희연
그럼 오늘 예절교육이 끝나는 대로 설희와 만나보겠소?

허 월
예, 그리 하겠습니다.

교태전을 나와 동궁으로 향하는 태형의 표정이 어두웠다.

허 월
저하,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십니까.

김태형
세자빈, 그 아이 말이오.

허 월
제 말동무가 될 아이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김태형
그렇소. 그 아이는... 그...

허 월
예, 압니다.

김태형
...? 무엇을 말이오.

허 월
저하께서 무엇을 걱정하시는 것인지 알고 있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소첩,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사옵니다.

김태형
고맙소... 정말 고맙소.

허 월
저하, 저는 세자빈인 몸. 저하를 보필해드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옵니다. 고맙다는 말은 삼가소서.

김태형
고맙다는 말 말고는 해줄수 있는게 없소. 하지 말라는 말은 하지 마시오.

허 월
저하, 그리 고마우시다면 소첩이 청을 하나 올려도 되겠습니까?

김태형
무엇이든 말해보시오. 내 뭐든 들어줄테니.

허 월
전하의 물음에 대답해주십시오.

김태형
...? 뭐라 하였소?

허 월
전하께서 여쭤보셨을 때 저만 대답하지 않았습니까? 소첩만 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옵니다.

순간 태형의 머릿속에 왕의 목소리가 울렸다. '세자야, 세자빈이 마음에 드느냐?'

김태형
아... 그.. 그게

허 월
지금 대답해주십시오. 그것이 소첩의 청이옵니다.

허 월
저하, 제가 마음에 드십니까?

당돌한 월의 질문에 태형은 잠시 당황한 듯 했다.

하지만 이내 월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고서는

월을 살포시 끌어안았다.

김태형
내 이렇게 당돌한 여인은 처음 봤소.

허 월
저하, 아직 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김태형
하아... 어찌 세자빈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단 말이오......

대답을 들은 월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살짝 그를 떼어내 그와 눈을 맞추었다.

김태형
만족스럽소?

허 월
예. 하오나 소첩, 청이 한가지 더 있습니다.

김태형
이미 하나 들어주지 않았소!

월은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허 월
소첩의 이름을 한번만 불러주시면 아니되겠습니까..?

태형은 미소짓는 그녀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자신도 모르게 따라서 웃어버리고 말았다.

김태형
그게 진정 너의 청이더냐?

허 월
예. 들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김태형
물론이다...

김태형
월아

'내 너를 연모하게 되었구나.'

윤희연
아버님, 세자빈이 걸려들었습니다.

윤대성
잘하셨습니다, 중전마마.

윤희연
이제 너의 역할이 중요하다,

윤희연
설희야.

윤설희
예, 명심하겠습니다 중전마마. 꼭 세자빈 자리의 주인이 되겠습니다.

윤희연
그래. 내 기대를 저버리지 말거라. 네 맡은 바를 다하지 못하는 날에는...

윤희연
목숨을 잃을 수도 있을게야.

설희의 눈이 커졌다. 자신은 그저 세자의 얼굴에 반해서 갖고 싶다고 생각했기에 이 일을 하겠다고 한것인데, 목숨이라니.

윤설희
예...중전마마. 소녀, 꼭 세자저하의 마음을 얻겠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