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의 김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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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앉던 오후, 나는 도서관 근처 벤치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강의 사이 애매하게 비는 공강 시간. 딱히 할 일은 없었지만, 이런 순간도 나쁘지 않았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스토리창을 켰다. 곧 오늘 라방 공지를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습관처럼 갤러리를 열고 사진을 고르던 중, 눈에 밟히는 게 하나 있었다.

귀여운 곰돌이 사진.

공지에 곰돌이 사진을 올릴까, 생각이 스쳤다.

그러다 문득 ‘bearwith_u’라는 아이디가 떠올랐다.

곰돌이 프사에 아이디까지 '곰돌이'인 걸 보면, 이런 귀여운 사진엔 누구보다 먼저 반응할 것 같았다. 그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은 내 방송을 한 번도 빠짐없이 들어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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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학

“누나, 여기 앉아도 돼요?”

익숙한 목소리가 생각보다 가까운 데서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김운학이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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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학

“도서관 가는 길에 봤어요. 진짜 우연이에요.”

우연치곤 타이밍이 참 절묘했다.

그는 옆에 털썩 앉으며 슬쩍 내 핸드폰을 힐끔 봤다. 나는 반사적으로 화면을 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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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학

“방금 그 사진, 곰돌이 귀엽던데요.”

“…그냥 저장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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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학

“곰이랑 무슨 인연이 있으신 거예요?”

장난기 어린 말투에 괜히 얼굴이 뜨거워졌다. 뭐라 답할지 고민하며 머뭇거리던 그때, 그는 가방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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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학

“목 마르다… 물 좀 마셔야지.”

운학이 꺼낸 텀블러는 금속 바디에 손때가 조금 묻어 있었고, 옆면엔 작고 귀여운 곰돌이 스티커 하나가 붙어 있었다.

“...곰돌이 스티커?”

나도 모르게 눈이 가자, 운학이 내 시선을 따라가고는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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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학

“아, 이거요? 여동생이 붙였어요.”

“응? 되게 안 어울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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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학

“그쵸? 근데 걔가 ‘오빠는 곰처럼 굴어야 귀엽다’고 해서요. 괜히 떼면 또 뭐라 할까 봐 그냥 붙이고 다녀요.”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말투는 장난기 가득했지만, 어쩐지 진심 같기도 했다.

“곰처럼 굴면… 귀여운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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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학

“글쎄요. 누나가 보기엔 어떤데요?”

“글쎄요. 귀엽긴 하네, 곰돌이.”

운학이 나를 보며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했다.

한동안 텀블러를 사이에 두고 이런저런 소소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요즘 도서관에서 뭐 하는지, 듣는 수업이 어떤지, 공강이 많은 날엔 보통 뭐 하는지.

어쩌면 별 얘기도 아니었지만, 그 짧은 대화가 괜히 편안하게 느껴졌다.

헤어지기 전, 그는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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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학

“근데 누나는…”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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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학

“목소리 톤이 되게 좋더라고요. 아나운서나… 그런 방송 같은 거 해도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뭐래요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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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학

“진짜로요. 말할 때 리듬이나 톤이 은근 귀에 오래 남는 스타일이에요.”

운학은 장난스럽게 말하면서도, 시선을 잠깐 피했다. 확실히 묻는 것도 아니고, 그냥 흘리는 말인 척 던진 농담 같았다.

하지만 나는 괜히 물 한 모금 삼켰다. 그리고 눈길은 자꾸 텀블러 옆 곰돌이에게로 향했다.

마치 누군가를 잘 아는 것도 아닌데, 어딘가 계속 익숙한 기분이 맴돌았다.